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조건으로 ‘무편집’ 걸었던 나훈아
문무대왕(회원)
9월30일 KBS2 TV에서 방영된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뒷담화가 무성하다. 나훈아 특집방송은 랜선을 통한 1000명 관객과 쌍방 소통의 언택트 공연으로 이루어진 최초의 실험방송이었다. 방송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훈아는 현장과 상황에 강한 가수였고 중간시청률 최대 70%, 평균시청률 29%, 재방시청률 18.7%란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번 나훈아 선풍은 조갑제TV와 조갑제닷컴이 선봉에 서서 제대로 보도한 공로도 컸다.
나훈아는 코로나19로 지치고 힘들어하는 국민에게는 위로를 안겨 주고 위정자와 언론에는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나훈아는 모두 32곡을 열창하면서 때로는 가뿐 호흡을 몰아쉬기도 하고 때로는 빛나는 눈동자와 웃음으로 세계의 관객들 가슴에다 즐거움을 안겨줬다. 나훈아는 청년의 기상과 기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훨훨 날았다. 나훈아가 그동안 살아온 진면목을 잘 보여 준 걸출한 공연예술이었다.
나훈아는 노래로 한반도의 지축(地軸)을 뒤흔들었다. 어느 정치연설보다도 음악의 힘이 위대함을 입증해 줬다. 강진(强震)에 이은 여진(餘震)도 강했다. 그냥 태풍이 아니라 ‘허리케인’이었다. 세계 속의 대한국민들이 열광했다. 추석 민심도 쓰레기 같은 정치 얘기를 물리치고 ‘가황(歌皇) 나훈아’ 얘기로 얘기꽃을 피웠다.
나훈아의 노래에는 ‘고향’과 ‘사랑’과 ‘인생’이 녹아있다. ‘고향’은 “어머니요, 사랑하는 조국(祖國)”이다. ‘사랑’은 “정(情)”이다. 만남과 헤어짐의 정 때문에 울고 웃는 인생사를 오선지(五線紙)에 실어 노래 불렀다. ‘인생’은 “소신과 철학”이다. 나훈아는 2500여 년 전 희랍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는 세계 최초의 트로트 가수요, 영혼이 자유로운 음유시인(吟遊詩人)이 됐다. 나훈아는 자유로운 영혼을 오염시키고 속박하는 그 어떤 것도 배격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테스형”에게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먼저 가 본 저 세상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가요”를 물어봤더니 “모른다”고 대답하더라고 허허 웃었다.
나훈아의 노랫말엔 ‘소신’과 ‘철학’이 있다. ‘풍자’와 ‘해학’도 있다. 나훈아의 노래는 다른 여느 가수하고는 다르다. 그래서 나훈아를 가황(歌皇)이라 하기도 하고 가성(歌聖)이라 부르기도 한다. ‘역시 나훈아는 나훈아’였다. 나훈아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별의 별꼴 다 봤지만 이런 공연은 처음”이었다. ‘비대면 공연’으로 관객 없는 무대에서 ‘단독연출’을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재미없다는 것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 무대 위의 주인공도 관객의 환호와 박수가 없으면 공연하는 데 김이 빠지고 만다.
그러나 나훈아는 무대를 장악했고 온라인 화면으로 관객들과 호흡을 맞춰가며 150분이란 긴 시간을 훌륭하게 이끌어 갔다. 순간순간 화면 속의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넘겨 호응을 유도하는 ‘마이크 어렌지’라든가 무대를 휘어잡는 무대장악력은 발군(拔群)이었다. 나훈아의 목소리는 물론, 눈빛과 미소, 손동작, 발동작, 머리 묶음, 표정 하나하나가 모두 공연예술의 진수(眞髓)를 보여 주는 듯했다. 나훈아는 비록 출연료를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관현악단과 합창단, 무용단, 피아노와 하모니카, 하프, 비올라 등 출연진에 대한 출연료, 웅장하고 화려한 화면을 구성한 3D, 4D 등의 특수영상제작과 1000여 명의 랜선 관객과 연결되는 온라인 화면장치, 무대 시설 등등 제작비만 해도 100억은 넘었을 것이다. 제작 기간 8개월이면 그 이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공연은 나훈아 개인의 음악성에 대한 발현이요, 총정리이지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나훈아의 자존심과 생각이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 준 것이었다. 공연 중간중간 있었던 김동건 아나운서와 나훈아의 인터뷰 내용이 편집되지 않고 그대로 방송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요청한 노래 ‘명자’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표출시킨 작품이다. 북한에 두고 온 조부모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간 뒤 부모가 북한 하늘에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었다는 얘기는 북한 집단의 눈치를 봐야 하는 KBS로서는 난감한 일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이 힘듭니다. 우리는 많이 지쳐 있습니다. 옛날 역사책을 보면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본 바가 없습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나 하면 바로 오늘 여러분들이 지켰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유관순 누나, 진주 논개, 윤봉길 의사, 안중근 열사 이런 분들이 모두가 우리 국민이었습니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여기저기 눈치 안 보는 정말 국민들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같이 정부와 KBS에 비수를 꽂는 발언을 편집이나 여과 없이 방송한 것은 나훈아의 자존심이요, 능력 때문이었다고 본다. 나훈아는 KBS와의 공연계약 때 몇 가지 조건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1: 편집하지 말 것
2: 중간광고를 하지 말 것
3: 다시 보기나 CD, 재방송하지 말 것 등
KBS가 나훈아의 이같이 까다로운 조건을 수용한 것은 ‘나훈아’란 음악상품이 워낙 걸출했기 때문으로 본다. 비록 15년 만에 국민에게 보여 준 나훈아의 음악 인생, 노래 인생은 나훈아 자신의 표현대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The art is long, life is short)”고 했던가?
첫댓글 아마도 KBS 사장을 비롯해 제작 부장 정도는 "들어 오라고 해!"애 이어서 조인트 깨졌을거디!
나훈아 와의 약속도 이미 깨버린것 아닌가?
다시보기 "재방송"도 했고 일부 편집도 해서 최초 방송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도중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나훈아 건과 KBS가 "이 일병 해외 여행 폭로" 단독 보도로
조인트 깨지는 정도가 아니고 "나가라" 정도의 문책도 있다고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