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마지막 10년] [2부·2] "번호표 뽑는 화장터·현찰 세는 장례식장… 패스트푸드점 같은 한국 장례 풍경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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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02 01:52
[닐랜드 교수가 본 '한국식 죽음']
"고향 아일랜드선 棺 열어두고 가족·친척·이웃·지인이 떠난 이 얼굴 보며 작별인사
故人에 대한 애도의 자리가 한국선 가장 서글픈 공간으로"
워렌 닐랜드(Neiland·35) 오산대 교수는 작년 6월 고향 아일랜드에 돌아가 외할머니상을 치르고 왔다. 당시 외할머니는 81세. 환갑 때부터 21년 동안 파킨슨씨병을 앓았고 막판엔 폐렴이 왔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마지막 10년은 같은 병을 앓는 한국 노인들보다 훨씬 평온했다. 외할머니는 온몸이 굳어 혼자 몸을 씻거나 용변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래도 요양병원에 가지 않고 살던 집에 머물렀다. 나라에서 매주 2~3회 의사와 간호사를 무료로 보내줘서 가능했던 일이다. 병원 갈 일이 생기면 휠체어·자동차·버스·기차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줬다. 병원 주차도 공짜였다.
막내 이모가 외할머니와 20년 넘게 함께 살며 간병했지만 '일방적인 희생'이 되진 않았다. 정부가 어머니 모시는 비용을 각종 바우처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2~3주일 동안 할머니는 자식들과 친척들을 차례로 집으로 불러 작별 인사를 했다. 이후 몸 상태가 나빠지고 설사가 잦아져서 1주일간 큰 병원에 입원했다가 마지막 날 집 근처 개인 병원으로 옮겨서 가족을 잘 아는 동네 의사의 보살핌을 받으며 숨을 거뒀다. 의사가 의료용 마약을 처방해 고통 없이 평화로웠다.
닐랜드 교수 가족은 그 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장을 치렀다. 하지만 서울에서 흔히 보는 장례와는 많이 달랐다. 첫날은 '패밀리 뷰잉'(family viewing)을 했다. 관을 열어둔 채 가까운 가족·친척만 찾아와 고인의 얼굴을 봤다. 둘째 날은 이웃과 지인들이 검은 옷을 입고 찾아와 고인을 봤다. 그날 밤 장의차로 관을 성당까지 운구했다. 셋째 날 성당에서 장례 미사를 드렸다. 동네 사람들이 다 같이 묘지까지 따라갔다. 매장을 마친 뒤 유족이 동네 선술집(pub)에서 간단한 음식과 맥주를 냈다.
3일장 내내 '주인공'은 할머니였다. 유족은 장례식장과 성당에 할머니의 옛날 사진을 뒀다. 조문객들이 그걸 들춰보며 추억담을 나눴다. 장례 미사 때 장손자가 추도사를 읽었다. 선술집에 모여서도 다들 고인 얘기를 했다.
닐랜드 교수의 눈에 비친 한국 풍경은 어떨까. 그는 "한국을 좋아하지만 한국식으로 죽거나 묻히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환자 가족이 간이침대에서 새우잠 자며 간호하는 장면, 고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조문객이 북적대는 장면, 5만~10만원씩 현금을 헤아려 흰 봉투에 넣는 장면, 유족과 조문객이 고인과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나누는 장면, '○○기관 대표 ○○○' 리본이 달린 조화(弔花)가 늘어선 장면….
우리에게 익숙한 이런 풍경이 닐랜드 교수 눈엔 기이하게 비쳤다. 수도권 화장장에 갔을 땐 여러 유족이 한 공간에 뒤섞여 각자 번호표 받고 북적대는 광경에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고인을 보내는 건 굉장히 개인적인(private) 경험인데, 그곳 풍경은 꼭 패스트푸드 식당 같았다"고 했다.
"아일랜드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애도하고 존경을 바치는데 여기선…. 내 인생에서 가장 서글픈 공간이었어요. 복지가 부실한 측면도 있겠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죽음을 통해 찾아가는 영원한 삶의 의미
태어남, 삶 그리고 죽음. 이것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큰 흐름이다. 들풀이나 곤충과 같은 미물에서 인간 그리고 은하계의 무수한 별들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살고, 죽는 과정을 거친다.
그림의 삼각형은 빛을 펼칠 때마다 내 손바닥에 나타나는 형태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단순한 도안이나 상징물이 아니라 실제 이 힘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심벌 마크다.
삼각형의 세 개의 변은 각각 태어남, 삶, 죽음을 뜻하며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침 없이 서로 동등하게 맞물려 이어진다. 다시 말해 태어남, 삶, 죽음 중 어느 하나도 더 중요하거나 혹은 덜 중요하지 않으며, 우주는 이 세 가지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는 섭리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삼각형 안에 우주를 뜻하는 큰 원이 존재하고 그 안에 우주로부터 본성을 물려받은 ‘진정한 나’, 빛viit마음을 의미하는 작은 원이 들어 있다. 삼각형 안에 이 원이 들어 있는 것은 우주의 모든 생명 가운데 그 무엇도 태어나고, 살고, 죽는 이 우주의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즉,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선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생명이 탄생했고, 바로 나는 지금 이 순간 그 소중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생명은 유한하며 어느 시점이 되어 한계에 이르렀을 때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지게 된다.
죽음은 육체를 ‘나’에게서 떠나보내는 과정일 뿐 끝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몸이 ‘나’인 줄 알고 열심히 먹이고 입히고 가꾸고 치장하지만, 이 육체조차 때가 되면 ‘나’와 분리해 떠나보내야 한다. 마치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매미가 되듯 내가 한동안 머물러 있었던 몸을 벗어나 또 다른 영역, 비물질의 세계로 넘어간다.
죽음의 의미를 알면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 또한 분명해질 것이다. 어떻게 사는 삶이 의미 있는지, 죽어서 허무하고 한스럽지 않은 삶이란 무엇인지, 영원한 행복으로 이어지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죽음을 통해 예수나 부처와 같은 성자들께서 사랑과 자비를 나누거나 베풀 때는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조차 모르게’ 할 것이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무주상보시’를 하라고 한 의미를 알게 된다. 즉, 죽음 이후에도 나를 밝은 곳으로 이끌어줄 진정한 내면의 복은 남에게 과시하거나 드러냄 없이 순수하게 지을 때 쌓이기에 진정한 복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빛viit은 내 안의 나, 진정한 내가 유래한 바로 그곳에서 오는 힘이다. 따라서 이 힘과 함께하는 죽음은 내 마음의 고향, 어머니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같다. 태어나 성장하고 노화되는 일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흐름에 따른 것이듯 죽음 또한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지 결코 고통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빛viit과 함께하는 죽음이야말로 이론이나 생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힘을 통해 현실에서 직접 체험하는 웰다잉(well-dying)이다.
출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P. 208~210
내게 오는 길 - 성시경
지금 곁에서 딴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 그대
설레는 마음에 몰래 그대 모습 바라보면서 내안에 담아요
사랑이겠죠 또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죠
함께 걷는 이 길 다시 추억으로 끝나지 않게
꼭 오늘처럼 지켜갈께요
사랑한다는 그말
아껴둘껄 그랬죠
이제 어떻게 내맘 표현해야 하나
모든것이 변해가도 이맘으로 그댈 사랑할께요
망설였나요
날 받아주기가 아직 힘든가요
그댈 떠난 사랑 그만 잊으려고 애쓰진마요
나 그때까지 기다릴테니
사랑한다는 그말
아껴둘껄 그랬죠
이제 어떻게 내맘 표현해야 하나
모든것이 변해가도 이 맘으로 그댈 사랑할께요
눈물이 또 남아있다면 모두 흘려버려요
이 좋은 하늘아래 우리만 남도록
사랑할 수 있나요
내가 다가간만큼
이젠 내게 와줘요
내게 기댄마음
사랑이 아니라 해도 괜찮아요 그댈 볼수 있으니
괜찮아요 내가 사랑할테니
가사 출처 : Daum뮤직
첫댓글 웰다잉,,누구나 꿈꾸는 미래죠, 빛속에서 사는 우리들의 미래
장례문화는 나라 마다의 풍습인듯합니다, 외국인이 보는 관점이 좀 의아 하다지만 오랫동안 그런 풍습에서 차츰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테지요.
초광력씰의 삼각형 태어남과 삶. 죽음, 어디에도 치우침없이 소종함을, 참 나의 빛마음을 찾아 보람된 삻이 되어야함을 깨닫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영원한 내 본향 어머니 품에 안기는 것이기에 죽음이 두려운것이 아니라 기다림이 되는 삶 살아보렵니다.^^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웰다잉의 소중한 의미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 윤진희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낼랜드교수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한국에 빛viit이라는 실제적인 힘을 통해 현실에서 직접 체험하는 웰다잉(well-dying)이 있음을 알면 더 행복한 충격이 느껴지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자료입니다
함께 나눠주어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좀 요란스럽긴하죠 3일동안 계속밤새우고 술마시고 고스톱치고... 장례에대한문화는제각기다르니까...좋은글 감사합니다^^
빛을 알고 빛을 통해 태어나서 삶을 살아가며 웰다잉하기까지 이 모든 과정의 우주마음 법칙에 순응합니다. 죽음을 통해 영원한 삶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감사합니다.^^
윤진희 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웰다잉의 의미를 샐각해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웰다잉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됩니다~**감사합니다
윤진희님 죽음과 장례문화에 관한 글 감사합니다 ^^
오늘 학회장님 말씀을 듣고 요즘 우리 장례문화가 씁쓸하게 느껴지네요 병원에서 죽어서 냉동실에서 살아나도 못깨어난다니...
웃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