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깽깽이풀꽃/신준수-
개미 이사 가듯 줄지어 핀 깽깽이풀꽃 성형미인 같다 포즈와 표정들 제각각이다 강원도 어디, 남도 어디어디에서는 손을 탔다는 기사가 연일 되고 충청도 어디는 자생지가 흔적 없이 사라 졌다는 소문이 선명하다 4월은 삭아가고 풀잎은 독이 오르고 참, 지랄들이다
씨앗 떨구고 3년이 지나야 꽃이 핀다고 했다 죽 한 그릇 뚝딱 비우는 사이 피고 진다고 했다 잠시 한 눈 팔면 1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꽃 머잖아 멸종될, 바람은 돋아났다 사라지고 수십 번은 족히 물어왔을 바람의 안부, 새들은 디덤디덤 노래를 불렀다 겨우, 기어이 어여쁜
먼 곳에서 온 친구를 사정이 생겨 만나지 못했다 또 몇 년 디덤디덤 지날 것이다 지진이 나고 홍수가 나고 어쩌면 그 와 나 사이의 기억들은 영영 멸종되고 말지도 모를 일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올해의 봄들이 멸종된다 오래 전 책갈피에 꽂아둔 꽃잎이 툭, 깨금발 뛰듯 튀어 나온다 살다보면 묵직한 몇 페이지 쯤 멸종되는 것 대수라지만 자주 보던 산 중턱 그 어느 페이지에도 남아 있지 않을 것 들, 표백된 군락지가 하얗다
지긋한 여자, 꽃의 무늬들이 얼굴 밖으로 자잘하게 피어나고 있다 한 계절 따뜻하게 멸종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