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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러시아(Russian Federation) |
위치 |
상트페테르부르크 현(St. Petersburg region) |
좌표 |
N59 57 0, E30 19 5.988지도 |
등재연도 |
1990년 |
등재기준 |
(ⅰ), (ⅱ), (ⅳ), (ⅵ) *참고: 세계유산 등재기준 |
18세기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의 상징적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Saint Petersburg)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수도 건설에는 러시아 병사, 스웨덴과 오스만 제국의 전쟁 포로, 그리고 핀란드와 에스토니아(Estonia) 노동자와 인부들의 엄청난
노동력이 강제 동원되었다. 프랑스 건축가 알렉상드르 르블롱(Alexandre
Leblond)의 도시 설계에 따라 척박한 해안 지역을 궁전, 교회, 수녀원과 2층 석조 건물이 있는 최고의 도시로 탈바꿈시켰고, 이 기간은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표트르 대제의 재위 초기부터 그물 같은 운하와 도로, 부두 등이 점차적으로 건설되었다. 또한 18세기 안나 이바노브나(Anna
Ivanovna),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Elisabeth Petrovna), 예카테리나 2세 여제(Catherine II)의 재위 시절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도시 풍경은 기념비적인 장관을 이루었다. 라스트렐리(Rastrelli),
리날디(Rinaldi), 콰렌기(Quarenghi), 캐머런(Cameron), 발랭 드 라 모트(Vallin de la Mothe)를
비롯한 여러 외국 건축가들은 수도에 거대한 궁전과 수녀원을 지으면서 서로 그 대담함과 웅장함을 겨루었다.
그들은 페트로드보레츠(Petrodvorets), 로모노소프(Lomonosov), 차르스코예 셀로(Tsarskoie Selo, 푸시킨(Pushkin) 시), 파블로프스크(Pavlovsk),
가치나(Gatchina) 등 주변 지역에 황제와 왕족의 교외 저택 등을 건축하면서 재능을
뽐내었다.
미하일로프스키(Michailovska) 궁전을 건설하라고 명령한 파벨 1세(Paul I) 시절과 19세기
알렉산드르 1세(Alexandre I) 시절에 건축된 기념비적
건축물에는 도시의 창건자가 보여 준 놀라운 추진력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카를로 로시(Carlo Rossi)의 궁전과 극장, 예술광장, 카잔(Kazan)에 있는 보로니힌(Voronikhin)의
노트르담(Notre Dame) 대성당, 오귀스트 드 몽페랑(Auguste de Montferrand)이 설계하고 바실리 스타소프(Vassili
Stassov), 아브람 멜니코프(Abram Melnikov), 알렉산드르 미하일로프(Alexandre Michailov)와 안드레이(Andrei) 미하일로프가
건설에 참여한 성 이삭 성당(St. Isaac Cathedral)은 이 시대의 위대한 걸작들이다.
도시계획 역사 중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규모 도시 계획의 유일한 본보기이다. 이것은
서로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건축양식을 신속하게 계승했음에도 나름의 철학을 간직한 대규모 계획이었다. 1748년
바르톨로메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가 시작하고 1835년 바실리 스타소프가 완성한 부활 교회의 바로크 양식은 토리드(Tauride)
궁전의 정제된 신고전주의 특성과는 정반대되는 양식이었다. 라스트렐리가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한 겨울궁전의 생동감 넘치는 건축물을 배경으로, 궁전 광장에 서 있는 알렉산드르 원주는 1830년부터 1834년까지 오귀스트 드 몽페랑이 건립한 것으로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다.
이것은 서로 다른 건축양식이 공존하면서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 기념물군은
끊임없이 해풍이 불어오는 바다를 향해 어떤 배경도 없는 풍경 속에 서 있다. 주변에는 400개를 넘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운하는 그물처럼 얽혀 있고 발트 해(Balt海)가 다채롭게 반짝인다.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생생한 색을 띤 회반죽과
장식 벽토, 빛이 반사되는 대리석과 화강암, 반암, 반짝거리는 금박 장식의 건축물과 녹색의 공원이 어우러져, 눈이 시리도록
푸른 네바(Neva) 강과 함께 그림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1703년부터 선보인 건축가들의 다양한 건축양식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 온 건축가들이 설계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 주변 지역의 조화로운 건축물들은 18세기~19세기의 건축과 기념비적 예술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념물은 바로크와 신고전주의의 빼어난 건축물들 뿐만 아니라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황제의 저택을
포함한다. 더욱이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도시이다.
기준(i) : 도시설계 분야를 살펴볼 때
구(舊) 레닌그라드는 계획의 목적과 일관성, 그리고 실행 속도라는 면에서 독특한 예술적 업적을 보여 주었다. 1703년부터 1725년까지 표트르 대제는 수도 습지와 토탄 늪, 바위투성이 풍경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석조와 대리석으로 된 건축물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표트르 대제는 이 도시가 유럽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되기를 원하였다.
기준(ii) : 라스트렐리, 캐머런, 발랭 드 라 모트, 리날디, 자하로프(Zakharov), 보로니힌, 로시,
몽페랑이 설계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주변의 조화로운 건축물은 18세기~19세기 러시아와 핀란드의 건축과 기념비적 예술품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처음으로 과학아카데미를 창립하고 곧이어 미술아카데미를 설립함으로써 수도의 규범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이후 예카테리나 여제, 알렉산드르
1세, 그리고 니콜라이 1세(Nicholas I)가 완성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1812년 화재 이후
모스크바를 재건하고 제국 남쪽 지역에 있는 오데사(Odessa)나 세바스토폴(Sebastopol) 같은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데 모델이 되었다.
기준(iv) : 등재된 문화유산은 바로크와 신고전주의의 빼어난 건축물들과 바로크 양식으로
지은 황제의 저택을 포함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복원된 페트로드보레츠와 차르스코예 셀로(푸시킨 시)의 궁전은
가장 중요한 건축물의 사례이다.
기준(vi) : 레닌그라드는 세계적인 중요성을 지닌 두 차례 큰 사건과 직접적이고 분명한
연관이 있다. 첫 번째 사건은 1703년부터 1725년까지 진행된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이 러시아가 서구 세계를 향해 개막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차르(tsar) 제국이 세계무대에 출현하였다는 것을 상징한다. 데카브리스트 광장에 세워진, 조각가 팔코네(E.Falconet)의 작품인 표트르 대제 청동 기마상은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위상을 떠오르게 한다.
두 번째 사건은 페트로그라드(Petrograd, 1914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바뀐 이름)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한 기념비적인 곳이라는 점이다. 나중에 10월 혁명 박물관이 되었던 레닌그라드 중심에 있는 마틸데
크세신스카야(Mathilde Kchesinskaia)의 도시 주택과 순양함 오로라(Aurora) 호는 구소련 설립의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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