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 침수현장에도 의인들 등장
지자체.경찰.소방 당국은 발뼘만
이태원 참사 겪고도 인재 반복
재난 예방.안전 유능한 정부 기대
참담한 재난 앞에서 그나마 유일한 위안은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의 목숨을 구한 평범한 이웃들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의인이라고 부른다.
14명의 삶을 앗아간 충북 오송지하도 참사 현장에도 의인들이 있었다.
화물차 운전기사 유병조(44)씨 출근길에 궁평2지하차도로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물이 차오르자 창문을 꺠고 탈출했다.
지분 위로 피신한 그는 화물차 사이드미러를 붙잡고 있는 여성을 발견하고 곧바로 손을 잡아 끌어올렸다.
이어 물에 떠 있는 남성 2명에게도 손을 뻗어 난간을 붙잡게 도왔다.
증평군 공무원 정영석(44)씨 , 유씨의 도움으로 급박한 상황을 넘긴 그는 난간에 매달린 채 거센 물살에 떠내려가는 시민 3명을
끌어올려 목숨을 구했다.
747번 급행버스 기사는 유리창을 깨고 승객을 먼저 탈출시키다 숨졌다.
이들의 고귀한 헌신을 다룬 기사마다 '진정한 영웅'이라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오송 의인들과 시민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서로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그 시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존재감은 한없이 미미했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인재였다는 사실과 어이없는 부실 대응이 속속 드러나면서 공분은 증폭됐다.
금강홍수통제소가 사고 4시간 전인 15일 새벽 4시10분 미호천교 주변에 홍수경보를 발령하고,
이어 2시간 전 청주 흥덕구청에 교통 통제와 주민 대피 등이 필요하다고 통보했다.
충북도는 미호천교에서 교량 공사를 하던 행복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오전 6시 30분부터 여러 차례 전화로 재난 문자 발령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충북도, 청주시, 흥덕구청 어느 곳도 궁평2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다.
경찰은 112 신고를 두 차례 받고도 엉뚱한 곳으로 출동했고, 소방 당국은 미호천 제방 붕괴 위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관할이 아니라며 사고 직전 현장을 떠났다.
예고된 폭우인 만큼 사전에 만반의 대비를 해야 했을 기관들이다.
그런데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잘못도 모자라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재난안전통신망은 이번에도 무용지물이 됐다.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총체적인 난국에 온라인에선 '#무정부상태' 해시태그를 단 분노의 글이 넘쳐 난다.
이런 황망하고 어처구니없는 인재를 우리는 불과 아홉 달 전에 뼈아프게 경험했었다.
154명이 숨진 이태원 핼러윈 참사도 경찰과 용산구청이 인파 관리에 대한 경계를 강화해 미리 대비하고 살폈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이들 기관은 사고 3일 전 지역상인 간담회에서 인파가 10만명 이상 몰릴 것으로 예상하고도 안전관리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
사고 당일엔 4시간 전부터 '인파가 너무 많아 관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112 신고가 11건 접수됐지만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믿기 어려운 대형 참사 앞에서 행정안전부 수장은 '경찰 소방 인력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
의문이 든다'는 발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안전불감증, 부실 대응, 책임회피까지 참사의 원인과 전개, 수습 과정이 어쩌면 이렇게 판박이인지 복장 터질 노릇이다.
그떄도 어김없이 의인들이 나타났다.
청재킷을 입은 남성은 '밟고 올라가라'며 어깨를 내주고, 미군 남성은 동료 2명과 인파에 깔린 사람 30여 명을 '밭에서 무 뽑듯'
구했다.
목이 쉴 정도로 고함치며 혼자서 인파 통제를 하는 어느 경찰의 모습도 큰 감동을 줬다.
재난 의인들은 항상 똑같은 얘기를 한다.
'더 많은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정작 이 말을 해야 할 당사자들은 침묵하거나 딴청을 부리는데 말이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했다.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재난 대응책이 제대로 작동하는 유능하고, 믿음직한 정부를 보고 싶다. 이순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