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경쟁 정당보다 더 적은 표를 얻은 정당이 정치권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승자 독식' 방식에 따라 선거인단 표를 할당하기 때문에 대선 후보가 보통선거에서 승리했다 하더라도 선거인단 선거에서 패배하면 대통령이 될 수가 없습니다.
2016년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주에서 근소한 차이(각각 23,000표, 11,000표, 54,000표)로 승리하면서 3개 주에 할당된 46개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가져갔습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뉴욕주에서 170만 표 차이로 승리하면서 29개의 선거인단 표를 가져갔습니다. 이들 네 개 주의 보통선거 표를 합산하면 클린턴이 160만 표 차이로 승리했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트럼프가 46대 29로 이겼습니다.
미국의 선거인단 제도는 각 주에 할당된 하원 의원과 상원 의원의 수를 합한 수와 동일합니다. 그런데 상원에서는 인구 밀도가 낮은 주들이 과잉대표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선거인단 총 538표 중 20표 정도가 시골 지역에 편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20표가 공화당에 결정적인 어드밴티지(advantage)가 되고 있습니다. 2000년 선거에서 조지 W. 부시는 시골 지역에 편향된 20표 중 18표를 가져갔고 그 결과 앨 고어를 5표 차이로 이길 수가 있었습니다. 그 18표가 보통선거의 패자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입니다.
현재의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 하에서 민주당 후보는 보통선거에서 약 4퍼센트 포인트로 이기지 않는 한 대통령이 될 수가 없습니다. 1992~2020년에 치러진 미국의 모든 대선에서 2004년을 제외하고 공화당은 보통선거에서 모두 패배했습니다. 다시 말해 지난 30년 동안 공화당이 미국민들로부터 더 많은 표를 받은 경우가 ‘단 한 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상원 의원 선거에서도 다수결주의에 반하는 편향성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원 제도는 미국 전체 인구에서 20퍼센트 미만을 차지하는 적은 인구를 가진 주들만으로도 상원의 과반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공화당은 인구수가 적은 주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적인 보통선거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않고도 쉽게 상원을 장악할 수가 있습니다.
2016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52석으로 상원의 다수당이 되었지만 공화당 의원들의 득표율은 미국 전체 인구의 45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2018년에도 공화당은 53석으로 과반을 차지했지만 득표율은 48퍼센트였고 2020년 선거에서는 민주당과 똑같이 50명의 상원 의원을 배출했음에도 민주당의 득표율이 55퍼센트로 더 높았습니다.
편향된 선거제도는 특정 정당이 유권자 다수를 확보하지 않고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게 함으로써 유권자보다는 내부 권력 투쟁에 몰두하고 급진화의 길을 걷도록 만듭니다. 공화당은 시골 지역에 편향된 선거제도에 기반하여 전국적인 보통선거에서 계속 패했으면서도 대선에서 승리하고 상원까지 장악했습니다.
미국의 선거제도가 공화당에 부여한 어드밴티지는 공화당의 극단주의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은 전국 선거에서 다수를 확보하지 않고도 권력을 차지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 사회의 변화 요구에 대응해야 한다는 정치적 동기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과격한 농촌지역의 인종주의적인 백인 기독교 신자들을 기반으로 손쉽게 권력을 잡을 수 있는 한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계속 배출될 것입니다.
선거제도의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수정이 힘든 헌법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헌법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상원과 하원 모두에서 2/3의 승인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50개 주 중에서 3/4에 달하는 주의 비준을 받아야 합니다. 미국 상원에 따르면 미국에서 헌법을 수정하기 위한 시도가 11,848번 있었지만 성공을 거둔 것은 27번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미국의 선거제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공화당에 유리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