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상왕산(象王山) 개심사(開心寺)를 찾아서 ③
-명부전과 그밖의 전각, 그리고 회향-
이제 명부전을 참배할 차례입니다. 먼저 명부전에 들어 예를 올리고 셔터를 다 눌렀는데 정작 담아야 할 명부전 전각은 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사진을 참고로 모셔 오려 했으나 마땅한 사진이 없어 그만두었습니다.
명부전으로 향합니다
위의 전각이 명부전인데 정작 명부전 건물 사진을 미처 담지 못했습니다.
명부전은 현재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건립연대는 조선 후기인 고종 26년(1889)에 작성한 「개심사수리기」라는 기록을 통해 인조 24년(1646)에 새로 지은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건물 양식을 보면, 기단은 다듬은 돌로 가지런히 쌓았고 자연석 주춧돌을 놓은 원주를 세웠다. 익공계(翼工系) 겹처마 맞배지붕인데, 건물 내부의 가구는 무고주(無高柱) 5량(梁)으로 내부에 기둥을 세우지 않아 공간이 넓은 편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평주(平柱)에 걸친 대들보 위에 익공형 화반(花盤)을 얹고 화반위에 장혀와 중도리를 놓은 다음 그 사이에 종량을 걸치고, 그 가운데 키가 큰 화반을 놓아 마루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안에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해서 시왕(十王)과 판관(判官)ㆍ녹사(錄使)ㆍ사자(使者)ㆍ동자(童子ㆍ인왕상(仁王像) 각 2체씩이 봉안 되어 있다. 그리고 불화는 1987년에 조성한 지장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전통사찰 총서 충남편-
명부전(冥府殿) 편액
지장삼존상(地藏三尊像)
지장삼존(地藏三尊)은 지장보살의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한 삼존(三尊) 구성을 이루는데, 이를 일컬어 지장삼존(地藏三尊)이라 합니다.
도명존자(道明尊者)는 중국 양주에 있는 개원사(開元寺)의 승려로서 우연히 사후세계를 경험하고 지장보살의 협시(脇侍)가 되었다고 합니다.
도명존자는 《환혼기(還魂記)》라는 중국의 영험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양주 개원사의 도명화상이 서기 778년 지옥사자에 의해 지옥에 불려가서 지장보살을 직접 본 후, 이 세상으로 돌아와 자신이 저승에서 본 바를 세상에 알리고 그림으로 그린 연유로 지장보살과 관련되는 곳에는 빠짐없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독귀왕(無毒鬼王)은 사람들의 악한 마음을 없애 준다는데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도리천궁신통품(忉利天宮神通品)』에 등장합니다.
무량겁 전에 각화정자재왕여래(覺華定自在王如來)가 계실 적에 한 바라문의 딸이 있는데 그의 어머니가 삿된 것을 믿고 항상 삼보를 가벼이 여기므로 여러 가지 방편을 베풀어서 어머니에게 권유하여 바른 생각을 내게 하였건만 그 어머니는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한 채 죽어 무간지옥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딸은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지 몰라 망연자실하다가 부처님은 아시리라 생각하는데 홀연히 부처님께서 어디에 계시는지 찾는 방법을 일러 주시어 어머니를 지옥에서 건지기 위해 집을 팔아서 탑과 절에 크게 공양을 올리며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니 홀연 몸이 어느 바닷가에 이르게 됩니다.
거기서 한 귀왕(鬼王)을 만나는데 그 귀왕의 이름이 무독(無毒)입니다. 그는 그 바라문녀의 효심을 치하한 후 그녀에게 여러 지옥에 대한 설명과 안내를 해 줍니다. 그런데 무독귀왕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를 물어 보더니 그녀가 부처님께 공양한 공덕으로 이미 천상에 태어났다는 소식을 전해 줍니다. 함께 고통 받던 죄인들도 모두 천상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바라문의 딸이 지장보살의 전신이며 무독귀왕은 재수보살(財首菩薩)의 전신이라 합니다. 이런 연유로 무독귀왕이 지장보살의 협시(脇侍)가 된 것입니다.
왼쪽의 인왕역사(仁王力士)
오른쪽의 인왕역사(仁王力士)
왼쪽의 인왕역사(仁王力士) 그리고 녹사(錄使)와 판관(判官) 사자(使者)의 모습
왼쪽의 시왕(十王). 제1 진광대왕(秦廣大王) 제3 송제대왕(宋帝大王)
제5 염라대왕(閻羅大王) 제7 태산대왕(泰山大王) 제9 도시대왕(都市大王)
오른쪽의 인왕역사(仁王力士) 그리고 녹사(錄使)와 판관(判官) 사자(使者)의 모습
오른쪽의 시왕(十王). 제4 오관대왕(五官大王) 제2 초강대왕(初江大王)
제10 오도전륜대왕 (五道轉輪大王) 제8 평등대왕 (平等大王) 제6 변성대왕(變成大王)
보호수 베롱나무 -서산시 제109호 수령 150년-
베롱나무 보호수 안내석
이곳은 근대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스님이 머무셨던 경허당(鏡虛堂)이라 합니다.
경허당 출입구. 출입막대기가 치워져 있으므로 출입이 가하다는 뜻입니다.
경허당(鏡虛堂) 현판
경허당(鏡虛堂) 뒷모습
서산 인근의 절에 경허 스님의 자취가 없는 곳이 있을까마는 대표적으로 머무신 곳은 천장사와 간월암, 그리고 개심사가 대표적이라 할 것입니다. 잠시 상념에 젖어 보았습니다. 우선 생각나는 경허 스님의 선시 한 수가 생각나서 적어 봅니다.
斜陽空寺裏 사일공사리 서쪽으로 해 기우는 공적한 절 안
抱膝打閑眠 포슬타한면 무릎 안고 한가히 졸고 있었네.
蕭蕭驚覺了 소소경각료 소슬한 바람에 놀라 깨 보니
霜葉滿階前 상엽만개전 상엽이 섬돌 앞에 가득하구나.
팔상전(八相殿)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팔상전(八相殿)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은 팔상도(八相圖) 혹은 존상을 봉안한 전각입니다. 팔상(八相)이란 부처님 일대기의 대표적인 중요한 여덟 가지 장면을 가리킵니다.
첫째, 도솔천에서 백상(白象)을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시는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
둘째,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하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셋째, 태자시절, 성문을 나가셔서 세상을 관찰하는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넷째, 무상(無常)을 관하시고 수도하시고자 출가하시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다섯째, 가야산 나무 아래서 극한의 6년고행을 하신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여섯째, 보리수 아래에서 마녀, 마군, 마왕의 항복을 받고 성도하시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일곱째,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을 하신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여덟째, 사라쌍수 아래에서 위대한 열반을 실현하신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등입니다.
팔상전(八相殿)
주련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塵墨劫前早成佛 진묵겁전조성불 부처님은 일찍이 진묵겁 전 성불하여
爲度衆生現世間 위도중생현세간 중생을 제도하려 이 세상에 오셨다네.
巍巍德相月輪滿 외외덕상월륜만 거룩하신 지혜덕상 만월처럼 원만하여
於三界中作導師 어삼계중작도사 삼계에서 가장 높은 삼계도사 되셨다네.
팔상전(八相殿) 현판
이 전각은 무엇일까?
보장각(寶藏閣)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이 건물은 경판을 소장한 전각으로 보입니다. 굳게 닫혀 있습니다.
여기에 주련이 있어 소개해 봅니다. 기둥이 6개라 여섯 개의 주련이 걸려 있는데 중앙의 2구는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서설(序說)』에 나오는데 이 서설을 쓰신 분은 조선시대 초기 함허당(涵虛堂) 수이(守伊 1376~1433 ) 스님입니다. 함허당(涵虛堂) 수이(守伊) 스님의 법명은 기화(己和)이며, 법호는 득통(得通)입니다.
歷千劫而不古 역천겁이불고 일천 겁(劫)을 지나도 예가 아니며
亘萬歲而長今 긍만세이장금 일만 세(歲)를 뻗쳐도 언제나 지금.
보장각 주련의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七重寶樹圍金界 칠중보수위금계 일곱 겹 보수가 극락세계 위요하고
一點閒燈伴白雲 일점한등반백운 한 점의 외로운 등 흰구름과 짝하네
香裊金爐花放鉢 향뇨금로화방발 금로엔 실같은 향연(香煙) 발우엔 꽃이 만발
海日蟠桃開壽域 해일반도개수역 붉은 선도 복숭아로 장생(長生)을 열었다네.
보장각(寶藏閣) 편액
이정표
이 등산로를 통해 전망대, 보원사지,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으로 갈 수 있네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장각 주변의 풍경
개심사 채마밭
무, 상추 배추 등이 실하게 잘 컸네요.
이곳은 무슨 창고 같은데...
개심사 전반을 둘러보고 법우님들이 모인 곳으로 향합니다.
해우소(解憂所)
해우소 옆의 은행나무
무구님과 보명거사님
개심사 공양간. 근래에 지어진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개심사를 대략 둘러보았지만 짧은 시간에 홀로 다니며 사진을 담기에 바빴기에 빠지고 놓친 곳이 많습니다.
허정 스님께서 저녁 공양을 하고 가라고 해서 짬을 내서 부리나케 돌아본 것이라 음미할 겨를도 없이 다녔던 것 같습니다. 미처 못 본 것은 훗날을 기약할 수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이번 공양간에서 사찰음식을 맛있게 먹었는데 이것도 정신이 없어서 담지 못했네요. 공양을 마련해 주신 개심사 스님들과 공양에 수고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개심사 순례로 뵙고 싶었던 칠송회 도반님들과 칠송회와 인연 깊은 제주 남선사 도정 스님, 개심사 허정 스님, 옥천사 무구 스님 등을 만나 뵈어 무척 반가웠고, (사)세상과 함께 이사장 유연 스님 뵙고, 울산의 선재선원의 묵담 스님도 뵙고 고원영 작가도 만나서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그 중 뜻 깊었던 것은 우리 칠송회 회원님들과 스님들께서 마음을 모아 대웅보전 앞에서 손현수막을 들고 환경캠페인을 하며 지구의 환경을 염려하고 채식을 하자,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는 운동을 한 것입니다. 이는 아주 작은 일이지만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신 허정 스님께 감사드리고 이를 추진 하신 무구님과 모든 손현수막 제작에 열성을 다하신 가루라님과 보시를 해 주신 보명거사님과 보현 수인화님, 바쁘신 중에도 한 걸음에 달려 오신 보리심님, 이 모임 총 진행과 연출을 하신 무구님께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제가 환우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위로와 격려를 해 주신 칠송회 회원님께 조그마한 성의를 표시하겠다고 건강과 관련된 위급시 쓸 수 있는 사혈침과 침봉을 칠송회 회원님과 스님께 살며시 드린 비니초 여여행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마음을 씻고[洗心] 마음을 열고[開心] 경지(鏡池)에 마음을 비추어 살피고 가볍고 경건한 마음으로
법당을 찾아가는 개심사(開心寺),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백우 _()_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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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기획되고, 정밀하게 표현된 <충남 서산 상왕산(象王山) 개심사(開心寺)> 레포트.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이 배우면서 백우님의 불교지식은 信心의 바탕이 깊어 포교에도 좋은 자료가 되리라 사료됩니다.
저는 레포트를 읽으면서 '開心寺'의 1)전각 2)운영방식이 進一步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주에서 많이 본 장면입니다. 그러나
해우소(解牛所)... '牛'가 좀 걸리네요.
이런 절집 '해우소'는 순천 선암사의 그 유명한 1) '뒤깐 '2)실상사에서 이용도 했습니다만, 지금은 현대식 해우소를 곁에 신축해서 기념물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자세히 읽어 주시고 평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解憂所에 대한 지적 감사합니다. 바로 수정했습니다.
저는 오자나 잘못을 지적해 주시는 님들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
지적할 만한 것이 있는데 그냥 지나치면 바르게 고칠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해우소도 문화재이고 기념물입니다.
저는 아직 못 가봤는데 은해사 돌구멍 절 해우소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옛날에 통도사와 해인사, 그리고 돌구멍 절에서 수행을 하던 세 분의 도반 스님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서로 자기 절을 자랑하기에 바빴답니다.
제일 먼저 통도사의 스님이,
"우리 절은 법당문이 어찌나 큰지 한 번 열고 닫으면
문 지도리에서 쇳가루가 한 말 석 되나 떨어진다오." 하면서 절의 규모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러자 해인사의 스님이
"우리 절에는 스님이 얼마나 많은지 가마솥이 하도 커서
동짓날 팥죽을 쑬 때 배를 띄워야만 지을 수 있소." 하고 자랑했습니다.
그러자 두 스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돌구멍 절의 스님이
"우리 절 뒷간은 어찌나 깊은지 정월 초하룻날 볼일을 보면
섣달 그믐날이라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오." 하였답니다. 」
감사합니다. _()_ _(())_
개심사에 "경허당"이 있다는 걸 몰랐습니다.
그리고 출입도 가능하다는 걸 보고는 지금이라도 가고 싶은 충동심...^^
참아야겠습니다.
마지막에 돌구멍 절(중앙암)의 뒷간은 제가 얼마전에 중앙암에 참배를 갔을 때 없어졌다는 걸 알았습니다.
제가 그래서 많이 의아해 했습니다.
중앙암 관계자 분이 계시면 여쭈어 보고 싶었는데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행이 있어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여쭈어 보아야겠습니다.
백우님!
소중한 개심사의 길고도 긴 포스팅 고맙습니다...수고하셨습니다_()()()_
개심사 그림잘보고출근합니다좋운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