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신인 문호장(神人 文戶長)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영산구씨가의 외손이라 한다. 360여 년 전 실존한 인물이라 하나 찾을 길 없고 여러 이야기는 복합된 행장으로, 다만 문호장은 당시 관에 억눌린 평민의 원망을 나타낸 영웅, 신인으로 나타난 인물이라 생각된다.
그가 초인적인 신통력을 갖고 마을 못가에 살았으며 호방에 오래 있었다한다. 무인이 아니면서도 말을 잘 타며 활과 검술에 능하며, 도술 및 축지법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인(경북 경산)에 그의 소실이 있었는데 호랑이등을 타고서 다녀오곤 했다고 한다.
죽사리(죽전)에도 소실이 있었는데 아들이 없어 생남하기를 원하였으나 그의 신통력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지 후사가 없어 늘 걱정했다.
= 감찰사와 문호장
그는 만년에 영산읍 인산껄에 살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날 감찰사가 순무중 영산현의 사정을 살피기 위해서 이곳에 이르렀다. 이 거창한 행차 행렬이 인산껄을 지나가게 되었다. 때마침 모내기철이라 물을 잡아 모내기에 바빴으므로 길가에는 점심밥의 광주리와 반찬 그릇들이 놓여져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감찰사의 말이 농부들의 점심밥을 밟아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순간 말의 네 발이 땅에 딱 붙어 버렸다.
(일설에는 말이 다리를 건너가다 다리 중간에 이르러 말이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감찰사는 채찍을 휘둘러 말을 움직이려 했으나 말의 발굽은 점점 굳게 달라붙어 꼼짝도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감찰사는 말에서 내려 영접차 마중 나온 현감에게 이 괴이한 이변의 연유를 캐어물었다. 결국 이 근방에 문호장이란 사람이 살고 있어 말을 타고 지나갈 때는 간혹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감찰사는 노하여 문호장을 잡아들이라고 명령했다.
그때 문호장은 산기슭 나무그늘 밑에서 짚신을 삼고 있었는데 거창한 행렬이 농군들의 점심밥 광주리를 짓밟고 지나는 것을 보자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회초리로 땅바닥을 세 번 치면서, "저 발자국!" 하고 한마디 외치는 소리로 수 부림을 해서 말 발이 땅에 들어붙게 만든 것이었다. 나졸들은 짚신을 삼고 있던 문호장을 찾아서 포박, 감찰사의 앞에 대령시켰다.
감찰사의 문죄와 하명에 따라 모질게 다스렸지만 문호장은 안색도 달리하지 않고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쌀농사는 지어서 나라님 섬기고 부처님 봉양하고, 산 부모 봉양하며, 만백성이 양식하는 것이 온데 그 농군들의 점심밥을 짓밟아서야 될 일입니까?" 문호장의 이치에 맞는 말을 하자 감찰사도 주춤했다.
그러나 체통 때문에 문초를 늦추지 않았으며 곤장을 매우 치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곤장을 치면 볼기에 닿기도 전에 곤장이 부러져 버렸다. 부젓가락으로 지져라 했다. 시뻘겋게 단 부젓가락도 어이없게 얼음덩이가 되어 떨어질 뿐이었다.
감찰사는 너무나 놀랐다. 주위에서 여러 말을 했다. 문호장은 도술을 부리는데 패문루를 뛰어 넘는 재주를 가졌고, 호랑이를 타고 하룻밤에 수 백리를 간다고도 했다. "총, 칼 그 무엇으로도 문호장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하고 현감이 방면을 주장하였으나 감사는 멀리 자인(경북 경산군)으로 압송해서 그곳 옥에 가두라 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일이 생겼다. 문호장을 자인에 압송하고 돌아오는 나졸보다 하루 앞서 영산고을 관아에 문호장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놀란 감사는 자인으로 압송할 때 보낸 나졸들의 사실을 확인하려 자인에 보냈더니 자인 옥중에는 엄연히 문호장이 갇혀 있더라고 했다.
감사는 어느 것이 진짜 문호장인지 또 문호장이 몇 명이나 되는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아 두 손을 들어 버렸다. 그 초인적인 기질에 감복한 감사는 "그대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고 문죄를 포기했다. 그리고는 그의 생명의 신비와 죽음의 비밀을 들었다. 이때 문호장은 자신의 천명이 다한 것을 깨달았고 감찰사를 만난 지금 자신의 소원을 성취할 기회라고 안 그는 신중한 태도로 말했다. "소인에게는 소생이 없으니 소인이 죽은 뒤에 해마다 오월 단오날에 관가에서 소인의 제사를 차려 줄 것을 소원합니다. "쉬운 일이라 생각하여 감찰사는 문호장의 제의를 응낙했다. "고을 원에게 말하여 그렇게 하도록 하리라."
문호장은 그제야 여한이 없다는 듯 "저를 죽이려면 지릅대 한 개비면 족할 것입니다." 하고 자신의 양쪽 겨드랑 밑에 있는 자그마한 날개를 보여주었다.
"지릅대로 여기를 살금 치라" 감찰사는 의심 가득해 믿지 못하고 시험 삼아 사령에게 그러하라 했다. 삼대인 지릅대를 구해온 사령은 가르쳐준 대로 지릅대로 그 자리를 살짝 쳤는데도 문호장은 자는 듯이 숨을 거두어버리고 말았다.
"허어 위인을 죽였구나!"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감찰사는 유언에 따라 해마다 단옷날에 공양을 바치는 제사를 지내주라고 명했다. 그 다음 해 부터 감찰사의 명을 받들어 영축산 정상에서 문호장의 영혼을 위한 공양이 베풀어졌고, 그 후 360여년 계속되고 있다. (이것을 단모굿 또는 문장굿이라고 한다)
이외에 [단오굿의 영험]과 [목불]이야기가 전한다.
1)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활약한 어떤 장수, 또는 승병장이거나 심대장이라는 설도 있다.(창녕문화 제4호 p.26~28 : 구려회 영산의 사적과 향토문화). 현재 주민들은 문호장과 심대장을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다. 심대장은 사명대사라 추정되기도 하는데 이곳에 있었더라는 미확인이나 심대장을 주인공으로 똑같이 이야기를 하는 이가 있다.(증언자 : 안덕현 50세, 영산면 출신)
2) 인산껄은 영산의 남쪽 관문으로 지금 길곡과 부곡 가는 3거리 쯤이다. 현재 터는 밭이 되었으나 샘이 있다. 뒤에는 구씨의 묘가 있다.
3) 삼나무의 속대로 길고 하얀 색깔이나 부러지기 쉽다.
4) 일설에는 날개가 있고 비늘이 세 개 있었다 한다. 이 비늘 셋은 그에게 신비한 생명력을 주었는데 문호장 스스로 비늘을 털고 연지 못에 투신했다 한다(민속연구가 한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