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학력 진단이 죄악인가
김은경 기자
조선일보 2022.10.18 03:00
지난주 교육부가 초·중·고교생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확대하는 내용의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을 발표한 뒤로 여야의 공방이 뜨겁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계 일각에서는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일제고사의 부활”이라고 주장한다. 시·도 교육청 국정감사장마다 야당 의원들이 교육감을 사상검증하듯 “일제고사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며 몰아세우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기초학력 보장 종합계획(2023~2027) 발표를 하고 있다. 2022.10.11/뉴스1
이들이 ‘일제고사’라고 부르는 시험은 과거(2008년~2016년) 전수 방식의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다. 당시 지역별·학교별로 순위를 매겨 경쟁을 유도하고 지원을 달리하면서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 평가를 3% 표집 방식으로 바꾸고, 받아쓰기 평가 같은 최소한의 진단도 하지 않으면서 상황은 훨씬 나빠졌다. 이후 5년간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두 배 넘게 늘었고, 학부모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점을 찍었다.
정부 차원의 종합계획까지 내놔야 할 만큼 학생들의 기초학력 상황이 나빠진 데는 모든 시험을 죄악시한 전교조와 진보 교육감들 책임이 크다. 그런데 이번에도 전교조는 ‘무조건 반대’만 외치고 있다. 심지어 정부가 이번에 확대하겠다고 한 ‘맞춤형 학업성취도 자율평가’는 한날한시에 똑같은 시험을 치르는 일제고사가 아니다. 학교마다 원하는 일시에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보고, 학생들도 각기 다른 시험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학년·과목별로 각기 다른 4종류의 시험지가 무작위로 제공된다. 2024년부터는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해 학생이 문제를 풀어나가다 틀리면, 다음 문제는 그보다 약간 낮은 수준으로 자동 출제되는 식으로 바뀐다. 평가 결과는 학생 본인과 학부모, 담임 교사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에 옆 반 선생님도 알 수 없다. 줄 세우기가 아니라 학생들이 지금 어떤 수준에 있는지 진단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실상이 일제고사가 아닌데 일제고사라는 허깨비를 만들어 마구 때리는 꼴이다. 교육부와 기초학력 보장 대책을 3년 가까이 협의해 와 내용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마저 “획일적 전수평가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한다”며 정치 공세에 가세하고 있다.
전교조는 논평에서 “기초학력의 핵심은 진단이 아니라 지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진단도 하지 않고 지원만 한다는 건 감기 걸린 사람에게 정확한 진단도 없이 소화제 주고 연고를 발라주겠다는 격 아닌가. 서거석 전북교육감은 올 7월 취임하면서 “누가 더 건강한지 경쟁하려고 건강검진을 받는 건 아니지 않으냐”며 “정확한 학습 처방을 위해선 진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검진은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너도나도 권장하는데, 학력 검진을 두고서는 왜 바득바득 “해서는 안 된다”고 부르짖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