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612
■ 2부 장강의 영웅들 (268)
제10권 오월춘추
제 34장 시신을 매질하는 오자서 (8)
임금과 신하와 군졸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행과 약탈을 자행했으나 오자서(伍子胥)는 만류하지 않았다. 나름대로의 복수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17년을 쌓아온 원한이 풀릴 리 없었다.
오왕 합려(闔閭)를 찾아가 아뢰었다.
"초나라 종묘를 부수어버립시오."
손무(孫武)가 반대했다.
"군사는 의(義)로써 움직여야만 명분이 섭니다. 오늘 우리가 초나라를 얻은 것은 지난날 초평왕이 세자 건(建)을 내쫓고, 자부를 데리고 살고, 간신을 등용하고, 충신을 살해하고, 모든 제후에게 횡포를 부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초나라 도성을 점령했으니, 왕께서는 세자 건(建)의 아들인 공자 승(勝)을 초왕으로 삼아 초소왕 대신 종묘를 지키게 하십시오. 그러면 초나라는 진정으로 우리 오나라를 섬길 것이며, 대대로 공물을 바칠 것입니다. 초나라를 용서해주는 것이 초(楚)나라를 얻는 길입니다."
하지만 오왕 합려(闔閭)는 초나라가 다시 강성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또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오자서의 소원을 풀어주고 싶었다. 손무의 말을 듣지 않고 좌우 군사를 불러 명했다.
"초(楚)나라 종묘를 불사라버려라!"
초나라 종묘는 삽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며칠 후, 채소공(蔡昭公)과 당성공(唐成公)은 하직 인사를 올리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오왕 합려(闔閭)는 다시 장화대에다 크게 잔치를 벌이고 악공을 불러 풍악을 울리게 했다. 모든 신하들이 기뻐하는 중에 오자서만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합려(闔閭)가 이상히 여기고 물었다.
"그대는 초나라 종묘를 불태움으로써 원수를 갚지 않았소? 오늘같이 즐거운 날 경(卿)은 어찌하여 슬퍼하오?"
오자서가 대답했다.
"종묘를 불태운 것만으로 어찌 신의 원한이 풀리겠습니까? 바라건대 왕께서는 신으로 하여금 초평왕의 무덤을 파서 그 널을 열고 송장의 목을 참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야만 신의 원한이 풀리겠습니다."
"그간 경(卿)은 과인을 위해 많은 공훈을 세웠소. 내 어찌 썩은 시체 하나를 아끼어 경의 소원을 풀어주지 못하겠소?"
오왕 합려(闔閭)의 허락이 떨어지자 오자서는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술잔을 들이켰다.
다음날, 오자서(伍子胥)는 초평왕의 무덤이 동문 밖 요대호(寥臺湖)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동문 밖으로 나가보니 넓은 평원에는 겨울 잡초만 우거졌고, 호수는 아득했다. 어디에 초평왕이 묻혀 있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다.
오자서(伍子胥)는 사방으로 군사를 풀었으나 며칠이 지나도록 무덤의 흔적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오자서가 가슴을 치며 하늘을 우러러 통곡했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진정 제게 부친과 형님의 원수를 갚지 못하게 하시렵니까?"
그 호소를 듣기라도 한 듯 홀연 한 노인이 오자서 앞에 나타났다.
"장군께선 어찌하여 초평왕의 무덤을 찾으십니까?"
오자서(伍子胥)는 눈물을 그치고 대답했다.
"초평왕(楚平王)은 나의 가족을 죽인 철전지원수요. 나는 그가 살았을 때 목을 끊지 못했으니, 죽은 시체라도 목을 베어 부친과 형님의 원수를 갚으려 하오."
"그렇다면 제가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초평왕(楚平王)은 생전에 자기를 원망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죽은 후에도 자기 무덤을 파는 자가 있을까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무덤을 호수 속에 만들어달라고 유언했습니다.
장군께서 초평왕의 무덤을 찾을 생각이시거든 이 호수의 물을 퍼내십시오."
노인은 말을 마치고 요대(寥臺)로 올라가 손가락으로 호수 한쪽을 가리켜보였다.
오자서(伍子胥)는 잠수를 잘하는 군사들을 뽑아 호수 속으로 들여보냈다. 잠수부가 물 속에 들어가서 보니 과연 요대 동쪽으로 석곽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자서는 곧 군사들을 시켜 모래주머니를 그 주변에 쌓고 물을 퍼냈다.
석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자서(伍子胥)는 손수 석관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옷 몇 벌과 병장기만 가득 들어 있었을 뿐 초평왕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노인이 다시 말했다.
"이것은 가짜입니다. 진짜 관은 그 밑을 파야 나옵니다."
군사들이 다시 그 밑을 파기 시작했다. 과연 석관 하나가 나타났다. 석판을 들어올리자 계단이 나 있고, 그 계단 아래로 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오자서(伍子胥)는 뚜껑을 부수었다.
"아!"
그 안에는 초평왕의 시신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초평왕(楚平王)의 시체는 하나도 썩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관 속을 수은으로 채워 피부가 하나도 부식되지 않은 것이었다,
오자서(伍子胥)는 살아 있는 듯한 초평왕의 시체를 보자 새삼 원한이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다. 시체를 밖으로 꺼냈다. 오자서는 손에 구리로 만든 아홉 마디의 채찍을 쥐어들고 후려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3백 번을 후려쳤다.
시체의 살이 뭉개지고 뼈가 부서졌다.
"이놈, 네가 죄 없는 내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무사할 줄 알았더냐!"
오자서(伍子胥)는 다시 발로 초평왕의 배를 밟고 손으로 두 눈을 후벼팠다.
"이놈, 생전에 이 못된 눈을 가졌으니 충신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
이윽고 오자서(伍子胥)는 칼을 봅아들고 눈알이 빠진 초평왕의 목을 끊었다.
부관참시(剖棺斬屍)였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관을 부순 후 시체를 들판에 버렸다. 그 행위가 어찌나 끔찍하고 잔인했던지 군사들조차 외면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자서만은 가슴이 후련한지 가슴을 펴고 소리쳤다.
"17년 동안 별러 온 부형(父兄)의 원수를 이제야 갚았도다!"
참으로 집요한 오자서의 성격이었다. 대체로 초나라 사람들은 이런 성격이 많았다.
돌이켜보면 초평왕(楚平王)처럼 사후에까지 철저히 보복당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상대를 잘못 만났다고 하면 너무 경박한 생각일까.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겨났나보다.
- 남에게 원수를 사지 말며, 남을 원통하게 하지 말라.
원한이 극도로 사무치면 주인도 임금도 없어진다. 죽은 후에까지 보복을 당하고 만다.
오자서(伍子胥)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어찌 효도때문에 충성을 잃을 것인가.
일가(一家)의 원수가 나라에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인가.
후세의 한 시인은 오자서의 이 일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열렬하구나, 오자서여!
무궁한 세월에
오히려 눈물을 머금는구나.
오자서(伍子胥)는 초평왕의 시체에 분풀이를 하고 나서 노인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떻게 해서 초평왕이 묻힌 곳을 알았으며, 첫번째 관 밑에 진짜 관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소?"
노인이 대답했다.
"저는 다름 아니라 석공(石工)입니다. 지난날 초평왕(楚平王)은 우리 석공 50여 명에게 그 무덤을 만들게 했지요. 그러고는 비밀이 새어나갈가 두려워 무덤이 완성되자마자 모든 석공을 죽여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하늘의 도움을 받아 미리 알고 달아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습니다.
여기저기 숨어다니는 중에 장군께서 초평왕(楚平王)의 무덤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와서 가르쳐 드린 것입니다. 이로써 저는 그때 원통히 죽은 50여 명의 석공의 원혼을 풀어주었습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