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비주류 역사학이나 비주류 경제학이 금서의 리스트에 올라있었고 대학가에는 역설적으로 이런 서적들이 올바른 지성과 역사 인식을 위한 지침서 인양 필독서처럼 은밀하게 읽혀져 온 적이 있다. 그리고 당시 대학생들은 마치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런 역사의 진실을 알게된 것처럼, 혹은 진정한 지성인이 된 듯한 전율을 느끼곤 했다.
당시 비주류 역사학자, 경제학자들은 언론과 세간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순교자의 심정으로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잡고자 애썼다.
정치적 색깔을 입히자면 좌파적 역사인식은 국수적 우익적 반공 이데올로기 앞에서 숨을 죽이면서 핍박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오늘,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의 글 논쟁은 냉엄한 역사의 역전, 역사의 보복을 떠올리게 한다. 한승조씨의 글은 주류와 비주류의 극명한 역전을 말해주고 있다.
좌파적 역사인식은 이제 주류로 자리잡았고 우파적 역사인식은 이제 비주류로서 과거 금서로 떠돌던 비주류 역사인식 마냥 생경하기만 하다.
세간의 파장도 과거 비주류가 던진 파장만큼이나 커지고 있다. 오히려 그 파장은 처참하리만큼 역풍을 맞고 있다.
친일 과거사 청산법이 가지는 정치적 정략적 의도는 일정부분 한승조씨의 글에서 공감하는 바 적지 않다.
그러나 그는 글의 부분적으로 큰 오류를 범하고 있고 논리적 학술적으로도 비판 받을만한 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 일본은 3.1운동때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수는 천만이 아니라 천명을 크게 넘지 않았을 것 같다. 다만 경찰이나 헌병에 의하여 체포되어서 옥고(옥고)를 치른 사람들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더 많이 죽지 않을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한다. 또 한국농민을 만주의 간도로 이주를 권장하였다고 하나 소련과 같은 강제성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서 한반도가 러시아에 의하여 점거되지 않고 일본에게 합방되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오히려 근대화가 촉진됨으로써 잃은 것에 못지않게 얻은 것이 더 많았음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필자가 또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것이 불행중 다행이었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한일 양국의 인종적 또 문화적인 뿌리가 같았음으로 인하여 한국의 민족문화가 일제식민통치의 기간을 통해서 더욱 성장 발전 강화되었을망정 소실되거나 약화된 것이 없었다. 한국의 역사나 어문학 등 한국학(한국학연구)연구의 기초를 세워준 것이 오히려 일본인 학자들과 그의 한국인 제자들이 아니었던가? 이런 말에 또 흥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사실로 받아드리는 객관성을 중시함이 학문하는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물론 일제가 학교에서 한글교육을 폐지하며 조선어(조선어)의 연구와 사용을 금지하였다고 하나 그것은 1937년부터이며 1945년에 태평양전쟁이 끝났음으로 한국어문학에 큰 손실을 입은 바가 없었다. 만일 한반도가 일본이 아니라 러시아나 영미등 서방국가에 의하여 식민지 지배를 받았더라면 그 문화적이 뿌리가 너무 다름으로 인하여 문족문화의 성장이나 심화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을 것 같다.
이 뿐 만이 아니다. 한국인들은 영어의 sibling rivalry(어린 자매들 간의 경쟁의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본인에 대하여는 무조건 지지 않으려는 경쟁의식을 갖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지배가 한국인들의 성장 발전의 의욕을 크게 자극하여 한국인의 문명화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한국이라는 나라의 빠른 성장과 발전을 촉진하는 자극제 역할을 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위와 같은 점을 감안 할 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오히려 천만다행이며 저주할 일이기보다는 도리어 축복이며 일본인들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유는 될지언정 일정35년 동안 일본에게 저항하지 않고 협력하는 등 친일행위를 한 것 때문에 나무라고 규탄하거나 죄인취급을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과거사의 진상규명 노력도 이런 거시적이며 객관적인 차원에서 또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하여 긍정적인 시각에서 진상을 규명하려고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이다. >
이 부분만큼은 아무리 학자적 시각에서 쓴 글이라 하더라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일본 극우 지식인의 관점을 그대로 수용한 내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강점이 축복이며 일본인에게 고마워해야 할 사유가 된다는 글은 망언에 가깝다. 이런 논리라면 1차대전후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모든 식민정책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되며 현재도 힘있는 국가에 의한 힘없는 국가의 침탈은 용인되어야 한다.
논리를 비약시키면 지금이라도 민족적으로 가깝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질성을 갖고 있는 경제대국 일본이나 거대 중국의 속국이 되어야 우리 나라의 발전이 앞당겨 진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지식인들은 글을 쓸 때 자기 논리에 취한 나머지 불필요한 말을 남발함으로써 글의 본질에 어긋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더구나 일본 극우잡지에 기고할 글이면 좀더 심사숙고해서 글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학자의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런 글로 인해 순수한 애국적 보수 우익이 도매금으로 매도될 까 안타까울 뿐이다. 또 한바탕 좌파적 세력들의 여론몰이에 의해 보수우익을 겨냥한 마녀 사냥의 광풍이 우려된다.
적어도 한승조씨는 그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