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 어느 과학자가 마추픽추를 탐사하던 중에 있었던 일화다. 갈 길은 먼데 한 무리의 짐꾼들이 걸음을 멈춘 채 움직이지를 않더란다. 마음이 급한 과학자가 거듭 재촉을 해도 소용이 없더란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다시 걷기 시작하는 짐꾼들에게 이유를 물으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그렇게 빨리 걸으면 영혼이 따라오지 못한다고 대답하더란다. ‘충청도의 산’팀은 마추픽추의 짐꾼 같다. 산에 들면 특별한 일이 없는한 느긋하게 자연을 소요한다. 자연에 깃들어 있는 순간순간의 황홀을 온 몸으로 느끼며 감격하며 느리게 걷는다.
청석재 턱밑까지 끈질기게 따라오던 맑고 어여쁜 계류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가지버섯, 광대버섯, 그물버섯들이 자주 눈에 띄는 길은 어느새 청석재에 다다른다. 사방 조망이 터지면서 가파른 경사에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노송과 고사목이 자아내는 절경은 동양화가 따로 없다. 청석재는 보배산과의 갈림길이다. 멋지게 늙은 10여 그루 노송이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듯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노송 앞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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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구나무골에서 주차장으로 이어진 하산길.
- 청석재에서 정상까지는 고작해야 0.6km지만 쉽지 않은 난코스다. 풀숲에서 고개를 길에 빼어든 노란 원추리 꽃송이의 자태가 곱다. 안장바위에서는 보배산 능선이 코앞에 버티고 있고 좌측으로 군자산이 보인다. 중절모바위에 이르면 덕가산의 품에 안긴 천년고찰 각연사가 한눈에 조망된다. 각연사에서 청석재로 오르는 길은 지역주민들의 식수원보호를 위해 폐쇄한 구간이다. 식수원보호, 위험구간, 또는 휴식년제 등을 이유로 폐쇄된 등산로에 원망보다 먼저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는 비로소 인간의 발길에서 놓여나 평화 속에 자연의 본성을 회복할 저들의 엄청난 자생력을 믿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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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구나무골은 신선폭포, 강선대, 쌍곡폭포 등 여러 폭포가 산객의 더위를 잊게 한다.
- 버선코바위에 이르면 누구라도 배낭부터 내려놓는다. 멋들어진 노송에 둘러싸인 기암의 절경 속에 여기 저기 자리 잡고 앉아 휴식을 취하는 산객들도 그대로 한 점의 풍경이 되고 만다. 여기까지 올라온 수고를 달래주려는 듯 잠시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 정상에 닿는다. 산객들은 정상석 주변이 아닌 반대쪽에 몰려 있다. 폐쇄된 구봉코스의 비경이 발아래 펼쳐지는 곳이다. 거기 시야를 가로막으며 사방을 둘러친 흰 줄. ‘탐방로 아님’, ‘위험’, ‘추락주의’를 알리는 표지판이 주렁주렁 매달린 저 울타리만 없다면… 그러나 나도 알고 그대도 안다. 위험지대와 안전지대의 경계에 놓인 저 흰 줄 한 가닥의 엄중한 힘을.
멀리 운무 속에 봉우리를 감춘 백두대간의 희양산과 구왕봉, 장성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배경으로 낙락장송과 기암 앞에 유아독존 인증 샷을 찍는 일은 주변의 바위에 둘러쳐진 흰 줄의 방해로 인해 여기선 재미가 없다. 그러나 실망은 금물, 정상을 지나 살구나무골로 하산을 시작하면서 정상에서의 서운함은 몇 곱절 보상받는다.
암릉지대에 가파르게 놓인 철계단을 내려서기 시작한다. 동양화 화폭 같은 길이 굽이굽이 급경사길이다. 국립공원관리구역답게 곳곳에 안전을 위한 설치물이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마당바위 조망터의 절경이 다시 한 번 산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저만큼 앞서가던 윤이 묵은 낙엽더미에서 무언가를 찾아내 일행을 불러 모은다. 윤의 손바닥에 놓인 동충하초 뿌리 부분엔 썩어 흙이 된 노린재의 두 눈이 그대로 선명하다.
절말과 각연사와 악휘봉으로 갈리는 사거리 안부는 마당바위에서 20여 분 거리다. 각연사와 악휘봉 방향 등로 역시 폐쇄구간이다. 가지 말라니 더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후일 황홀한 만남을 기대하며 미련을 버리고 살구나무골로 접어든다.
고도를 완전히 낮춘 산은 울창한 숲길로 이어진다. 달걀버섯군락과 세발버섯의 출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던 일행은 얼마 안 가 탄식의 비명을 내지른다. 누군가 노란망태버섯군락을 참혹하게 짓밟아 놓은 것이다. 보기도 아까운 것을 저리 짓밟아 뭉개놓은 심리가 궁금하다.
살구나무골 계류를 따라 내려오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고 맑은 물 속으로 뛰어든다. 하산길은 서너 번 계류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신선폭포와 강선대, 쌍곡폭포를 만난다. 탐방지원센터의 화장실은 정갈하기 이를 데 없고 맞은편 쌍곡폭포의 물빛은 여전히 차고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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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길잡이
○ 떡바위~문수암골~청석재~정상~마당바위~안부사거리~신선폭포~강선대~쌍곡폭포(탐방지원센터)~쌍곡휴게소(절말)
산행가이드 일곱 개의 봉우리가 보석처럼 아름답다 하여 칠보산, 옛날에는 칠봉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쌍곡구곡 매표소를 지나면서부터 숨이 막히는 절경이 펼쳐진다. 속리산 국립공원지역으로 입산통제구간이 많다. 보배산에서 칠보산으로의 연계산행도 2017년 2월까지 불가능하다.
각연사에서 청석재까지의 구간도 식수원보호를 이유로 통제되어 있다. 정상에서 남서쪽으로 환상의 구봉코스 역시 통제구간이다. 떡바위에서 청석재, 정상, 정상에서 각연사와 덕가산, 악휘봉으로 갈리는 안부사거리를 거쳐 살구나무골(절말)로 내려오는 구간과 장성봉 구간만 열려 있다.
빠른 걸음으로 3~4시간, 느린 걸음이면 5시간 이상 걸리는 짧은 코스이나 큰 산의 위용을 아낌없이 갖추고 있는 산이다. 살구나무골을 기점으로 오르게 되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보이는 가파른 바위산의 위용에 지레 질릴 것이나 노송과 바위가 빚어내는 동양화 같은 절경에 힘드는 줄 모르고 오르는 산이다. 위험구간엔 안전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노약자나 가족산행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단 노약자의 산행시에는 충분한 식수와 넉넉한 시간이 필요하다.
산행 후 쌍곡계곡에서의 물놀이와 주변 드라이브까지의 하루 일정이 황홀한 곳이다. 봄가을 건조기에는 입산이 통제된다. 산에 오르지 못하는 일행을 배려한 쌍곡휴게소 원점회귀 산행도 좋으나 떡바위에서 쌍곡휴게소까지의 거리가 불과 1km이므로 절말을 기점으로 떡바위로 하산해 합류하는 것도 좋다.
교통
○ 대중교통
동서울버스터미널에서 괴산시외버스터미널간 버스가 1일 18회(1시간 50분 소요) 운행한다. 괴산터미널에서 칠성 쌍곡행 버스는 1일 4회(30분 소요) 06:20, 08:30, 13:45, 18:40 버스가 있고 쌍곡에서 괴산으로 나올 때는 06:50, 09:00, 14:15, 19:10 버스가 있다. 아성교통(043-834-3354)
○ 승용차
중부고속도로~증평IC~괴산~칠성~쌍곡 / 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IC~가물(장연)~칠성~쌍곡
숙식 (지역번호 043)
숙소는 송화펜션(832-5595), 서당골사랑방펜션(832-1253), 떡바위산장펜션(832-9984)이 있다. 식당은 토종닭도리탕, 오리탕, 산채정식이 주메뉴인 덕암식당(832-5696), 백숙, 오리탕이 주메뉴인 한수식당(832-5596), 도마골식당(832-5783), 자연산 버섯찌개와 매운탕이 별미인 쌍곡휴게소가든(832-6667)이 있다. 괴산방면으로 유명한 맛집이 많다. 매운탕, 민물고기찜, 쏘가리회 전문인 괴산매운탕(833-7984), 오리탕, 민물회, 민물매운탕 전문인 괴강관광농원(832-8877)
/ 글·사진 차은량 수필가. 산문집 <꽃멀미>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