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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인 바오로(6.29)
바오로(6.29)
성인명 바오로 (Paul)
축일 6월 2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67년경
같은이름 바울로,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이스라엘의 12지파 중 베냐민 지파에 속한 유다인이자 로마 시민권을 가졌던 사도 성 파울루스(Paulus, 또는 바오로)는 당대의 유명한 유다인 랍비인 성 가말리엘(Gamaliel, 8월 3일)의 문하생으로 예루살렘(Jerusalem)에서 공부하였다(사도 22,3). 그는 회심하기 전까지 사울(Saul)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천막 만드는 일을 생업으로 삼던 그는 엄격한 바리사이로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렬한 박해자였다. 그는 첫 순교자인 성 스테파노(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 현장에도 있었다(사도 7,58).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다마스쿠스(Damascus)로 가던 중 그는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하였다(34~36년 사이). 이 환시는 그의 극적인 회심과 개종을 불러일으켰을 뿐 아니라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사도 9,1-22).
그 후 그는 3년 동안 아라비아에서 지낸 후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그는 즉각 유다인들의 맹렬한 반발에 직면했고 그에 대한 위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레타(Aretas) 왕의 총독이 성 바오로를 잡으려고 성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밤을 이용해 비밀리에 성벽에 난 구멍을 통해 도시를 빠져나갔고, 39년경에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났으나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박해자였던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는 사도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받아들여졌다(사도 9,23-27). 그러나 유다인들이 계속해서 그를 없애려고 하자 고향인 타르수스(Tarsus)로 가서 몇 년을 지내다가(사도 9,29-31) 43년경 그를 찾아온 성 바르나바를 따라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교사가 되어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사도 11,25-26).
이것이 성 바오로가 이방인을 상대로 하는 본격적인 선교의 시작이었다. 45년경부터 성 바오로는 세 차례의 선교 여행을 하게 되었다. 45년부터 49년까지 그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파견을 받고 성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Cyprus), 페르게(Perge),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 in Pisidia), 리카오니아(Lycaonia) 지방의 이코니온(Iconion)과 리스트라(Lystra)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이 여행에서 이름을 바오로로 개명했다(사도 13,9). 첫 선교 여행을 마치고 49년경에 예루살렘에 온 그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와 성 야고보(Jacobus, 5월 3일) 및 다른 사도들을 설득하여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처럼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확신시키는 데 성공하였다(사도 15,1-21).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교의 보편성 확립에 이바지한 한편, 그의 이방인 선교를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하도록 하는 등 교회의 체제 면에서도 한층 더 진보된 단계를 맞이하였다.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직후 성 바오로와 성 바르나바는 제2차 선교 여행을 계획했다(49~52년). 제1차 선교 여행 중에 세운 교회 공동체를 재차 방문하고자 했는데, 성 요한 마르코(Joannes Marcus, 9월 27일)를 동반하려는 성 바르나바와 의견 차이가 생겨 서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성 바르나바는 성 요한 마르코를 데리고 키프로스로 떠났고, 성 바오로는 성 실라스(Silas, 7월 13일)와 함께 시리아와 킬리키아(Cilicia, 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의 지중해 연안 지방)의 여러 곳을 두루 다녔다(사도 15장). 성 바오로는 트로아스(Troas)에서 마케도니아에 관한 환시(사도 16,6-10)를 보고 마케도니아를 가로질러 가서 최초로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그는 필리피(Philippi), 테살로니카(Thessalonica), 베레아(Berea)에 교회를 세웠으나 아테네(Athenae)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비판하는 ‘아레오파고스’에서의 설교로 다소 효과를 내었을 뿐 신통한 열매를 맺지는 못했다(사도 16,11-17,34). 그 뒤로 그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Corinthos)로 가서 생업이 같은 유다인 성 아퀼라(Aquila)와 성녀 프리스킬라(Priscilla, 이상 7월 8일) 부부를 만나 함께 지내며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에페소(Ephesus)와 예루살렘을 거쳐 안티오키아로 돌아왔다(사도 18,1-22).
안티오키아 교회로 돌아온 사도 성 바오로는 다시 제3차 선교 여행을 계획했고(53~58년), “하느님께서 원하시면 여러분에게 다시 오겠습니다.”(사도 18,21)라고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던 에페소로 가서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에페소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던 아폴로(Apollo)라는 유다인을 만나 격려했고(사도 18,24-28), 회당과 티란노스 학원에서 토론하며 유다인과 그리스인에게 복음을 전했다. 당시 에페소에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신당이 있었고, 데메트리오스라는 은장이와 여러 장인이 그 모형을 만들어 팔며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성 바오로 때문에 생계에 방해를 받는다고 생각해 사람들을 선동해 큰 소란을 일으켰다(사도 19,1-40). 그런 소동을 겪은 후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테살로니카와 필리피를 거쳐 코린토 교회 공동체를 방문하고 다시 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갔다. 58년에 예루살렘에 돌아온 그는 성 야고보를 만나 보았고, 이레 동안의 정결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 유다인들에게 곤욕을 치르다가 출동한 로마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이때 그는 자기의 개종 과정과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경위를 설명하고 로마 시민권을 행사하기도 했다(사도 21,27-22,29). 여러 차례 심문을 받은 그는 황제에게 상소하여 60~61년 사이에 몰타(Malta) 연안을 따라 로마(Roma)까지 가서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며 비교적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사도 23-28장).
제4대 교황이 된 로마의 성 클레멘스(Clemens, 11월 23일)에 따르면 그 후에 성 바오로가 에페소, 마케도니아, 그리스 등지를 재차 방문했고(63~67년), 트로아스에서 또다시 체포되어 로마로 끌려와 사도 성 베드로와 같은 날에 처형되었다고 한다(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의 견해).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교부에 의하면 그는 네로 황제(54~68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사도 성 바오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교 저술가로 꼽힌다. 로마서(코린토에서 57~58년), 코린토 1서(에페소에서 54년), 코린토 2서(필리피에서 57년), 갈라티아서(에페소에서 54년), 콜로새서, 필리피서, 에페소서, 필레몬서(로마에서 61~63년), 테살로니카1 · 2서(코린토에서 51~52년) 및 사목 서간인 티모테오서와 티토서를 써서 보냈다. 히브리서는 아마도 다른 저자인 듯하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6월 29일에 사도 성 베드로와 사도 성 바오로의 대축일을 기념한다고 적었다. 물론 이날이 그들이 함께 순교한 날은 아니다.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는 그의 강론에서 두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교회에서 하루를 지정했는데, 비록 순교한 날은 다르나 그들은 하나이기에 같은 날 기념한다고 했다. 이날은 동방 정교회에서 두 사도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Hadrianus I, 772~795년 재위)는 6월 30일에 사도 성 바오로의 기념일을 추가해 사도 성 베드로와 서로 다른 날에 기념하도록 했다. 그래서 1969년 로마 보편 전례력 개정 전까지 6월 30일은 성 바오로를 기념하는 특별한 날이었으나 그 뒤로 두 사도를 함께 기념하도록 했고, 6월 30일은 로마 교회의 초기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로 지내게 되었다. 사도 성 바오로는 6월 29일 외에도 1월 25일을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로 지내고 있다. 그의 회심과 개종을 통해 이방인의 사도로서 모든 이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성인 베드로(6.29)
베드로(6.29)
성인명 베드로 (Peter)
축일 6월 29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사도, 순교자, 교황
활동지역
활동연도 +64/67년경
같은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에르, 피에트로, 피터
사도 성 페트루스(Petrus, 또는 베드로)는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지방 티베리아 호수(갈릴래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인 벳사이다(Bethsaida) 출신으로 요한(Joannes, 요한 1,42; 마태 16,17에는 요나의 아들로 나온다)의 아들로 시몬(Simon)이라 불리며 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공관복음에 따르면 그는 동생인 성 안드레아(Andreas, 11월 30일)와 함께 고기를 잡다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 하며 부르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섰다. 요한복음은 세례자 성 요한(Joannes Baptistae, 6월 24일)의 제자였던 성 안드레아의 인도로 그의 형인 성 시몬이 예수님께 나아갔고, 예수님으로부터 아람어로 ‘케파(Kefa)’, 즉 바위 또는 반석이란 뜻을 지닌 ‘베드로’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릴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다(1,35-42)고 했다.
그는 카나(Cana)의 혼인 잔치에서 베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기적과 카파르나움(Capharnaum)에서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에 늘 가까이서 함께했다. 예수님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Caesarea Philippi) 지방에 갔을 때 성 베드로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는 물음에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5-16)라고 고백했다. 이에 주님께서는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교회는 사도 성 베드로가 예수님께 수위권(首位權)을 받은 첫 번째 교황이 되었다고 이해하고 있다. 성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 늘 함께했다. 그는 예수님께서 체포되시자 대사제의 관저까지 몰래 따라갔다가 사람들의 질문에 그리스도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가 참회한 사실도 있다(루카 22,54-62).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에 앞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셨을 때, 성 베드로는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세 번이나 당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요한 21,15-19). 그래서 사도 성 베드로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신자들의 으뜸으로서 초대교회를 이끌며 배신자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였으며, 오순절 설교 등을 통해 많은 사람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성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해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사도 12,1-19),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다른 민족들도 복음 말씀을 듣고 은총으로 구원을 받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사도 15,7-11).
초기 전승에 따르면 그 후에 사도 성 베드로는 로마(Roma)로 가서 그곳의 초대 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54~68년 재위)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벌어진 64년경 바티칸 언덕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였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똑바로 매달릴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기에 선택한 방법이었다. 오늘날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은 그의 무덤 위에 건립되었던 성전 터 위에 세워졌다. 순교 직전에 성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려다가 아피아 가도(Via Appia)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과 마주쳤다고 한다. 성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Quo Vadis Domine?)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양 떼를 버리고 도망친 로마로 간다.”라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발현을 체험한 성 베드로는 곧바로 로마로 돌아가 용감하게 순교했다고 한다. 교회 미술에서 사도 성 베드로는 배, 열쇠, 닭 등 전통적 상징들과 함께 많이 등장한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6월 29일 목록에서 사도 성 베드로와 사도 성 바오로(Paulus)의 대축일을 기념한다고 적었다. 물론 그날이 그들이 순교한 날은 아니다.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8월 28일)는 그의 강론에서 두 사도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교회에서 하루를 지정했는데, 비록 순교한 날은 다르지만 그들은 하나이기에 같은 날 기념한다고 했다. 이날은 동방 정교회에서 두 사도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사도 성 베드로는 이날 외에도 2월 22일을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로 지내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며 그를 선택해 당신의 지상 대리자로 삼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