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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미스 다이어리] 027 - 그녀의 심장은 박제가 되었다
씬/ 연말 거리 분위기(N)
타이틀 : 그녀의 심장은 박제가 되었다
씬1/ 원룸 (N)
#룸. 윤아, 침대에서 전화기 들고 있고,
미자, 옆에서 뚱해서 머리 꼬고 있다.
윤아 30일 밤 출발이요. 두 사람인데요. 네, 네. (사이에, 미안해하며) 제주도에서 병석씨랑 새해맞이 하기로 했거든.
미자 (뚱) 재밌게 놀다와라. (힘없이 일어나는)
윤아 (다시 전화) 네. (반가운) 있어요?
#화장대 앞. 미자, 나오다가 보면,
지영, 화장대에 앉아 통화중이다.
지영 그냥 미자랑 같이 가면 안돼?
미자, 숨어서 듣는다.
지영 윤아도 제주도 가는데, 미자만 약속 없단 말야.
미자 (뒤에서 손톱만 만지작)
지영 (안된다고 했는지) 뭐 어때 같이 가면? 아 왜애? (조르는) 같이 가자아 오빠.
미자, 그냥 확 나가버린다.
씬2/ 미자방 (N)
미자, 힘없이 방에 들어와 가방 던져놓고
악세사리 풀고 외투 벗는 모습에
미자 (NA) 내가 연말에 우울해하는 이윤, 한살을 더 먹어서가 아니다. 혼자서 새해 타종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른다는 쓸쓸함 때문이다.
우울해하던 미자, 순간 번쩍
미자 맞어! (달력 쪽으로 가며) 그때 생방송 걸리면...
손가락으로 달력의 날짜를 따라가다가...
달력을 휙 던져버리고 침대에 눕는다.
미자 (몸 비틀며) 일도 없고... 아응~~
씬3/ 술집 (N) - ENG
부록, 친구 세명과 술자리를 갖는데,
부록, 뚱하니 맥주만 들이킨다.
친구들, 전부 청첩장을 보고 있다.
친구2 (청첩장 보며) 챠~ 이눔이 벌써 시집을 가네. 돌잔치에서 본 게 엊그제 같은데.
친구3 그르게. 딸내미가 올해 몇 살이야?
친구1 스물 넷.
친구2 (놀라는) 근데 벌써 가?
친구1 (뿌듯) 죽고 못산다는데 어떡하냐 보내줘야지.
부록 (오징어만 씹는다)
친구1 근데 부록이 니딸은 결혼 안하냐? 서른 한참 넘었지?
부록 (퉁박) 시끄러! 오늘 술값 니들이 다 내. 니들한테 갖다 받친 축의금 언제 받을지 모르니까 니들이 다 내! (벌컥벌컥 마시는)
씬4/ 거실 (N)
영옥 영숙 혜옥은 모로 누워,
미자는 배깔고 누워 낄낄대며 TV를 보는.
부록, 들어와 그런 미자를 보자
눈매가 가늘어지는데,
할셋 (대충) 왔냐? / 왔어?
미자 (대충 일어나는 시늉) 다녀오셨어요.
미자, 다시 배깔고 누워서 TV를 보고,
부록, 말없이 방으로 뚜벅뚜벅.
씬5/ 부록방 + 거실 (N)
부록, 방문을 쾅!(SE) 닫고 들어온다.
낄낄대는 미자 웃음소리가 들린다.
부아가 치민다. 다시 문을 확(SE) 연다.
그제야 왜 저러나 싶어 부록을 보는데
부록 (방앞에 서서, 버럭) 나이가 몇인데 말야! 쭈그렁 밤탱이 다~~ 되갖고!
할셋 (놀랍고 어처구니없는)
부록 (꽥) 테레비나 보면서 낄낄대고!
영옥 (매서운) 그래서? (부록에게 달려가며) 이게 술쳐마시구 주정을 하나. 어디 에미보구...
부록 (기겁해서 뒤로 빠지며) 어머님, 어머님한테 그런 게 아니구요.
미자 슬그머니 일어나는 모습에
부록 (OFF) 미,미자한테 그런 거에요. 미자. 어머님!
미자, 기죽어 종종종 올라간다.
씬/ 건물 외경 (D) - ENG
씬6/ 여행사 (D) - ENG
핸드폰 하면서 문열고 들어오는 윤아.
윤아 (밝고 힘찬) 어 병석씨. 지금 티켓팅하러 왔어요. 있다 전화 할께요.
윤아, 전화 끊고 데스크로 가서
윤아 (지갑 꺼내며 미소) 30일 출발 제주도행이...
하다가 옆을 보고 표정이 굳는다.
다정한 남자와 여자의 뒷모습.
남자1 (OFF, 분위기 있는 목소리) 빠리행 두장이요.
그 남자1도 윤아를 보았다.
둘 그대로 정지한다.
미동도 않는 윤아에게 슬로우로 줌인.
씬7/ 원룸 (N)
#화장대 앞. 윤아. 덤덤히 시계를 끄르고
악세사리를 끄르다가... 그냥 맥 놓는다.
평소의 윤아와는 다르게 깊어 보인다.
몇 초 후, 눈 내리깔며 핸드폰을 든다.
윤아 저에요 병석씨. (별 죄책감 없이) 제주도 같이 가기로 한 거, 못 가게 됐어요. (사이) 미안해요. 그리고... 앞으로도 만날 일 없을 꺼 같애요.
지영 (뒤에서 갑자기 얼굴만 내미는데, 띠용!)
윤아 (한참 듣다가) 미안해요. (사이) 굳이 이율 대라면... 그쪽이 싫어졌어요.
지영 (정말 띠용)
윤아, 매몰차게 끊어버리고 일어나자
지영, 후다닥 얼굴 빠진다.
#룸. 지영, 발소리 죽이며 오는데, 놀랍다.
씬8/ 카페 (N) - ENG
미자 (놀랍고 반가운 표정으로) 윤아 헤어졌어?
지영 (황당) 좋니?
미자 (머쓱) 갑자기... 왜 헤어졌대?
지영 몰라. 그냥 싫어졌대.
미자 하루아침에 갑자기?
지영 몰라. 어제 병석씨 밤새 전화하고, 새벽에 찾아오구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 윤아 밝게 들어온다.
윤아 (앉으며) 일찍 왔네? 여기 오백 하나요!
미자 (슬쩍) 병석씨랑... 싸웠어?
윤아 그냥 싫어졌다니까. 그게 다야.
미/지 (살짝 어처구니 없는)
윤아 (방어의식 없이 밝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원하던 100프로 남자가 아닌데 굳이 새해를 같이 맞이할 필요가 있나? 새털같이 많은 365일 중에 하루라면 뭐 괜찮아, 70프로짜리도. 근데 새해는 아냐. 그 뿐이야. (마시는)
지영 차. 말은 청산유수지. 난 바람둥이는 기본적으로 우리랑 뇌구조 자체가 다르다고 봐. 이런 생각 얘(윤아)나 할 수 있는 거야. 우린 맘 약해서 그렇게 쉽게 파토 못내잖아.
미자 (약하게 동조) 못하지.
지영 정 짧은 것도 죄야. 오윤아 너 죄 받어. (깐죽) 나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 너 사랑이 뭔 줄이나 아니? 사랑 때문에 아파 본 적 있어?
윤아 (약한 정색) 나도 심장 있어.
지영 그래 있을 꺼야. 박제된 심장.
윤아 (피식) 마시자 그냥!
미자 (E) 잘하면 윤아랑 같이.. 연말을... (크크크)
(*윤아는 친구들 앞에선 왠만하면 슬픔을 티내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든 버티려 한다. 그러다 마지막 화장실 씬에서 솔직한 감정이 터진다)
씬/ 집 외경 (D)
씬9/ 주방 (D)
부록과 미자, 둘이 아침을 먹는데,
부록은 계속 미자만 노려보고,
미자, 되려 보란 듯이 아구아구 먹는다.
미자 ... (안 보면서도) 그만 노려보세요.
부록 밥이 입으로 넘어가냐? 크리스마스엔 일한다 그러더니, 연말엔 뭐할꺼냐?
미자 (먹기만)
부록 배깔고 누워서 테레비 볼래?
미자 (어깃장) 그러죠 뭐.
부록 (폭발하려다... 꾹 참고) 거리에 쌍쌍이 돌아다니는 거 안 보여? 남들은 밤~새 부둥켜안고 돌아다니는데! 방구석에서! (씩씩대다가) 앞으로 집에 일찍 겨들어오기만 해봐! 그땐 콱! 들어오지마!
미자 (궁시렁) 고슴도치도 지 새끼가시는 앙고라라고 한다는데, 아무리 나이 좀 찼다고 집에도 못 들어오게 하니.
부록 (버럭) 고슴도치도 고슴도치 나름이지. 지 새끼가 서른 넘게 시집 안가고 집구석에서 배깔고 누워있어보라 그래! 그 고슴도치 아마 지 새끼 가시를 다~ 뽑아 분질러 버렸을 꺼다!
미자 (그제야 부록 보며 꽥)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나이 찼다고 다 결혼해요? (휙 나가버리는)
부록 저저저저!
혜옥과 영숙, 빈 물병 들고 들어온다.
영숙 (물병 정리하며) 열아홉 처녀 꼬셔서 결혼한 자네 눈에나 미자가 이상해 보이지, 미자 아직 괜찮아. 멀쩡해. (슬쩍 혜옥 보며) 육십 먹은 노처녀도 있는데 뭐. (나가는)
혜옥 나도 멀쩡해. 괜찮아. (나가는)
부록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씬10/ 샌드위치 집 (D) - ENG *간단하게 점심 먹을 만한 곳
윤아, 지영과 미자 옆으로 와 샌드위치 먹는.
지영 (비아냥) 백프로는 아직 못찾았나부지?
미자 너어, 연말은 꼭 남자랑 보내야 된다는 생각, 그거 디게 불순한 생각이다. (슬쩍) 그냥 우리 다~ 같이...
윤아 (OL) 다 같이 솔로인 거 광고하고, 외롭지 않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송년회? 난 싫어.
미자 ... 기지배...
윤아 (핸드폰 열어 검색하며) 어디... 백프로짜리가 있나... 보자...
지영 (윤아의 핸드폰을 뺏으며) 하지좀 마. 보기 흉해.
윤아 ...!!
지영 정신적인 교감없이 그저 즐기는 상대로만 남자 찾는 거! ... 추해. 너~무 추해.
윤아 ...!!
지영 장담하는데, 너 이렇게 놀다간 언젠간 된통 당해.
윤아 아주 당하길 빌어라. (핸드폰 확 뺏어서 나가는)
지영 (뒤통수에 대고) 어! 빌라구! 새해 소원으로 너 사랑 때문에 된~통 앓게 해달라구 빌라구! 치...
미자 (너무했다 싶은 표정으로 지영 보는)
지영 (지레) 심했니?
미자 (끄덕끄덕)
지영 (그랬나? 하다가) 아 뭐 어때.
하면서도 왠지 찜찜한 지영의 표정에서.
씬11/ 윤아 사무실 (D) - ENG
윤아, 빠르고 건조하게 일하는 몽타주.
눈 내리깔고 서류 보는 모습에
간간히 보이는 씁쓸함.
그 모습 위로 과거의 장면이 보인다.
씬12/ 몽타주 - ENG
#캠퍼스 분위기.
남자1, 윤아를 뒤로하고 뚜벅뚜벅 가버리고,
윤아, 그대로 굳어서 멍하게 바라본다.
윤아 (NA) 그가, 어느날 갑자기 떠났을 때, 한순간에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도서관. 고시생처럼 미친 듯이 공부한다.
의자를 붙혀놓고 새우잠을 자고
도서관 화장실에서 이를 닦는다.
그리고 또 공부에 매달리는 윤아.
윤아 (NA) 뭔가... 매달릴 것이 필요했다. 미칠 것 같은 사랑을 대신해 뭔가에 미쳐야만 했다. 난... 그때 미쳤었다.
#취직한 윤아, 열심히 공사현장을 지휘하고,
윤아 (NA) 미친 듯이 일하고, 미친 듯이 올라갔다...
#공사가 마무리된 그 어두운 빌딩 안을
또각또각 천천히 걷는 윤아.
(갤러리처럼 넓고 세련된 공간)
통유리벽으로 서울의 야경을 보는데
윤아 (NA) 그리고...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었을 때.
야경을 보다가... 문득 울음이 터진다.
윤아 (NA) ... 그때, 눈물이 쏟아졌다.
#더욱더 설움에 복받쳐 울음이 커지고
윤아 (NA) ... 그가 돌아올 줄 알았다... 나를 떠나선 살 수 없을 거라고... 버티고 있으면 언젠간 다시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흘러도 그는 오지 않았다...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는 걸... 그때 알았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엉엉 우는 윤아.
윤아 (NA) ... 미련을 접어버린 그날 이후, 내 심장은 서서히 박제가 되기 시작했다.
#밝게 여러 남자와 만나는 모습들
윤아 (NA)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그렇게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 정말 다 사랑하는 건지, 매번 사랑을 느끼는 건지.
#원룸, 윤아, 다양하게 엉엉 우는 컷들.
옷과 헤어스타일을 다르게 해 시간 흐름을 준다.
윤아 (NA) 나도 사랑한다. 매번 사랑에 빠진다. 단지,
#울음의 강도와 양이 점점 약해지는
윤아 (NA) 헤어지고 난 뒤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시간이 점점 짧아질 뿐이다.
#신중을 기울여 화장하면서 입으로만 우는,
순간 립스틱이 부러지자 이잉! 울음 커졌다가
이내 다시 건성으로 울며
윤아 (NA) 그렇게 심장이 완전히 박제가 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씬13/ 여행사 (D) - ENG
다시 7씬이다. 윤아, 충격에 굳어서
옆에서 여자와 다정하게 있는 남자1을 본다.
멍하고 충격적인 윤아의 표정으로 줌인.
가까이 줌인되면 심장소리(SE)
윤아 (NA)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남자 (OFF) 빠리행 두 장이요.
윤아 (NA, 티내진 못하지만 절망적인) 그가... 빠리행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윤아를 본 남자, 역시 굳는다.
윤아의 굳은 모습에서.
씬14/ 윤아 사무실 (D) - ENG
덤덤히 창밖을 보는 윤아로 넘어온다.
씬/ 집 외경 (D)
씬15/ 주방 (D)
식탁에 보자기로 싼 빈 반찬통들 있고
영옥, 물을 마시곤 잔을 내려놓는다.
우현은 뒤돌아 설거지 중.
영옥 (긴 한숨)
영숙 (바가지 들고 들어오며) 땅꺼지겠네. (빈 반찬통 끌러 개수대에 넣으며) 또 그 할멈네 갔다왔구만. 거기 가면 마음 안 좋다면서 왜 그렇게 자주 가?
영옥 송장됐으면 나라도 치워줘야 될꺼 아냐.
영숙 저번에 갖다준 건 좀 먹었수?
영옥 손도 안 댔어.
영숙 쯧쯧... 계속 살기 싫다 그래요?
영옥 (걱정스런) 이번엔 빈말이 아닌 거 같애.
영숙 에으.
영옥 (화나는) 썩을 놈. 이 한겨울에 찬구들방에 지 에미 내팽겨치고 어떻게 한번을 안 들여다봐?
영숙 새끼도 버리는 세상인데 말 다 했지. 아무리 배곯아도 새끼 버린 시댄 없었수. 무서운 세상이야.
우현 (돌아보며) 총각김치 맛들었는데 내일 좀 갖다 드릴까요?
영옥 ... 고기도 좀 재봐. 연하게.
우현 예. (다시 설거지)
영옥 (심난한 표정)
씬16/ 카페 (N) - ENG
윤아, 스푼으로 커피만 천천히 휘젖는다.
윤아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자는 전화로 어리광이다.
미자 (실밥 뜯으며) 언니는 연말에 뭐하우? 대본 써? (자기도 김새면서) 안됐다... 연말에도 일하고. 응? 응... 응... 나야 뭐... 그런 거 모르지...
미자가 이런 대사를 하는 동안
윤아는 핸드폰을 열었다 닫었다하는데
미자 잠깐만. (수화기 막고) 우리 작가 선배 알지? 드라마 쓰는데 대사가 안 풀린다고. 만약에 말야, 널 버리고 간 남자를 우연히 만났는데,
윤아 (표정)
미자 그 남자가 웃으면서 널 보면 어떻게 할꺼 같애?
윤아 (표정)
미자 아! 미안. 죽어라 찬 역사 밖에 없는 오윤아님은 그런 거 모르시죠. (수화기 귀에 대는데)
윤아 (핸드폰 뺏어들고) 저 윤안데요, 저라면 이럴 꺼 같애요.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온전히 감정 이입돼서) 병신... 멋부리지마. 니가 나만큼 아팠을 꺼란 기대는 안 해. 미.친.놈... 양심이 있으면 이렇게 날 보며 웃진 못하지. ... 앞으로 100미터 전방에 내가 보이면 뒤돌아 전력질주해서 사라져버려. 안 그럼, 내 손에 잡히면... 그땐 죽는 거야...
윤아의 사무친 표정이 간 후,
멍해서 짝짝짝 박수치는 미자.
미자 (놀라운) 너... 작가하지 그랬어?
윤아 (불쌍하게도 다시 익살스레) 내가 못하는 거 있는 거 봤어?
전화기 건네주면 미자 계속 통화하고,
윤아, 돈까스 류를 꾸역꾸역 먹는다.
볼이 미어터지게 꾸역꾸역.
씬/ 판자촌 외경 (D) - ENG
씬17/ 독거노인 방 (D) - SET 혹은 ENG
영옥과 우현, 보따리 들고 들어온다.
한평 남짓한 공간에 이것저것 위태롭게 쌓여있고,
창문도 없이 어둡고 탁하다.
이불 덮고 누워있는 할멈.
할멈 (힘들게 입떼는) 아우... 왜 또 왔어...
영옥 죽었나 살았나 보러 왔다 왜? (전기밥솥 열어보고 닫으며, 퉁박조) 힘들어서 밥 안 하는 거야? 그런 거면 내가 매일 와서 해주고!
할멈 (다 죽어가는) 그냥 둬...
영옥 이으. (우현에게) 거 상 펴.
우현 예.
작은 상을 펴서 보자기 끌러
밥과 고기와 김치를 꺼낸다.
영옥 일어나. 고기 먹고 힘 좀 써봐. 총각김치도 아작아작한 게 맛나. 물 말아서 한입만 먹자.
할멈 (손 내젖는) 싫여...
영옥 (버럭) 아 이거라도 먹어야 저승길 갈 거 아니야! 저승 갈 때 누가 가마태워줄 줄 알어? 어여 일어나.
영옥, 할멈을 일으키고,
영옥 (수저 쥐어주며) 고기도 먹고, 이것도 좀 먹어봐.
할멈, 총각김치가 한번에 베어지지 않는 듯
이리저리 돌려가며 힘들게 베어먹는다.
우현, 그런 할머니를 의미있게 보다가
우현 (보온병의 물 따르며) 마시면서 천천히 드세요.
씬18/ 거리 일각 (D) - ENG
#요란한 연말 분위기의 거리.
#그 거리를 걷는 듯한 영옥과 우현.
영옥은 착찹한 표정으로 걷는데,
우현, 보따리를 들고 뒤따른다.
영옥, 문득 돌아서 번쩍이는 거리를 보며
영옥 (쓸쓸) 좋~네. 어디 한 구석 썩어 문드러지는 것도 모르고... 번쩍 번쩍 빛나는 세상... 좋~타. 에으... (다시 가는데)
우현 (종종 쫓아가) 걱정마세요. 그 할머니 안 죽어요.
영옥 ... (멈춰서 보면)
우현 아까 보니까 이가 나쁘신지 총각김치를 (흉내) 요리조리 돌려가면서 드시더라고요.
영옥 ... ??
우현 정말 살기 싫으면 안 깨물어지면 안 먹구 말지 그렇게 안먹어요. 정말 살기 싫으면 못 그래요...
영옥 ...!!
우현 그냥 사돈어른이 들여다 봐 주는 게 좋아서 그러는 걸 꺼에요.
영옥 ... !!
영옥, 잠깐 표정 간 후, 앞 서 걸으며
영옥 (피식) 조거 맹물인 줄 알았더니, 제법이네...
그때 우현, 발라당 미끄러지는.
영옥 (돌아보며) 거거 조심 좀 하지. 괜찮아?
우현, 앓는소리 내며 일어나고
영옥, 가서 괜찮아? 하며 보는.
씬19/ 마당 + 대문 앞 (D)
부록, 퇴근하는 듯 들어오는데
친구5, 허둥지둥 뒤따라 들어온다.
친구5 어이 부록이! 자네가 부탁한 미자 혼처 말야.
부록 (반색) 그래. 어디 좋은 데라도 있나?
친구5 저기 사거리 금은방집 큰아들이 서른 여섯인데, 사람 아주 진국이야.
부록 (좋아) 서른 여섯. 좋네. 직업은?
친구5 백화점에 매장이 세 개나 있잖어. 돈을 아주 쓸어 모은대.
부록 (완전히 업된) 좋네 좋아.
친구5 (슬쩍) 철없는 나이에 일찍 결혼해서 실패해갖고 혼자 된지 7년 됐는데...
부록 (으잉?)
#영옥, 대문 앞에서 듣고 있다.
친구5 (OFF) 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대순가. 안 그래?
#다시 마당의 부록의 모습으로
부록 ... (씁쓸한데)
친구5 (어렵게) 뭐... 전처가 난 애가 둘 있기는 한데...
부록 (순간 눈에 불이 난다)
친구5 애들도 순하고 착해서 미자 맘고생은...
하는데 부록, 냅다 멱살을 잡는다.
친구5 어어어. 왜, 왜 이래, 이 사람. 어어어.
영옥, 모른 척 덤덤하게 들어오는데
부록과 친구5, 달라붙어 이리비틀
저리비틀하다가 대문을 나간다.
영숙/혜 (허위허위 내려오며) 아우 아범. / 뭔 일이냐.
영옥 냅둬! (밖을 향해) 그 놈 반만 죽여놔! 반은 내가 죽이게! (계단 올라가며) 어디서 주둥이를 함부러 놀리고 있어.
영숙과 혜옥, 양쪽 보며 어쩔 줄 몰라하는.
#대문 앞. 음악 깔리며...
부록, 남자5의 멱살을 잡고 이리쿵저리쿵,
모자 떨어지고, 서로의 힘에 이끌려 쿵, 쿵.
그렇게 두 남자 엉켜붙어 카메라 앞으로 빠진다.
씬20/ 방송국 / 회의실 (D)
성우들 한켠에서 각기 쉬고 있는데,
현우, 미자와 지영에게
현우 새해를 맞는 프론데 녹음으로 가는 게 무리가 있는 거 같다고 생방송으로 가라는데...
미자 (OL, 눈이 번쩍! 힘차게 손들고) 생방해요! 생방! 저 할 수 있어요! 생방해요!
영진 최미자~ 할 일 없는 거 너무 티난다.
미자 (민망해 손 내리는)
지영 그냥... 녹음하죠. 생방하면 스텝들 다시 나와야 되고.
미자 (E) 이러언!
현우 그러죠 그럼.
미자 (낙담하는데)
현우 (나가려다가) 아, 그리고 어쨌든 31일 녹음후에는 우리 더빙팀 송년회 예정대로 하기로 했으니까 그런 줄 아세요.
미자는 눈이 번쩍 떠지는데 반해,
지영과 성우들 궁시렁댄다.
성우들 아~ 안되는데.../ ..어떡해/ ..약속있는데. / 나두.
현우 강요는 아니니까 알아서들 하세요. (나가는)
미자 (안도하는 표정에 E) 아버님. 두고 보십쇼. 내일 저 완전 올나잇하고 들어가줍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에서.
씬/ 집 외경 (N)
씬21/ 부록방 (N)
부록, 지쳐서 눈감고 누워있다.
우현, 옆에서 이불 덮어주고
눈치보며 다리 주물러 준다.
우현 (슬프면서 분한) 저 있을 때 싸우시지. 미끄러져서 파스 사러 갔었는데... 나 있을 때 그랬으면... 가만 안뒀어 그 자식.
씬22/ 거실 (N)
씁쓸하게 부록방을 보는 미자.
영옥 영숙 혜옥, 신문깔고 미나리 다듬고 있고,
그 옆에 미자 앉아있다.
영숙 40년지기 친구랑 멱살 잡고 동네를 돌았으니...
영옥 40년지기고 100년지기고 눈이 뒤집히는데 그게 보여? 우리 미자가 뭐 쉬어터져서 갖다 버리게 생겼어? 어따가 남의 귀한 손녀를 갖다부쳐? 거 내 손에 안 걸린 게 다행이라 그래.
혜옥 (눈치없이) 근데 조카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싸움 못해. 그지?
영숙 아 누구 하나 제대로 힘쓰는 사람 있었으면 두 시간씩이나 멱살 잡고 동네를 돌았겠어? 그냥 분에 겨워서 진 빠질 때까정 멱살만 잡고, 이리 끌고 저리 끌고...
미자 ...!!
영옥 제대로 패지도 못하고 욕도 못하다가, (목청껏 흉내) 우리 미자 마흔에도 남자 골라 갈 수 있어~~! 그러는데 내 속이 다 시원하더라.
미자 ...!!
영옥 미자 너 마흔에도 남자 골라 갈수 있어. 걱정 마.
미자 (뚱) 걱정은 누가...
혜옥 난 예순에도 갈 수 있다고 봐.
영옥 넌 물 건너갔어. 좀 빠져. (다시 미나리 다듬으며) 평생 한 이불 덮고 살 짝을 어떻게 스물 중반에만 찾으래? 인생에 좋은 남자가 그때만 나타나나.
영숙 누가 아니래. 짝이 아니다 싶으면 늦게 해도 되는 거지. 결혼이 뭐 돼지 새끼 접부치는 것도 아니고 말야.
영옥 (미나리 던지며) 거 말 좀 가려 해라. 상스럽게... 돼지... 에으!
미자, 맘은 풀렸으나 뭔가 씁쓸한.
씬/ 집 외경 (D)
씬23/ 주방 (D)
부록, 말없이 아침 밥을 뜨는데,
미자, 뚱하니 부록의 물을 따라 주고
반찬도 가까이 놔준다.
부록, 미자와 눈을 안 마주치고 얘기한다.
부록 ... (먹으며) 미자 너.
미자 ...!!
부록 더 있다가도 돼. 결혼에 나이가 어딨냐. 아무 때고 마음에 맞는 사람 있으면 하는 거지.
미자 ... 네. (나가려는데)
부록 오늘 일찍 들어와. 괜히 밖에서 배회하지 말고. 식구들이랑 송년회 하자.
미자 약속 있어요.
부록 약속은 무슨...
미자 진짜 있어요.
부록 일찍 들어와.
미자 (약간 억울) 약속 있다니까...
씬24/ 윤아 사무실 (D) - ENG
#윤아, 일하는 모습이 몽타주로 보이다가,
#일하다가 회사 벽의 시계를 보는 윤아.
몇 초 보다가, 급하게 전화를 누른다.
윤아 오늘 빠리행 비행기가 몇시죠? 그거 타면 빠리에서 새해 맞기 전에 도착할 수 있나요? 자리는요? (실망하다가 다시) 그럼 대기자 명단에 올려주세요.
씬25/ 공항 (D) - ENG
#공항 인써트 자료화면 나간 후
#일각으로 공항 분위기만 나는 곳에서
윤아, 간이 데스크에 있는 직원 앞에 서있다.
직원 죄송합니다. 탑승수속이 거의 완료된 상황이라 기다리셔도 소용없을 껍니다.
윤아 상관없어요. 기다릴게요.
<시간경과>
#데스크 옆에 앉아있는 윤아...
장내 많이 조용해졌다. 사람도 없고.
직원 (서류 챙겨들고 다가와) 파리행 비행기 이륙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간다)
윤아,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다.
씬26/ 카페 (N) - ENG *파티 분위기 낼 수 있는 클럽 같은 곳
#신나게 왁자한 분위기 훑고 나서
#미자, 황당하고 뻘쭘한 표정인데,
보면 양옆에 현우와 정민이다.
현우는 카페를 둘러보며 음악에 맞춰
약하게 고개를 까딱이고 있는데,
정민은 불만에 차 있고 떠든다.
정민 이런 날은 어딜 가서 뭘 먹고 어디로 이동해서 뭘 해야 된다... 그래서 가시라고, 가셔셔 실~~컨 하시라고... 하고 와버렸잖아. 왠~만하면 내가 오늘 같은 날 여자랑 있어줬다! (하다가 현우 보곤. 툭툭) 어이. 듣구 있어요?
현우, 정민 보고도 여전히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딱이고는 무시하듯 시선 돌리는데
정민 (미자 보고) 듣는데.
정민, 별 게 다 맘에 안 든다.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전혀 동화되지 않는 쓰리 샷
#시간경과. 분위기 무르익어
정민 현우 미자는 홀에서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춤추는데, 테이블을 보면,
등돌리고 틀어앉은 지영과 동직.
동직, 맥주 마시다 열받는지 버럭
동직 아니 고속도로 막히는 게 내 탓이야?
지영 그렇다고 그냥 돌아오면 어떡해?
동직 그럼 그냥 길바닥에서 해뜨는 거 봐?
지영 (팩 토라져 아무말 않는)
동직 에으! (맥주 벌컥벌컥)
#다시 사람들 춤추는데 비추는데,
#어느새 그 틈에 지영과 동직도 신나서 있다.
#지영, 맥주 마시려 테이블에 와서 보면
윤아가 앉아있다.
지영 (약간 취한) 어? 언제 왔어?
윤아 (살짝 미소) 지금 막.
지영 (흘기며) 왜? 백프로 남자가 없었나부지?
윤아 (궁금하게) 사실 구십구프로까지 만났었는데! (싱긋) 백프로짜리 친구랑 보내는 게 날 꺼 같애서.
지영 지지배... (하다가) 어머~ (아는 사람 본 듯 호들갑떨며 가고)
윤아, 웃다가 서서히 웃음이 사라진다.
덤덤한 표정으로 맥주를 벌컥벌컥...
#다시 즐겁게 춤추는 사람들 비추다가...
씬27/ 카페 건물 일각 (N) - ENG
어디선가 들리는 술취한 윤아의 목소리.
윤아의 목소리를 찾아 카메라 움직인다.
윤아 (OFF) 언니, 저 윤안데요, 대본 다 썼어요? 내가 말한 대사 썼죠?
윤아, 계단께(혹은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 들고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다.
윤아 (취한) 언니... 저 부탁이 있는데요... 그 남자 주인공이요, 이름 바꿔주면 안돼요. 김,찬,휘..로요. 그렇게 해줘요. 왜냐면... 그 놈... 그 드라마 보고... 뜨끔해야 되거든요... (서서히 서러운 울음이 터지는) 만난지 10년 되는 2005년엔 같이 빠리에서 새해 맞기로 했던 놈이... 딴 여자랑 빠리행 티켓 끊구... 그 여자 알려나? 빠리 나랑 가기로 했었던 거. (울음 참으려는데 잘 안된다. 간신히 진정하고) 언니, 주인공 이름 바꿔주면 안돼요? 여자 이름 오윤아... 남자 이름 김찬휘... (또 다시 울음 터진다)
씬28/ 카페 테라스 (N) - ENG
윤아, 나와서 찬바람을 쐬며 도시를 본다.
그리고 다시 씁쓸하게 웃어 보인다.
씬29/ 카페 (N) - ENG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전광판을 보며
크게 카운트 다운한다.
모두 오! 사! 삼! 이! 일!
모두 환호하며 ‘Happy New Year'외치며
샴페인과 폭죽 터트리는 신나는 분위기에서. 코드음. F.O
씬30/ 카페 테라스 (N) - ENG
F.I#보신각 타종 자료화면
#그 소리에 맞춰 모두 차분히 새해 소원을 빈다.
지영 (E) 올핸 꼭 우리 오빠 스타되게 해주세요.
동직 (E, 협박조) 한번만 뜹시다, 네?
정민 (E) 올핸 내 짝 코빼기나 좀 보자. 어디서 뭐하고 있을래나...
미자 (E) 굳이 남자가 아니더라도, 내년에도 내곁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어주길 바란다.
현우 ... (E, 타종 소리에 맞춰) 열 셋, 열 넷, 열 다섯... (타종 소리 세고 있다)
도시를 바라보는 윤아의 표정에
윤아 (E) 새해엔... 내 심장이... 더 이상 사랑에 뛰지 않기를 바란다. 완전히 박제가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