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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불행할까? 과보(果報) 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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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굿따라니까야》
20231127
제목: 악업을 지었지만 다음 생에 과보를 받지 않는 사람 [앙굿따라니까야]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er2USJK_a3g?si=vLH877DjXZA77A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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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악을 짓지만 그 업은 그를 지옥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악을 짓지만 지금 여기에서 다 겪는다."
"여기에서 다 겪으면 어찌 다음 생에 과보가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그 업은 그를 지옥으로 인도한다"라고 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몸에 대해 관찰을 하지 않고 계를 닦지 않고 마음을 닦지 않고 통찰지를 닦지 않아서 덕이 모자라고 하찮은 존재가 되어 약간의 악행에 대해서도 괴로워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은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그 업이 그를 지옥으로 인도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약간의 악업을 짓지만 지금 여기에서 다 겪는다."라고 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몸에 대해 관찰을 하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통찰지를 닦아서 덕이 모자라지 않고 위대한 존재가 되고 번뇌가 다한 존재가 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사람은 아주 작은 악업을 지었지만 지금 여기에서 다 겪는다. 여기서 다 겪으면 어찌 다음 생에 과부가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물이 조금밖에 없는 잔에다 소금 덩이를 넣는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 잔에 있는 적은 물은 이 소금 덩이 때문에 마실 수 없이 짜게 되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세존이시여, 소금 덩이를 넣은 그 물 잔 속의 물이 조금 밖에 되지 않아서입니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갠지스강에다 소금 덩이를 넣는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갠지스강은 이 소금 덩이 때문에 마실 수 없이 짜게 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어."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세존이시여, 소금 덩이를 넣은 그 갠지스 강의 물은 많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몸, 계, 마음, 통찰지를 닦지 않으면 덕이 모자라고 하찮은 존재가 되어 약간의 악업도 그를 지옥으로 인도한다.
하지만 몸, 계, 마음, 통찰지를 닦으면 덕이 모자라지 않고 번뇌가 다한 존재가 되어 약간의 악업도 지금 여기에서 다 겪기에 다음 생에는 과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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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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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ㅡ♡
저는 개인적으로 오늘 내용을 보면서 염화미소(拈華微笑)가 생각나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는데요. ^^
왜냐하면 오늘 내용은 제 스스로 본성 자리를 비추어 보면서 진작에 알아차리고 있었던 내용이라 그렇습니다.
오늘 부처님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셔서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던 것인데요. ^^
염화미소(拈華微笑)는 세존께서 연꽃 한 송이를 대중에게 보이자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미소 지었다는 내용에서 유래된 내용이지요.
그때 마하가섭이 지금 저의 마음과 같지 않았나 싶었답니다. ^^
그리고 참고로 제 경우는 두가지 방법으로 후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인데요.
하나는 지금처럼 저의 본성 자리를 비추어보면서 제 스스로 알아차리는 방법이고요.
또 하나는 경전을 통해 말씀을 듣고 또는 힌트를 얻고 제 본성 자리와 비교를 해 보면서 알아차리기도 하고요.
제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더욱 집중을 해서 알아차리고 있는데요.
이러한 것이 가능하려면 먼저 본성을 깨달으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본성 자리에서 알 수 있는 것이라 그렇답니다.
그리고 오늘 내용은 최근에도 제가 돌보고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자주 했던 내용이기도 한데요.
현생에서 지은 업보는 현생에서 받고 가는 것이 제일로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용 안에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 마음에는 그 어떠한 업보도 붙을 수 없기 때문에 세존도 갠지스강을 비유로 설명을 하신 거랍니다.
이 사바세계는 살아가면서 과보(果報)를 안 지으려야 안 지을 수가 없거든요?
왜냐하면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과보(果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악행까지 짓는다면 이것은 말할 가치도 없게 되는 것이고요.
여러분들은 아직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깨닫고 보면 자신이 그동안 수십 억겁을 살아오면서 지었던 모든 과보들을 잘 알게 되는데요.
특히 내가 왜 그동안 그런 고통과 괴로움 등을 당했지는 등을 너무나 잘 알게 된답니다. (진실)
왜냐하면 이 사바세계의 인연법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들을 과보(果報)라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오늘 내용은 이러한 과보를 현생에서 받는 것이 좋으냐 아니면 다음 생에서 받는 것이 좋으냐 하는 것인데요?
당연히 현생에서 지은 과보는 현생에서 받는 것이 훨씬 더 좋답니다.
왜냐하면 매도 알고 맞는 것과 모르고 맞는 것이 다르듯이 이것도 알고 맞는 것이 났다는 뜻입니다.
다음 생까지 가지고 가지 마시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음 생에 가면 또 이러한 짓들을 또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곱빼기로 과보를 받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깨닫게 되면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참회(懺悔)를 하게 되는 것인데요.
이러한 내용들을 제 경우는 이법을 깨달을 때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내용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던 것이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덧붙이고 싶은 내용은
만약에 어떠한 생명체가 과보를 받아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데 불쌍하다고 무조건 건져 준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유를 하면 죄를 짓고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를 불쌍하다고 무조건 건져 준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신도 죄를 짓고 과보를 받고 있는 입장에서 다른 죄수들을 구해 주겠다고 한다면 이것은 또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자신도 아직 깨닫지를 못해서 불타고 있는 마음을 못 끄고 있는 사람이?
남들 마음 불부터 꺼주겠다고 설치고 다닌다면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 이겁니다.
괴롭고 고통스러워하는 생명들을 도와주지 말라는 것이 아니랍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은 죄수라도 먹이고 입혀는 줘야 하니까요.
불교는 어떻게 보면 아주 냉정한 것이랍니다.
왜냐하면 내가 먼저 살아야 남들도 살릴 수 있는 종교라 그렇습니다.
자신도 아직 스스로 살아가지를 못하는데 어떻게 남들을 살릴 수 있겠느냐 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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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과보(果報)에 대한 부처님 말씀인데요.
불교에서 말하는 과보란 이 사바세계에서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언행(言行)에 대한 결과(結果) 또는 대가(代價)를 말하는 것인데요.
일반적으로 죗값(罪~)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
쵯값이든 복 값이든 과보란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각자의 생을 살아가면서 죄와 벌과 복을 받는다는 부처님의 말씀인데요.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답니다?
벌이든 복 이든 이러한 결과들을 부처님이나 하나님 같은 신(神)들이 우리들에게 벌과 복을 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이것이 전혀 그렇지가 않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깨닫고 보면 모든 복과 벌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짓게 되는 것이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복도 주고 벌도 준다는 사실인데요.
그 이유는 일반 사람들은 몸과 사물을 따로따로 보기 때문에 어떤 신(神)과 같은 것들이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인데요.
그런데 이것이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 자신이 부처이고 하나님이고 신(神)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약에 부처님이 여러분들에게 복과 벌을 내려 준다면 여러분들 자신이 부처님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죗값을 여러분들 스스로가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성(본성/성령/마음) 자리는 불이(不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고 보면 온 우주 전체가 불성(본성/성령/마음) 자리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인데요.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이러한 내용들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답니다.
온 우주가 불성(본성/성령/마음) 자리 하나로 이루어져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복을 주고 벌을 준다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여러분들 스스로가 자신에게 복도 짓고, 죄도 짓고, 복도 주고, 벌도 준다.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스스로가 조심하면서 이 사바세계를 살아가셔야 하는 것이고요.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깨닫고 이 사바세계를 보면 정말이지 아수라장(阿修羅場)이 따로 없답니다.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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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장(阿修羅場) 뜻?
네이버 국어사전
- https://naver.me/GTS7W0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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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곳에서 어떻게 악업을 쌓지 않고 살 수가 있을까요?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런 곳에서 우리들은 하루라도 더 오래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것인데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리석다고 박에 볼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오늘 부처님 말씀의 핵심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거랍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현생에서 몸에 대해 관찰을 하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아서 통찰지를 얻어 갈고닦아서 덕이 모자라지 않는다면 여러분들 스스로가 위대한 존재가 되고 번뇌가 다한 존재가 된답니다."
그러면 아주 작은 악업을 짓더라도 여기에서 즉 이 사바세계에서 다 겪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과보를 다 겪었는데 어떻게 다음 생에까지 과보를 가지고 갈 수 있겠는가?"
라는 내용이랍니다.
예를 들어 비유를 하면?
"한강(마음)에 굻은 소금 한 뭉치를 넣는다고 해서 한강 물이 짜지겠느냐?" 이 말입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마음은 소주 잔과 같기 때문에 반 뭉치의 소금만 넣어도 온통 짜지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깨닫고 증득하게 되면 한강과 같은 큰마음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과보는 별것 아니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만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마음에 담아두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렇게..
몸에 대해 관찰을 하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아서 통찰지를 얻어서 갈고닦아 덕이 모자라지 않는다면 여러분들 스스로가 위대한 존재가 되고 번뇌가 다한 존재가 되기 때문에 아무리 소금 덩어리를 넣어도 짤리가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번뇌가 다한다는 뜻은 마음을 비우고 버려서 얻는 증득을 뜻하는 것이고 해탈을 뜻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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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해탈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에 대한 부처님 말씀의 핵심은 모든 번뇌와 괴로움은 집착과 애착과 아집 등으로 인해 자기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마음으로부터 소멸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잖아요?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먼저 알아차리는 [알아차림 수행]을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집착이나 애착이나 아집 등이 과보와 얼마나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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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법은 마치 물과 기름처럼 끼리끼리 모이게 되어 있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이번 생에 집착이나 애착 등이 다음 생에도 이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마치 물과 기름은 옆에만 스쳐 지나가도 자동으로 모여들듯이 말이지요.
왜냐하면 마음 법은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도 우리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나요?
어떤 것이든 내 마음이 그쪽으로 가면 의식도 생각도 몸도 그쪽으로 가게 되잖아요?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기름들처럼 우리들 마음 법도 다음 생이나 그다음 생이나 언젠가는 다시 끼리끼리 뭉치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고요.
좋은 마음이든 나쁜 마음이든 마찬가지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경전에서는 무명이라 하는 것이고 이 무명이 십이연기법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명에 해당하는 집착과 애착과 아집 등만 끊어내면 그 뒤로 이어지는 연기도 의지할 곳이 없기 때문에 자동으로 소멸된다는 것이 십이연기법의 핵심이라는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은 육체가 있기 때문에 생각을 하고 분별을 할 수 있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죽게 되면 육체의 기능들은 완전히 끊어지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순수한 본성(마음)의 알아차림으로만 모이고 뭉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인연(因緣)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죽을 때에는 그 어떠한 집착이나 애착이나 미련 따위를 가지고 죽으면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반 사람들은 그 마음 그대로 다음생까지 가지고 갈수박에 없기때문입니다.
그런데 더 큰문제는 이러한 이연들이 그동안 수십억겁을 살아오면서 한번도 털어내지를 못했기 때문에 어느생에 어느때에 눈탱이를 맞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이연들은 좋은 인연대로 흘러가는 것이고요.
그래서 오늘 부처님 말씀도 현생에서 얽히고설킨 인연들이 있으면 털고 저세상으로 가라는 것이고 되도록이면 악연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새는 개나 고양이 등에도 마음을 주고 애착을 가지고 키우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잖아요?
이것이 깨달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른답니다.
왜냐하면 개나 고양들의 마음(본성)도 사람의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것이 물 위에 떠있는 기름들처럼 인연 따라 뭉치고 흩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마음 법은 물과 기름처럼 끌리는 대로 가기 때문에 지금 생에는 사람이나 개로 구분이 되지만 둘 다 죽게 되면 사람이나 개가 따로 없기 때문에 다음 생에는 자식이나 부모로 인연이 될 수도 있고 부부나 연인으로 인연이 될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축생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해서 인간의 몸을 받는 경우가 아주 허다하고요.
왜냐하면 비유를 하면 본성이 허공에 떠 있을 때에는 물 위에 기름처럼 애착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대로 인간의 자궁으로 그대로 스며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나 여러분들도 아주아주 먼 과거 생에 축생에서 인간의 자궁으로 들어올 때에도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해서 인간의 몸을 받았을 것이고요.
그리고 특히 죽을 때에는 어떤 대상에 악한 마음을 가지고 죽거나 증오하는 마음으로 죽거나 미워하는 마음으로 죽게 되면 반드시 언젠가는 어느 생에서든 물과 기름처럼 길거리에서 옆에만 스쳐 지나가도 서로가 끌려들어 가게 되어있답니다.
왜냐하면 마음 법은 끌리는 대로 끌려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저 사람하고 인연이 되기 싫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는 마치 괜히 처음 보는 사람이나 동물인데도 내 마음이 끌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마음 법은 자석과 같은 것이랍니다.
인연법이라는 것이 마치 이렇게 이어지고 흩어지고 또 이어지고 흩어지는 거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인연들은 아주 질겨서 한번 이어지면 일반 사람들은 도저히 끊어내기가 어려운 것이고요.
뭔지를 알아야 끊든지 말든지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다음 생에도 다시 깨닫고 증득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을 다시 끊어내기가 수월하답니다.
이렇게 매 생마다 끊어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종국에는 부처님처럼 완전한 열반에 들 수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나라도 더 도력(마음의 힘)을 쌓아야 하는 것이고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꼭 성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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