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등, 쾌돌, 돌비, 대포. 네 마리의 돌고래와 박상미, 박창희, 이석천, 송세연 네 명의 조련사가 호흡을 맞춰가며 현란한 묘기를 보여주는 쇼. 이전 쇼에서 조련사들이 물 밖에서 지시만 했다면, 수중 쇼에서는 돌고래와 조련사가 파트너 관계다. 사실, 돌고래와 조련사 사이 단단한 신뢰와 우정이 없었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쇼였다.
수중 쇼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외국의 환경을 부러워할 뿐,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수심이 얕고 공간이 좁아 ‘위험하다’는 생각이 대세였다. 지난해 윤정상 해양동물팀장이 6개월간 일본에서 연수를 받을 때 일본을 드나들던 조련사들은 일본 동물원의 수중 쇼를 보고 욕심을 냈다.
일본 전문가들은 그러나 “그 시설에, 그 돌고래로는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과천 서울대공원에 있는 큰 돌고래를 길들여 수중 쇼를 한 예는 별로 없었다. 위험부담을 감수한 채 이 일을 추진할 수 있을까? 이때 귀국한 윤정상 팀장이 적극 도와주겠다고 했다.
20대 초반에서 서른 살까지 남자 둘 여자 둘 조련사는 하나로 뭉쳤다. 지난 1월부터 시작해 6개월 만에 완벽하게 준비를 마쳤다. 7월부터 쇼를 시작한 이들은 “우리도 이렇게 빨리 진행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수영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네 사람은 수원의 수영장으로 수영 강습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1주일에 세 번, 저녁에 강습을 받으며 3개월 만에 상급 과정까지 마쳤다. 선생님을 초청해 스킨 스쿠버 강습도 받았다. 처음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돌고래들은 ‘사람이 왜 우리 영역으로 들어오지?’ 경계하는 눈빛으로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봤다. 먹이를 던져주며 점점 가까이 오게 했고, 몸 여기저기를 만져주면 좋아할 정도로 친해졌다. 기본적인 신뢰가 있어서인지 2~3개월 걸린다는 과정이 1주일 만에 끝났다.
돌고래 몸에 타는 ‘보딩’이나 조련사가 돌고래 주둥이 위에서 물 위로 솟아오르는 ‘로켓’은 고난도의 동작이라 원래 계획에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미리 포기하지 않았다. 박창희 씨가 한쪽 구석에서 계속 시도하는 것을 보고, 다른 조련사와 돌고래들도 연습을 거듭했고 성공했다.
어려운 훈련이지만, 조련사들은 돌고래를 스파르타 식으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한참 훈련을 시키다 갑자기 끝내버려 오히려 감질나게 만들었다. 훈련을 지겨워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돌고래들의 감정을 읽으면서 지루하지 않게, 신나고 기분 좋게 훈련에 임하도록 했다. 과제를 잘 수행하면 먹이를 주거나 쓰다듬어 주고, ‘잘했다’는 뜻의 휘슬을 부는 등 충분히 보상을 했다. 훈련으로 몸을 많이 움직이고, 하루 생활이 다양해지면서 돌고래의 정서적 안정에도 도움이 됐다.
한눈에 사람 알아보는 돌고래들
돌고래 네 마리는 모두 수컷이다. 예전에는 암컷 두 마리와 수컷 두 마리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암컷 한 마리는 피부도 깨끗하고 눈도 크고 예뻤는데, 다른 한 마리는 뚱뚱하고 둔했다. 수컷들이 예쁜 암컷에만 계속 달려들어 귀찮게 하고, 뚱뚱한 암컷은 왕따시켜 우울증에 빠지게 했다. 그래서 수컷만 네 마리 뒀는데, 이들 간에도 긴장감은 감돌았다. 괜히 얼굴을 부딪치며 시비를 걸기도 했다. 그런데 훈련을 시작한 후로는 스트레스가 줄어들면서 사이가 좋아졌다.
돌고래들은 이제 쇼의 순서를 다 외워 음악소리만 듣고도 자세를 갖춘다. 원래 돌고래 취침 시간은 조련사들이 불을 끄고 퇴근하는 7시쯤이다. 그런데 8시 야간 쇼가 시작되고는 잠자는 시간이 늦어졌다. 야간 쇼 첫날에는 잠자는 돌고래들을 깨워야 했는데, 둘째 날부터는 이미 상황 파악을 하고 잠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련사들은 아침 6~7시에 출근해 돌고래들이 밤새 잘 지냈는지 살펴보고, 먹이를 주고, 매일 바닷물을 갈아주고, 변을 뒤적이며 건강 상태를 살피는 사육사이기도 하다. 쇼 때문에 힘든 일정을 보내는 돌고래들을 위해 이들은 요즘 훈련 시간을 줄이는 대신 비치 볼을 가지고 놀아주고, 많이 안아준다. 돌고래들도 툭툭 치거나 물을 뿌리면서 장난을 걸고, 반쯤 누워 지느러미를 흔들면서 만져 달라고 하기도 한다. 워낙 샘이 많아 한 마리만 예뻐하면 안 되니 공평하게 대하는 게 철칙이다.
수중 동물 중 가장 인간과 가깝다는 돌고래. 돌고래가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마음을 주지는 않는다. 눈빛만 봐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본다고. 마음에 안 드는 조련사는 무시하고, 하는 척만 할 뿐 말을 듣지 않는다. 딴 짓을 하면서 공연을 망쳐 놓기도 한다. 서울대공원 조련사들이 빠른 시간 안에 고난도 쇼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돌고래와 쌓아온 단단한 신뢰와 애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하는 동안에도 돌고래들은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조련사들에게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2000년부터 돌고래와 함께 지낸 조련사 박상미 씨. 사회체육과를 졸업한 후 일용직으로 서울대공원에 발을 들였다 동물들에 푹 빠져 조련사가 된 그는 돌고래가 아프면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 내내 왔다 갔다 하거나 쪼그리고 앉아 밤새 돌고래 상태를 살핀다. 고향인 바다를 떠나 좁고 인위적인 환경에 갇혀 살아야 하는 처지를 생각하면 짠할 때도 있지만, 이 때문에 더 잘해 주려고 한다.
박창희, 이석천, 송세연 씨는 모두 삼육의명대 동물과학부 출신. 송세연 씨는 어릴 때부터 개를 키우면서 동물을 좋아했던 반면, 박창희·이석천 씨는 대학에 들어와 동물들을 접하면서 그들 세계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석천 씨는 “사람이 넘어지면서 사료가 엎어졌는데, 정 없다는 소리를 듣는 물개가 사료가 아닌 사람 쪽으로 가서 위로한다고 비벼대는 것을 보고, 동물들이 제일 좋아하는 게 나 자신이 되자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여자 조련사들이 무조건 애정을 부어줘야 한다는 반면, 남자 조련사들은 “기복 없이 대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감정을 절제하고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충분히 사랑하되 객관적인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은 자녀 양육법과 다르지 않았다. 남자 둘 여자 둘, 조련사들의 공통된 꿈은 “수중 쇼를 세계적인 쇼로 발전시키는 것”과 “돌고래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다.
사진 : 이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