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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터어키, 그리스를 여행하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역사를 좀 각색해서 쓴 것입니다. 사실 우리딸을 위해서 쉽게 썼는데도, 우리딸은 여전히 역사에는 관심이 없더군요.ㅎㅎㅎ.
딸에게 들려주는 간단한 세계사 이야기( 터어키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이번 터어키 이스탄불과 그리스 아테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이번 여행을 같이 하게 될 초등학교 6학년 딸에게 미리 역사공부를 하라고 몇 번이나 얘기를 했었다. 그리고는 나도 사실 자신이 없어서 틈나는 대로 다시 몇 가지 간단한 책들을 보았었다. 그러나 남의 나라 역사라는 것이 참 이거 외우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역사라고하면 지겹기 짝이 없어 하는 우리 딸에게 그 지겨운 국사도 아닌 세계사를 어떻게 이해시켜 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궁리해 낸 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옛날이야기 식의 세계사 이야기이다. 그래서 여행 이야기를 먼저 하기 전에 우선 이 옛날이야기를 정리하여 본다.
그리스, 터어키 여행에 있어서 이 역사에 얽힌 이야기를 모르고 보게 되면 거기에 있는 유적들은 그저 한낮 돌덩어리에 불과해지니 역사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다. 사실 나도 모르는 것이 많고,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해서 간략한 세계사 책을 펴 놓고 대충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러나, 이것을 그대로 딸에게 가르쳐 준다면 다시 지겨워 할테고, 이런 옛날이야기 식으로 편집, 각색된 아래의 세계사가 우리 딸아니 이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간단하게 이해하기 좋을지는 모를 일이다. 사실에 근거한 역사를 이렇게 각색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전체적인 세계사의 이해를 하는 데는 약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찬란했던 역사를 가졌던 그리스와 터어키가 왜 오늘날에서 세계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돌고 도는 세계사 아니겠는가 하고 웃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 볼 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스와 터어키의 역사에서 배울 점은 한마디로 정신 못 차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한방에 세계사의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 나라들이 언제 밀려났는가 하면 가장 그 나라가 번성한 다음 바로 밀려난다. 가장 번성할 때 그러니까 등 따시고 배불러 기고만장 하고 있다가 뒷 통수 맞고 밀려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 등 따시고 배불러 있다. 그다음이 걱정된다.
옛날 옛날 지구 마을에
옛날 옛날 지구라는 마을에 처음으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집(문명의 시작)을 짓고 살기 시작하였다. 그때가 자그만치 지금으로부터 5,500년 전이다. 그러니까 BC(예수가 태어나기 전) 3,500년 전이다. 사실 그전에도 사람은 살았었지만 가문(문명)을 이루고 살기는 이때부터이다. 이 지구 마을에 최초로 집(문명)을 짓고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가문과 나일 가문이다.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집을 지은 이곳은 저기 지금 이라크 땅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이 있는 아주 비옥한 땅이었고 나일 가문은 지금의 이집트인 나일강 일대였다. 그 옛날 6,000여년전에도 이런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보인다. 이때 지구마을은 지금과는 좀 다른 기후조건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이라크 땅이나 이집트는 강이 만들어내는 기름진 땅이어서 그러한 문명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이라크가 이집트와 함께 지구의 첫 문명이 태어난 곳이라는 얘기다.
메소포타미아 가문의 지역에 처음 산 사람들이 수메르사람들인데 그들이 사실 나일 가문의 사람들 보다 먼저 번창하였다. 그다음이 인더스강이 있는 지금의 인도 가문과 지금 중국이 있는 황하강의 황하 가문이다. 이 네 가문이 각자 집안을 일으켜 아직까지도 그 뼈대를 이어오고 있는데, 인도 가문과 황하 가문은 워낙 멀리 떨어져서 이 이야기에서는 일단 빼기로 한다. 이리하여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 4대 문명, 즉 메소포타미아 문명, 나일 문명, 인더스 문명, 황하 문명이 이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얘기할 이야기가 주로 이 메소포타미아 가문이다.
초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
서씨네와 오씨네
우선 서씨와 오씨는 이 옛날이야기를 위해 내가 지어낸 말이니 혼동 없길 바란다. 서씨는 우리가 얘기하는 웨스턴western 즉 서양을 말하고, 오씨는 오리엔트orient 지금의 중동 및 터어키 일대를 가르키는 말이다. 서씨네 집안, 즉 서양이라고 하면 장남 그리스, 차남 이태리, 셋째 프랑스, 그리고 그 밑으로 스페인, 영국, 독일, 그리고 영국이의 아들 미국이 등이 등장하고, 오씨네 집안 즉 오리엔트라고 하면 페르시아, 아라비아를 얘기하는데 이 집안의 장남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계보를 잇고 있는 이라크 이고, 둘째가 고대 힛타이트와 중세의 오토만제국으로 이어지는 터어키, 셋째가 고대 서양세계의 철천지 원수 페르시아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란, 그 밑으로 이슬람의 메카가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그 집안 식구들이다. 어쨋거나 이 두 서씨와 오씨 집안이 근 3,500년 동안 싸우고 있다. 아직까지도...
메소포타미아 가문에서 먼저 나타나는 사람들이 수메르인 들이다. BC 3,500년에서부터 그 흔적이 있다. 그다음에 이 집안에 걸출한 놈이 태어나는데 오씨집안 가장 큰 형님 격인 바빌로니아 이다. 지금 이라크의 선조격인 셈이다. 이 놈이 그러니까 BC 1800년경의 바빌로니아 왕국을 말한다. 그전에 거기 살았던 수메르인 들은 60진법을 발명하였고, 이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은 법전을 만들어서 왕국을 통치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그 당시로는 가장 번창한 집안이었다.
바빌로니아의 유적 / 지구라트
이 메소포타미아 가문 보다 조금 늦었던 나일가문은 집짓고 살기는 조금 늦었어도 왕국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 가문보다 조금 빠른 BC 3100년경이다. 이때에 이 집안의 대들보 이집트가 태어난다. 이 놈이 아주 똑똑해서 꽤 오랫동안 집안을 빛내었다. 그런데 이집트 집안은 워낙 외져있어서 자기 혼자 있다가 망한 집안이다. 그래서 이집트는 이 이야기에 자주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메소포타미아 가문의 오씨집안과 그 옆에 살고 있는 서씨 집안이다.
이집트 기자지역의 피라미드 유적
미케네 문명
그럼 지금의 서양이라 일컬어지는 서씨 집안은 언제 생겨난 것이냐 말이다. 서씨집안은 메소포타미아 가문이 생겨나서 번창할 무렵에 생겨났다. 처음에는 지금의 그리스 남쪽 섬인 크레타 섬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미노아 문명 혹은 크레타 문명이라고도 함) 서씨 집안의 뿌리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때가 BC 3,000경(에게 문명/청동기문명: 에게해는 그리스 동쪽 터어키와 사이에 있는 바다를 말한다.)이라고 한다. 그러나 4대문명에 견줄만한 그런 문명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한참 뒤에 그리스 본토에서 미케네 지방에서 미케네문명이 생겨난다. 그리고는 트로이 전쟁이 이때 터지는데 이때부터 서씨 집안과 오씨 집안의 기나긴 싸움이 시작된다. 지금까지 근 3,000 년 동안 싸우고 있는 셈이다. 최근 서씨집안의 후손 미국이가 오씨집안의 후손 이라크내 집을 쑥대밭 만든 것도 따지고 보면 이 뿌리 깊은 서씨와 오씨의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서씨가 오씨를 무찌르다, 트로이 전쟁.
바빌로니아가 무너진 다음 오씨네 집은 지금의 터어키 지방에서 생겨난 힛타이트 지금의 터어키가 드디어 오리엔트의 패권을 잡게 된다. BC 2000에서 BC 1,200년 까지 무려 800년 동안이다. 힛타이트가 약해지고 다시 지금의 이라크 북부에 앗시리아가 생겨나서 오리엔트 집안을 이끌어 간다. 그 당시 오씨네는 잘살고 있었고 사실 상당히 강력하였다.
트로이 전쟁은 호머가 서사시로 썼던 <일리아드>에 잘 나와 있다. BC 13세기경 그리스 미케네 문명의 선두주자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지금 터어키 지역에 있는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바람이 나서 트로이로 야간도주한 사건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다. 트로이 전쟁에는 그 유명한 아킬레스장군이 사실 주인공이다. 결국 그 싸움 잘하던 아킬레스는 야간도주의 주인공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쏜 독화살을 발목에 맞고 죽고 만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아킬레스 건腱’ 이다. 여차저차에서 그 후 오디세이가 ‘트로이의 목마’ 라는 아이디어를 내어서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한다.
서씨 집안의 큰아버지 모세
이 무렵 서양 집안의 먼 선조격인 모세 아저씨가 BC 1,300 년경에 헤브라이인을 이끌고 이집트로부터 탈출하여 지금의 이스라엘 땅 팔레스타인으로 건너가 정착하게 된다. 사실 이때부터가 서씨 집안과 오씨 집안의 본격적인 싸움의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헤브라이 왕국이 길보아산에서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패한 이후 서씨집안의 신동 다윗이 태어나, 다시 국토를 회복하고 그의 아들 솔로몬(BC 961-BC 922)이 헤브라이 왕국을 번영시킨다. 이 헤브라이 왕국이 비로소 서씨 집안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보겠다.
오씨 집안의 앗시리아 왕국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토지는 전쟁이 끊이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니까 태초부터 지금 서기 2,000년 까지 계속 전쟁만 일어나는 아주 재수 옴 붙은 지역이다. 옛날에는 오씨들끼리 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차지하려고 전쟁하다가 그 다음에는 이 서씨집안과 오씨집안의 결투의 장소로 쓰였기 때문이다. 이곳은 서양과 동양이 만나는 곳이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만나는 곳이고, 석유가 많은 곳이다. 그러니 싸울거리가 한두개가 아닌 셈이다.
아무튼 BC 1,200년경 오씨집안에서 강력한 왕국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앗시리아 왕국이다. 역시 지금의 이라크 땅 지역이다. 이때부터 BC 612년 망할 때까지 엄청 영화를 누렸다. 앗시리아를 밀어내고 오씨집안을 접수한 왕국이 신바빌로니아 왕국이다. 이때 예루살렘도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 이 신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지금의 이라크 남쪽)은 전설적인 대도시 였다고 한다. 신바빌로니아는 BC 539년 페르시아에게 멸망하였다.
신바빌로니아 왕국에 있었다던 바벨탑 상상도.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부흥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미케네 문명이 사라지고 그리스에는 도시국가들이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이 도시국가들은 폴리스라고 하는데 이들은 아테네에 아크로폴리스를 언덕위에 짓고 그들의 수호신을 모시는가 하면, 아크로폴리스 옆 아고라에 모여 나라의 정책을 논하는가 하면, 올림피아에 모여 4년마다 운동경기를 하기도 하였다. 이때가 BC 776년 경이다. 이 도시국가들 중에 가장 강력한 국가가 스파르타이다. 아테네와는 사실 앙숙관계였다. 스파르타는 군국주의적이고 아테네는 민주국가 지향적이었기 때문에 그 국가관 자체가 틀린 나라였다. 결국 아테네 건너편 펠레폰네소스 반도는 스파르타가 BC 7세기 말에 평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서씨 집안은 점차 안정을 찾으면서 오씨집안에 버금가는 힘을 키우고 있었다.
서씨네와 오씨네의 한판 승부, 페르시아전쟁
BC 6세기경 드디어 오씨 집안 강력한 후계자 페르시아가 태어난다. 오씨집안에서 이제까지 어떤 놈 보다도 강한 놈이 이 페르시아이고 페르시아 왕국의 문화나 국가경영 등은 이 당시 서씨 집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BC 4세기경에 서씨 집안과 오씨 집안이 한번 크게 싸움을 하는데 그것이 페르시아 전쟁이다. 페르시아 전쟁은 오씨집안의 대들보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이 서씨집안의 장남 그리스를 쳐부수러 간 전쟁이다. 사실 이때 페르시아는 숫적으로 서씨 집안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였지만 결국 온 그리스 도시국가가 단합하여 대항한다. 그러다가 페르시아는 그 유명한 마라톤전투, 살라미스해전 등에서 패하고 만다.
서씨집안의 부흥, 파르테논이 지어지다.
이 페르시아 전쟁에게 이긴 이후 서씨 집안은 빠른 속도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페르시아 전재 이후에는 아테네가 그리스의 중심이 되는데 그 주역이 페리클레스이다. 이 양반이 아테네를 부흥 시키면서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BC 447 착공- BC 438 완공)도 짓고, 민주정치를 각 동맹 도시들에게 보급하는가 하면, 그리스 각처의 학자들을 아테네로 불러들여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이때 모인 사람들이 탈레스를 비롯한 소크라테스(BC 469-BC 399), 아리스토델레스, 플라톤 등 쟁쟁한 사람들이다. 이때가 서씨집안이 지금의 세계주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초가 다져진 서씨집안 맏아들인 그리스의 번영기라 할 수 있겠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러나 스파르타는 아테네가 성장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하였나 보다. 결국 둘이 한판 붙게 되는데 이것이 그리스 도시국가들 끼리 펠로폰네소스 반도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다(BC 431- BC 404). 누가 이겼다고 할 것도 없이 사실 둘 다 다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이 전쟁의 승자는 스파르타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우왕좌왕하며 힘을 모으지 못하게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 오씨 집안에 복수하다.
이러는 사이 서씨 집안의 영웅 알렉산더(BC 356- BC 323)가 태어날 준비를 한다. 알렉산더가 태어난 곳은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란 지역이다. 사실 마케도니아 땅은 그리스 본토 서씨집안 식구들이 오랑케가 사는 곳이라고 업수이 여기던 지역이다. 여기서 태어난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포스1세의 선견지명으로 어릴 때 그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과외공부를 받았다. 그러니 똑똑할 수밖에. 알렉산더가 20살 때 아버지 필립포스가 암살당하고 그 뒤를 이어 왕이 되면서 오씨 집안의 페르시아를 쳐들어가는데 가는 곳마다 이기면서 오씨집안을 깡그리 무너뜨려 복수에 성공한다. 이때 페르시아의 왕인 다리우스3세는 이수스 전투에서 워낙 급하게 도망하느라고 자기 가족을 몽땅 내버려 두고 갔는데, 이 알렉산더가 다리우스의 가족 모두를 극진히 잘 모셨다고 하는 일화는 유명하다. 결국 나중에 다리우스3세는 알레산더에게 죽지만 죽으면서도 그때 우리가족을 잘 보살펴 줘서 고마웠다는 말을 했다고 하지 않던가. 사나이들끼리 통하는 찡한 장면이다. 알렉산더는 페르시아의 공주와 결혼까지 한다. 그리고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인도까지 몽땅 다 점령했지만 그러나 애처롭게도 32살에 일찍 죽고 만다.
헬레니즘 시대의 개막
이제 세계는 오씨 집안에서 서씨 집안으로 넘어 갔다. 알렉산더 이후 약 300년 동안 찬란한 그리스의 시대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가 중요한 것은 유럽과 오리엔트의 문화가 합쳐져 새로운 짬뽕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이 발달하여 기하학의 대가 유클리드, 목욕탕에서 벌거벗고 부력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 지구의 둘레를 측정한 에라토스테네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등등이 이때의 사람들이다.
잠깐만,
이제 까지 말한 부분 중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계의 고대사에 있어서 이집트와 그리스만 알고 있는 편협 된 우리의 세계사관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세계관은 서씨집안에서 만든 세계사이다. 여기에는 응금슬쩍 오씨네 집안 얘기가 축소되어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요성, 바빌로니아, 힛타이트, 앗시리아의 번영, 페르시아의 엄청난 영향력등이 약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다음에도 이어져 엄청난 강대국이었던 터어키의 오토만제국과 지금의 이슬람 문화권이 세계사에서 거의 빠져있다.
또 하나, 문명의 시작이 어딘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서씨집안의 시작인 크레타문명이나 헤브라이 왕국, 그리스의 도시국가들 모두 먼저 발달한 오리엔트의 여러 제국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꼭 일본이 백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땡깡 피는거 하고 똑 같다. 그 모습이 서씨네 집안에도 얼핏 보인다.
로마제국에서 비잔틴제국으로
아무튼 이 헬레니즘 시대 이후에는 우리가 아는바 대로 이다. 로마가 그리스를 침입한후 서씨 집안의 맏형 그리스는 이제까지 천오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번도 제구실을 못하고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면서 살아오고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 점이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점이다. 그리스는 잘나갈때는 힘을 합쳐 강대국이 되었지만, 자기들 끼리 싸우는 사이에 힘이 약해져서 그 다음에는 계속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기만 했다. 결국은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판 꼴이 되었다.
어쨋거나 서씨집안의 둘째 아들 로마가 아주 오랫동안 세계의 주역이 되었다. 헬레니즘에서 로마시대에 이르는 (BC334- AD395) 동안 서씨집안은 번창하였다. 그러다가 BC 330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비잔티움(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고침, 지금의 이스탄불/ 그러니까 이스탄불은 이름이 세 개이다.)으로 수도를 옮긴 후 지금의 터어키가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오씨네 집에 서씨가 사는 꼴이 된 셈이다. AD 395년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리되면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비잔틴 제국의 역사(AD 395-AD1,071)가 시작되었다. 로마제국의 몰락이후에는 서씨네의 유럽세계와 비잔틴제국, 그리고 오씨가문의 명맥을 잇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급성장한 이슬람제국, 이렇게 세 개의 문화권이 성립된다.
비잔틴시대에 지어진 소피아성당, 후에 이슬람의 모스크로 쓰였다.
게르만족의 이동과 프랑크 왕국
AD 5C 경, 유럽 북쪽에 살던 게르만족이 중앙 아시아의 훈(흉노)족의 침입에 못이겨 대대적으로 남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은 서씨집안의 무대가 그리스, 이태리에서 유럽 본토로 그 중심이 옮겨가는 역할을 하였다. 이때 서씨집안의 셋째 프랑스가 프랑크 왕국을 세우면서 유럽대륙의 중앙을 차지하기 시작했다.(AD 486) 이후 스페인, 영구, 독일등의 지방에서 각각의 왕조를 가진 서양 집안이 그 가계를 넓히기 시작했다. 사실 중세에도 이 서씨집안 대부분은 비잔틴이나 이슬람 세계에 비하여 문화적으로 뒤쳐져 있었다. 이 무렵 갑자기 저 이 서씨집안의 힘이 강해지면서 다시 한번 전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십자군 전쟁이다. 다시 한번 서씨 집안과 오씨 집안의 큰 싸움이 벌어지는 셈이다. 장장 200년 동안의 긴싸움이었다.
서씨와 오씨가 다시 한번 크게 싸웠다. 십자군 전쟁.
페르시아 제국 이후 오랫동안 세계의 패권은 서씨네 집안 손아귀에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이라크의 바그다드를 중심으로 거대한 이슬람제국이 생기고, 비잔틴 제국도 AD 1,071년에 이슬람의 한 종파인 수니파 이슬람의 셀주쿠터어키에 의해 멸망하고 터어키왕국도 들어선다. 이후 이슬람의 세력과 그리스도인의 박해에 격분한 서씨집안이 전부 힘을 합쳐 오씨네 집안과 전쟁을 벌이는데 이것이 십자군 전쟁(AD 1,096- AD 1,291)이다.
오씨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우다. 오스만터어키 시대
십자군 전쟁이 끝나고 터어키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BC 1,453)하여 찬란한 오스만터어키 시대를 연다. 16C 술래이만 대제 시대에는 이태리를 제외한 오리엔트 전역을 통일한 대 제국으로 성장한다. 이때의 터어키는 세계 최강국이었음이 틀림없다. 그 화려한 유적들이 지금의 이스탄불에 가득하다. 이때 그리스는 오토만제국에게 근 4백년 동안(1,821년 반란때 까지)이나 혹독하게 당하게 된다. 아마 오씨가 앙심을 품고 보복을 했던 것 같다. 이시기를 그리스 인들은 ‘터어키의 멍에’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1,700년 까지 그리스 인구가 4분의 1이나 감소했을 만큼 오씨네 터어키가 서씨네 집안 그리스를 완전히 망가뜨려 놓았다. 이시기 그리스는 거의 농민이거나 노예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1821년 그리스는 독립전쟁을 시작한다. 1,822년 그리스해군이 히오스 섬에서 터키함대를 침몰시키자 터어키는 히오스 섬에서 무차별 학살을 했다고 한다. 이때 죽은 그리스 사람이 23,000여명이고 47,000명을 포로로 잡아갔다고 하니 그 잔인한 오씨의 보복이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이후 서씨의 동생들 즉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보다 못해 터어키. 이집트 함대를 무찌르고 그리스를 독립시키기에 이른다. 아 불쌍한 그리스. 그러고도 그리스는 제 갈 길을 못 찾고 있다가 1,912년 그리스 발칸반도에서 터어키와 전쟁을 하여 영토를 찾기 시작한다.
오토만 제국 후기 1856년에 지어진 돌마바흐체 궁전
현재의 터어키와 그리스
한편 터어키도 1919년 무스타파 케말 장군을 중심으로 혁명이 일어나 근대화된 터어키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이 양반이 터어키에서는 지금도 무지하게 존경받는 아타튀르크(터어키의 아버지란 뜻)의 칭호를 받는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초대 대통령이다. 이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언어와 풍습, 복장등 까지 바꾸면서 근대국가로써의 터어키를 만들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터어키도 어찌된 일인지 오스만투르크의 영광을 지키지 못하고 세계의 중심에서 사라져 갔다. 1922년 계속되는 터어키와 그리스의 전쟁에서 터어키는 스미르나를 정복하기도 한다. 이후 1923년 로잔조약에 의거하여, 스미르나지구는 터어키 영토가 되고 이 지역의 그리스인과 그리스 영토에 살고 있는 터어키 인들의 강제 인구교환도 이루어진다.
그리스는 2차 대전때 독일에 점령을 당하면서 또 한번 아픈 역사를 가지게 된다. 그리스인들이 이때 보여준 게릴라전으로 독일군의 힘이 약해져 결국 독일이 패망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 좌익과 우익의 싸움으로 2차대전이 끝나도 내전이 계속되다가 이를 보다 못한 서씨네 집안 영국이의 아들 미국이가 그리스 큰집을 보호하기에 이른다(트루만 독트린). 같은 집안이니까 끝까지 챙겨준다. 미국이가 그리스를 보호하면서 결국 우익의 승리로 끝나고 그리스는 우익의 미국진영으로 포함되지만, 그리스는 그 옛날의 찬란한 그리스가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서씨네 집안의 골칫거리 늙은 맏형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터어키와의 악연은 아직도 계속되어 반으로 쪼개진 터어키 남쪽에 있는 사이프로스 섬을 놓고 두 나라는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다. (끝)
참고/ 이 세계사 이야기는 그리스와 터어키 주변의 역사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에, 로마시대나 프랑스, 영국등의 주요 유럽역사는 생략되어 있다.
첫댓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대단 대단~ 그대는 참으로 훌륭한 아빠이시군요. ^^ ;;;;;; 그런데 이 글 퍼가도 돼요?
짱님. 그럼요. 다 같이 보자고 하는건데요. 마음대로 쓰세요. 도움이 되신다면요. 저야 영광이죠.
너무 잘 읽었습니다..크~~감동스러워요.
서씨집안과 오씨집안이라...ㅎㅎㅎ 정말 멋진 아빠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