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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담은 건축, 누정(樓亭) 문화재 ‘보물’로 깨어나다 - 전국의 누각과 정자 10건 ‘보물’로 신규 지정 예고 -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 「강릉 경포대(江陵 鏡浦臺)」,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호 「김천 방초정(金泉 芳草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47호 「봉화 한수정(奉化 寒水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3호 「청송 찬경루(靑松 讚慶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9호 「안동 청원루(安東 淸遠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안동 체화정(安東 棣華亭)」,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4호 「경주 귀래정(慶州 歸來亭)」,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6호 「달성 하목정(達城 霞鶩亭)」, 전라남도 기념물 제104호 「영암 영보정(靈巖 永保亭)」,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6호 「진안 수선루(鎭安 睡仙樓)」 등 10건의 *누정(樓亭)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문화재청은 시·도의 건조물 문화재에 대한 지정가치 연구를 통해 숨겨진 가치를 적극적으로 발굴해내는 정책사업의 하나로 지난해부터 시·도 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민속문화재, 기념물)와 문화재자료로 등록된 총 370여 건의 누정 문화재에 대해 전문가 검토를 거쳐 총 14건을 국가지정문화재 검토 대상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공동으로 지정가치 자료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지정 신청 단계부터 협업해 최종적으로 이번에 10건을 보물로 신규 지정하게 됐다.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일컫는 말로, 누각은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구조로 높게 지어진 집이고, 정자는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집이다. 특히, 조선 시대의 누정은 선비정신을 바탕으로 고도의 집약과 절제로 완성한 뛰어난 건축물이며, 자연을 바라보고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하며 시와 노래를 짓던 장소였다.
「강릉 경포대」는 고려 말 안축의 「관동별곡」을 시작으로 송강 정철(鄭澈, 1536~1593)의 「관동별곡」이후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수많은 시인 묵객들의 문학작품에 소재가 되었던 공간이다. 경포호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조화가 돋보이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의 제일경(第一景)으로, 강릉 지역의 유구한 역사와 삶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500년 이상 원래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뛰어난 경관의 조망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마루를 3단으로 구성하였다. 특히, 누마루를 2단으로 구성한 정자는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구조다.
「김천 방초정」은 영·정조 때 영남 노론을 대표하는 예학자로 「가례증해」를 발간한 이의조가 1788년 중건하였다. 보통 누정은 자연의 경관 조망과 관찰자를 매개하기 위하여 사면이 개방된 구조이지만 방초정은 계절의 변화에 대응하여 마루와 방을 통합하거나 분리하는 가변적인 구성을 가진 정자로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봉화 한수정」은 안동권씨 판서공파 후손인 충재 권벌로부터 그의 아들 청암 권동보와 손자 석천 권래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완성된 정자로 초창(1608년)에서 중창(1742년), 중수(1848년, 1880년) 과정에 대한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역사 가치가 크다. 또한, 용연(龍淵)과 초연대(超然臺 정자와 연못사이에 있는 바위), 각종 수목이 어우러진 정원은 초창 이후 400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丁’자형 평면구성과 가구법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형식이다.
「청송 찬경루」는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 심씨와 청송심씨 가문의 영향을 받아 지어진 관영 누각으로 중수기와 중건기, 상량문, 시문 등에 창건과 중건 과정뿐만 아니라 수차례의 공사 기록이 잘 남아 있다.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 울산 태화루 등은 사찰 누각에서 성격이 변한 누각이지만 찬경루는 처음부터 객사의 부속 건물로 객사와 나란히 지어진 현존하는 유일한 관영 누각으로 의미가 있다.
「안동 청원루」는 경상도 지역에서 드물게 ‘ㄷ’자 평면구성을 띠는 매우 희귀한 정자형 별서(別墅) 건물이다. 17세기 향촌사회 유력 가문(서인 청서파의 영수 김상헌)의 건축형태를 엿볼 수 있는 시대성과 계층성이 반영된 연구자료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안동 체화정」은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하고 창의적인 창호 의장 등에서 18세기 후반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우수한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정자의 전면에 연못과 세 개의 인공 섬을 꾸미고 적극적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조성하여 조경사적인 가치도 높다.
「경주 귀래정」은 전통건축에서는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방식으로 육각형 평면에 대청, 방, 뒷마루, 벽장 등을 교묘하게 분할하였으며, 특이한 지붕형식과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부 양식 등을 보여주고 있는 정자다. 육각형 평면형태의 누정도 경복궁 향원정(보물 제1761호), 존덕정(사적 제122호인 창덕궁에 있는 정자), 의상대(강원유형문화재 제48호) 등에서만 찾아 볼 수 있어 희소가치가 크다.
「달성 하목정」은 인조(仁祖)가 능양군 시절 방문했던 인연으로 왕이 된 이후에 은 200냥의 내탕금(임금이 개인적으로 쓰던 돈)을 하사하여 지붕에 부연(처마를 길게 빼기 위해 서까래 끝에 덧대는 짧은 서까래)을 달게 하고 ‘하목정’ 이라는 당호를 친히 지어 내려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정자다. 전체적인 가구의 구성은 두꺼운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건물 높이를 높게 하여 건물이 둔중해 보이지 않으면서 당당한 기품을 지니고 있으며, ‘丁’자 형의 평면구성도 독특하다.
「영암 영보정」은 1635년경에 중건된 오랜 건립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 시대 향촌의 향약, 동계(洞契) 관련 정자 중에서 유례가 없는 규모(정면 5칸, 옆면 3칸)를 자랑한다. 전란 이후 어려운 여건 속에서 비교적 양질의 자재를 사용하고 전체적인 비례와 조형감은 물론, 세부 구조 설계 측면에서도 완성도가 높다.
「진안 수선루」는 지금까지 보아 왔던 누정과 달리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거대한 바위굴에 딱 들어맞게 끼워 넣듯이 세워져, 보는 이의 눈과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을 정도로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 암반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 세워졌으며, 자연에 일체화시킨 자유로운 입면과 평면의 조합은 당시 획일적인 누정건축의 틀에서 벗어나 자연과 누정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10건의 누정 문화재는 역사‧예술‧학술‧건축‧경관(장소)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화재청은 앞으로도 시·도 건조물 문화재 주제연구를 지속해 가치가 알려져 있지 않은 건조물 문화재를 적극 발굴하여 국민에게 알리고 활용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등 지역 문화재의 사회적 가치 제고와 주변환경 정비 등 역사문화환경을 개선하는 사업도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한 「강릉 경포대」 등 10건의 누정 문화재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보물 지정 예고 개요 |
□ 문화재명: 강릉 경포대(江陵 鏡浦臺)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365(저동 94번지)
ㅇ 구조/형식 : 목조 / 정면5칸‧측면5칸, 이익공계 7량가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326년 이전 창건, 1571년 복원, 1628년, 1873년, 1897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강릉시
ㅇ 지정면적 : 215.2㎡
□ 지정사유
ㅇ「강릉 경포대」는 1326년(고려 충숙왕 13) 창건 이후 한차례 이건과 수차례 중수 기록이 대부분 자세히 남아있으며, 특히 창건 이전의 기록도 남아있어 경포대의 시대별 변화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정면 5칸, 측면 5칸의 대형 정자임.
ㅇ 고려 중기 김극기의 「경포대」라는 시와 「강릉팔영」, 그리고 고려 말 안축의 「관동별곡」, 그리고 조선시대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등 지역 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시인 묵객들이 경포대를 찾아 자연 풍광을 음미하며 학문을 닦고 마음을 수양했던 유서 깊은 장소임.
ㅇ 경포대는 일반 누정과 달리 내부 공간의 특성에 따라 의미를 부여한 마루를 기능에 따라 3단으로 구성하였으며, 누마루를 2단으로 구성한 것은 유례가 없으며, 특히 가장 높은 누마루의 형태가 머름대 형식을 취했고 아래의 누마루는 계자난간을 가설한 형식 또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구성임.
* 머름대: 창문 아래 높은 문지방인 머름 밑에 가로 지른 나무
* 계자난간: 위로 올라갈수록 밖으로 튀어나오게 만든 난간으로 계자다리(鷄子多里)가 난간대를 받치고 있음.
ㅇ 이와 같이 시대적 상황을 공간과 해당 부재가 흔적으로 지니고 있는 경포대는 조선시대의 것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선후기의 정자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함.
□ 문화재명: 김천 방초정(金泉 芳草亭)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경북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83
ㅇ 구조/형식: 목조 / 정면 3칸, 측면 2칸, 5량가 이익공계 겹처마 팔작지붕
ㅇ 수 량: 1동
ㅇ 조성연대: 조선시대(1625년 건립, 1788년 중건)
ㅇ 소유자(관리단체): 연안이씨 종중(이철응)
ㅇ 지정면적: 104.9㎡
□ 지정사유
ㅇ 「김천 방초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이익공계 5량가 겹처마 팔작지붕 집으로 마룻바닥을 일정하게 높여 지은 중층 누각형식의 정자임. 연안이씨 11세손 이정복이 조상을 추모하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1625년에 원터마을에 세운 정자로 두 차례의 중건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음.
ㅇ 당시 중수기와 중건기 그리고 상량문 등에 담긴 내용으로 건립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건축 내력을 비교적 충실하게 추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자의 위치와 형식 그리고 건립 동기 등을 통해 씨족 마을을 운영해 나가는 당시 문중의 공동체적 삶의 단면도 함께 엿볼 수 있음. 특히 현 정자의 중건 인물이 영·정조 때 영남 노론 학단을 대표하는 예학자로 「가례증해」를 발간한 이의조란 사실을 고려할 때 정자의 역사적인 가치는 사뭇 뛰어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음.
ㅇ 호박돌과 같은 자연석을 층층이 쌓아 구들과 고래를 둔 온돌을 방 하층부에 만든 다음 굴뚝과 아궁이를 앞과 뒤에 각각 설치하여 난방을 할 수 있도록 함. 사면이 개방된 정자는 통상적으로 겨울에 이용 효율이 떨어지는 데 반해 계절의 변화와 기능의 요구에 맞추어 마루와 방을 통합하거나 분리하여 쓸 수 있도록 한 방초정의 가변적 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됨.
ㅇ 방초정 앞 최씨담(崔氏潭)은 현재까지 알려진 국내 지당 중 방지쌍원도(方池雙圓島)의 전형을 오롯이 간직한 유일한 정원 유구로 마을과 감천 사이에 놓여 마을의 오수나 유출수를 재처리 여과하는 수질 정화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생태 환경적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음.
* 최씨담(崔氏潭): 방초정 앞에 있는 연못으로 임진왜란에 화순최씨(방초정 건립자 이정복의 처)가 친정에서 시가로 오다가 왜병에 쫒기어 정절을 지키려고 이 못에 투신했고, 노비 석이(石伊)도 뒤를 따라 투신했는데 석이의 비석이 근래 이 못에서 발견됨.
ㅇ 방초정은 후대 이루어진 보수공사를 통해 몇몇 부재들이 교체되기는 하였지만, 기둥 상부에 결구된 이익공 포작과 충량의 결구 및 가구형식 등 전체적인 건축 수법이 대체로 조선 후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어 1788년 정자가 중건될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한 채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의미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가치가 있음.
* 이익공(二翼工): 새 날개 모양의 익공이 2개 사용된 공포형식
* 포작(包作): 공포(拱包)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부재들을 사용하여 직각 혹은 45도나 60도의 방향으로 서로 교차시켜서 짜맞추어 만든 것
* 충량(衝樑): 한쪽은 대들보에 걸리고 반대쪽은 측면 평주에 걸리는 대들보와 직각을 이루는 보
□ 문화재명: 봉화 한수정(奉化 寒水亭)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134
ㅇ 구조/형식 : 목조 / 정면3칸‧측면1.5칸(맞배지붕)+정면3칸‧2칸(팔작지붕), 5량가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08년 건립, 1742년 중창, 1848년, 1880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안동권씨 충정공파 종중(권용철)
ㅇ 지정면적 : 96.5㎡
□ 지정사유
ㅇ 「봉화 한수정」은 충재 권벌이 1519년(중종 14) 봉화 춘양의 현 위치를 별장지(別莊地)로 선정한 후 1534년(중종29) 이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였으며, 아들 청암 권동보가 1576년(선조 9)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현 한수정으로부터 약 백 여보 지점에 「거연헌」이란 집을 건립함. 한수정의 창건은 1608년(선조41) 충재 선생의 손자인 석천 권래가 할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현 위치에 한수정을 창건함. 이처럼 한수정의 창건은 석천 권래 뿐만 아니라 3대에 걸쳐 토지매입에서 창건까지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
ㅇ 한수정은 작은 공간에서도 초연대와 와룡연 그리고 주변에 조경수를 식재하여 정자로서의 많은 요소를 잘 간직하고 있음. 이렇게 물과 건물이 잘 조화를 이루는 정자는 유곡마을의 청암정에서도 볼 수 있는데, 청암정은 석천 권래의 아버지인 청암 권동보가 창건한 것임. 이 두 건물은 봉화 안동권씨 집안의 건축과 조경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됨.
ㅇ 평면은 가운데 4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2칸의 온돌방을 들인 “丁”자형 건물로 봉화에서 흔히 보이는 통상적인 좌우 대칭의 중당협실형 정자와는 다른 구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임. 이처럼 한수정은 좌우 방을 엇갈려 배치하여 중앙 대청의 기능과는 다른 주변 경관 감상을 위한 누마루를 병설하고자 한 의도로 정자 3면의 용연과 초연대 등과 관련하여 자연경관을 적극적으로 건축 평면에 반영하고자 한 사례로 건축사적 가치가 뛰어남.
* 중당협실형(中堂夾室型): 중앙마루를 중심으로 좌우협간에 방을 두는 평면형태
ㅇ 한수정은 기능에 부합되게 최적의 입지를 선정하고 안동권씨 집안의 특별한 관념적 의미를 부여하여 조성한 조경수법의 특이점과 탁월함이 돋보이며, 건축 공간의 위계에 따른 평면구성과 구조양식의 차별성과 다양성은 두드러진 특징으로 평가할 수 있음.
ㅇ 이와 같이 한수정은 안동권씨 권벌에서 권래 3대에 걸친 창건 과정, 독특한 평면구성과 건축구조 등을 고려했을 때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의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남.
□ 문화재명: 청송 찬경루(靑松 讚慶樓)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금월로 269
ㅇ 구조/형식 : 목조 / 정면4칸‧측면4칸, 5량가 이익공계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793년 중건, 1927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청송심씨 종중(청송군)
ㅇ 지정면적 : 238㎡
□ 지정사유
ㅇ 「청송 찬경루」는 청송 군수 하담이 1428년 객사와 함께 이에 부속된 관영 누각으로 처음 건립하였고 청송이 당시 왕비였던 소헌왕후와 그의 가문 청송심씨의 관향임을 들어 관찰사 홍여방이 그 은덕을 찬미하며 찬경루라 이름 지었음. 이 후 1792년 청송 군내 큰 화재로 인해 불에 타 버린 것을 그 이듬 해 중건하였는데 지금의 누는 이 당시 중건된 것임.
ㅇ 찬경루는 자연 암반을 깎거나 다듬지 않고 피하지도 않으며 암반위에 독특하게 입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유형은 강릉 경포대에서 최고를 이루며 삼척 죽서루에서도 볼 수 있음.
ㅇ 온돌방 바로 앞에 마루 바닥을 한단 높게 한 것은 연회 행사 시 의전상의 고려인 것으로 보이며, 이와 같이 제례와 배석의 위계 부여를 목적으로 마루 바닥에 높이 차이를 둔 사례는 거창 동계종택(국가민속문화재 제205호)과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등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현존 객사 부속 누각에서는 찬경루가 유일함.
ㅇ 또한 누각으로서 온돌이 만들어져 있는 것은 다른 누각에서는 볼 수 없는 드문 사례이며, 가구법에서도 내부에 기둥이 있고 내부기둥에서 대들보(대량)와 툇보(퇴량)가 같은 높이에서 걸리는 5량가 라는 것도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희소한 사례임.
* 5량가: 서까래를 받치는 부재인 도리가 다섯줄로 걸리는 가구형식
ㅇ 기둥 상부의 날카롭게 치목된 이익공 포작 및 대량과 퇴량이 만나는 형식, 충량의 결구와 지붕의 구성 등은 조선 후기 양식을 잘 나타내 주는 것으로 1793년 누각이 중건될 당시의 형식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 또한 양호함.
* 대량(대들보): 앞뒤 중간 기둥에 걸쳐서 지붕의 무게를 받치는 가장 큰 들보
* 퇴량(退樑): 퇴칸에서 고주와 외진평주를 연결하는 보. 툇보라고도 함.
* 충량(衝樑): 한쪽은 대들보에 걸리고 반대쪽은 측면 평주에 걸리는 대들보와 직각을 이루는 보
ㅇ 따라서 찬경루는 건축과 관련된 풍부한 창건 및 중건 기록, 관영 누각으로서의 기능에 부합되고 정체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평면 구성, 조선 후기 양식을 잘 표현하고 있는 가구 양식 등을 고려할 때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만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남.
□ 문화재명: 안동 청원루(安東 淸遠樓)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
ㅇ 구조/형식 : 목조 / 정면5칸‧측면2칸‧좌우 날개 2칸, 5량가,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520년경 건립, 1618년경 중창)
ㅇ 소유자(관리자) : 안동김씨 양소당 종중(김창년)
ㅇ 지정면적 : 208㎡
□ 지정사유
ㅇ 「안동 청원루」는 1618년경 김상헌에 의해 본향인 풍산의 소산마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건립됨. 김상헌은 청서파의 영수로 조선 유학에 미친 영향이 대단한 인물이며 병자호란 때에는 청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갖은 곤욕을 치르다가 참형에 처해 진 윤집, 홍익한, 오달제와 함께 삼학사에 해당하는 인물임. 이처럼 청원루는 1618년경에 김상헌이 지은 것으로 시대와 지은이가 거의 분명하고 지은 사람이 조선후기 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청서파의 영수라는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에서 역사성을 읽을 수 있음.
ㅇ 청원루의 평면구성을 보면 좌우대칭으로 노론 유학자의 권위성도 표현하였지만 좌우 전면으로 누마루를 달아내고 칸살(건물 사이를 갈라서 나누는 살)을 달리하면서까지 누마루를 강조함. 이것은 제사와 살림보다는 조선 초기 접객중심의 가옥구성형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음. 또한 경상도 지역에서 ‘ㄷ’자 평면의 별서건물도 드물지만 정자로서도 매우 희귀함.
ㅇ 17세기 재지사족의 생활행태가 건물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우도 거의 없는 실정에서 청원루는 드물게 재지사족의 건축형태를 볼 수 있는 시대성과 계층성이 반영된 건물로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남.
ㅇ 청원루의 건축적 특성은 인방, 벽선 등 수장폭으로 결정되는 부재들이 예외적으로 굵고 넓게 사용하였고, 이런 부재들에 장식이 거의 없으며 곡선보다는 직선을 강조한 건축적 조형성임. 특히 지붕이 보통 건물의 앙곡보다 약하고 안허리곡은 거의 없을 정도로 지붕선이 직선적임.
* 앙곡(昂曲): 입면에서 볼 때 양쪽 추녀 쪽이 치켜 올라간 처마 곡선
* 안허리곡: 위에서 볼 때 추녀 쪽이 빠져나간 처마 곡선
ㅇ 따라서 청원루는 17세기 재지사족의 건축적 특징이 잘 드러난 건축이라는 측면 하나로도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있으며, 게다가 난간과 머름을 포함하여 장식이 극히 배제된 전반적인 건축의 조형성이 강직한 선비의 성품을 잘 드러내고 있어서 인문적인 요인이 어떻게 조형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음. 17세기 중창 때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건물의 전체 구성이 같은 맥락으로 이어져 있어서 완전성을 갖추고 있음. 이러한 문화재적 가치로 판단했을 때 청원루는 국가지정 문화재(보물)로 승급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음
* 머름: 바람을 막거나 모양을 내기 위하여 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 조각
□ 문화재명: 안동 체화정(安東 棣華亭)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풍산태사로 1123-10(상리2리)
ㅇ 구조/형식 : 목조 / 정면3칸‧측면2칸, 3량가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761년 건립, 1971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예안이씨 체화정 종중(이호직)
ㅇ 지정면적 : 94.3㎡
□ 지정사유
ㅇ「안동 체화정」은 1761년에 만포(晩圃) 이민적(李敏迪)이 학문을 닦기 위해 세운 것으로 그의 맏형인 옥봉(玉峰) 이민정(李敏政)과 함께 이곳에 기거하며 형제의 우애를 돈독히 한 곳으로도 유명함. 체화정이라는 당호와 기는 하지(下枝) 상진(象辰)이 지었으며, 체화정이라는 당호는 형제간의 화목과 우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시경(詩經)에서 인용함.
ㅇ 체화정이라는 현판은 사도세자의 스승인 삼산 류정원의 글씨라 전해지고 있고, 18세기 후반 안기역 찰방으로 부임한 김홍도가 ‘담락재’라는 현판 글씨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음. 지금은 모사한 현판을 걸고 있지만 원본은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으며, 두 현판은 쓴 사람이 명확하고 원본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면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음.
ㅇ 체화정은 많은 시인묵객들이 방문하여 적은 시판이 게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적 가치를 파악할 수 있으며, 또한 체화정의 연지는 별서정원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상인 신선사상과 음양론, 천원지방설 등의 영향을 받아 방형의 연지와 세 개의 원형 섬을 조성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별서정원에서 나타나는 사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음.
ㅇ 한국의 정자에 설치된 온돌은 비대칭으로 배치되는 것이 보통이고 체화정처럼 중앙이나 양쪽에 대칭으로 평면을 구성한 것은 흔치 않은 사례이며, 특히 가운데 온돌을 둔 유형은 지역적인 특징임.
ㅇ 온돌 전면의 창호는 4칸 폭인데 가운데 두 칸은 문얼굴(문짝을 달기 위한 방형 문틀)이 하나로 되어있으며 중앙에 눈꼽째기창(창이나 문안에 다시 열 수 있게 만든 작은 창)을 달았으며, 양쪽 문은 좌우로 열어 가운데 2칸 분합과 포개져 들어걸개로 열 수 있도록 만듦. 정자에서 눈꼽째기창을 둔 것도 드문 것이지만 양쪽에서 문을 열어 포개 가운데에서 들어걸개로 작동하는 분합문의 유형도 극히 드문 유형임. 이와 같이 체화정의 창호는 다른 누정 건물에서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음.
ㅇ 이상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체화정은 건축적으로 주요 구성부에서 18세기 후반 조선후기 목조건축의 우수한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특히 각 실의 배분과 창호의 의장에서 다른 정자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하고 창의성이 높은 세부 고안을 보이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기에 충분함.
□ 문화재명: 경주 귀래정(慶州 歸來亭)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천서길 7(다산리 1074)
ㅇ 구조/형식 : 목조 / 이익공계 5량가 팔작지붕, 육각형 정자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755년 건립)
ㅇ 소유자(관리자) : 여주이씨 지헌공파문회
ㅇ 지정면적 : 89.96㎡
□ 지정사유
ㅇ 「경주 귀래정」은 『천서가숙상량문(川西家塾上樑文), 1755』에 의하면 지헌공파에서 공부를 하기 위한 공간이 없자 이를 의논한 결과 가숙을 지을 터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숭정기원후삼을해(崇禎紀元後三乙亥)인 조선후기 1755년(영조 31)에 천서가숙을 건립하였다고 전함.
ㅇ 육각형의 평면 형태를 갖는 정자로 정면 방향은 마루, 배면 방향은 온돌방과 출입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육각형 정자 중 이러한 공간구획을 갖는 경우는 드물어 유래를 찾기가 어려움. 육각형 평면을 교묘하게 처리하여 온돌방과 누마루를 매우 짜임새 있게 배치하고 자투리 공간을 최대한 이용한 매우 놀라운 평면 활용의 기지가 돋보이는 정자임.
ㅇ 평면은 육각인 반면 지붕은 모임지붕(하나의 꼭짓점에서 지붕골이 모이는 지붕)을 하지 않고 팔작지붕으로 구성하여 몸체와 가구 연결부가 독특하게 구성된 보기 드문 건물임.
ㅇ 귀래정은 온돌방 정면에 외여닫이 세살창(세로살은 꽉 채우고 가로살은 위아래와 중간에 3~4가닥만 붙인 살창)과 들어열개문(문짝 전체를 걸쇠에 들어 걸게 만든 문)을 사용하며, 들어열개문은 세살창을 접고 위에 있는 걸쇠에 걸면 방과 대청이 트여있어 공간의 경계를 없애 한 공간으로 구성할 수 있음. 일반적인 들어열개 문은 1:1로 분합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래정의 들어열개문은 2/3의 들어열개문과 1/3의 세살창으로 보기 드문 독특한 창호 구성임.
ㅇ 봉화 청암정(명승 제60호)처럼 연지가 건물을 감싸는 특이한 형태로 조성한 경우는 흔치 않은 사례이며, ㄴ 자형의 연지와 정자의 구성 그리고 독특한 조경구성 등 전통 정원 및 별서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음.
ㅇ 귀래정은 육각형 평면에 마루, 온돌방, 벽장 등이 교묘하게 분할 구성된 점, 원형과 방형의 기둥이 조화롭게 사용된 점, 마루의 바닥높이에 차이를 두어 외부공간과 자연스럽게 연결을 추구한 수법과 더불어 육각 평면위에 팔작지붕을 꾸미는 독특한 목구조결구방식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전통건축의 구조기법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됨.
ㅇ 이처럼 귀래정은 조선시대 정자 건축과 별서정원의 뛰어난 수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하기에 충분함.
□ 문화재명: 달성 하목정(達城 霞鶩亭)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길 56-10
ㅇ 구조/형식 : 목조 / 대청(정면3칸, 측면2칸), 방(정면 1칸, 측면 4칸) 丁자형 정자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04년경 건립)
ㅇ 소유자(관리자) : 전의이씨 종중(이국로)
ㅇ 지정면적 : 144㎡
□ 지정사유
ㅇ「달성 하목정」은 낙포 이종문(1566~1638)이 1604년 경에 건립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과 정면 1칸, 측면 4칸의 방들이 서로 붙어서 전체적으로 “丁”자형의 독특한 평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자형 별당 건물임.
ㅇ 하목정은 “丁”자형 평면을 가진 것도 독특하지만 건물의 용도를 주인과 하인이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것도 매우 이례적이며, 또한 공적 목적이 큰 커다란 사랑대청을 가지면서도 사랑윗방 앞에 개인적인 공간인 누마루를 설치한 것은 조선 중·후기 별당건축의 한 예를 보여줌.
ㅇ 가구구성은 5량과 3량의 두 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적인 가구의 구성은 두꺼운 부재를 사용하면서도 건물고를 높여 건물이 둔중해 보이지 않으면서 당당한 기품을 지니고 있고 시원한 공간감을 느끼게 하고 있음. 또한 중대공과 대공을 포대공으로 꾸미는 등 고급의 장식과 치장을 곁들이면서도 화려해 보이지 않는 건물임.
ㅇ 하목정의 창틀에서 주목되는 것은 영쌍창(欞雙窓, 중간설주)의 흔적이며, 사랑윗방의 정면 창호, 대청 측면 부분, 대청 배면의 어칸 부분의 창 윗틀에서 영쌍창의 홈 흔적이 보임. 이러한 영쌍창의 모습은 17세기 이전의 사랑방이나 안방의 전면 창호 또는 대청의 창에서 많이 쓰이던 것으로 18세기에서도 일부 이어져 왔던 수법이며 건축의 연대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로 여겨지는 중요한 자료임.
ㅇ 일반적인 와가는 지붕의 모습을 날렵하게 보이기 위하여 처마 모서리를 뾰족하게 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하목정은 초가지붕의 모습과 같이 둥글게 만든 방구매기수법을 사용함. 이러한 수법은 청도 선암서원(경상북도유형문화제 제79호) 정도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희귀한 처마구성 방식임.
ㅇ 하목정은 마루 청판 밑의 자귀질(나무를 깎아 다듬는 도구인 자귀로 나무를 깎는 일) 자국, 목구조 구성부재의 원형적 형태, 사랑윗방 창호 등에서 확인되는 영쌍창의 흔적 등에서 창건 당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가구부재의 치목을 그대로 유지해 온 것이 놀라울 정도로 보존상태가 탁월함.
ㅇ 이러한 하목정의 건축적 특성을 종합하여 볼 때, 이 건물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평면형태가 독특한 丁자형의 정자형 별당 건축으로 공간구성과 세부기법 및 의장 등에는 많은 특색이 나타나고 있어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만한 역사적, 건축적, 학술적 가치가 뛰어남.
□ 문화재명: 영암 영보정(靈巖 永保亭)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정길 10-8(영보리 296)
ㅇ 구조/형식 : 목조 / 정면5칸‧측면3칸, 익공계 5량가 팔작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35년경 중건)
ㅇ 소유자(관리자) : 전주최씨·거창신씨 종중
ㅇ 지정면적 : 243.18㎡
□ 지정사유
ㅇ 「영암 영보정」은 향촌사회가 재편되어가던 15세기 중반 혹은 후반에 이곳에 정착한 전주최씨와 거창신씨 일족에 의하여 창건되고, 임진, 정유의 왜란 이후 1635년(인조 13) 경 중건되었으며, 이후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는 영암 지역의 대표적인 누정임. 이웃한 장암정과 함께 동계(洞契)의 회합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향약 정자로서 보기드문 희소성을 가지고 있음.
ㅇ 민간이 운영한 향촌의 누정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큰 규모를 가지고 있고 누정으로서 역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높은 마루를 가지고 있으며, 후면열의 중앙에 구분된 방을 두는 독특한 평면형식을 가지고 있음. 또한 전면과 양측면, 그리고 후면을 서로 구분한 창호와 난간 등의 건축적 장치, 익공(새 날개처럼 뾰족하게 생긴 공포)과 화반(포와 포 사이에 놓여 장혀를 받치고 있는 부재), 대공(종보 위에 놓여 종도리를 받고 있는 부재) 등의 건축적 장식 등에서 등급을 나누어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는 등 우리나라 누정 건축의 형식 발달사에 중요한 증거가 되고 있음.
* 장혀: 도리 밑에 놓인 도리받침 부재
ㅇ 한편, 영보정이 지닌 입면의 비례감, 목재조각의 정교함, 휘어진 목재를 직선으로 만드는 기법 등의 조형성과 기술성이 우수하여 전통적인 목재 가공과 관련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음.
ㅇ 이처럼 영보정은 조선후기 동계의 회합장소로서 향촌사회의 한 단면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공간인 점, 1630년 경 조성된 오랜 건립 역사가 있는 점, 정교하게 짜인 익공식, 다양한 유형의 화반 배치, 간략하면서도 기능적 구조의 가구형식 등 건축구조와 양식 측면의 독특한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승급하기에 충분함.
□ 문화재명: 진안 수선루(鎭安 睡仙樓)
□ 종 별: 보물
□ 지정내용
ㅇ 소 재 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산57번지
ㅇ 구조/형식 : 목조 / 정면3칸‧측면3칸, 이익공 3량가 맞배지붕
ㅇ 수 량 : 1동
ㅇ 조성연대 : 조선시대(1686년 건립, 1888년, 1892년 중수)
ㅇ 소유자(관리자) : 연안송씨 참봉공파 종중(송창윤)
ㅇ 지정면적 : 32.1㎡
□ 지정사유
ㅇ 「진안 수선루」는 1686년(숙종 12년) 건립되고 1888년(고종 25년)과 1892년(고종 29년) 중수된 정자로, 자연암반으로 형성된 동굴에 위치하여 비정형적인 틈 사이에 건물이 끼워져 있음. 또한 상부로 휜 창방(기둥머리를 좌우로 연결하는 부재)의 사용, 방 내부의 연등천장 구성, 바위 틈새를 적절하게 출입구로 활용한 점, 진입의 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두움과 밝음의 극적 대비 등은 정형의 건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당시의 시대에 파격적으로 시도되었던 건축 형식을 보여줌.
ㅇ 수선루의 평면형태는 상·하층 모두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규모도 비슷하지만 상하로 연속되는 부분은 중앙의 1칸뿐이며, 하층의 우측 출입 칸 상부공간을 상층의 마루 칸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외부공간을 내부공간화 시킨 것은 특출한 공간구성이라고 할 수 있음.
ㅇ 또한, 수선루는 누정건축으로서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지형을 이용하여 암굴에 건축하였으며 지붕의 전면은 기와로 하고 후면은 돌너와로 마감하여 지역의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음.
ㅇ 따라서, 진안 수선루는 자연과의 조화로움, 전형적인 누정의 기능과 형태에서 벗어나 있는 독특한 외관 및 특색 등 전통적인 누정 건축의 한 부류로 대표할 수 있을 정도임. 이러한 양식사적 가치만으로도 충분히 국가지정 문화재(보물)로서의 가치가 있음.
<출처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