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13회
“아! 참!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말이 새버렸네요.”
여자는 목이 마른지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그는 약간의 긴장을 늦추기 위해서 한 모금
마셨다.
“처음 그렇게 셔츠를 사 가신 부인께서 두세 번 더 오신 후에 제가 약간의 손장난을 했답니다.
그 손장난이란 저의 매장에 새로운 셔츠가 들어오는 날 첫 눈에 띄는 100호 셔츠에 저만 알아
볼 수 있는 표시를 해 두었거든요. 그리고 부인께서 오시면 제가 준비 해 놓은 그 셔츠를 권해
드리곤 했었지요. 물론 부인도 두말 안하고 제가 드리는 셔츠를 가지고 가셨고요.”
“표시라니?”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입는 셔츠에 특별한 표시가 있는 것을 느낀 적이 없었다. 아니 다
른 사람도 그가 입은 셔츠를 보면서 이상한 표시가 있다는 말을 한 적도 없었고 아내에게서도
그런 말을 들은 기억은 없었다.
여자는 의문스러운 표현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그를 보면서 큰 소리로 웃는다. 무척이나
재미있다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세 번째인가 부인이 가신 후에 제가 해 놓은 표시라는 것은 바로 셔츠의 회사 이니셜 JB에
해 놓는 것이었어요. 보세요. 이니셜 바로 밑에 하얀 실로 세 번 바느질 해 놓은 것을요. 그냥
보시면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 보일 거예요. 아까 제가 선생님이 바로 그 부인의 남
편이라는 것도 그것을 보고 알아본 것이었고요.”
그는 셔츠의 주머니 바로 위에 새겨있는 이니셜 JB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처음에는 모르겠
더니 더 자세히 살피자 J의 밑 휘어지는 곳에 흰 색 실로 세 번 꿰맨 자국이 보인다.
“보이시죠? 그게 제가 해 놓은 표시예요. 저는 매번 부인이 오시면 그 셔츠를 꺼내서 드렸
거든요. 물론 다른 물건과 특별하게 다른 것은 아니었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 새 상
품이 들어오면 제 눈에 처음 들어오는 것으로 그렇게 해 놓았지요. 부인은 제 기대를 저버리
지 않았고 늘 그 셔츠를 사가지고 가셨어요.”
그녀가 잠시 뜸을 드리려는지 남은 맥주를 마시고 다시 한 잔을 주문한다. 벌써 그녀가 마신
맥주가 세 잔이다. 어지간한 여자라면 더 이상 마시지는 못할 양이다.
“그러다가 삼 년 전부터 부인이 오시지 않는 것이었지요. 저는 이사를 가셨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새 상품의 첫 셔츠에 제가 하던 표시를 그만두지 못했어요. 표시를 해 두었
다가 계절이 지나면 저는 그 셔츠를 제 집으로 가지고 갔지요. 아마 열 한 갠가 열두 갠가 있을
거예요.”
여자가 말을 마치고 그를 바라본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을 되받아 치는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작은 이슬이 맺혀있다고 느낌 때쯤
“아! 선생님, 저 담배 한 대 피워도 되요?”
그는 그녀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떡이는 것으로 허락 아닌 허락을 해 주자 여자
는 핸드백에서 보라색 담뱃갑을 꺼낸다. 엔츠였다. 그녀의 입에 물린 담배가 빨간 불 빛을 내고
사그라질 때쯤 그녀의 입에서는 담배 연기가 뱉어진다. 담배 연기는 그의 코앞에 다다르다가 흩
어진다. 여자가 내 뱉는 담배 연기보다는 그녀가 담배 연기를 내 뱉는 것을 핑계로 한 숨을 쉬
고 있다는 느낌이 그의 머릿속을 타고 들어온다. 그도 담배를 꺼낸다. 불을 붙인다. 한 모금 깊
이 빨아들인다. 그리고 한숨처럼 담배 연기를 내 뱉는다. 여자가 그의 그런 행동을 조금은 흔들
리는 눈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