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사우디아라비아 대학 재단 임원 일행이 대전 선병원 국제검진센터를 찾았다. 특급 호텔처럼 꾸민 검진센터 병실에 짐을 풀자마자 의료진이 질병 위험도를 평가하고 검진 계획을 짰다. 그날 위·대장 내시경에 전신 암 검진 PET·CT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잠든 동안에도 코골이와 성(性) 능력 검사를 했다. 이들은 검진 결과를 기다리면서 얼굴 피부에 탄력을 주는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검진비 1000만원을 신용카드로 치렀다.
▶서울 상일동 강동경희대병원 검진센터에 가보면 한국인지 러시아인지 헷갈린다. 블라디보스토크나 하바롭스크에서 온 러시아인 50여명과 통역 20명이 북적거린다. 검진이 끝나면 이들은 러시아 방송 채널이 나오는 근처 호텔에 머물며 쇼핑을 다닌다. 가끔 대장암·위암·협심증이 발견돼 수술까지 받고 간다. "한국에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며 의료진에게 꽃다발을 안기기도 한다.
▶차병원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 '차움'은 꽤 이름난 검진센터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전용기를 타고 와 검진받고 간다. 올해 초엔 동유럽 어느 나라 대통령이 친한 러시아 사업가 소개로 휴가차 1억원대 검진을 받고 갔다가 소문이 나 곤욕을 치렀다. 야당은 "세금으로 한국 가서 호화 검진을 받은 것 아니냐"며 정치 공세를 벌였다.
▶서울성모병원이 아랍에미리트(UAE) 왕립 병원에 검진센터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한국형 검진'의 중동 첫 수출이다. 한강을 훤히 내려다보는 성모병원 21층에는 중동 이슬람 환자를 위한 기도실이 있다. 쿠란도 갖춰놓았다. 매일 이슬람 성지 메카를 향해 기도 올리는 환자들을 위해 기도실에는 메카 방향이 화살표로 표시돼 있다. 이슬람식 할랄 식단이 나온다. 이런 정성 덕분에 이슬람 국가가 가톨릭 교단 병원을 선택했다.
▶증상이 없어도 미리 질병 검사를 하는 건강검진은 1960년대 일본 '인간 독(dock)'에서 유래했다. 배를 항만 독에서 점검하듯 사람도 그렇게 하자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건너와 '한꺼번에'와 '빨리빨리' 문화를 만나면서 한국형 '패키지 건강검진'으로 발전했다.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형태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검사를 늘려 점점 비싸진다. CT 촬영을 남발해 방사선 피폭을 늘리는 문제도 낳고 있다. 그래도 지난 10년 사이 암 생존율이 53.5%에서 66%로 높아진 것은 검진 덕이 크다. 암을 이기는 최고 무기는 명의(名醫)가 아니라 조기 발견, 조기 치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