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면(綿) 장갑
김 정실
인간이란 자기 보호 본능이 있는 것이다. 대설(大雪)인데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것이라는 기상청 캐스터의 소리가 들려온다. 오후에는 경북북부 산간지방은 눈(雪)이 내린다고 한다. 무언지 모르게 스산하게 추위를 느낀다.
목도리를 챙기고 장갑도 챙기려고 서랍장을 열었다. 여러 개의 장갑 옆에 둥그렇게 뭉쳐있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집어서 펴보는 순간 아, 그때 그 것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따듯함이 묻어났다.
옥천 정지용 문학관 문학기행 가는 날이다. 나는 K임과 자리를 같이했다. 출발하기 전 이런 저런 이야기 중 하루 나들이 길에 준비한 소지품들을 서로 주어 섬겼다. 그녀는 모자에 파라솔까지 아주 알뜰하게 잘 준비를 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을 두 사람 다 챙기지 못한 것을 알았다. 찜찜한 마음인데 그녀가 휴게소에서 사면된다고 했다.
첫 휴게소, 회원들은 각자 자기 볼일로 움직이었다. 우리는 커피를 사들고 편의점으로 들어섰다. 먹는 것 일색일 뿐 우리가 찾는 것은 없었다. 두 사람의 아쉬운 마음은 같았는지 얼굴을 마주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식당과 편의점 밖의 주차장은 무척 소란스럽고 시끄러웠다. 가요테이프를 파는 아저씨가 틀어놓은 최신노래가 귀청을 멍멍하게 만들었다. 대형트럭 만물장수 스피커의 노래 소리도 뒤질세라 사람들의 말소리를 삼키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찾는 것은 없었다. 여러 종류의 공구들을 파는 트럭 앞을 지나가다 그녀가 여기 있는지 모르니 물어보자고 했다. 나는 없다고 단정하면서 그녀의 옷자락을 끌었다. 끌고 당기고을 몇 차례 어정쩡한 자세로 공구 트럭 앞에 섰다. 키 큰 공구 주인은 가로로 머리를 흔들었다. 어떤 말도 없이 돌아서 우리는 걸음을 빨리 하는데 누가 부른다고 지나가는 사람이 알려준다. 뒤 돌아보았다. 저만치 서 있는 키 큰 공구 아저씨가 오라는 손짓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니겠지 하고 돌아서는데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도 큰 소리가 들려왔다. “장갑 있소.” 그는 당신네들이 찾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 하면서 투박한 면(綿)장갑을 던지듯 뚝 내어놓았다.
결혼식장에서 주례선생님이나 신랑 신부가 예의로 끼는 면(綿)올이 곱고 하얀 흰 장갑이 아닌,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투박한 면장갑 이었다. 나는 그냥 빙긋 웃고 돌아서려는데 그녀는 이게 더 탄탄하며 좋다고 하면서 집어 들었다. 값을 묻기도 전에 그는 “그냥 가지고 가시오.” 너무 뜻밖이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별 것 아니니 그냥 가지고 가시오.”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면서 차에 올랐다. 그녀는 장갑을 끼고 손바닥과 손등을 번갈아 보면서 참 도탑고 좋다고 했다. 나도 끼어 보았다. 투박함 때문에 모양은 없었으나 도탑고 톡톡함이 올 고운 장갑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면(綿)의 투박함이 편안하게 그대로 전해졌다.
왜 그냥 주었는지 하는 궁금한 마음이 일어 “참, 이상하다고.”했다. 그녀는 베실베실 웃으면서 그대가 좋아 보여서겠지요 했다. 서로가 뜬금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가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이 오늘 우리에게 보시(普施)를 한 것이라고 했다. 복을 받는 사람도 기쁘지만 복을 주는 사람은 더 기쁜 법이라고 불심의 교리를 펼치는 그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복을 주고 복을 받았다. 어째든 들어서도 기분이 좋아지었고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지었다. 그래서 일까, 그 날의 문학기행은 차멀미 없이 마음과 몸이 한 것 즐거웠다.
돌아와 그 작은 나눔과 베풂이 넉넉하게 전해지는 따뜻함을 배우기 위해 신발장 서랍이 아닌 장롱 서랍에 넣어두고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별일이 아닌 일에도 항상 머리를 굴리며 실과 득을 찾는 세태이다. 더구나 치열한 삶의 터전인 관광지에서. 새삼 그 때의 따뜻함과 넉넉함이 전해지면서 실천 없는 나의 얄팍한 마음이 부끄러워지었다.
나눔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든지 잘 알고는 있다. 다만 작고 별것 아니니 남이 흉볼 것 같아서하는 마음이 들어 선 듯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면 이런 저런 핑계로 실천하지 못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많이 내어놓고 나를 내세우려는 마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모든 것은 사람들이 언제나 무엇이든지 자기 잣대로 생각하는 고정관념과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언제나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스스럼없다. 바로 그것이 진정한 나눔이고 사랑일 것이다.
면장갑을 끼고 다시 손바닥을 마주쳐 보았다. 투박한 울림이 서서히 펴지면서 넉넉함과 따뜻함이 새롭게 전해진다. 그 키 큰 공구 장수는 오늘도 어디선가 말없이 실천으로 나눔을 베풀고 있지 않을까. 한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나눔의 따뜻함과 훈훈함의 기쁜 소리가 들려 오는가하면 동참의 소리도 들려온다.
이 천년 전 한 아이가 내어놓은 빵 5개로 오천 명이 먹을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뜻을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정해년 새해에는 오병이어의 작은 나눔과 베풂이 넉넉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눔과 실천은 지극히 평범한 대서 배우고 터득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