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9
자! 시작입니다.
호텔에 일상에 필요한 짐들을 나흘간 맡기고 트래킹에 요긴한 것들만 챙겨 길을 떠났습니다.
아름다운 길들을 따라 버스를 타고 테아나우마을까지 이동했습니다.
강을 따라 이번엔 배를 탔지요.
테아나우강은 군데군데 크리스마스트리가 꽃을 피우고 길이가 60km
깊이가 400여m, 평균깊이는 200여m가 되는 엄청난 강입니다.
쾌속정을 타고 트래킹 시작입구까지 이동하는데
엔진에서 물소용돌이가 아무리쳐도 설레이는 우리에겐 유쾌한 음악처럼 경쾌합니다.
밀포드 트래킹.. 세계 3대 트래킹 코스 중의 하나라는 바로 그곳...
눈이 내려 온 세상이 메리 크리스마스 같은 우리나라를 떠나
따뜻한 여름 나라라던 뉴질랜드에 오면서도 그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두고 온 게 좀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등산복이라고 준비해서 입고 같던 폴라폴리스나 다운자켓이 이렇게 감사할 수가...
트래킹코스는 참 추웠습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준비하라던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아름다운 테 아나우강에 가랑비가 내리던 아침.
우린 마음 설레며 배를 탔고
드디어 트래킹 입구인 글래이드 하우스를 향해 한 발자국 떼는 겁니다.
시작은 멋진 식물도감을 펼쳐 놓은 듯 호기심만 더 많이 생기는 수많은 나무들...
고사리류의 양치식물은 종류도 다양하고
너도밤나무를 타고 오르는 이상한 이끼들이 괴기스럽기도 하고...
두리번 거리며 30분을 걸으니 글래이드하우스가 나타납니다.
오늘 밤 잠 들 곳이죠..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식물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잎을 씹으면 매운 맛이 나서 페퍼나무라고 불리는 잎사귀를 가진 나무부터
양치식물치고는 좀 너부데데한 잎을 가진 끼오끼오까지...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바지에 흙이 엉망이 되도록 첫날의 설레임으로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비가 와서 질척해진 산길이라...
마음이 밝으면 그런 길도 평탄대로처럼 마음이 가볍습니다.
글래이드 하우스는 산장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이층 침대 두 개로 한방이 되고 낯선 사람과도 파트너가 되죠..
우리는 다행히 세 사람이어서 한 방에 투숙했습니다.
너무 작아 보이는 침대..오죽하면 남편 키가 닿을 것 같아 누워서 재 보기까지 했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금방 친구가 되어 다들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고요..
너무 추워서 물주머니 하나씩이 선반에 있어 뜨거운 물을 담아다 발 아래에 두고서야 잠들었습니다.
사진에서처럼 옷을 있는대로 껴입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죠.
1.10
아침에 깨어나니 물안개가 온산을 휘감아
절로 탄성이 나오고 높은 산아래로 어제내린 비가 가는 폭포들을 이루어
어디다 렌즈를 돌려도 사진 작가를 만들어주는 마법같은 세상입니다.
여기선 새벽이면 그날 낮 점심을 샌드위치로 자신이 준비해야 합니다.
온 가족이 새벽같이 나가 온갖 솜씨로 샌드위치를 만들고
과자와 쵸콜렛을 챙겨들고는 남들보다 늦을새라 쫓아나갔건만 우리팀이 꼴찌입니다.
내일은 조금 더 서둘러야지...
멋진 클린턴 강이 밤새 내린 비로 불어 올라 출렁거리는 다리가 겁이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건 글을 위해서라도 찍어 와야죠.
물굽이를 돌아 걸으며 나무구경도 하고 한눈 팔기에 바쁜 나였지만
남편은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저를 위해
늦어도 괜찮으니 볼 거 다 보라고 하고 사진도 찍어줍니다.
평소라면 물이 작아 데드호수라고 불리우는 이 자리가 숨가쁜 물살이 휘돌아치고 있네요..
정말 하느님의 손길로 이룬 자연의 위용이 위풍당당해서
한없이 작은 저를 느끼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러나 그것들 한가슴으로 품고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뉴질랜드의 나무들은 왜 그렇게 위압적인 거에요?
이끼들이 하늘끝까지 나무를 휘감고 오르고
어디나 숨이 막힐 것처럼 나무들로 가득해서 때론 압도당하고
돌아서면 텅 빈 하늘.. 가슴이 뻥 뚫리고..
힘든 길이었지만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일행이 너무 앞서 걸으니 서둘러 가야 했는데 어디 하나 소홀할 수 없어
해 지기전에 돌아가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남편은 대학시절 저를 만나기 전엔 산악반 대원이었던 경험을 살려
오십분 걷고 십분 쉬기를 나중에 기억해 내어 트래킹에서 우리의 건강을 지켜 주었습니다.
하루 날씨가 비가 오다가 햇살이 내리쬐다가
시원했다가 추웠다가 사계절이 하루에 범벅이 됩니다.
점심을 먹을 땐 너무 추워 이가 부딪힐 정도였습니다.
hut라 불리는 쉼터(개인적인 트래킹을 하는 이들을 위한 숙소) 의 화장실을 이용하고 물을 보충하고
따뜻한 차와 우유를 가이드들이 준비해서 넉넉히 제공합니다.
그게 럭셔리트래킹이라는 것의 정체였습니다.
아들이 만든 샌드위치와 제것이 조금 더 나아
내일부터는 도시락 준비는 나만 하고
과자와 쵸콜렛은 조금씩 줄이기로 했고
아빠는 일찍 아침식사후 짐을 정리하기로 역할분담을 했습니다.
이쯤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
샌드플라이(sandfly) 라는 사람의 피를 빠는 파리 이야기..
걷는 내내 우리를 따라 붙어 여름날 모기처럼 어디서든 맘 편히 쉬도록 두지를 않습니다.
곤충 퇴치약을 뿌리기를 여러 차례.
입 안으로 들어오는 그 약의 쓴 맛때문에 뿌리는 순간 우리도 고통스러운데 녀석들은 결코 포기를 안합니다.
어제 저녁 물린 곳을 긁느라 다들 힘들어 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나무들의 터널이 줄창 이어지고
길가까지 쳐들어 온 이끼들이 폭신해보여 만져 보았더니
부드러운 것부터 딱딱한 것까지 제각각입니다.
뉴질랜드의 산들은 돌과 모래투성이인지 큰 나무들이 오래 뿌리내리고 있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낭만적인 것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젤 꼴찌로 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은 다 했습니다.
아들이 폭포 아래 앉아 오카리나로 타이타닉을 연주하고 앵콜 노래까지 연주했습니다.
영화 미션의 한 장면처럼 장엄한 자연의 물소리 반주에 협연하는 아들모습이 멋져 보였습니다.
잘 자라 부모 걱정 안시키고 제 몫을 하는 애라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이 뭉클 솟았습니다.
"하느님 저애를 제게 선물로 맡겨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당신께 바치는 봉헌의 노래겠지요?"
잡목숲을 헤치고 온 듯 나무로 가득한 세상이었다가
이렇게 온세상의 뚜껑을 연 듯 환하게 너른 들판이 나타납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눈인듯 안개인듯 흰 모자를 썼습니다.
졸졸 흐르는 작은 냇물엔 팔뚝만한 송어도 한 마리 헤엄칩니다.
뉴질랜드의 자연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자연의 크기를 몇배는 뻥튀기해서 그려야 하지요.
이렇게 잠시 서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우린 연신 팔을 휘둘러야합니다.
파리 때문에....사실 그래서 낙오도 못했을 거에요...
일본의 산행팀들은 망사로 된 파리망을 모자에 얹어 얼굴에 쓰고 걷고 돌아 다닙니다.
답답해 보이기는 해도 다음에 온다면 우리도 하나 준비해야할 듯해요...
하루의 피로가 누적되어 힘든데 더운 목욕물이 나오지 않네요...
뉴질랜드 여행내내 가장 어려운 건 목욕물 쓰는 거였습니다.
롯지엔 빨래를 하고 말리는 드라이실이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여분의 옷이 필요 없습니다.
더운 바람이 나오는 방이라서 빨래를 널고 한두시간이 지나면 금방 마릅니다.
하루 일정이 빡빡해서 멋내고 폼재는 건 다 때려 치우기로 했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저녁엔 내일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잘못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걸 돌려 보낼 마지막 기회를 주겠답니다.
우리는 사식으로 준비한 음식과 여분의 옷들이 짐이 된다고 느껴져서 바로 챙겨 보냈습니다.
내일은 산정상을 올라야 하는 가장 고된 일정이랍니다.
그러나 가져온 체리와 포도로 작은 파티를 가족끼리 갖고
팀원들끼리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식사로는 사슴고기와 생선요리중 택하라고 합니다.
전 생선이었고 아들은 사슴이었는데 마치 장조림같은 맛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을 위해 준비한 상추에 고추장을 뿌려 먹자
곁에 얹은 잉글랜드인이 핫소스냐며 찍어 먹어 보더니
손으로 혀를 식히며 정색을 해서 한바탕 웃었습니다.
제가 건강에 좋은거라고 말했는데도 더는 손을 대지 않더군요.
외국인들과 한 상에서 식사를 하는 좋은 시간에 자기 표현을 다 못하니 조금 답답했는데
아들이 도와 주었습니다.
오늘 하루 걸어온 거리는 10마일 그러니까 16km를 걸었습니다.
발 바닥이 아파왔습니다.
소개영상으로 본 그림은 아름다왔지만
그 그림을 다 걸어서 넘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숙제인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