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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佛紀2566(2022)年 부처님오신날/釋迦誕辰日(석가탄신일)
■ 불교(Buddhism/佛敎)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로서 전아시아인들의 정신적·사상적·문화적·사회적 삶에 크나큰 영향을 끼쳐왔다.
19세기 후반부터는 서양세계에도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불교는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artha)라는 한 역사적 인물에 의해 창시되었다.
그는 수행을 통해 '부처'(Buddha 佛陀), 즉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실천하는 종교이다.
■ 만자문(卍字紋, 산스크리트어: स्वस्तिक 스바스티카, Svastika)는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방향으로 꺾인 십자 모양의 무늬이다.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의 인도 계통의 종교의 대표적인 상징들 중 하나로, 卍(좌만자) 卐(우만자) 모양 둘 다 방향만 다를 뿐 모두 같은 만자가 맞다.
보통 스바스티카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형상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사우와스티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스바스티카를 상하좌우로 배열하면 돌림무늬이면서 번개무늬이기도 하다.
또한 별개로 서구권에서도 켈트 족 등을 비롯해서 여러 곳에서 신성의 의미로나 전통적 상징으로써 쓰이고 발견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상징 중 하나이며, 파일펏(영어: Fylfot), 감마디온(Gammadion), 테트라스켈리온(Tetraskelion), 하켄크로이츠(독일어: Hakenkreuz) 등 어원이 다른 제각각의 다양한 이름이 있다.
■ 人生(인생)
人生事(인생사) 先後(선후) 緩急(완급) 輕重(경중)이 있습니다.
우리네 人生(인생)은 아무도 대신 살아 주거나 누구도 대신 아파 주거나 죽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을 때 가지 않으면 가고 싶을 때 갈 수가 없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을 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奇跡(기적)은 아무에게나 어디서나 함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꿈과 희망을 먹고 자랐지만 성인이 되면 計劃(계획)과 實踐(실천) 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마음 가는 대로 잘 생각하고 判斷(판단)해서 몸 가는 대로 行動(행동) 하고 實踐(실천)하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면 될 것입니다.
다만, 嚴重(엄중)한 現實(현실)앞에 우선순위를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인가에 愼重(신중)을 기해서 責任(책임)과 義務(의무)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人生事(인생사) 刹那(찰나)와 彈指(탄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 最善(최선)입니까?
인생의 眞理(진리)는 오직 살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로지 건강하세요.
가족의 健康(건강)과 가정의 幸福(행복)을 축원합니다.
늘 고맙습니다.
19991212(陰1105) SUN
화정 합장
■ 佛紀2566(2022)年 부처님오신날
■ 국제 불교기(Flag of Buddhism-국제佛敎旗)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파랑, 노랑, 빨강, 흰색, 주황색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오른쪽 열에는 5개색을 위에서 아래로 차례로 줄무늬로 되어 있다. 색은 각각 의미가 담겨있다.
부처님 상호와 가르침 상징 흰 바탕에 태극을 두고 건(乾) 곤(坤) 감(坎) 이(離) 네 괘를 네 귀에 검은 색으로 표현한 것이 태극기다.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國旗)다.
국기는 국가를 상징하며, 그 모양은 그 국가의 역사와 전통, 사상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불교도 불교를 상징하는 불교기(佛敎旗)가 있다.
모양은 청색, 황색, 적색, 백색, 주황색 등 5색을 가로와 세로로 배치했다.
가로 세로 비율은 3:2다. 의미는 부처님의 상호(相好)인 모발과 몸, 피, 치아, 가사의 색과 그 가르침을 상징한다.
청색은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불법을 구하는 정근을 상징한다.
부처님의 모발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황색은 찬란한 부처님의 몸빛과 같이 변하지 않는 굳건한 마음을 나타낸다.
건장한 몸매에 확고부동한 부처님의 태도가 금강에 비유되는 이치와 같다.
적색은 더운 피의 색깔로서 항상 쉬지 않고 열정적으로 정진에 힘쓸 것을 표현한 것이다.
백색은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맑게 하는 청정을 뜻한다.
부처님 치아의 색을 상징한다.
주황색은 부처님의 성체를 두른 가사색으로 온갖 유혹과 굴욕 그리고 수치스러움을 참고 견디며 성내지 않는 인내를 상징한다.
가로로 그은 선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하며, 세로로 그은 선은 그 가르침이 영원히 변함없는 것을 뜻한다.
1950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제1회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회기(會期)로 제정됐으며, 이후 세계 각국에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6년 8월 11일 개최된 제13회 조계종 임시중앙종회에서 논의돼,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후 8월 12일부터 ‘조계종기’로 공식 게양됐으며, 이후에는 각종 불교행사에서 종파를 초월해 게양하고 있으며, 불상을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 서광사 대웅전 삼존불 후불탱화(6mX6m)는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 동원스님(세계문화유산 영축총림 사명암 원감)의 대작불사다
■ 서광사 대웅전
■ 동원스님(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세계문화유산 영축총림 통도사 사명암 원감 )과 서광사 주지 정악당 태응 대종사(佛紀2562(2018)年 5月 12日(陰 3月 27日) 00時 20分 法臘 62年, 歲壽 78歲로 靈鷲叢林 通度寺 觀音庵에서 圓寂)
■ 연등회(燃燈會)
문화재 지정 : 2012.04.06
문화재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2020)
요약 : 신라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불교적 행사이자 축제.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 중에 등공양이 있는데, 부처 앞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맑고 바르게 하여 부처의 덕을 찬양하고,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초파일 연등은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인도 등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 ☯ 2020년 12월 16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신라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불교식 축제.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라 진흥왕대에 팔관회와 더불어 국가적인 행사로 시작되어 주로 고려시대에 성행했다.
불교에서는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 중에 등공양(燈供養)이 있는데, 이는 부처 앞에 등을 밝혀서 자신의 마음을 맑고 바르게 하여 부처의 덕을 찬양하고, 부처에게 귀의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연등회의 종류에는 상원(上元) 연등과 초파일(初八日) 연등이 있다.
상원연등은 매년 정월 보름날에 왕궁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이틀 동안 등불을 밝혀 다과를 베풀고, 음악과 춤으로 임금과 신하가 함께 즐기며, 부처를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비는 행사이다.
상원연등은 불교적인 의미와 함께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풍년기원제와 결합된 행사이다.
신라시대 정월 15일에 행해진 연등은 바람과 비의 신인 용신(龍神)과 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별자리(天文太一星宿)에 드리던 풍년기원제와 불교의 등공양이 결합되어 행해진 행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등회는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에 의해 거국적인 행사로 행해졌다.
이후 성종 때 유학자들의 강한 반대로 일시 폐지했다가 1010년(현종 1) 윤3월에 다시 행했다. 그
로부터 매년 2월 보름에 연등회를 베풀었다. 초파일 연등은 석가 탄생을 축하하는 연등으로 현재 인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는 행사이다.
4월 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서 볼 수 있는데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했다고 씌여 있다.
당시에는 초파일 연등을 열면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 초기 억불책의 일환으로 1415년(태종 15)에 초파일 연등을 금지시키면서 연등회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1414년 이후 계속해서 베풀어진 수륙재(水陸齋)는 연등회와 팔관회를 계승한 행사라 할 수 있다.
연등회는 2020년 12월 1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5차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무형유산위원회에서 살아있는 유산으로 시대를 지나며 바뀌어 온 포용성으로 국적, 인종, 종교, 장애의 경계를 일시적으로 허물고 기쁨을 나누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가치를 인정받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다.
이에 따라 연등회는 한국의 21번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기록되었다.
☛ 출처 : 다음 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15a3261a
■ 서광사(Seokwangsa)
시대 : 현대
건립시기 : 1996년
성격 :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8425-196 St. Langley, B.C. V3A6Y3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의 해외 분원.
☛ 내용
서광사는 밴쿠버에 이민 온 교민들의 염원과 한국 불자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1993년에 창건되었다.
창건 초기 1년간은 타코마의 서미사 주지 일면이 법회를 주관하였고, 이후 승려 태응이 부임하면서부터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태응은 1956년에 울산의 미타암에서 성수스님을 은사로 하여 출가하였고, 1960년 범어사의 석암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오대산 상원사에서 7년간 참선 수행하였으며, 조계사와 통도사의 주지, 불교방송국 이사, 생명나눔실천본부 총재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북미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국 사찰로 손꼽히는 서광사는 6만 평 부지의 숲 속에 전통적인 목조건축 양식으로 지은 대웅전과 8각 9층 석탑 등을 조성하여 한국의 전통사찰과 같은 정취를 갖고 있다.
대웅전은 지하 100평 지상 목조 50평에 팔작지붕 양식으로 화려한 단청과 화엄경 내용을 담은 벽화는 법당 안에 모셔진 삼존불과 후불탱화, 신중탱화와 함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각종 법회와 기도회를 열고 있으며, 교민 자녀를 위해 한글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부처님 오신 날'에는 법회와 아울러 연꽃축제를 열고 있는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신도조직도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유소년 및 청장년층, 노년층 각각이 세대 간의 조화를 이루며 사찰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등록신도 수만 해도 1,300여 명에 이르며 현재에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서광사는 규모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캐나다의 현지 사회에 정착한 대표적인 한국 사찰이다.
☛ 참고문헌
・ 『조계종 해외사찰 편람』(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사회부 국제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2009)
・ 『미주현대불교』(New York: Modern Buddhism of America, Inc, 239호, 2010)
・ 대한불교조계종(www.buddhism.or.kr)
・ 서광사(cafe.daum.net/seokwangsa)
・ 한국불교국제네트워크(kbin.danah.kr)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닫집(당가)
- 연원 및 변천
닫집은 산개(傘蓋)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면 주인공 머리 위에는 항상 양산이 받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인도의 불교와 힌두교 사원에서 신상위에는 항상 천으로 만들고 화려한 장식을 한 보개(寶蓋)가 씌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산개와 보개가 건축화하여 닫집으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산개나 보개는 모두 양산에서 기원하여 닫집으로 발전해 갔음을 알 수 있다.
- 내용
불전이나 궁궐 정전에는 불단이나 어좌 위에 작은 집 모형을 만들어 걸었는데, 이를 닫집이라고 부르며 한자로는 당가(唐家)라고 쓴다.
『인정전영건도감의궤(仁政殿營建都監儀軌)』등에는 어좌위에 설치되었던 닫집의 도면이 수록되어 있다.
‘닫’은 ‘따로’라는 옛말이므로 ‘따로 지어놓은 집’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산개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불전의 닫집과 궁궐의 닫집은 별개로 발전과정을 거쳐 왔다고 추론할 수 있다.
부처를 중앙에 모셨던 고대 불전에서는 금당이 부처님 집이었으므로 닫집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예불의례가 금당 바깥을 도는 요잡(繞匝)중심이었다가 차츰 금당 안으로 들어가 절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마루가 깔리고 불단이 뒤로 밀리면서 금당 안에 부처님의 집을 별도로 만들기 시작한 것이 닫집으로 정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닫집은 불국정토의 궁전을 가리키는 적멸궁, 칠보궁, 만월궁 등을 상징하는데, 이들은 각각 석가, 아미타, 약사를 모시는 궁전이다.
닫집은 모양에 따라 보궁형(寶宮形), 운궁형(雲宮形), 보개형(寶蓋形)이 있다.
보궁형은 공포를 짜 올려 건물처럼 만든 화려한 닫집으로 가장 많다.
공포 아래에는 짧은 기둥이 달려 있는데 이를 헛기둥[虛柱]이라고 한다.
운궁형은 앞쪽에 장식판재인 염우판(廉遇板)이나 적첩판(赤貼板)만을 건너지르고 안쪽에 구름, 용, 봉, 비천 등으로 장식한 천장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개심사 대웅전, 봉선사 금당에서 볼 수 있다.
보개형은 천장 일부를 감실처럼 속으로 밀어 넣은 형태인데 고대 불전에서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 무위사 극락전과 봉정사 대웅전에서 볼 수 있다.
보개형은 닫집이라고 하기보다는 보개천장으로 불리며 천장의 한 종류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미와 역할은 닫집과 같다.
인정전에서는 닫집과 보개천장이 동시에 설치된 사례도 볼 수 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UNESCO-ICH-blue.svg)
Yeondeunghoe, lantern lighting festival in the Republic of Korea[2020]
연등회(燃燈會)는 한국에서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서 등불을 밝혀 세상을 밝히고자 하는 불교 행사이다
문화재청에서 삼국시대 이후 불교계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족전통의식으로 문화적 역사적 가치가 중요한 점을 들어, 2012년 4월 6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하였다.
신라 진흥왕 12년 팔관회와 함께 국가적 차원에서 열리기 시작하여, 특히 고려시대 때 성행하였고 국가적 행사로 자리잡았다.
이 날에는 등불을 밝혀 다과(茶菓)를 베풀고, 임금과 신하가 함께 음악과 춤을 즐기며, 부처님을 즐겁게 하여 국가와 왕실의 태평을 빌었다.
고려 태조의 훈요십조 속에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연등회는 고려시대를 통하여 겨울의 팔관회와 더불어 중요한 연중 행사였다.
팔관회는 왕도(王都 : 개경)와 서경에서만 행하여졌으나, 연등회는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거행되었다.
성종 때 유학자들의 반대로 중단되었으나 현종 때 다시 행해졌고, 조선 왕조에 와서도 연등회가 있었다.
처음에는 연등회가 정월 대보름에 열렸는데 나중에 2월 보름으로 옮겨졌다가 고려말 공민왕 시대부터는 연등도감을 설치해서 부처님 오신 날에 열렸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연등회가 금지되기도 했으나, 민중들은 꾸준히 연등회를 지속했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등축제는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공휴일로 지정되고 그 이듬해인 1976년부터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연등행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연등(燃燈)이란 등불을 밝힌다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등불을 달아 불을 밝힘으로써 무명을 깨치라 가르친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귀의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3] 불교에서 등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가르침으로, 어리석음과 어둠을 밝히는 의미로 지혜에 비유되었다.
이를 등공양(燈供養)이라 하여 향공양과 더불어 중요시하였다.
또한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을 관등(觀燈)이라고 한다. 《법화경》의 〈약왕보살본사품〉(藥王菩薩本事品)에서는 등공양의 공덕이 무량하다 하였으며, 《삼국유사》 〈감통편〉(感通篇)에도 불등에 관한 설화가 있다.
등불은 마름모육팔면체의 모양을 한 것이 많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각 사찰에서 거리에 등을 내달고 경내에 수많은 등을 밝히는 등공양 행사를 이어 온다.
1996년(불기 2540년)부터는 연등축제로 이름을 붙이고 동대문 운동장 - 조계사에 이르는 제등행렬을 비롯하여 불교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대동(회향)한마당 등 행사가 추가되어 종합적인 축제로 전환하였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부처님 오신 날, 또는 석가탄신일(한국 한자: 釋迦誕辰日)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로, 음력 4월 8일이다.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로서, 기념법회·연등놀이·관등놀이·방생·탑돌이 등 각종 기념행사가 열린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중국·일본·인도 등지에서도 연등놀이가 행해진다.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을 준 날이라는 뜻이 크다.
사월 초파일, 그냥 간단히 초파일이라고도 부른다.
‘初八日’이 ‘석가모니 탄생일’을 뜻할 때는 속음인 초파일로 읽고, ‘초여드레날’을 가리킬 때는 본음인 초팔일로 읽는다.
1975년 대통령령에 의해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이후 불교계에서 "석가는 샤카라는 인도 특정 민족 이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현재 한글화 추세에 따라 부처님 오신날이 공식 명칭으로 더욱 적합하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바꿔줄 것을 요구하였고 대통령 보궐선거 기간인 2017년 5월 3일 석가탄신일을 맞아 문재인 후보는 "내년에는 부처님 오신 날로 인사드리겠다"고 했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인 2017년 10월 10일 국무회의에서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석가탄신일을 부처님 오신 날로 변경하는 내용을 의결하였다.
대한민국, 마카오, 홍콩, 싱가포르에서 공휴일이다.
대한민국에서는 1975년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일본, 중국에서는 공휴일은 아니나 양력 4월 8일, 음력 4월 8일, 5월 어린이날 등 다양한 날짜에 지낸다.
경(經)과 논(論)에 석가모니가 태어난 날을 2월 8일 또는 4월 8일로 적고 있으나, 자월(子月:지금의 음력 11월)을 정월로 치던 때의 4월 8일은 곧 인월(寅月:지금의 정월)을 정월로 치는 2월 8일이므로 음력 2월 8일이 맞다고 하겠다.
그러나 불교의 종주국인 네팔 등지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의 탄일로 기념하여 왔다.
한편 1956년 11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에서 양력 5월 15일을 석가탄신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음력 4월 8일을 석가탄신일로 보고 기념한다.
UN에서는 1998년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대회의 안건이 받아들여져, 양력 5월 중 보름달이 뜬 날을 부처님 오신 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이 주요 축제 중 하나다.
사람들은 종교의식에 참여하고 촛불과 특제 연등으로 집과 거리를 장식한다.
일부 점포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기도 한다.
특정한 장소에서는 전구로 장식되어 있는 건물을 볼 수 있는데, 멀리서 보면 부처님의 일생이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하는 법요식이 오전 10시에 서울의 조계사를 비롯해 전국 사찰에서 일제히 봉행된다.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불교종단의 전국 사찰들도 개별적으로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을 가진다.
■ 관곡지(官谷池)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연못이다. 1986년 3월 3일 시흥시의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되었다.
관곡지의 규모는 가로 23m, 세로 18.5m이다.
이 연못은 조선 전기의 농학자인 강희맹이 세조 9년 명나라에 다녀와 중국 남경에 있는 전당지에서 연꽃 씨를 채취해, 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관곡에 있는 연못에 씨를 심어 재배하여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안산군의 별호를 1466년 세조 12년부터 ‘연성(蓮城)’으로 부르게 되었다.
관곡지는 강희맹의 사위인 권만형의 집 가에 있어 대대로 권만형의 후손 소유가 되어 관리 되어오고 있으며, 현재 시흥관내의 연성초등학교, 연성중학교 등 교명과 연성동의 동명 및 시흥시의 문화제 명칭인 《연성문화제》라는 이름은 이 못에서 유례되었다.
관곡지의 연꽃은 다른 연꽃과는 달리 꽃은 색은 희고, 꽃잎은 뾰족한 담홍색을 지니고 있는게 특징이다.
※ 출처 : 위키백과
■ 佛紀2566(2022)年 부처님오신날 (釋迦誕辰日) 석가탄신일
■ 2009년 5월 5일(화) 13:45 정악당 태응 대종사(오른쪽에서 첫번째/佛紀2562(2018)年 5月 12日(陰 3月 27日) 00時 20分 法臘 62年, 歲壽 78歲로 靈鷲叢林 通度寺 觀音庵에서 圓寂)가 스승 활산당 성수 대종사(왼쪽에서 두번째)를 모시고 문하 수연스님(왼쪽에서 첫번째/부산 성도암 주지)과 함께 通度寺 浮屠院(경남 유형 문화재 제585호)에 모셔놓은 큰스승 성암당을 찾아 참배했다
[부처님오신날 특집다큐멘터리] 자비미소의 원력보살 태응대종사 - YouTube
■ 2012년 4월 19일 오전 10시 조계종 원로의원 활산당 성수 대종사의 영결식이 엄수되었다
‘초발심자경문’ 10만독을 49일 만에 성취한 발심수행의 근간, 봉암사 결사에 참여하고 선지식이 있는 곳이라면 천리길을 마다않던 수좌, 한국불교 위기의 순간에 총무원장과 전계대사를 지내며 종단 화합을 이끌었고, 일평생 납자들과 불자들을 제접하며 “내면의 보석을 찾으라”고 당부해 온 성수 대종사는 “다른 것 다 버리고 보물을 찾아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대자유인의 길에 들어섰다.
■ 佛紀2566(2022)年 부처님오신날 (석가탄신일) 釋迦誕辰日
■ 석가 탄신일(釋迦誕辰日)
석가 탄신일은 석가모니 부처가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음력 4월 8일로 사월 초파일 · 부처님 오신날 · 불탄절이라고도 한다.
이 날에는 탄생불의 상을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하고 제등 행렬을 하는 등의 행사로 석가모니의 탄신을 축하한다.
석가모니는 기원전 560년경에 북인도의 가비라 왕국의 정반왕과 마야 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29세가 되던 해에 출가하였다.
그 뒤 6년 동안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명상에 잠기어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고 부처가 되었다.
석가모니는 45년 동안에 걸쳐 설법과 교화를 통하여 세상의 중생을 구하려 모든 노력을 다 하였다.
석가가 태어난 날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음력 4월 8일을 석가 탄신일로 기념하고 있다.
석가 탄신일에는 관욕이라 해서 아기 부처님 상에 물을 붓는 의식을 행하고, 갖가지 연등을 달아 부처의 탄생을 축하하는 관습이 있다.
그리고 이 날 절에서는 성불도 놀이 · 탑돌이 등을 한다.
☛ 출처 : 학습그림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4XXXXX44346
■ 사월초파일(四月初八日) 석가탄신일 부처님오신날
☯ 음력 4월 8일에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행사.
성격 : 불교행사
유형 : 의식행사
행사시기 : 음력 4월 8일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음력 4월 8일에 불교의 개조(開祖)인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불교행사.
☞ 내용
음력 4월 8일이며, 불교의 연중행사 가운데 가장 큰 명절이다.
2018년에 공식명칭을 '부처님오신날'로 변경 제정하였다.
그러나 이 날은 불교인이든 아니든 오래 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명절로 전승되어 왔다. 대체로 이 날은 연등행사(燃燈行事)와 관등(觀燈)놀이를 중심으로 한 갖가지 민속행사가 행해진다.
연등행사의 경우, 연등을 하는 등을 만들 때에도 민속적인 취향에 따라 수박등·거북등·오리등·일월등·학등·배등·연화등·잉어등·항아리등·누각등·가마등·마늘등·화분등·방울등·만세등·태평등·병등·수복등 등을 만들어 연등에 곁들인 민속신앙의 의미를 더한층 가미시키고 있다.
등을 다는 데에도 등대(燈臺)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하고 휘황찬란한 연등을 하며,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 일색으로 변화시킨다.
이와 같은 축제 분위기의 연등행사는 자연 많은 사람의 구경거리가 되었는데, 이를 관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연등과 관등이 있는 곳에는 각종 민속놀이도 성행하게 된다.
우선 형형색색의 등과 그 불빛과 그림자를 이용한 등놀이가 있다. 이를 영등(影燈)놀이라고 하는데, 이 때의 영등 안에는 갈이틀을 만들어 놓고 종이에 개와 매를 데리고 말을 탄 사람이 호랑이·이리·사슴·노루 등을 사냥하는 모습을 그려서 그 갈이틀에 붙이게 된다.
등이 바람에 흔들려 빙빙 돌게 되면 여러 가지 그림자가 비쳐 나온다. 그리고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 많이 달 때에는 10여 개의 등을, 적게 달 때에는 3개 정도의 등을 달았다.
이와 같은 등대를 고려시대에는 사찰뿐만 아니라 관청이나 시장, 일반 민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달게 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제한된 듯하고, 오늘날에는 일가일등운동(一家一燈運動)을 전개하고 있으나, 대개 사찰에서만 연등하고 있다.
그리고 등을 다는 숫자도 과거에는 식구 수만큼 달았으나, 오늘날에는 한 등에 모든 식구의 이름을 써 붙이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초파일행사의 경우 고려시대에는 관민(官民) 남녀노소가 모두 참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민가에서 남녀노소 모두 참여하는 민속행사로 치러졌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불교 관계인들만의 행사로 제한되고 있다.
재래의 사월초파일이 비단 불교적 의미만이 아닌 민속행사였다는 것은 그 날이면 즐기는 여러 가지 민속놀이에서 충분히 짐작되는 것이다.
이 날이면 온 장안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서 등을 달아 놓은 광경을 구경하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이면 관등의 즐거움과 더불어 각종 풍악을 울렸으며, 장안에는 사람의 바다를 이루고 불의 성을 만든다.
한편, 이 날이면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콩, 미나리나물을 벌려 놓는데, 이는 석가탄신일에 간소한 음식물로 손님을 맞이했다가 즐기는 뜻의 놀이라고 한다.
그리고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다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 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는데, 이 놀이를 수부(물장구)라고 한다.
이와 같은 민가의 놀이와 함께 사찰에서는 사월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신도들은 성불도(成佛圖)놀이와 탑돌이 등 불교적인 놀이를 행하였다. 특히, 어린이날이 따로 없었던 때에는 이 날이 어린이날 구실을 하였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성대한 장이 섰는데, 대부분이 어린이용품이었다.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절에 가서 예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진기한 장난감을 얻어 들고 오는 즐거운 날이었다.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제등행렬은 이전의 관등놀이가 일제 암흑기에 없어진 것을 광복 후에 새롭게 시작한 행사이다.
사월초파일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와서 중생들에게 광명을 준 날이라는 뜻에서 일차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와 같은 의미가 민중의 구체적인 관심사와 결합하여 민중의 축제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파일에 행하는 연등행사에 대한 불교적 의미는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XXE0025857
■ International Buddhist Society(觀音寺)
9160 Steveston Hwy, Richmond, BC V7A 1M5
1-604-274-2822
The International Buddhist Temple (also 觀音寺 in Chinese; Guān Yīn Sì in pinyin; Guan Yin Temple) is located in Richmond, British Columbia, Canada. It is a Chinese Buddhist temple run by the International Buddhist Society.
While the Society officially practices Mahayana Buddhism, the temple is open to Theravada Buddhist affiliates and visitors, as well as visitors of all religious and unique cultural backgrounds.
In 1979, two Buddhists from Hong Kong donated land and funds to the cause of building an authentic Chinese Buddhist temple in North America. The International Buddhist Society was established in 1981 for this cause by the Venerable Guan Cheng and five other individuals. The International Buddhist Temple officially opened to the public after two years, when its Main Hall was completed.
Thousands of people, including Richmond's mayor and Member of Parliament, attended the inauguration ceremony in 1986.
■ 佛紀2566(2022)年 부처님오신날 (釋迦誕辰日) 석가탄신일
■ 佛紀2566(2022)年 부처님오신날 (석가탄신일) 釋迦誕辰日
■ 통도사(通度寺)
시대 : 고대/삼국
문화재 지정 : 양산시 기념물 제289호
건립시기 : 646년(선덕여왕 15)
성격 :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경상남도 양산시 통도사로 108,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영축산(靈鷲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
우리나라 삼보사찰[三寶寺刹: 佛寶·法寶·僧寶로 일컬이지는 세 사찰] 가운데 하나인 불보(佛寶) 사찰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2018년 1월에 양산시 기념물 제289호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 내용
646년(선덕여왕 15)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였다.
산 이름을 영축산이라 한 것은 산의 모양이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나, 그 옛 이름은 축서산(鷲棲山)이다.
절 이름을 통도사라 한 까닭은 ① 전국의 승려는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에서 득도(得度)한다는 뜻, ② 만법을 통달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 ③ 산의 형세가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뜻 등이 있다.
창건주 자장율사가 643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지고 온 불사리와 가사(袈裟), 그리고 대장경 400여 함(函)을 봉안하고 창건함으로써 초창 당시부터 매우 중요한 사찰로 부각되었다. 특히 불사리와 가사뿐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대장경을 봉안한 사찰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 기록은 통도사의 사격(寺格)을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매우 중요한 기록임에 틀림 없다.
그리고 이 절을 창건한 자장율사는 계단(戒壇)을 쌓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들을 맞아 득도시켰다. 이에 통도사는 신라 불교의 계율 근본도량(根本道場)이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대찰이 아니고 후에 금강계단이라고 불려진 계단을 중심으로 몇몇 법당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 뒤 고려 초에는 사세가 더욱 확장되어 절을 중심으로 사지석표(四至石標), 즉 국장생석표(國長生石標)를 둘 만큼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특히 현존하는 중요 석조물이 고려 초기 선종대에 조성되었으므로, 가람의 정비는 이때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 당시의 중요한 석조 조형으로는 금강계단 상부의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를 비롯하여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 배례석(拜禮石), 봉발탑(奉鉢塔), 그리고 국장생석표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에 속하는 유물이고 그 밖에 현존하는 목조건물들은 모두 임진왜란 이후에 건립되었다.
물론 조형상으로 가장 앞서는 석조물로는 영산전(靈山殿)에서 마주 보이는 남산 위의 폐탑재를 들 수 있으나, 이는 이미 파괴된 채 기단부의 사리공(舍利孔)만이 주목되고 있다.
이 석탑이 어떻게 하여 파괴되었는지 또는 최초에 건립된 사원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 가람배치
통도사의 가람배치는 신라 이래의 전통 법식에서 벗어나 냇물을 따라 동서로 길게 향하였는데. 서쪽에서부터 가람의 중심이 되는 상로전(上爐殿)과 중로전(中爐殿)·하로전(下爐殿)으로 이어진다.
또, 그 서쪽 끝에 보광선원(普光禪院)이 자리잡고 있다.
본래 이 절터에는 큰 못이 있었고 이 못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으나 창건주 자장율사가 이들을 제도하고, 한 마리 용을 이곳에 남겨 사찰을 수호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도 금강계단 옆에는 구룡신지(九龍神池)의 자그마한 상징적 못이 있다.
먼저 동쪽에서부터 일주문(一柱門)·천왕문(天王門)·불이문(不二門)의 세 문을 통과하면 금강계단에 이르게 된다.
금강계단 앞의 목조건물인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45년(인조 23) 우운(友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상부의 기본 형태는 丁자형의 특이한 구조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 정면격인 남쪽에는 금강계단,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의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그러므로 이 건물을 대웅전이라고 하지만 남쪽 정면의 금강계단이 그 정전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건물의 바로 뒤쪽에는 통도사의 중심이 되는 금강계단 불사리탑(佛舍利塔)이 있다.
이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불사리를 세 곳에 나누어 황룡사탑·태화사탑, 그리고 통도사 계단에 봉안하였다고 하는 바로 불사리 계단이다. 통도사의 특징은 이 불사리 계단에 있으며 또 이로 인하여 불보사찰의 칭호를 얻게 된 것이다.
부처의 신골(身骨)인 사리를 봉안하였으므로 대웅전 내부에는 불상을 봉안하지 않았으며, 내부에는 불상 대신 거대하고 화려한 불단(佛壇)이 조각되어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 의미는 계단에 부처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다는 신앙 때문이다. 그리고 금강계단 목조건물의 천장에 새겨진 국화와 모란꽃의 문양 또는 불단에 새겨진 조각은 주목되는 작품이다.
(1) 상로전
상로전의 법당은 금강계단과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應眞殿)·명부전(冥府殿)·삼성각(三聖閣)·산신각·일로향각(一爐香閣)이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로 지정된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건물로서 창건한 시기는 1677년(숙종 3)이며, 내부에는 석가삼존과 그 주위에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봉안하였다. 후벽의 탱화를 위시하여 내외 벽화는 주목되는 불화들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로 지정된 명부전은 1369년(공민왕 18)에 창건되었고, 1760년(영조 36) 춘파(春波)가 고쳐 지은 건물로서, 내부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상(十王像)·탱화를 봉안하였다.
삼성각은 고려 말의 삼화상(三和尙)인 지공(指空)·나옹(懶翁)·무학(無學)의 영정을 봉안한 건물로서, 1870년(고종 7) 영인(靈印)에 의하여 창건되었고, 현존 건물은 1935년 경봉(鏡峰)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건물의 내부 측면에는 산신탱(山神幀)·칠성탱(七星幀)을 봉안하고 있으며, 산신각은 1761년에 초창된 이래 철종대에 중수를 거친 사방 1칸의 건물이다.
(2) 중로전
중로전의 건물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로 지정된 관음전(觀音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된 용화전(龍華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4호로 지정된 세존비각(世尊碑閣), 장경각(藏經閣), 해장보각(海藏寶閣), 황화각(皇華閣), 감로당(甘露堂), 원통방(圓通房), 화엄전(華嚴殿), 전향각(篆香閣) 등을 들 수 있다.
관음전의 창건은 1725년 용암(龍岩)에 의하여 이룩되었으며, 내부에는 독존상으로 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용화전은 1369년에 창건되었으나 창건주는 미상이며, 1725년 청성(淸性)이 중건하였다.
내부에는 역시 약 2m에 달하는 미륵좌상을 봉안하였다. 대광명전(大光明殿)은 중로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로서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내부에는 비로자나불상을 봉안하고 있다. 보물 제1827호로 지정되었다.
세존비각은 1706년에 건립된 사바교주 석가여래 영골부도비의 비각으로서 불사리 계단에 대한 내력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은 채팽윤(蔡彭胤)이 지었으며 중국에서 자장율사가 가져온 불사리·가사 등에 관한 내용과 임진왜란 당시 사리 수호에 따르는 수난의 사실들을 기재하였다.
비신의 높이는 약 2.5m, 너비는 약 1m이다.
장경각에 있는 목조 경판은 『능엄경(楞嚴經)』·『기신론(起信論)』·『금강경』·『법수(法數)』·『사집(四集)』·『부모은중경』 등 15종이 있다.
개산조당(開山祖堂) 바로 뒤에 있는 해장보각은 창건주 자장율사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고, 주위에는 고려대장경 완질이 봉안되어 있다. 요사(寮舍)의 중심이 되는 감로당은 창건이 1340년(충혜왕 복위 1)이나 현존 건물은 1887년(고종 24) 덕명(德溟)이 중건한 것이다. 口자형 건물로서 약 86칸의 대소 방사로 이루어져 있다.
감로당과 가까운 원통방은 1341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현존 건물은 감로당과 함께 탄해(坦亥)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화엄전은 창건이 1368년이며, 1762년에 중건하였고, 1882년 불타서 없어진 것을 1887년 구련(九蓮)이 중건하였고, 1970년 재건하였다.
(3) 하로전
하로전의 중요 건물들은 영산전·극락전·약사전(藥師殿)·만세루(萬歲樓)·영각(影閣)·범종각 등이 있다.
이들 건물배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배치 양식을 따른 것으로, 북쪽의 중심 건물과 그 좌우, 그리고 남쪽 전면에 누각을 두었다. 이러한 배치 방식은 하로전 일대의 건물군이 가장 짜임새 있게 배치되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동시에 이곳 일대의 법당들의 중요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 중심 건물은 영산전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3호로 지정된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내외 벽의 벽화가 주목되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모니 불상과 팔상탱화(八相幀畵)를 봉안하였다. 팔상탱화는 1775년에 그린 것이며, 본존 후불탱은 1734년의 작으로 알려져 있다. 건물양식이나 구조로 볼 때 대웅전 건물과 함께 가장 주목받는 건물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된 극락전은 1369년 성곡(星谷)이 창건한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하여 추녀의 네 귀는 활주로 받치고 있는 아담한 법당으로, 내부에는 아미타삼존을 봉안하였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된 약사전 또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로 지정된 극락전과 동시에 창건한 아담한 맞배건물이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된 만세루는 창건이 미상이나 1644년 영숙(靈淑)이 중건하였다.
역대 조사(祖師) 및 통도사 고승들의 진영을 봉안한 영각은 1705년 처학(處學)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범종각은 2층 누각 건물로서 정면 상하 3칸, 측면 2칸의 팔작건물이다.
건물의 상하에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대종(大鐘) 등 사물(四物)을 안치하였다.
이들은 모두 조석 예불시에 사용하는 의식용구이다. 그리고 1757년에 건립한 응향각(凝香閣), 도서실인 명월료(明月寮)와 금당(金堂)을 위시하여 종무소 건물들이 즐비하다.
또, 절의 세 문 가운데 일주문은 1305년(충렬왕 31)에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현판은 대원군의 필적이며, 기둥 좌우의 ‘불지종가 국지대찰(佛之宗家 國之大刹)’은 김규진(金圭鎭)의 글씨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0호로 지정된 통도사 천왕문은 사천왕을 봉안한 문이다. 사찰수호 기능을 담당하는 곳으로 목조 사천왕이 각기 특징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로 지정된 통도사 불이문은 1305년에 창건되었으며, 편액 ‘불이문(不二門)’은 송나라 미불(米芾)의 필적이다. 건물은 매우 단조로우며, 중앙에는 대들보 대신 코끼리와 호랑이가 서로 머리를 받쳐 지붕의 무게를 유지하는 건물이다.
사찰 경내의 현존하는 석조물로는 역시 금강계단이 가장 중요하며, 대웅전과 함께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통도사 창건의 이유가 바로 이 계단에 있기 때문이다.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불사리 계단이 축조된 이래 특히 고려시대에 와서는 이 계단에 얽힌 수많은 기록이 전해 오고 있다.
호기심 많은 사람들이 계단의 석종을 들어 보려는 일이 잦았으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석함 속에는 긴 구렁이 또는 큰 두꺼비가 있었다는 기록 등이 남아 있다.
그러나 1235년(고종 22) 상장군(上將軍) 김이생(金利生)과 시랑(侍郎) 유석(庾碩)에 의하여 계단의 석종이 들려졌다.
“큰 일에 상장군 김공 이생과 유시랑 석이 고종의 명을 받아 강동(江東)을 지휘할 때 부절(符節: 왕이 하사한 旗)을 가지고 절에 와서 돌뚜껑을 들어 예하고자 하니, 승이 그 전의 일을 들면서 어렵다고 하였다.
김이생과 유석이 군사를 시켜 굳이 돌뚜껑을 들게 하였다……. 서로 돌려보며 예경하였는데 통이 조금 상해서 금간 곳이 있었다.
이에 유공이 수정함(水晶函) 하나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마침 기부하여 함께 간수해 두게 하고 그 사실을 기록하였으니 그때는 강화로 서울을 옮긴 지 4년째인 을미년(1235)이었다(三國遺事 卷3 前後所將舍利條).”
이와 같은 기록이 문헌상으로는 계단에 손을 댄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다가 1379년(우왕 5) 고려 말에 국세가 약해진 틈을 타서 빈번히 왜구들이 침입하여 이 계단은 일대 수난을 겪는다.
즉, 이색의 「양주통도사석가여래사리기(梁州通度寺釋迦如來舍利記)」에 따르면, 통도사의 주지 월송(月松)이 왜구들의 침입을 피하여 1379년 8월 24일 석가여래의 사리·가사 등을 가지고 서울의 평리(評理) 이득분(李得分)을 만난 일이 있었다.
임진왜란의 발발과 함께 영남지방이 왜구의 수중에 들자 의승장 유정(惟政)은 통도사의 사리를 대소 2함에 나누어 금강산에 있던 휴정(休靜)에게 보냈다.
이에 휴정은 “영남이 침해를 당하고 있으니 이곳 역시 안전한 장소는 못된다.
영축산은 뛰어난 장소이고 문수보살이 명한 곳이다.
계(戒)를 지키지 않는 자라면 그에게는 오직 금과 보배만이 관심의 대상일 것이고 신보(信寶)가 목적이 아닐 것이니, 옛날 계단을 수리하여 안치하라.”고 하였다.
이에 1함은 돌려 보내고 나머지 1함은 태백산 갈반지(葛盤地)에 안치하였다.
그 뒤 1603년(선조 36) 계단을 다시 복구하였으며, 1652년(효종 3) 정인(淨人)이, 1705년에는 성능(性能)이 중수하였으며, 그 뒤에도 영조·순조·헌종·고종 대에 이르는 여러 차례의 중수와 1919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계단의 크기는 초층 너비 약 990㎝, 총높이 약 300㎝이며, 형태는 2중의 넓은 방단(方壇) 위에 석종(石鐘)의 부도를 안치한 지극히 간단한 구조이다.
석단 네 귀퉁이에는 사천왕입상을 배치하였고, 기단 상하면 돌에는 비천상과 불보살상을 배치하였다. 석단 외곽에는 석조 난간을 돌렸고, 계단 정면에는 석문을 두었으나 모두 후기의 작이다. 계단의 초층 면석에는 총 32구의 불보살상을 나타냈으나 모두 도상적 경직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상층 기단 면석의 불보살 및 비천상의 양식은 유연한 수법이 하층보다는 월등하다.
계단의 상층 중심부에 위치한 석종부도는 복련과 앙련의 상하 연화대 위에 위치하며, 그 조각수법이 다른 조각과는 달리 매우 우수하다. 동서 좌우에는 유연한 비천상을 부조로 나타냈고 정면인 남쪽에는 구름 속에 보합(寶盒)의 향로를 조각하였다.
2. 석조물
대체로 통도사의 석조물은 고려 선종대를 전후하여 집중적으로 조성되었다. 그 대표적 조형으로는 극락전 앞의 배례석·삼층석탑, 그리고 사지경계(四至境界)인 국장생석표 등이다.
(1) 배례석
배례석이란 국왕배례지석(國王拜禮之石)이라는 상징적 조형물로서 신라 사찰에서도 자주 볼 수 있으나 이곳 배례석은 1085년(선종 2)에 조성되었다.
길이 175㎝, 너비 87㎝의 판석으로 3절되었으며, 상면에는 아름다운 연화문과 운문으로 조각되었다.
현재의 명문은 ‘太康王一年乙丑二月日造’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太康十一年乙丑二月日造’의 위각이고 또 중간의 판석(길이 35㎝, 너비 87㎝)도 후에 보충된 것임이 최근 판명되었다.
(2) 삼층석탑
배례석 바로 옆에 있는 보물 제1471호 삼층석탑 역시 신라 말기의 양식이나 이 시대 선종대에 조성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2중기단 위에 3층의 석탑으로서 전체 수법은 간략하게 조성되었으나 기단에 나타난 안상(眼象) 등 장식된 수법은 고려의 석탑으로 볼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3) 국장생석표
통도사에서 약 2㎞ 거리의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의 보물 제74호로 지정된 국장생석표 역시 고려 선종대의 사찰 경계로 알려져 있다.
이와 동일한 명문을 지닌 장생석표가 울산광역시 울주구 삼남면 상천리에서 근래 발견되었으나 상부가 단절되었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 의하면, 이와 같은 표지는 절을 중심으로 사방에 12장생을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형태는 목방(木榜)·석비(石碑)·석적장생(石磧長生) 등으로 분류된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석비장생뿐이며, 이들은 고려시대 이두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는 금석문이다.
3. 기타 중요 유물
그 밖에 이 절에 현존하는 중요 유물로는 보물 제334호인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 보물 제471호인 양산 통도사 봉발탑을 비롯하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인 통도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6호인 자장율사 진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7호인 통도사 삼화상 진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8호인 통도사 팔금강도, 보물 제1041호인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보물 제1353호 통도사 영산회상탱, 보물 제1042호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 보물 제1350호 통도사석가여래괘불탱, 보물 제1351호 통도사괘불탱, 보물 제1352호 통도사화엄탱, 보물 제1354호 통도사 청동 은입사 향완, 보물 제1471호 양산 통도사 삼층석탑, 보물 제1472호 통도사 아미타여래설법도, 보물 제1711호 양산 통도사 영산전 벽화, 보물 제1735호 양산 통도사 청동은입사향완, 보물 제1747호 양산 통도사 은제도금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1826호 양산 통도사 영산전, 보물 제1827호 양산 통도사 대광명전 등이 있다.
그리고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9호인 대광명전 신중탱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1호인 오계수호 신장도, 보물 제757호인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46, 보물 제738호인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文殊師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 보물 제1194호와 보물 제1196호인 『묘법연화경』권2, 보물 제1195호인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권9~10,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1호인 청동은입사향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2호인 청동은입사정병(靑銅銀入絲淨甁)이 있다.
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4호인 청동여래좌상·청동사리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5호인 인적(印籍) 및 동인(銅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06호인 청동여래입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29호인 양산 통도사 동종 및 종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0호인 청동시루(철부포함), 보물 제1373호 양산 통도사 금동천문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7호인 『금니법화경(金泥法華經)』,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9호인 『금니금강경』 등이 있다.
그 밖에 전석가여래가사(傳釋迦如來袈裟)·전자장율사가사(傳慈藏律師袈裟)·고려은입사동제향로(高麗銀入絲銅製香爐)·청개와(靑蓋瓦)·감로병(甘露甁)·육환철장(六環鐵杖)·동자상(童子像)·동탑(銅塔)·화엄만다라(華嚴曼陀羅)·육각요령(六角搖鈴)·금자병풍(金字屛風)·구룡병풍(九龍屛風)·삼장서행노정기(三藏西行路程記) 등이 있다.
산내 암자로는 극락암·비로암·자장암·백운암·축서암·취운암·수도암·사명암·옥련암·보타암·백련암·안양암·서운암 등이 있다.
☛ 참고문헌
・ 『삼국유사(三國遺事)』
・ 『통도사지(通度寺誌)』
・ 『한국사찰전서』(권상로 편, 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
・ 『한국의 사찰』4 통도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覽)』(朝鮮總督府, 1919)
☛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益山 古都里 石造如來立像)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6호 익산고도리석불입상(益山古都里石佛立像)으로 지정되었다가, 2010년 8월 25일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개요
약 200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 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상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冠) 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정이다.
목은 무척 짧게 표현되어서 어깨와 얼굴이 거의 붙어 있는 셈이다.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도포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없이 몇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와 불상을 같은 돌에 새겼는데, 앞면을 약간 깍아 대좌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다리꼴의 돌기둥 같은 신체나 비사실적인 조각수법이 마치 분묘(墳墓)의 석인상(石人像)과 비슷하다.
고려시대에 이르면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불상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로 보인다.
☛ 현지 안내문
한글 설명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은 돌로 만든 불상으로 두 개의 불상이 약 200m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서 있다.
두 불상이 평소에는 떨어져 지내다가 매년 음력 12월이 되면 만나서 회포를 풀고 새벽에 닭 우는 소리가 들리면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 두 개의 불상은 머리부터 받침돌까지 돌기둥 한 개를 사용하여 만들었는데, 머리 위에 높고 네모난 갓 모양의 관을 쓰고 있다.
고려 시대에 돌로 만든 불상은 신체를 단순하게 표현하고 큰 돌을 사용하였는데,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역시 그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 영문 설명
Stone Standing Buddhas in Godo-ri, Iksan
Treasure No. 46
These two stone standing buddhas face one another about 200 m apart. Each statue, including its pedestal, was carved from a single piece of stone.
The huge size of the buddhas and their roughly expressed bodies are typical characteristics of stone Buddhist statues made during the Goryeo period (918-1392).
According to a local legend, these two stone buddhas meet at midnight once a year in the twelfth lunar month. They spend the night catching up with one another until a rooster crows at dawn, when they separate and return to their usual spots.
※ 출처 : 위키백과
■ 대한불교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救仁寺)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소백산록에 있다.
이 지역은 소백산 구봉팔문 중 제4봉인 수리봉 밑 해발 600여m의 고지에 위치해 있는데, 풍수사상으로 제7 금계포란형이라고 한다.
1966년에 창건되었으나 천태종의 개조인 상월조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46년이었다.
그가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자리에 현재의 웅장한 사찰을 축조한 것이다.
경내에는 초암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900평의 대법당, 135평의 목조강당인 광명당, 사천왕문과 국내 최대의 청동사천왕상 등이 있다.
지금은 50여 동의 건물이 세워져 있는데, 일시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5만 6,000명이며, 총공사비 122억 원이 소요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찰이다.
수리봉 정상에는 주요한 참배 대상이 되는 상월선사의 묘가 있는데, 이는 화장을 기본으로 하는 일반 불교에서는 볼 수 없는 일이다.
상월선사는 생전에 화장을 원치 않는다며 미리 이 묘자리를 잡아놓았다고 한다.
이 절은 특히 치병에 영험이 있다고 하여 매일같이 수백 명의 신도들이 찾아와 관음기도를 드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 출처 : 다음백과
■ 佛紀2566(2022)年 부처님오신날 (釋迦誕辰日)
■ 염불암(念佛庵) 서대사(西臺寺), 수정암(水精庵)
시대 : 고대/삼국
건립시기 : 신라시대
성격 : 암자, 월정사
유형 : 유적
소재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분야 :종교·철학/불교
요약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五臺山)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왕자 효명과 보천이 창건한 암자. 월정사.
서대사(西臺寺) 또는 수정암(水精庵)이라고도 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산내 암자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주처(住處)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신라시대에 왕자 효명(孝明)과 보천(寶川)이 창건하였고, 그 뒤 이곳에 미타방(彌陀房)를 두어 백색의 원상무량수불(圓像無量壽佛)을 중심에 두고 1만의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그려 봉안하였으며, 낮에는 『법화경』을 염하게 하고, 밤에는 미타예참(彌陀禮懺)을 염하게 하였다.
1392년(태조 1) 가을에 원인을 모르는 화재로 인하여 전소되자 조계종의 시승(詩僧)인 나암 유공(懶庵游公)과 목암 영공(牧庵永公) 등이 시주를 받아서 1393년 봄에 한강의 시원지라고 하는 우통수(于筒水) 옆에 절터를 잡아 중건에 착수하였다.
공사가 시작된 며칠 뒤 그 자리의 흙을 파자 창건 당시의 주춧돌이 발견되어 사람들은 서로 경하하면서 “하늘이 화재를 내어 옛터를 계시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 해 가을 법당과 욕실을 낙성하고 미타팔대보살(彌陀八大菩薩)을 그려 법당에 봉안하였다. 이곳에는 옛 전통대로 아미타불상을 안치하였으나 번창하였던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근대에 들어서 수정암이라 하였다가 1990년대 초에 염불암이라 하였다.
☛ 참고문헌
・ 『동문선(東文選)』
・ 『전통사찰총서』1(사찰문화연구원, 1992)
・ 『한국의 사찰』13 월정사(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7)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生活사진
생활寫眞은 일상의 사소한 발견입니다.
삼라만상(森羅萬象)은 곧 사진의 훌륭한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 전화기나 손 안에 쏙 들어가는 똑따기 사진기만으로도 누구나 크게 공감하고 많이 동감하는 이야기를 만들 수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더 없는 사랑과 꾸밈없는 정성으로 인시공(人時空)을 담아내어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토록 간직하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자 역사의 기록이다’
생활寫眞에 대하여 이렇게 거창한 말까지 앞세울 필요는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
진실과 진심으로 있는 대로 보고 진정과 최선을 다하여 보이는 대로 담아내면 그것이 곧 예술이자 역사가 될 것입니다.
보다 많은 사진 인구의 저변 확대를 기대합니다.
가족의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祝願(축원)합니다.
오로지 건강하세요.
늘 고맙습니다.
20121212(陰1029) WED
화정 합장
■ 청계산 청계사(淸溪寺)
시대 : 고대/남북국
문화재 : 지정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호
건립시기 : 신라시대
성격 : 사찰
유형 : 유적
소재지 : 경기도 의왕시 청계동 산11
분야 : 종교·철학/불교
요약 : 경기도 의왕시 청계산 남쪽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된 사찰. 문화재자료.
대한불교조계종 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의 말사이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으며, 대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1284년(충렬왕 10) 시중 조인규(趙仁規)가 막대한 사재를 투입하여 중창하고 그의 원찰로 삼은 뒤부터이다.
그때부터 이 절에는 100명이 넘는 수도승이 상주하였다.
자손들이 여기에 그의 사당을 짓고, 전장과 노비를 두어 대대로 제사를 지냈다.
1407년(태종 7) 조정에서는 이 절을 자복사(資福寺)로 지정하고 천태종에 소속시켰으며, 1431년(세종 13) 조인규 영당을 중건하였고, 연산군이 도성 내의 사찰에 대한 폐쇄령을 내렸을 때 이 절은 봉은사(奉恩寺)를 대신하여 선종본찰(禪宗本刹)의 기능을 행하는 정법호지도량(正法護持道場)이 되었다.
광해군 때는 이 절의 소속 전장과 노비를 모두 관에 소속시켰고, 1689년(숙종 15) 3월 화재로 모든 건물이 불탔을 때 성희(性熙)가 중건하였다.
1761년(영조 37) 정조가 동궁으로 있을 때 이 절에 원당을 설치한 뒤 밤나무 3,000주를 심고 원감(園監)을 두었으며, 1798년(정조 22) 조무의(趙武毅)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1876년(고종 13) 3월 26일 실화로 수십 칸의 건물이 소실되자 4년 후인 1879년에 음곡(陰谷)이 중건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종교 탄압정책으로 겨우 명맥만을 유지하여 이어 오다가 1955년 비구니 아연(娥演)이 주지로 취임한 뒤 중창을 시작하였고, 월덕(月德)·탄성(呑星)·월탄(月誕) 등이 그 뜻을 이어 당우를 회복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산신각·종각·수각(水閣)·봉향각(奉香閣)·대방(大房)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양식으로 처마는 이중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사인비구(思印比丘)가 제작한 동종이 보물 제11-7호로 지정되었으며, 청계사 소장 목판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35호로, 신중도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절 입구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88호 청계사사적기비(淸溪寺事蹟記碑)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76호 청계사조정숙공사당기비(淸溪寺趙貞肅公祠堂記碑)가 있고, 사찰 주위의 계곡이 좋다.
☛ 참고문헌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경기도 의왕시, 『京畿道文化財資料 : 實測調査報告書 淸溪寺 極樂寶殿』(의왕시, 2012)
☛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한국학 관련 최고의 지식 창고로서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업적을 학술적으로,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한국학 지식 백과사전이다.
① 만자 ② 범어(梵語)의 만자(萬字) ③ 석가(釋迦)의 가슴에 있었다는 형상으로서, 불경 번역 때 萬 자의 뜻으로 번역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