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는 민주주의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민주는 언제나 공화라는 또 다른 관념에 의해 지탱된다. 이를 반영한 것이 우리 헌법 1조이다.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국가이다"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헌법은 1항 1조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한다. 물론 헌법은 다시 동조 2항에서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며 모든 권력의 원천이 국민임을 명시한다. 그러나 이는 헌법의 공화적 성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화야 말로 민주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화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공화를 단순히 비 군주정에 가까운 존재로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공화라 함은 단순히 전제적, 혹은 독재적 정치와 모순관계에 있는 단어가 아니다. 이 관념은 고전 시대의 헬라스로부터 온 것이다. 당시 헬라스인들은 스스로를 군주의 노예가 아닌 시민으로서, 사적 이익보다 공적 이익을 중시하고 이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덕(德)을 지닌 공민(公民)으로 스스로를 여겼다. 공화란 그런 선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정치체제이자 동시에 그 시민적 덕(德) 자체를 의미한다.
이 공화의 이념이 바로 그들의 민주주의를 지탱했다. 헬라인들은 시민이 주를 이루는 폴리스(Polis) 체제를 동방 페르시아의 전제정치보다 우월하다고 여겼다. 스스로의 이성 없이 다만 명령에 복종하는 신민(臣民)들, 덕성을 잃은 자들은 스스로의 공적 의무를 이행하는 시민과 비교될 수 없다는 것이다. 헬라인들은 시민으로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의무와 권리를 항상 같게 여겼으며 - 물론 사적으로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많았겠지만 - 이 둘이 동전의 양면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법정이 사형선고를 내렸을 때 조차 자신이 시민으로서 아테네로부터 받은 것이 있다면 이제 와서 그 법률이 자신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하여 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다.
민주는 단순히 권력이 어디에 있는지, 소유주가 누구이며 누구여야 하는지를 의미할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당신이 당신의 돈을 내고 어떤 물건을 구매했다면 그 물건의 정당한 소유주는 당신이다. 국민이 주권을 가져야 하는 것도 그러한 관념일 뿐이다. 그리고 군주가 아닌 시민이 주권을 지녀야 하는 이유는, 시민이야말로 이성을 지닌 자이자 인간으로서 권리능력을 지닌 자들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시민이 권리를 지닐 만한 자들이 아닌 경우, 그들을 노예와 같은 미천한 자들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원칙으로 불리는 보통선거라는 관념과는 모순된다. 실제로 과두정으로 유명한 라케다이몬인들은 시민들의 정치참여라는 점에서는 가장 민주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테네와 그렇게 큰 차이는 없었다. 다만 라케다이몬인들은 좀 더 과격하게 시민과 비 시민을 구별했을 뿐이다. 요컨데 공화의 관념 하에서는, 보통선거는 때로 배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민주주의가 반드시 보통선거를 전제로 해야 한다면, 그런 민주는 공화와 간극을 보일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이런 민주와 공화의 간극을 보편적 인권이라는 논리적 장치로 해결한다. 모든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 자체로 권리능력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념 하에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이해득실을 잘 알고 있으며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주체이자, 나아가 정책사안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로 간주된다. 자유의지를 지닌 시민은 그렇기에 스스로 책임질 능력이 있고 스스로 책임을 진다. 이에 따라 시민은 일정 나이 이후,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취득하는데 아무런 논리적 모순이 없게 된다.
문제는 이는 어디까지나 선언된 명제이지 입증할 명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정말로 인권을 지녔는지 어쨌는지의 문제는 증명의 대상이 아니다. 신의 존재를 의심함이 이단이듯 현대 사회는 누군가가 인권을 향유할 수 없다는 주장을 이단으로 간주하며,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런 관념이 깨진다면 공동체를 존립시켜주는 규범이 와해될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치 중세가 기독교라는 규범을 따른 것과 같이 근현대 세계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종교를 따르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실재는 이런 이상적 존재일 수 없다. 사람들은 때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사람들은 때로는 멍청할 수 있으며, 저능할 수 있다. 심지어 인간은 공적인 것 뿐 아니라, 그들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것이 선한가 아닌가의 여부와 무관히, 이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실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논리, 자유의지와 이성을 지닌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규정은 참으로 취약한 기반 위에 서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자유의지가 실존하느냐 아니냐의 여부와 무관히, 자유의지가 있다고 가정되는 공동체는 그렇지 않은 공동체보다 나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법학자가 아니더라도 - 심지어는 심리학자들도 - 대부분 인정하는 사안이다. 규범과 현실은 언제나 기묘한 간극 위에 서 있다. 그런 간극은 모순되어있지만 때로는 그런 모순이 필요할 때가 있다.
첫댓글 너무 옳은 말이어서 이 이상 덧붙일 말이 없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