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마흔 다섯번째 생일, 마흔과 쉰의 딱 반절이라는 의미 외에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은 본인조차도 다소 밋밋해하고 슴슴해한다.
마음 울리는 일은 거의 지나온 나이지만, 그래도 한번씩 가슴을 울려주어야
조금 더 촉촉하게 적시는 시간을 누리는 게 이 나이다.
생일 일주일전 부터 남편에게 친구나 지인을 초대하라고 극구 강요했건만,
번거롭고 귀찮다고 그냥 무시했다.
막상 하루 전, 회식이 있어서 늦게 들어온 남편을 보면서
뭐 저렇게 어울려 지내게 두는 게 생일 선물이나 상차림같은
반짝 이벤트보다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잠시,
"생일은 생일이다"-매번 거는 마술에 가까운 주문이다.
내가 안챙겨주면 부모님도 안계시고 외로운 이 사람 생일이 헛헛할 거 같아
미리 사둔 미역국용 고기의 핏기를 빼는 것을 시작으로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
아침에는 생일상의 대표요리만 간단하게 올렸다.
*미역국-치맛살을 이용해서 끓인 고기를 식혀 손으로 죽죽 찢어 고명처럼 얹는다.
*잡채-잔치 상에 없으면 허전한, 별 맛은 없지만 그래도
늘 얼굴 마담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생선구이-옥돔을 올리고 싶은데,
옥돔을 별로 안좋아해서 다른 것으로 대체했다.-흔한 고등어
*샐러드-이거는 거의 빠지지 않고 올리는 음식이다.
생야채를 많이 먹어야 한다고 강제하고 있다.
그 밖에 김치. 열무김치, 깻잎김치, 오이 소박이가 구경꾼처럼 올라와 빈자리를 채워준다.
저녁상은 대충 식단 작성하는 데, 30분이 걸리고
장보기에 1시간 30분 소요, 음식하는데 3시간 30분이 걸렸다.
<1차 식단>
중식 : *버섯 탕수육 *양장피 잡채 * 누룽지 탕
한식 : *더덕 고추장 구이 *도미찜 *은행과 새우가 든 계란찜
양식 : *꼬치 오븐 구이 *샐러드 *연어 스테이크 * 베이비 립 훈제 구이 또는 바베큐 구이
기타 : *월남쌈
장보기에는 늘 그렇듯 재료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훈제 포크 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스모크 칩을 구하지 못해서 일잔 훈제는 탈락했다.
양장피가 대형 마트에 없어서 음식 재료상을 갔어야 했는데, 못가서 누락되었다.
누룽지 탕은 조리시간이 빠듯한데다 가족들이 탕수 쪽으로 기울어서
한가지에 전력하기로 하고 아쉽게 버섯 탕수 한귀퉁에 누룽지만 등장했다.
<오늘의 반성>
식구들끼리 먹기에는 양이 지나치게 넉넉했다는 점-늘 내 손이 크다는 걸 늘상 간과한다.
식탁보를 깔지 않아서 사진상으로 볼 때 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
아이들에게 밥과 국을 준비하라고 햇더니 수저 놓인 모양새나
국그릇 밥그릇이 평소에 쓰는 일상식기가 등장해서 분위기 못맞추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
다들 바라보는데 허기져서 나머지 음식이 상에 오르기도 전에 지들끼리
대충 사진 찍고 먹기 시작해서 나머지는 선보이지 못했다는 점,
월남쌈은 모양도 무척 이쁜데 사진에 오르지도 못했다는 점.
정말로 뉘우칠 일은 음식 많이 남아서 내일 아침에 또 먹어야겠다는
자조어린 남편의 말에 불끈 힘이 샘솟아 아침에도 음식을 다시 장만하고
오늘 점심부터 나는 남은 음식 처리에 주력해야 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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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누구 신랑은 차암 좋겠다... 신랑을 조로케 아끼는 이쁜신부 주연씨가 있으니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