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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월 첫째주 신년감사예배
○ 시편 67편 1-3절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주어지는 복을 구하라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애를 씁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낙담합니다. 동행이라는 말 자체가 두 사람이상이 함께 행한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동행한다는 자체가 한 마음을 가지고 같은 방향으로 행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동행을 위해서는 같은 방향으로 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서로 맞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하면 우선 하나님과 여러분의 마음과 뜻이 같아야 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품고 동행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생각과 여러분들의 생각이 서로 다르다면 동행은 포기해야 합니다. 아니면 한 사람이 양보해야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과 동행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포기하시고 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도 마굿간에서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백번 양보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고 사람들과 같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빌립보서 2장 6-8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런데 동행하려면 같이 살아 있어야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독특한 동행방식입니다. 낮아져야 하고, 죽어져야 동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한다고 할 때 여러분 역시 겸손해져야 하고, 죽어져야 가능합니다. 겸손해져야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 무릎을 꿇을 수 있고 그렇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나가는 여러분들을 하나님은 만나주시고 자신의 계획을 말씀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걸으셨던 길이며 사셨던 방식입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죽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이전에는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죽음 이전에 일어나는 일이 바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거스르고 살았던 자신의 죄들을 모두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용서받은 그는 그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첫 번째 회개 사건을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은 회심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회개지만 완전한 돌아섬의 첫 번째 사건이라고 해서 회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신의 약함이나 무지함, 그리고 어떤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짓는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함으로서 잘못된 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회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회개란 죄의 용서를 빈다는 뜻이지만 무엇을 위해 회개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온전하게 하기 위해 회개한다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찾아오셔서 에덴에서 끊어진 관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잇기를 원하실 때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를 회심이라고 하고, 그 이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거나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을 함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용서를 비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심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후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죽고,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 역사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하나님은 한 마음을 갖고 동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물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또한 그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중생의 씻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디도서 3장 5절을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그러니까 여러분의 구원인 거듭남은 여러분의 의로운 행위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된 중생의 씻음 다시 말해 거듭나게 하기 위한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인해 거듭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이라는 표현이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진정으로 죄를 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실행하는 침례는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고백을 교회 앞에서 선포하는 것이지 죄를 씻을 수 있거나 구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여러분들의 모든 죄를 씻기에 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입증하는 말씀이 에베소서 2장 13절과 히브리서 9장 14절에 있습니다. 먼저 에베소서 2장 13절을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멀리있던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일이 가능하게 한 일이 바로 그리스도의 피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가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는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또 하나 히브리서 9장 14절을 보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말씀하시면서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들의 죽은 행실로 더럽혀져 있던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가능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피를 하나님의 제단에 뿌리시기 위해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이 자기를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 거룩한 피가 여러분들의 모든 죄를 씻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었던 죄나 예수님을 믿고 나서 의도하지 않게 지은 모든 죄들을 예수님은 자신의 피로 깨끗이 씻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은 항상 같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로 인해 만들어진 합작품이 바로 여러분들의 구원인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은 여러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은 그런 여러분들을 자신의 거룩한 자녀로 받아들이셔서 함께 동행하시는 일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거룩하게 된 여러분들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과 함께 자신에게 나온 여러분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영접하셔서 자신의 뜻을 알리신 후에 함께 세상으로 나가서 동행하시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모세를 호렙산에서 만나셔서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자고 하심시면서 애굽으로 들ㅇ어가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행보다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동행도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 혹은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 하나님을 구하는 새벽기도나 아침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 새벽의 만남이나 하루를 시작하는 이른 아침의 만남이 여러분들의 하나님과 동행하는 하루를 결정지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났던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편 119편 148절입니다.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여러분들은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나거나 아침에 일찌감치 일어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은 이야기할 것도 없지만 사람마다 일짜감치 일어나는 이유는 서로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새벽이나 아침에 빨리 일어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일하러 나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겨울이 되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아궁이에 불을 피우셨습니다. 그러면 방바닥이 따뜻해져서 이불 속에서 나오기 싫어했습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그 불을 피우시기 위해 일찍 일어나셨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바로 쇠죽을 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지푸라기와 구정물을 섞어서 팔팔 끓인 후에 그것을 퍼다가 소의 구유에 주면 소가 그것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래서 방이 따뜻해졌던 것입니다.
그 새벽에 일찍 일어나신 이유가 바로 쇠죽을 쑤시기 위해서 였던 것이었지만 조금 후에는 그 옆에 아궁이에 가족들을 먹이실 밥을 짓기 위해 불을 또 피우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루 종일 방이 따뜻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이 소를 위해 일어나는 것이 근본적인 마음이 아니라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소를 키우셨고 그 소가 자라면 가차없이 팔아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새벽에 빨리 일어나신 이유는 소가 아니라 가족들이 마음에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유로 새벽이나 아침 일찍 일어나십니까? 그렇게 하루 하루가 바빴고 전쟁을 치뤘던 다윗도 새벽에 빨리 일어났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읇조리기 위해서였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읊조리기 위해 빨리 일어나는 분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는 하루종일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이제라도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말씀을 소리내어 읽으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하루를 하나님과 그렇게 함께 시작하기 위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소리내어 읽고 나서 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19편 14절입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묵상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로 자신에게 적용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도의 향연이 하나님의 보좌로 올라가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받으시고 다윗에게 임하셔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 앞으로 나가면 하나님은 하늘보좌에서 여러분들을 내려다보시면서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셔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십니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를 여러분들을 보면서 알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을 구하며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몇 번해보다가 안된다고 하면서 포기합니다. 하나님이 임하시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이 만나주실 때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을 구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여러분들을 만나주십니다. 그때부터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살아있는 몸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하심으로 인해 기도로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만나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소리를 듣기도 하시며 또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교제가 목적은 아닙니다. 교제를 통해 이 땅에 이루실 하나님 나라를 보이셔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 일에 참여하게 하십니다. 예수님때부터 이 일은 계속해서 이루어졌고, 지금도 역시 성령은 이 일을 계속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지금보다 더 친밀하게 알기를 원하십니까? 교회에서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구하면서 성경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의 충족을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기를 간절히 구하면서 읽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귀하게 들어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속에 들어간 사람의 삶은 항상 경건합니다. 경건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개인적인 삶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닙니다. 경건은 삶의 모든 곳에서 나타납니다. 혼자 있든지, 여러 사람과 함께 있든지 간에 그는 항상 하나님을 구하며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 사랑의 깊이에 매료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교제를 나누는 사람은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완전하게 다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은혜를 크게 받고 성령충만하며 진리를 아는 계시와 지혜를 받아도 완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만큼 자신을 보여주시고,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행하셨습니다. 그로인해 예수님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살아계신 증거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임재를 개인적인 것으로 오용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과 박해를 고스란히 다 받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통해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인간 속에 숨겨져 있는 본능입니다. 마치 사과는 토마토보다 무슨 영양가가 높다고 칭찬하다가 또 토마토는 사과보다 무슨 영양가가 훨씬 높다고 비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든 과일들이 고유의 독특한 영양가를 가지고 있듯이 사람도 나름대로의 개성과 각종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고 이 땅에 태어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경쟁시켜 고유의 재능을 승부를 위해서 사용하게 합니다. 물론 때로 승부의식은 필요할 수도 있지만 모든 일에 경쟁하는 것은 우월감과 낮은 자존감을 만들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운동을 잘 못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 외에는 머리쓰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운동도 좋아하는데 머리도 좋아서 머리를 쓰면서 운동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조차도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마다 서로 다른 것들을 허락하셔서 그들이 공생과 공존의 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긴 하지만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는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풍부와 결핍이 섞여 있고 그것은 다른 누군가와 사귐을 가지면서 사랑으로 섬기고 섬김을 받으면서 채워주고 채움을 받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시는 이유입니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기에 풍부를 누리기보다는 서로 경쟁해서 이기고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은 이긴 자를 칭찬하고 상을 줍니다. 이것이 사탄이 죄악된 세상을 이끄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진 자가 최선을 다했어도 형식적인 격려는 해도 진정으로 칭찬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이 세상은 뛰어난 자가 많고 그 뛰어난 자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나도 하나님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장점보다 갖지 못한 단점이 훨씬 많기 마련입니다. 겸손히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이 이 땅에 많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은 이 죄악 세상 가운데 은혜와 진리의 빛을 비추시면서 세상을 이끌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가지고 과시하기를 즐겨할 뿐입니다. “나눔의 미”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가진 바 넉넉한 것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어줄 때 아름다운 삶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내가 쓸 때까지 쓰다가 버리기 아까워서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받을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어주는 그런 나눔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세상을 자신이 성령을 부어주신 사람들과 교회를 통해 이루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국제 구호단체나 각 나라에서 일어나는 각종 나눔 운동의 선구자들을 조사해보시면 알겠지만 제일 먼저 그런 일을 시작하는 단체는 교회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무슨 그런 억지같은 소리를 하십니까? 불교도 나누는 운동을 하고, 천주교도 하고, 불교나 원불교도 하고, 심지어 이단들도 나눔 운동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그들이 가르치는 교리에 의해 앞장서서 그런 일들을 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행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그런 점을 비교하니까 그런 나누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국가조차도 기독교 단체가 행하는 나눔 운동을 국가 기관을 만들어서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는 나눔과 섬김 운동의 선두주자이며 그 일을 예수님이 행하셨고 사도들이 교회에서 행함으로 20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꾸준히 이루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나눔운동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사랑을 전하고 싶어서 운동을 일으킴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개인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가정과 교회와 사람들이 모이는 수많은 사회의 공동체들이 달라집니다. 또한 국가도 달라집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보다 세상의 명예를 더 추구하거나 하나님보다 돈을 더 추구하게 되면 타락하게 되고 그것은 겉잡을 수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탄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운동의 배후에서 그것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람들을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칭찬을 받던 교회나 기관이 불법을 행하고, 횡령과 위선을 행함으로 인해 세상의 지탄을 받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이 하시는 그 아름다운 일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새로운 세대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들을 다시 세우셔서 죄악된 세상을 다시 한 번 밝게 비추시고 새롭게 해나가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사람들을 찾으셔서 만나주시고 함께 일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시편 67편 1-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 곧 노래, 인도자를 따라 현악에 맞춘 것]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여러분 복중의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여러분들과 함께 있고 함께 행하시겠다고 여러분들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중의 복입니다. 그 은혜를 여러분들에게 주심으로 인해 여러분들이 복을 받고 복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천국을 누리는 것입니다. 천국의 의와 기쁨과 평강을 누리며 하늘로부터 오는 사랑을 받아 하나님의 그 사랑을 드러내는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구원받았고, 그로인해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되는 날이 옵니다. 재림 전에도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지만 재림하신 후에는 온 땅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찬송하는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써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고, 다시 재림하심으로써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며 그로 인해 구원받은 모든 민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바탕아래 우리 제석교회가 2024년도에 가질 목표가 바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항상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 종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저녁과 밤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이루신 일들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이것입니다.
여러분 올 2024년도에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하나님을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을 알기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알려달라고 구하십시오. 여러분 개인이 할 일과 우리 제석교회가 할 일들을 말씀해 달라고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임하셔서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시고 날마다 주님의 은혜와 진리로서 주의 능력과 사랑과 기쁨으로 함께 하시는 복된 날들을 사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