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녹색에서 갈색으로 넘어가는 색채의 진동을 느끼는 촉수도 자란다
그 진동속에 서성이는 가을의 마음도 다독인다
온전히 자기만의 세상에서 겨누고 녹이고 휘저으며
마음의 파문을 그려가는 갈색의 잎새
앞섶 여미는 기도끝에 제 몫을 다하는 열매가
달콤한 과육으로 달려있는 가을은 그래서 위대 하기도 하다
첫번째 주자로 글을 쓰라는 지명을 받고 이벤트 내용을 읽는 순간
가마득한 40년전의 유년이 달려 나왔다
그 한토막을 풀어 낸다
남녀공학 세개반이던 꿈이 여물기 시작하던 중학교 시절
한 반 친구들 중에는A반B반으로 나뉘어져 있던 남학생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 일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지금도 만나면 그 얘기로 깔깔거리지만
티브이도 없고 전화기도 라디오도 귀하던 시절 편지는 유일한 통신수단이었다
그 때 어느 남학생과 편지라도 주고받는 사이가 있었다면
지금 얼마나 즐거운 소재가 되었을까
한편으로 s언니를 정하는게 유행이었다
옆의 짝지가 같은 학교 선배도 아닌 언양중학교에 다니는 언니를 소개 해 주었다
그 언니는 공부는 물론 글쓰기 재주가 뛰어나다는 말에 솔깃해서
친구가 배달부가 되어 그 때부터 편지를 주고 받았다
예상외로 그 언니는 역시 나보다 한수 위로 글쓰기 달인이었다
교내 백일장을 휩쓴 시들을 적어 보내주었고 얼굴도 못본 채
이년 가량 편지를 주고 받다가 눈이 소복히 내렸던 고등학교 입학 시험 날
마치고 나오니 정말 그 때는 귀했던 라면을 교문앞 식당에서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그 때 유명했던 여배우 남정임을 닮았던 눈이 유난히 커던 언니
다정한 언니는 지금도 같이 부산에 살며 왕래하고 있으니 참 큰 인연인것 같다
교실 앞 화단에 노란 소국이 만발하여 우리를 유혹할 때
가을 소풍 날짜가 잡혔다
학교 전통으로 중2 가을소풍은 운문사였다
아 가을인가 아~~가을인가 아~아~~아~~~가을인~가~ 봐
친구 손을 잡고 노래부르며 수다도 떨며 운문 고개를 넘어 해 종일 걸어 가던 길
드디어 소나무 숲이 나오고 해질녁 운문사 절이 보였다
요즘도 가끔 운문사를 둘러 운문고개에 앉아 양재기 국수를 먹지만
그 때와 지금 격제지감을 절실히 느낀다
포장도 안된 그 황토길을 걸어 넘던 즐거운 소풍 날 가을 햇빛은 찬란했고
온 산을 물들인 채색된 단풍잎들은 우리를 굽어보고 있었지
그 날 저녁 달빛은 왜 그렇게 밝았을까
아무도 여관방에 있질 못하고 소나무숲에 나와 친구와 손잡고 거닐고 있는데
시커먼 남학생이 친구 젖가슴을 순식간에 만지고 달아나지 않는가
희미한 달빛아래 소나무 숲사이를 이리저리 헤메고 다니다니
어떻게 알고 어떻게 잡는단 말인가
그래도 잡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친구와 나는 누군지도 모르고 한동안 같이 찾아 헤메었다
대책없이 당하고 분해하던 그 친구는 벌써 외손주 둘을 보았다
어쩌다 만나 이런 이야기를 하며 둘이서 목젖이 보이도록 박장대소를 하곤 한다
남녀 칠세 부동석까지는 아니지만 그 때 그 친구랑 나는 남학생과는 말도 걸지 않았다
그런 어느 여름날 한동네 남학생이 런닝 바람으로
우리반에 있는 어떤 여학생에게 전해 달라며 편지를 들고 왔다
이웃에 사는 단짝인 친구와 나는 그 편지를 곱게 보내줄리 만무했다
살살 여민 봉투를 뜯어 내용물을 흡족하게 읽고 건네 주었다
답장을 주면 또 같은 수법으로 뜯어보고 건네주고
킬킬거리며 보던 생각만 나지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지 하나도 생각나는게 없다
편지받던 친구는 결혼해서 서울에 살고
편지주던 친구는 울산에 살지만 어쩌다 몇년에 한번 동기회에 만나면
그래도 그 때의 정이 남았는지 만나는게 각별해 보인다
편지, 그 편지란 말이 왜 이렇게 가슴에 와 닿는지
쓸어둔 넓은 마당위로 우체부 자건거가 찍고간 둥그런 무늬 끝
툇마루에 훌쩍 던져 놓고가던 편지 뭉치들
객지에서 직장생활하던 큰오빠 편지,강릉에서 군생활하던 작은 오빠편지, 멀리있던 친구편지
그 깨알같던 글자들이 새삼 그립다
올 가을에는 혼사말이 오가는 딸에게 긴 장문의 편지를 써야겠다
한 남자를 선택하여 결혼을 하는 중요한 기로에서
엄마가 해 주어야 할 말은 무엇인가
마음의 해저에서 긴 울림이 전해져 온다
또 다시 가을이 왔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던가
가끔씩 유년의 뜰을 거닐며 미소를 머금는 이런 시간도 나는 참 좋다
가만히 앉아서 글을 주고 받는 인터넷 세상
사람과의 소통은 무엇이던 좋지만
하루 세번 시간 맞춰 먼지 풀풀 날리는 신작로길을 달려오던 버스를 타고
가을 이름으로 어울리는 뭉게구름위로 종이 비행기를 날리며 길벗이 되는 갈바람을 맞으며
가을벌판으로 내달린다
어쩌다 침향처럼 가라앉은 무게로 조금씩 내 향기를 애써 만들어 낼려고 애를 쓰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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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뜰(3)
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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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20 18:4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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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타임머신 타고 시간여행 떠나온 듯 합니다 ...
학교 끝나면 책보 내동댕이 치고 산과 들로 칡뿌리 깨고, 메뚜기 잡고, 우렁 잡으러 다닌 기억 밖에 없군요. 시골에서 학교 다닌 것이 너무 좋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