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를 위하여
롬14:13~23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쉽게 단정 짓지 못할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그것이 죄냐, 아니냐의 문제는 세상 적 기준으로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죄의 개념은 하말티아/ 곧 하나님을 떠남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아직 여전한 죄 가운데 있지만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아버지 앞에 돌아 올 수 있는 여백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세상적인 그 어떤 죄를 보심이 아닌 그 요구적 삶을 도모하여 좇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제의 허물을 인하여 세상 적 잣대의 죄의 개념으로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령 여기에 나체의 모습을 한 여인을 그린 그림이 한 점 있다고 합시다.
그림에 대한 상당한 예술적 안목을 가진 사람이 볼 때에는 예술성이 뛰어난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겠지만,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 윤리 도덕만을 강조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이는 외설이요, 난잡한 상품 정도로 평가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이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일이라도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양심의 가책이나 거침이 되는 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인들에게 있어서 음식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었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은 율법의 정한바 먹어도 되는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엄격히 구분하는 습관을 고수하였고, 이방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은 헬라인들은 구속으로 말미암는 자유함을 고수함으로써 늘 마찰과 갈등, 다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 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했습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있는 것 중에서 그 자체가 속 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르시기를
마15:11, 17~20/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리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교훈하기를
(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했습니다.
어떤 음식은 정하고 어떤 음식은 부정하다고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선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속되게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포도는 선하게 만드셨습니다. 이를 먹음에 있어서 논쟁이 되고 거리낌이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으로 술을 만듦으로써 몸과 정신을 해치고 인간관계를 무너뜨리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이 다 선한 것인데 그것으로 마약을 만듦으로써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선하게 지으심으로 스스로 악하거나 속 된 것이 없지만 사람들이 이것을 속되게 만듦으로써 악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 하라, ‘하지 말라’ 고 명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양심 안에서 “주를 위하여” 분별하고 각자 그 마음에 확증한대로 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한다면서 내 마음대로 행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삼가하고 조심하고 절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형제들에게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절제하고 용납하며 그런 것들로 인하여 서로 반목하고 판단하고 다투지 말고 복음의 본질적인 것, 곧 하나님의 선한 사업을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목하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함으로 돌아보고 섬기며 용납하고 하나 되는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알고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 이것이 흔들리면 신앙은 독선이 되고 이기주의가 되고 하나님의 사업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교회에 대한 올바른 이해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각 부분의 지체를 이룬 유기체인 것입니다.
고전12:12~27/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리라. ~~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함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는 “나”라는 일인칭 단수가 나타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그리고 요구하시는 방향으로서의 삶, 이것이 믿음의 본질이요 이는 바로 형제와의 관계요 형제와의 관계 속에서의 우리가 좇아야 하는 요구적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세마포와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그 나라를 상속받는 하나님이 교회를 세우시고 사명 주시고 주목하시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까?
열매입니다.
요15: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했습니다.
그 열매는 서로 용납하고 돌아보고 사랑으로써 섬기는 삶인 것입니다.
그 결과는 천국상속입니다./할렐루야!
마7:16~21/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그러면 어떤 사람이 들어가느냐 하는 말씀이지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듯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뜻, 천국을 약속하시는 요구는 바로 이 서로 사랑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고 마시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즉 이런 것들로 서로 다투고 판단하고 분쟁하지 말고 이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사람이 주님의 제자요, 열매 맺는 자요,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자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할!
그래서 주님은 말씀합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했습니다.
크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어린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가는데 내가 바쁘다고, 아니면 너무 느리다고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이 어린 아이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답답하지만, 아장아장 걷는 그 걸음대로 아버지가 맞추어 천천히 그것도 이것저것 많은 질문에 대답해 가면서 걸어갑니다.
넘어지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이것이 우리라는 개념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우리가 형제를 판단하지 않는 선에서 머물면 안 된다고 말씀합니다.
“판단하다”는 말은 “크리노/ 나누다, 구별하다, 헐뜯다, 비난하다”라는 뜻이라고 첫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형제의 그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입을 꾹 다물고 침묵하거나 방관하는 것으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내가 알고 있는 대로 그 마음의 확신대로 소신껏 내 믿음 지켜나간다는 식의 원칙주의적인 신앙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이타적인, 곧 중심으로써 사랑하는 삶으로 증거해 나타내야 하는 믿음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언행에 영향을 받는 형제들을 위한 실제적인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했습니다.
또
(15)/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 이르기를
(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다음에 고린도서를 강해 할 일이 있을 때 더 세밀히 살피겠지만
사도 바울은 식물을 인하여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할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직 복음의 본질, 십자가의 사랑에 주목하고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8:1~3, 8~13/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알면서도 그 삶으로써 증거하지 아니하면 교만이라는 것)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식물을 먹고 안 먹고는 천국상속과는 무관하다는 것)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 이 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했습니다.
“믿음”은 “피스티스/ 신뢰를 가지고 의뢰하다, 합의하다, 동의하다, 삶에 법을 삼아 따르다”라는 뜻입니다. 곧 주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시고 명하신 서로 사랑하는 삶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인 우리에게 있어서의 최고한 법이 무엇입니까?
약2:8~9/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 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했습니다.
따라서 형제를 사랑함으로 믿음이 약한 자 앞에서 거침이 되지 않는 것이 아름다우며 거침이 되면 죄라는 것입니다. 즉 사랑함으로 믿음이 약한 자 앞에서는 식물을 인하여 실족치 않도록 삼가고 주의하고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을 아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술, 담배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술, 담배를 금하게 된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선교사들에 의해 복음이 처음 들어 온 때에는 술, 담배를 허용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가난했던 그 시절,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때에 의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망 없는 사람들은 술과 도박, 음주가무에 나라가 멍들어가던 그 때에 교회 지도자들이 이래서는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01년 장로교 선교사 공의회 (현 대한 예수교 장로회)는 신앙생활 7대 지침서를 만들고 암송케 하고 이에 대한 실천 서약을 받은 후에 세례를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첫째는 예배 출석을 철저히 할 것,
둘째는, 성수주일을 철저히 할 것.
셋째는, 부모에게 효도할 것.
넷째는, 일부일처제를 철저히 지킬 것.
다섯째는, 인가귀도 할 것. 곧 자기가족을 반드시 구원시킬 것.
여섯째는, 근면, 성실 할 것,
일곱째는, 금주, 금연 할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지난 100여 년 동안 한국교회에 자리 잡은 풍토입니다.
또 하나는 사회적인 상황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술, 담배를 버젓이 한다면 그들이 도리어 시험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함과 확신하는 믿음이 있다고 할지라도, 약한 믿음의 사람들 앞이나 형제들에게 거침이 되지 않기 위해서 주의하라. 그것이 아름다운 덕이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 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 되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고전10:23~24/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그 자유를 절제하면 따르는 복이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피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