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인 강 기슭의 작은 마을.
장 크리스토프는
이 마을에서 밤낮 술에 취해 있는 음악가를 아버지로,
그리고 단순하고 마음씨 착한 하녀를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아버지는 크리스토프의 재능을 믿고
그를 연주가로 키우려 했으나,
크리스토프는 그와 반대로 작곡가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파산해 버린 일가는
크리스토프가 피아노 레슨을 하든가,
아니면 오케스트라의 멤버가 되든가 해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크리스토프는
친구인 오토와의 우정은
동생들의 심술로 해서 파괴되었고,
미나와의 첫사랑은
서로의 신분이 맞지 않음으로 해서
이별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했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사건을 겪은 크리스토프는
인간이 살고 있는 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열여섯 살이 된 장 크리스토프의 마음속에는
무한한 창조력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러나, 애정 관계에 있어서는
자비네와 로자와의 불행한 사랑이 계속되었다.
크리스토프는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마음의 눈뜸으로 해서
독일 사회와 예술의 여러 형태의 허위를 발견하고는 이와 싸운다.
그는 프랑스에서 자유로운 정신을 발견하고
프랑스로 도피하려고 계획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프랑스인 가정교사 앙트와네트를 통해서
아름다운 영혼을 발견해 내는 것이었다.
드디어 크리스토프는
어느 다툼을 계기로 해서 독일을 떠나 파리로 가게 되었다.
그렇듯 오랫동안 동경했던 파리였다.
그러나 파리는 혼탁하기 짝이 없어 그는 또다시 실망하게 된다.
크리스토프는 고독과 싸우면서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런 가운데 앙트와네트의 남동생인 오리비에
청년의 착한 눈동자를 발견하게 되어,
그에게 깊은 우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크리스토프는 예술가로서 유명해졌다.
오리비에는
재클린과의 사랑이 열매를 맺어 결혼하게 됨으로써
크리스토프와 헤어졌다.
그러나, 그 신혼 생활도 별로 행복한 것이 못 되어
다시금 크리스토프에게로 돌아왔다.
오리비에는
사회의 부정을 발견하고 이와 싸우지만,
폭동이 일어나자 어린이를 구출해 내려다가 자기가 희생되고 만다.
크리스토프는 그 폭동에 휘말려들어
자기 몸을 방어하려다가
뜻하지 않게 살인을 하게 되었다.
크리스토프는 스위스로 도망하여
친구의 애인인 안나를 사랑하게 되지만,
이윽고 거기서 벗어나
다시금 음악을 창조하는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크리스토프는 영혼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점점 늙어 가고 있다.
그는 옛 친구인 오리비에의 아들과
지난날의 연인이었던 그라티아의 딸을 결혼시키고,
자기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종소리와 라인 강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소설가, 극작가, 평론가.
일생을 인류애와 평화주의에 헌신한 실천가.
극작가로서 출발하여 〈신앙의 비극〉 3부작을 썼다.
때마침 드레퓌스 사건에서 영향받아
〈늑대〉(1898), 〈당통〉(1901) 등
대혁명을 무대로 하는 혁명극 연작과
획기적인 〈민중극론〉(1903)을 발표했다.
〈베토벤 전기〉(1903), 〈미켈란젤로 전기〉(1906),
〈L. Ν. 톨스토이 전기〉(1911)를 통해
인류의 고뇌를 짊어짐으로써
'선을 위하여 괴로워하는' 예술과 사상의 위대성을 역설했다.
이 영웅주의는 신비적인 경지로까지 깊어진 인간 예찬의 사상으로서,
그의 최고 걸작 〈장 크리스토프 〉(1904-1912)에도 전개되어 있다.
논문 〈싸움을 초월하여〉(1915)로
열렬한 반전의 신념을 말하고,
1916년 〈장 크리스토프〉에 주어진 노벨상 상금도 적십자사에 기부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끝까지 변함없었다.
평론 〈베네치아의 연인들〉(1902),
〈지성의 장래〉(1905),
시집 〈마음의 음악〉(1923) 등이 있으며,
1938년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다.
- 김희보, 세계문학사 작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