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보의 생활표
이 북 명
경비계(警備係) 문 앞에는 쓸어 나오는 직공들의 얼굴을 하나도 빼지 않고 지키고 선 군중으로 가득 찼다. 급료 주머니를 타가지고 금액도 계산할 기운이 나지 않아서 그냥 포켓에 집어넣고 빈 벤또를 옆에 끼고 나오는 민보(閔甫)는 모여 선 군중에게 증오의 눈살을 던지면서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그 군중들이란 친척이나 가족들이 아니다. 빚쟁이들이다. 오늘이 급료일이니까 쌀값, 나뭇값, 장값……을 받으러 몰려든 반갑지 않은 군중이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 빚쟁이한테 붙잡혀서 말시비가 시작된다. 민보는 그런 광경에는 곁눈도 떠보지 않았다. 민보는 자기 팔을 끌어당기는 사람이나 자기 이름을 부르는 빚쟁이가 있지나 않을까 하고 가슴이 한줌만큼 되어서 군중의 사이를 얼른 빠져나왔다. 요행히 민보에게 덤벼드는 빚쟁이는 없었다. 민보는 후ㅡ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근심 주머니…….
민보는 급료 주머니를 어루만지면서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민보뿐 아니다. 종업원들은 급료 주머니를 근심주머니라고 부른다. 그리고 급료일을 ‘근심 데이’라고 부른다. 아니 이 명사가 가장 적절한 명사일는지 모른다.
그도 술쯤은 사양할 줄을 모르더니만―민보는 아까 직장에서 충호와 춘식이가 이야기도 할 겸 노래도 들어 볼 겸 오래간만에 색시 술집에 가서 놀아 보자고 팔목을 잡아끄는 것을 ‘아니, 집에 볼일이 있어’ 하고 거절하였다. 민보는 ‘아니’ 하고 거절하는 데 여간 힘들지 않았다. 그때 민보의 생각은 이러하였다.
셋이 가서 술을 마시면 한 사람이 두 순배씩 사더라도 한 순배에 30전씩이니까 1원 80전은 달아나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혼자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선술집에 들어가서 소주 너덧 잔 마시고 집에 가면 돈도 이익되고 얼근히 취할 수가 있지 않은가!
길을 결으면서 민보는 이렇게까지 양심에 없는 일을 하지 않고는 안 될 자기의 딱한 사정을 생각할 때에 원통하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미웁기도 하였다. 민보가 다모토릿집(선술집)에서 나왔을 때에는 넉 잔의 소주가 전신에 퍼져서 똑 말하기 좋게 되었다. 민보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자기 집(셋집) 옆까지 왔을 때 자기 아내의 악쓰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글쎄 주인이 들…… 주겠다는…… 성화를…….”
빚쟁이가 왔군…… 민보는 이렇게 직각하고 대문을 들어섰다. 만화에 나타나는 멍텅구리같이 생긴 쌀장수가 마당에서 장부를 뒤적거리면서 아내를 조르고 있다. 순간 민보의 가슴에는 발작적 분노가 치밀었다.
“돈이 모자란다면서 또 술을 마셨소? 나는 하루 삼시 먹고는 이 성화를 못 받겠소.”
남편을 보더니 아내는 울상을 지어 가지고 악을 쓴다.
“듣기 싫다!”
민보는 이렇게 툭한 소리를 치면서 아내를 노려본다. 그리고 아내를 노려보던 그 무서운 눈초리를 돌려서 쌀장수를 쏘아본다.
“선생님, 이거 미안합니다.”
쌀장수는 허리가 부러지게 인사를 하면서 안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지어 웃는다. 민보는 쌀장수를 욕해 주려고 입술을 들먹거리다가 윗방문을 사납게 열고 들어간다. 빈 벤또를 아랫방에 던지는 소리가 나고 무엇을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여보, 여편네를 조르면 돈이 나오겠소. 쌀값 얼마요.”
민보는 톡톡하게 욕하여 주고 싶었으나 내달에 또 외상 받아먹을 일이 생 각되었다.
“모두 서 말 반(三斗五升)인데 한 말에 2원 50전씩 8원 75전입니다.”
쌀장수는 연방 허리를 조아린다. 쌀은 백미란 이름뿐 현미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싸라기가 많고 돌이 많아 밥을 지어 놓으면 기름기가 도무지 돌지 않는 이름 좋은 백미다.
아랫방에서 어린애에게 젖을 물리고 앉았던 아내가 아까의 악은 어디로 달아났는지 웃어 보이면서 윗방으로 들어가더니 남편의 귀에다 입을 딱 대고,
“쌀값 모두 주지 마오. 모두 주면 내달부터 외상 안 주오.”
하고 남편에게 주의를 시켜 준다.
“돈 받으오.”
하고 민보는 돈을 내밀면서,
“6원만 받으오. 2원 75전은 내달 간조에 받소.”
“선생님, 이러지 말구 모두 지불해 주시오.”
쌀장수는 돈을 받아서 왼손에 쥐고 또 오른손을 내민다. 주는 돈을 적다고 안 받으면 한 푼도 못 받는 예가 이 거리에는 얼마든지 있다.
“다 짤리우고 남은 돈이 그것뿐이오.”
민보는 배짱을 부린다.
“이렇게 하면 어떡합니까. 남는 것도 없는 것을 한 달씩 외상으로 드리지 않습니까. 청산합시오.”
민보는 케― 하고 트림을 하면서 슬그머니 드러눕는다.
“그래두 우리만치 쌀값 잘 물라고 그러오.”
민보의 아내가 남편의 곁에 앉아서 한몫 낀다.
그러나 쌀장수는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으면서 어떻게든지 모두 받자고 성화를 부린다.
“돈이 있으면 요사이 물지요.”
민보의 아내의 말이다.
“그럼 어느 날 몇 시쯤 오랍니까?”
쌀장수는 연필알을 혀끝으로 빨면서 장부를 뒤적거린다.
“아 왜 이리 딱하게 굴어? 떼먹지 않아.”
민보의 음성이 점점 높아 간다.
“아니 딱한 건 접니다. 이렇게 외상값을 잘 안 물어 주고야 어디 거래할 재미가 있습니까?”
“참 딱딱하오. 내일이래두 꾸어 준 돈이 오면 상점으로 가져가리다.”
민보의 아내는 민망스러운 듯이 얼굴을 찌푸린다. 민보는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그럼 아지머니, 내 나흘 지나 초닷샛날 저녁때 오리다. 준비해 두시오. 안녕히겝시오.”
사람 냄새도 나지 않는 게 돈푼이나 있다구…… 민보는 일어나 앉으면서 후― 하고 한숨을 내쉰다.
“그래두 저 모양에 첩이 둘씩 있다오, 첩의 집이 바로 궁궐 같다오…… 에그 이놈의 새끼가 또 오줌을 싼다. 엣 쌍간나새끼.”
아내는 삼룡의 엉덩이를 넓적한 손으로 갈긴다. 민보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아서 천장만 쳐다본다.
“옜소, 저녁이 저물었소.”
아내는 삼룡이를 남편의 무릎에 내려놓고 부엌으로 내려가더니 조금 있다가 쌀을 이는 물소리가 촐롱촐릉 들린다. 민보는 삼룡이를 노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다른 날 같으면 공장에서 들어오자 가슴에 껴안고 돌아다니면서 달랠 터인데 오늘만은 급료일마다 으레 치미는 혼자 흥분이 가슴에 치밀어서 그는 눈덕을 찌푸린다. 뼈빠지게 벌어서는 한푼 저축이 없이 그저 입살이도 바쁘게 거의거의 살아가는 자기가 한없이 가엾게 생각되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이달도 출근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부족이 될 것을 생각하니 기가 딱 막혔다. 모든 것이 귀찮았었다.
제에기 빌어먹을 놈의 팔자, 민보는 찬 방 안을 좁다고 기어다니는 아들을 한참 보다가 급히 주머니를 책상 위에 내놓고 계산하여 본다. 이월분(28일) 급료의 총액이 26원 70전이었다. 잔업 수당(殘業手當)까지 합하여 일급 90전에 10일간 야근 수당(하룻밤에 15전씩) 1원 50전을 합하면 틀림없었다. 여기서 건강보험비 45전, 운동부비 30전, 규약(規約) 저금(이 저금은 종업원이면 1원 이상 의무적으로 한다) 1원 합계 1원 75전을 제하고 나면 나머지 돈이 24원 96전이었다. 그 돈에서 술값이 10전하고 쌀값 6원을 제하고 나니 남은 돈이 18원 75전이다.
민보는 책상 서랍 속에서 이월분 생활예상표(生活豫想表)를 끄집어내어 가지고 대조하여 본다. 쌀값 외에는 아직 지불하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 쌀값이 예상보다 초과되기를 1원 25전이나 되었다. 일주일 전에 장인영감이 공장 구경을 와서 사흘을 묵어 가고 또 아내의 어렸을 때 동무라고 하는 젊은 여자가 와서 이틀을 묵어가는 통에 예상표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이월분 생활예상표는 다음과 같다.
2월분 생활표 고향에 …………………………………………10원 쌀 값…………………………………………6원 집 세…………………………………………2원 주 대………………………………………… 50전 식료품………………………………………… 2원 전등료………………………………………… 60전 기 타 |
민보는 쌀값을 빼놓고 예상표를 계산하여 보았다. 18원 10전이다. 18원 75전에서 18원 10전을 제하면 65전이 남았다(사실은 남은 것이 아니다). 민보는 그 숫자를 내려다보면서 흥 하고 코웃음친다. 즐겨하는 소주 한번 실컷 마셔 보지 못하고 좋아하는 호떡 한 개 못 사먹으면서도 급료는 달마다 모자랐다. 밖에서 바람이 부는지 찢어진 문종이가 파르륵 하고 떨린다.
응 또 있구나…… 민보는 생활표에 적히지 않은 외상값을 생각하여 냈다. 전달에 공장복을 사고 떨어진 돈이 1원이 있었던 것이다.
에익 종간나, 속상해 못살겠다. 민보는 이월분 생활표를 쪽쪽 찢어서 입 안에 넣고 악을 써서 씹어서 침과 함께 문 밖에다 내뿜었다.
방바닥이 째어져서 시커먼 연기가 새어올라 목구멍과 눈을 쑤셔준다. 불을 때던 민보의 아내는 불이 잘 들지 않아서 화가 났는지 혀를 짹짹 차면서 뾰로통한 소리로 무어라고 중얼댄다. 방 윗목에서 헌 신문지 조각을 찢으면서 장난하던 삼룡이가 연기 때문에 캑캑 하고 기침을 하면서 고사리 같은 주먹으로 두 눈을 비비더니 앙― 하고 울음을 낸다. 민보는 암만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삼룡이의 엉덩이를 한 대 때리고 나서 등에다 올려놓았다.
“그놈새끼를 오리사탕 하나 사주오.”
아내의 소리가 부엌에서 들려 왔다. 이달 급료에 여유가 있으면 아들에게 양복과 모자를 사주어서 모자(母子)가 기뻐하는 양을 보자던 것도 공상이 되고 말았다. 민보는 찢어진 메리야스 위에다 팔꿉 빠진 빨간 저고리를 입은 아들을 볼 때에 가슴이 아팠다. 민보는 급히 주머니에서 5전 백동화를 한 개 끄집어내어 가지고 삼룡이를 업은 채 밖으로 나갔다. 건넛집이 바로 사탕가게다. 그러나 사탕가게란 것은 이름뿐 밀창 앞에 빈 석유짝을 하나 놓고 그 위에 담배를 넣었던 마분지갑을 넷을 놓았는데 오리사탕, 오마케, 때묻은 아메다마(눈깔사탕), 먼지 낀 마쓰가시가 한줌씩 담겨 있을 뿐이다. 허리가 활처럼 구부러진 영감이 나와서 마초가시와 오리사탕을 섞어서 5전 어치를 신문지 조각에 싸준다. 삼룡이는 오리사탕 한 개를 쥐더니 울음을 딱 끊었다.
민보는 방바닥에 내려놓은 채 사탕을 쫄쫄 빨아먹으면서 앉았는 아들을 내려다보고 앉았다. 삼룡의 의복에서는 고약한 지린 냄새가 났다. 개가 아니면 사입는 양복 한 벌 사입히지 못하고…… 민보는 눈을 손등으로 비볐다. 연기 때문에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그 눈물은 연기 때문에 홀러내리는 눈물뿐이 아니었다.
민보는 아내와 마주 앉아서 숟가락을 들었다. 집 안에는 우울한 공기가 가득 차 있다.
“이달은 돈이 좀 남겠소?”
아내는 삼룡에게 젖을 물리면서 묻는다.
“남을 게 없소.”
민보의 우울한 대답이다.
“하루두 쉬지 않구 벌어서는 그저 입살이만 하구.”
민보는 밥 한 술을 떠넣고 가자미 꼬리를 한 조각 떠넣어서 맥없이 씹는다.
“내달부터 잔업을 없애 버린다오.”
민보는 후― 하고 한숨을 내뿜는다.
“그럼 일급이 줄어들겠소. 그럼 어떡허우.”
민보의 입에서는 다시 말이 없다. 부부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저녁을 필하였다.
저녁 후에 최영감이 집세 받으러 왔다 갔다. 나무장수가 왔다 갔다. 간장 파는 외눈이 노파가 왔다 갔다. 여덟시 반까지 빚쟁이한테 시달림을 받고 나서 급료 주머니를 계산하여 보니 10원 지폐 한 장하고 10전짜리 백동화 네 개에 1전짜리 동화 세 개가 남았다. 삼룡이는 아무 근심 없이 손과 다리를 쭉 뻗어 붙이고 잔다. 민보는 신문지애다 희연을 말아서 피워 물었다. 아내는 가마목에 쪼그리고 앉아서 삼룡이가 벗어 놓은 헌 셔츠에다 조각천을 대고 끌어맨다. 만국지도같이 얼룩이 간 검은 치마에다가 두세 군데 조각천을 붙인다. 홍색 저고리를 입은 아내는 민보가 보기에도 좋은 감상이 생기지 않았다. 민보는 그 저고리와 치마를 찢어 버리고 좋은 감으로 새옷을 해입히고 싶은 순간적 흥분을 느꼈다. 민보는 아내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속으로…… 자네도 고생이 많은 여자지 하고 한숨을 지었다. 한 달 동안 이상점 저상점으로 다니면서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다가 생활하여 가는 아내도 자기만 못지않게 고생을 하리라고 생각하니까 한없이 아내의 정경이 불쌍하여졌다. 드문드문 앞거리를 술 취한 사람들이 노래 부르며 다니는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아내가 삼룡의 셔츠를 다 기워 놓는 것을 기다리고 앉았던 민보는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더니 대문을 잠그고 들어왔다. 아내가 마지막 바늘을 빼고 실을 끊는 것을 보고,
“인젠 자지…….”
하고 아내의 손목을 끌었다. 아내는 그렇게 하는 것이 남편의 우울한 기분을 얼마만이라도 위안시켜 주리라고 생각하고 남편에게 빙그레 웃어 뵈면서 일어나서 자기 손으로 전등을 껐다.
이튿날 민보가 공장에서 돌아오니까 아버지가 와 있었다. 아버지는 자기 조상의 제일을 잊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들의 급료일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그것을 잊어벼린다는 것은 밥 먹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과 같았다. 한 달 만에 처음 만나는 아버지는 그 사이에 더 늙어 보였다. 육십에 다섯 살이나 더 꼬리를 단 아버지다. 머리가 더 희어지고 허리가 더 구부러들고 얼굴에 주름이 더 생겼다. 새까맣게 때묻고 군데군데 기워 댄 광목 바지저고리와 벗어 걸어 놓은 두루마기에는 빨간 긴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 함흥 고을로 들어가다가 색의 장려원들에게 붙잡혀서 그같이 빨간 물의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새것을 찾아낸다면 그것은 작년 음력설에 민보가 3원 주고 사드린 망건하고 갓이다. 아버지는 그 망건하고 갓을 자기 생명같이 소중히 여긴다. 길을 가다가 비나 오게 되면 아버지는 망건하고 갓을 벗어서 두루마기 안에 간직한다. 어떻게 소중히 간직하였는지 작년 살 때에 비하면 조금도 색이 변한 데가 없다. 오래간만에 부자간은 한자리에 앉아서 저녁상을 받았다. 민보는 아내를 시켜서 술 10전 어치를 사왔다. 민보는 두 무릎을 꿇고 아버지에게 술을 부어 드렸다. 술잔을 드는 아버지의 손을 보는 민보는 놀랐다. 손끝이 마디마디 칼로 에인 듯이 끊어졌다. 그 짬에 때가 새까맣게 들어찼다. 아버지는 나무에는 돈을 들여서 사지 말라고 추우나 더우나 지게를 등에 지고 들로 산으로 풀을 긁으러 다녔다. 구부러진 등에다 담북 긁은 마른풀 수숫대 뿌리를 지고 돌아오는 때의 아버지의 허리는 구부러들 대로 구부러들어서 지팡이가 아니었더면 이마가 땅에 닿았을 것이다. 술을 부으면서 그런 광경을(민보도 경험하였다) 상상하여 볼 때 자기의 못남(?)을 민보는 육신에 느꼈다. 다달이 급료일 이튿날 밤마다 있는 충호네 집 모임에도 민보는 전달부터 참석을 못 하였다. 한잔씩 먹으면서 한 달 동안의 괴로움을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성의가 없어 참석 아니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생활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생각하니 민보는 밥도 맛이 없어졌다.
“너 서식(西植)이네 소식을 들었느냐?”
아버지는 술을 다 마시고 나서 이렇게 묻는다.
“도무지 못 들었습니다.”
“지난 스무날 새벽 에 서식의 애비가 돌아갔다.”
“에?”
민보는 너무나 의외의 말에 씹던 밥을 홀리면서 놀란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민보는 밥술을 든 채 아벼지 앞으로 한무릎 나앉았다.
“그이 아버지는 어떻게 그렇게 됐소.”
민보의 아내도 따라 놀란다.
서식이는 민보와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다. 서로 가슴을 헤쳐 놓고 이야기할 만한 친구는 오직 민보에게는 서식 이뿐이었다. 서식은 입이 무겁고 남이 보기는 바보 같았으나 자기 할 일은 틀림없이 순서있게 하고는 사이만 있으면 독서를 하였다. 서식은 고독을 좋아하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았다. 재작년 늦은 가을에 민보가 고향을 떠날 때 서식은 민보의 교편을 받아 가지고 S야학교 선생으로 들어섰다. 그러다가 작년 오월에 소관 H주재소에 × ×되어 이 주일 후에 H로 × ×되었다. 민보가 아는 것은 돈 그것뿐이었다. 그 다음에는 무슨 일로 어떻게 되었는지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바로 열홀 전에 민보는 신문지상에서 서식의 사진을 발견하고 놀랐다. 기사 금일 해금 ‘S농조 관계자 18명 금일 송국’이라는 미다시(표제어)로 굉장하게 기사가 실려 있었다. 민보는 자기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였다. 서식의 아버지는 오십이 조금 넘은 건강한 중늙은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렇게 된 후부터는 동리 늙은이네들이 모르는 데 가서도 노상 죄지은 사람처럼 쪼그리고 앉았다. 평소의 쾌활하던 성격은 아무 데도 찾아볼 곳이 없었다. 할 말이 있어도 아버지는 기운이 나지 않아서 입술만 들먹거리다가는 머리를 수그리곤 하였다. 다른 늙은이네들이 자기에게 그런 언어 행동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혼자 생각에 죄송스러웠던 것이다. 아버지는 서식의 처자를 데리고 고독한 생활을 하였다.
죽일놈 같으니ㅡ 술이 취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아들을 욕하면서 저고리 소매에다 눈물을 씻는다. 아버지는 고독하고도 세상에서 버림받은 듯한 날을 보냈다.
서식의 기사가 신문에 난 그 이튿날 아침에 윤초시는 서식의 아버지를 불렀다. 윤초시는 S동리의 부자요 진흥회 회장이었다. 윤초시는 서식의 아버지를 톡톡하게 꾸지람을 주었다. 그리고 그.런 배은망덕한 자식놈을 가진 놈에게는 전답을 줄 수가 없다고 그 즉석에서 부침을 떼었다. 서식의 아버지는 닭의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걸복결하였으나 배짱이 세키로 동리 제일인 (그럴 수밖에 없다) 윤초시 앞에서는 아무 도리가 없었다. 서식의 아버지는 담뱃대로 뒷짐을 짚고 집에 돌아와서 그냥 자리에 누워 버렸다. 이를 악물쿄 눈을 꽉 감고 몸 한번 까딱하지 않고 누웠다. 그러더니 그날 저녁때부터 신열이 떠돌고 머리가 아프다고 아버지는 신음하였다.
이놈 천하에 죽일놈 그럴 수야 있니, 아버지는 누구를 욕하는지 이런 허황한 소리를 치면서 이를 부드득 갈기도 하였다. 약을 권하여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더니 나흘 전에 바로 자리에 누워서 오 일 만에 서식의 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몸시도 음산한 밤 열시가 좀 넘어서 민보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너무나 허무한 사실에 정신이 아득하여졌다. 너무나 청천의 벽력이었다.
“동리에서 상측은 쳐주었으나 그 집 일두 참 딱하다.”
아버지는 으ㅡ흠 하고 나서 신음하는 소리를 내뿜는다.
민보는 아무 말 없이 앉아서 도야지처럼 비대하고 누런 돋보기 안경 안에서 울분에 충헐한 눈이 늘 그 새〔新〕 무엇을 찾고 있는 윤초시의 모양을 눈앞에 그려 보았다. 민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랫동안 윤초시의 모양을 눈앞에 그려 보려고 애를 썼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놓는 것을 기다려서 민보도 숟가락을 놓았다. 중병을 앓고 난 사람처럼 도무지 밥맛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서식 이네 부치던 전답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역마을 황서방이 부치게 되 었다더라.”
황서방이란 말을 들었을 때 민보는 모든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윤초시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첩을 둘씩 데려왔으나 계집아이들을 낳고는 도무지 잉태를 하지 않았다. 그래 금년 정월에 그 윗동리에서 유명한 대주무당을 불러다 점을 치니까 금년 안으로 동방(東方)의 처녀첩을 얻어야 자식을 보겠다고 하였다는 말을 민보는 들었다. 그리고 전달 어느 날 저녁에 고향 이야기가 났을 때 황서방에게 십칠팔 세 된 딸이 있다는 것을 민보는 아내에게서 들은 일이 기억났다.
“황서방의 딸이 방금 시집가지 않었소?”
민보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 딸이 윤초시의 소실이 되는 소견이더라.”
아버지는 입 안의 담배 연기를 침에다 섞어서 꿀꺽 하고 넘긴다. 침묵이 계속된다. 민보는 손톱을 이로 물어뜯고 앉았다가 책상 서랍을 열고 10원 지폐를 끄집어내서 아버지 무릎 앞에 놓았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지폐를 쥐어서 허리띠에 찬 주머니에 정성스레 집어넣고 나서,
“월급이 오르지 못하였느냐?”
하고 묻는다.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민보의 아내가 삼룡이를 안아서 시아버지 무릎에 놓고 나간다. 늙은이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방바닥에 놓고 삼룡이를 달랜다. 그러나 삼룡이놈의 새끼는 한 달에 한 번씩 보는 할아버지라 낯이 설어서 고함을 지르면서 운다.
“그놈의 새끼 낯이 설어서 그러우…….”
며느리는 밥을 씹으면서 들어오더니 삼룡이를 도로 안아 내온다.
그래도 민보는 머리를 숙인 채 무거운 생각에 빠져 있다. 방 안에는 담배 연기가 보ㅡ얗게 떠돈다.
“이렇게 하구 어떻게 살어가겠느냐. 쉰 냥(10원)씩 가져가니 동리빚을 다달이 열댓 냥(3원)씩 물어 가구 쌀을 사먹구 세납을 물구 하니 어디 남는 것이라구 있니. 제사나 잔치가 한 달에도 다섯 번은 되니 한 냥씩이래두 구조가 댓 냥이 아니냐. 속앓이를 해 누워 있는 네 어미는 너를 보구 싶다구 이번에는 데리구 오라는구나.”
아버지는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한숨을 매쉰다. 검은 얼굴에는 생에 대한 불안의 그림자가 떠돌고 있다.
“그러니 아버지, 집에 가 있으면 한 달에 筍, 6원의 수입이 있겠습니까? 부침이나 많은 것 같으면 또 모르겠습니다. 저도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민보는 속은 곯았으나 겉만 뻔삔한 농촌의 정경을 눈앞에 그려 본다.
“어저께 솔방천에서 윤초시를 만났는데 윤초시의 하는 말이 아들이 잘 번다니 부침을 내놓고 아들 있는 데 가서 여생을 보내는 것이 어떠냐코 말하더라. 그것두 재미없는 말이야. 그래 생각다 못해 오늘 아침에 기르던 암탉 한 마리를 보냈다.”
민보네는 윤초시네 토지 논 여덟 마지기(한 마지기는 120평 가량)와 모래밭 하루갈이(1,200평 가량)를 부친다. 민보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가늘게 놀랐다. 불덩이는 자기 발에도 떨어지려고 한다. 민보는 갑자기 앞이 캄캄하여졌다.
“그러니 이놈아, 이젠즉 내 생각 같어서는 이렇게 허는 수밖에 없구나. 네가 처자를 데리구 집에 와서 농사를 하든지 네 늙은 애비와 어미를 여기 데려다가 먹 여 살리든지 양단간에 어떻게 처리해라.”
민보의 입에서는 아무 말이 없다. 민보는 안타까운 가슴을 쥐어뜯으면서 울고 싶었다.
농촌으로 간들 무엇 하느냐…….
그렇다고 영영 텅 비워 둘 내 고향은 아닐 것이다…….
민보는 서식이를 생각하고 윤초시를 생각하여 보았다. 그리고 생각을 달리 해보았다.
공장이래야 그렇게 안전한 곳은 못 될 것이다: 첫째로 인심이 박하고 융통성이 조금도 없고 공기가 좋지 못하여 건강을 해하고 또 언제 무슨 바람이 불어서 그 바람에 자기도 휩쓸려 들어갈는지 몰랐다. 부모를 이곳에 모셔 온다는 것도 한 모험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으냐…… 민보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아버지, 잘 생각하여 가지고 처리하리다.”
민보는 팔짱을 끼고 앉았는 아버지에게 겨우 이렇게 말하였다.
이놈의 생활이―나를 이렇게―민보는 가슴속에서 몇 번이나 이렇게 외쳐 보았다. 순간 일종 비애가 가슴에 북받쳤다.
“민가는 조상부터 명문이구 귀한 자손이라더니만…….”
아버지는 영락(零落)한 신세 한탄을 하면서 천근같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눕는다.
민보는 연필로 헌 신문지 조각에다 ‘農(농)’자 ‘村(촌)’자 ‘工(공)’자 ‘場(장)’자를 어지럽게 쓰면서 반갑지 않은 과거를 머리에 되살려 본다.
쇼와(昭和) × 년 여름―몇 해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습래하는 장마가 한 달 동안을 장차게 계속하더니 S강이 창일하였다. 제방이 튼튼치 못한 × 면 쪽에서는 촌민들이 불철주야로 헌 가마니에 모래를 넣어 가지고는 제방을 수리하였다. 민보와 서식 이는 그때 말하자면 제방 수리를 총지휘하였다. 그러나 천변은 인력으로는 못 하는 것인가, 그 노력도 수포에 돌아가서 바로 8월 13일 아침에 제방이 미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때는 벌써 형세불리를 간파하고 동민들을 고래둥이(지멍)로 피난시킨 후였다. 곡식이 누―렇게 익어 가던 전답은 삽시간에 황해로 변하였다. 가옥에도 토마루 위까지 침수하였다. 낮은 집은 대들보까지 물에 잠겼다.
동민들은 고래둥이에서 노숙하였다. 윤초시도 하는 수 없이 그 동안 먹는 쌀을 자기가 담당하였다.
병자가 생기고 나무가 부족이 되었으나 동리 젊은이들의 눈물겨운 활동으로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를 않았다. 후에 소관 S주재소에서는 민보 외에 두 젊은이에게 상장까지 내주었다. 피땀을 흘려 지은 곡식들은 전장에 나갔던 부상병들처럼 거꾸러지고 말았다. 흉년이래도 심한 흉년이었다. 농민들은 누구누구 없이 공포와 낙망의 구렁에서 눈물을 홀렸다. 추수를 하여 가지고 윤초시네하고 반분씩 나누고 보니 민보네 앞에 생긴 것이 쭈그레기 벼 넉 섬하고 조 다섯 말밖에 안 되었다. 동리에서는 살지 못해 떠나는 집이 민보가 고향을 떠날 때까지 세 집이나 생겼다. 동민들이 모아서 윤초시한테 자기네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3푼 변으로 내년 가을까지 매회에 10원씩 차용하여 달라고 수차 애걸하여 보았으나 윤초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없다고 내뱉었다. 동민들은 그 돈을 합하여 가지고 볏짚을 사가지고 대적으로 비료 가마니를 집단 제조하자던 게 그때 민보의 생각이었다. 그냥 농촌에 있다가는 굶을 수밖에 없었다. 민보는 명년 봄 감자가 날 때까지 살아갈 방도를 생각하였다. 그래 민보는 벼 넉 섬을 팔았다. 한 섬에 3원 10전씩 넉 섬에 12원 40전이었다. 민보는 그 돈으로 함흥읍에 들어가서 밀가루 세 포대하고 벼뜬 겨 넉 섬을 사내 왔다. 벼뜬 겨에다 밀가루를 반죽하여서 가마에다 쪄내면 떡이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모래를 씹는 듯하였으나 점점 그것도 맛(?)이 났다. 민보는 그 떡을 먹으면서 겨울 한철을 노동할 결심을 하였다.
그때 N읍에 있는 × ×공장에서 직공을 모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민보는 겨울 한동안을 공장 노동을 하여서 명년 춘궁을 면하자고 N읍으로 뛰어나갔던 것이다. 민보는 그때 임신 8개월이 된 자기 아내를 처가로 보냈다. 힘이 세고 손에 못이 박히고 순전한 농촌자라는 데서 민보는 아주 쉽게 공장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때 일급이 68전인데 잔업 수당이 2할을 가하여 81전이었다. 민보는 자취를 하였다. 10원을 집에 보내고도 좀 여유가 있어 민보는 만족하였다. 장가를 가느라고 동리 돈 50원을 낸 것도 머지않아서 물 것 같았다. 그 이듬해 봄이 와도 민보는 공장을 뗘나고 싶지 않았다. 말하자면 공장에 애착을 느꼈던 것이다. 그때 아버지와 상의하고 이듬해 정월에 집에서 어린애를 놓아 가지고 돌아온 아내를 읍에 데려내다 살림을 시작하였다. 아버지도 자기의 고생도 고생이었지만 아들이 돈벌어 가지고 돌아올 때를 커다란 만족과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보나 아버지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게 실현되는 것이 아니었다. 급료는 오르지 않는데 물가는 나날이 올라갔다. 살림을 시작하니 12, 3원씩은 들었다. 작년 유월에 승급이 되어서 잔업 수당까지 합하여 일급이 90전이 되었다. 좋은 반찬 한 번 못 사먹으면서 이달까지 애를 쓰나 돈은 다달이 부족되었다.
아버지는 잠이 들었는지 코를 곤다. 민보는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이불을 덮어 드리고 자기는 아랫방에 나가 누웠다. 아내는 남편의 다비(양말)를 끌어매고 앉았다. 공포와 비애가 떠도는 괴로운 하룻밤이다.
민보는 책상 앞에다 삼월분 생활표를 붙여 놓았다.
3월분 생활표 급 료 액 ――― 26월 75전 고 향 ……………………………………… 10원 집 세 ……………………………………… 2원 식 료 품 ……………………………………… 1원 신 탄 ……………………………………… 2원 전 등 료 ……………………………………… 60전 쌀 값 ……………………………………… 7원 50전 잡 비 ……………………………………… 1원 전월 외상 ……………………………………… 3원 20전 소 계 ……………………………………… 27원 30전 차인부족금 ……………………………………… 56전 될 수 있는 대로 더 절약할 일 3월 5일 |
민보는 살수록 불안을 느끼게 되는 자기 생활을 짬만 있으면 생각하여 본다. 남이 두부를 사다 먹으면 민보는 비지를 사다 먹었다. 쌀값은 자꾸 올랐다. 전달보다 더 절약하여도 물가가 고등하니까 남은 돈이라고는 도무지 없다. 삼월달 접어서는 된장에다 군내 나는 김치 밖에 다른 반찬을 사온 일이 없다. 민보는 이달 접어 제일 맛나게 먹은 것은 어떤 진구의 집들이에 가서 술과 떡과 국수를 먹은 것과 산비닭이(산비둘기) 고기를 먹은 것이었다. 그 비닭이 고기란 민보가 하루 저녁 좀 늦어서 혼자 공장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구룡 고개에 올라섰을 때 산등에서 꽉 하는 날짐승의 비명이 들리더니 새 한 마리가 민보의 발 앞에 떨어졌다. (그때 민보는 그것을 암꿩이라고 알았다고 한다.) 민보는 날쌔게 그 새의 목을 비틀어서 꽁무니에 차고 달음질쳤다. 그것이 산비둘기였다. 총에 맞았던 것이다. 이렇게 생활이 궁하고 보니 민보는 요행을 바라는 병에 걸렸다. 누가 나를 초대를 하지 않나, 누가 나를 술 한잔 사주지 않나, 어디 무슨 잘 먹을 일이 없나 하고 민보는 요행을 바랐다. 민보는 술이 딱 마시고 싶은 때에는 B직장 종업원 일동이 박힌 사진을 끄집어내어 놓고 술을 삼직한 친구의 얼굴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물색하는 데 그는 세 명씩 하였다. 처음에 간 친구가 술 사줄 모양이 보이지 않으면 그 다음 친구의 집으로―이렇게 세 집을 지정하고 떠나는 것이다. 열 번이면 여섯 번은 술을 얻어먹을 수가 있었다. 요행히 얻어먹은 날 저녁에는 아주 기분이 상쾌하여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웃고 하지만 계획이 틀어져서 돌아올 때의 민보의 얼굴이란 도수장으로 가는 소모양으로 머리를 들지 못하고 빛깔 없었다. 이런 날 저녁에는 벙어리처럼 말마디 하지 않고 혼자 쪼그리고 자는 것이다.
민보는 하루 한 번씩은 생활표를 들여다본다. 보고 싶어 보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눈에 띄었다. 민보는 생각다 못해 쇠줄로 각장이를 만들었다. 공장에서 나오면 헌 가마니를 메고 산에 올라가서 마른 풀을 긁는다. 한번 가서 긁어 오면 이틀은 땔 수가 있었다. 공장에서 잔업까지 하고 솜같이 피곤해서 돌아온 민보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까지를 긁게 되니 육신이 어루만지지 못하게 아프고 가슴이 저렸다. 저녁에 자리에 누워서 아내와 이야기하다가도 그만 잠이 든다. 아내는 그런 줄도 모르고 한참 혼자서 이야기하다가 남편의 코고는 소리를 듣고는 빙구레 웃는 적도 있었다. 삼월이 절반이 더 간 어느 날 저녁이었다. 민보는 술이 만취하여 들어와서 저녁상도 받지 않고 엎드려서 울었다. 그날이 바로 회사가 두 시간의 잔업제를 철폐한다고 선언한 날이었다. 그 게시의 내용인즉 이러하다.
오는 삼월 말일까지는 회사의 건설공사도 완성되고 모든 사무도 정돈이 될 터이니 사월 일일부터는 종래 근무중에 지불하던 본급의 이 할부 마시(잔업)를 철폐하기로 하고 공장법에 의한 여덞 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겠다는 내용의 게시였다.
이 게시를 보고 놀란 것은 민보뿐이 아니었다. ×천 명의 종업원은 모두가 낙망하고 생활에 대한 무서운 위협을 느꼈다. 민보는 회사를 원망하지 않았다. 열 시간 하던 노동을 여덟 시간으로 변경하였으니까 일급이 줄어들 것은 번연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민보는 자기네게는 열 시간이니 여덟 시간이나 뼈빠지는 데는 한가지지만 회사는 큰 이익을 보리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을 민보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생각을 민보와 같은 입장에 있는 노동자라면 다 알 것이 아닌가!
“여보, 글쎄 하루에 90전 받어 가지고 간신히 생활을 하던 게 하루 75전씩 받어 가지고 어떻게 살겠소.”
민보는 아내의 두 손목을 꽉 잡았다. 마치 세상에 믿을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는 듯이.
“그러니 시아버니 말씀대로 어떻 게든지 모여 살 도리를 해야지요.”
“그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오. 농촌으로 가겠소? 그렇지 않으면 양부모를 여기 모셔 오는 것이 어떠하겠소.”
민보는 어린애처럼 두 소매에 눈물을 씻는다.
“내가 아우. 궈래(당신) 어떻게 처리하우.”
민보는 역시 종이를 한 장 뜯어서 희연을 말아 붙여 물고 연거푸 대여 몇 모금 들이삼키고 나서,
“그래두 촌에는 집 한 칸이라도 있지 않소. 엉터리를 들여놓을 내 집이 있으니 암만 생각해 보아도 굶든 먹든 농촌으로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소.”
“좋을 대루 하시오.”
아내는 별 말이 없다.
“그럼 이 다음에라도 내 하자는 대로 해야 되오?”
민보는 눈물 젖어 있는 눈으로 웃어 보인다. 그러나 그 웃음은 몹시도 쓸쓸하고도 빛깔 없는 웃음이다.
“언제는 말 안 들었다구.”
아내는 얼굴을 숙이고 저고릿고름으로 눈을 비빈다. 삼룡이는 어머니 곁에서 시름없이 잔다.
삼룡의 자는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던 민보는,
“여보, 저놈의 새끼가 스물다섯 살 먹을 때는 좋은 세상이 올 게요. 모든 것을 불버(부러워)하지 않는 세상이…….”
하면서 아내의 얼굴을 본다. 아내도 삼룡의 헝크러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오늘 능 앞 무당에게 점을 치니 천하를 다스릴 큰 벼슬을 할 팔자를 타구 났다구 그럽데다.”
아내는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띄우고 남편을 쳐다본다.
“삼룡이놈이…… 호…….”
민보와 아내는 천하를 다스릴 삼룡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앉았다.
이틀 후 어느 날 저녁이다. 민보는 충호를 찾아갔다. 충호는 읽던 책을 내던지고 민보를 반가이 맞아들이려고 하였으나 민보는 끝끝내 사양하고 이야기할 일이 있다고 충호를 데리고 구룡리 해수욕장으로 나갔다. 그때는 여덟시 반이나 되었을 때다. 민보는 나가던 길에 소주 두 병을 사서 옆에 끼고 하얀 모래 위를 앞서 걸었다. 충호는 일찍이 보지 못하던 민보의 몹시도 긴장한 태도에 다소 불안까지 느끼면서 아무 말 없이 민보의 뒤를 따랐다. 수분을 잔뜩 포위한 바닷바람은 추웠다. 잔잔한 파도가 모래를 씻고 있다. 하늘에는 별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음산한 기분이 바닷가에 떠돌고 있다. 검은 하늘은 대지를 무거운 압력으로 내리누르는 것 같고 검푸른 바다는 무엇을 삼키려는 듯이 무거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 충호는 민보의 뒤를 따라가면서 민보 하는 모양을 주의하여 본다. 해수욕장 흰 모래 위에 지은 지금은 뼈다귀만 남아 있는 탈의장 앞까지 오더니,
“이쯤 어떤가?”
하고 민보가 충호를 본다.
“좋네.”
충호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다짜고짜로 이렇게 대답하였다. 민보는 충호와 마주 앉더니 소주병의 뚜껑을 이로 물어 뺐다. 축한 모래는 묩시도 차다.
“우선 한잔 들게.”
하면서 충호에게 유리컵을 내주고 거기에다 소주를 가득 부어 준다. 그 사이에 충호는 민보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어둠에서도 민보의 두 눈이 몹시도 빛나는 것 같았다. 어디서인지 방망이질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민보 웬일인가?”
충호는 컵을 채듯 묻는다.
“하여튼 들게, 저 안주를…….”
민보는 스루메(말린 오징어) 하나를 주머니에서 끄집어내 준다. 충호는 단모금에 쭉 들이마시고 한 컵 가득 민보에게 부어 주었다. 민보는 컵을 받자 냉수 켜듯이 목을 울리면서 들이마셨다. 두 컵씩 마시고 난 다음,
“충호야, 너는 나를 못생긴 놈이라고 욕할 거다.”
민보는 충호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본다.
“그건 무슨 소린가. 그래 그런 소리를 하자구 예까지 나를 데리고 왔나. 엑 사람두 못나게.”
충호는 툭 하게 핀잔을 준다.
“아니다, 충호야, 별반 자네가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닐세. 나 자신이 친구들한테 참 미안한 데가 많었네. 내 자신에 부끄러우니 말이 아니 나겠는가.”
민보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끄집어내더니 붙여 문다. 성냥을 켰을 때 충호는 비로소 민보의 홍분된 얼굴을 확실히 볼 수가 있었다.
“그것은 자네 생각이지 남의 생각을 알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는 법이 어디 있나.”
충호는 술잔을 민보에게 주면서 사방을 돌아다본다. 회사 전용의 부두 쪽이 강한 전광 때문에 환하게 밝다.
“충호, 우리가 생활을 영영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십중팔구 불가능할 일이네. 자네나 나 같은 자의 결단력과 용기로서는 도저히 안 되는 게니.”
“그러나 충호야, 나는 생활이란 너무나 큰 짐을 짊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주의를 펴지 못하고 말었네. 오늘이나 내달이나 하고 막연하나 희망을 바라보고 자네들하고 있으려고 하였네만…….”
“무얼? 함께 있지 못하면…….”
민보는 남은 소주 뚜껑을 이로 물어 뺐다.
“충호, 나는 이 거리를 떠나야만 되겠네. 자네를 오늘 저녁에 여기에 데리고 온 것도 그 때문이네.”
“떠나다니 어디로 간단 말인가?”
충호는 한무릎 나앉으면서 민보의 어깨에다 자기 손을 얹었다. 뵈지 않는 수평선 저쪽에서 가늘게 기선의 기적 소리가 들려 온다. 몹시 몹시도 비애를 느끼며 하는 그 소리다.
“고향에 가서 농사를 하겠네.”
민보의 목소리는 눈물로 흘렸다. 오늘 오후 다섯시였다. 민보가 회사에서 나와 보니까 아버지가 눈이 빠지게 민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보의 아내는 저녁할 차비도 없이 어린것을 업고 불안한 얼굴로 남편을 기다리고 있다.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보더니 주머니에서 봉투편지를 끄집어내서 아들에게 주었다. 윤초시에게서 아버지에게 보낸 통지서 였다.
춘경이 멀지 않았는데 농사를 지을 사람도 없는 집에 귀한 토지를 맡길 수 없으니까 오는 양력 사월 초하룻날까지는 소작권 이동 수속을 하겠다는 간단한 것이었다. 민보는 읽고 나서 그 편지를 쪽쪽 찢어버렸다.
“이놈아, 이거 모두 거두고 나하고 같이 나가 농사를 하자. 농사에서 더 좋은 일이 있나. 제발 내 말을 좀 들어라. 이런 변이 어디 있니.”
아버지는 눈물을 홀리면서 아들에게 애걸하였다. 민보는 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장에서 농촌으로 나가기로 결심하였다.
“아버지 가리다. 다시 농사꾼이 되겠습니다.”
민보도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홀렸다. 이렇게 결심하고 나니 민보는 농촌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그 즉시로 세간 도구를 모조리 거두기 시작하였다. 밤 여덟시나 되어서 아버지는 의롱을 지고 민보의 아내는 삼룡이를 업고 살림 도구를 한 합 지니고 고향으로 떠났다. 자기는 급료날까지 있기로 하였다. 민보는 떠나는 아버지와 아내를 뵈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가슴속 깊이 숨어 있던 모든 감정이 북받쳐서 마음 둘 곳이 없어 그 길로 충호를 찾아가서 데리고 해변에 나온 것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민보는 킥, 느끼면서 운다.
“이 사람, 울긴 왜 울어. 농촌에도 자네 할 일이 많을 거네. 이 거리를 떠나는 것을 못난 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네.”
“자네만이라도 나의 사정을 알어준다면 나는 기쁜 낯으로 떠나겠네.”
민보는 눈물을 씻는다. 둘은 술이 톡톡히 취하였다.
“아네 알어. 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잘 아는 거네. 농사꾼이 여북 좋은가.”
“고맙네.”
또 술잔이 왔다갔다한다. 술이 끝났다. 충호는 민보를 부축하고 일어섰다. 그들은 사람 없는 해안을 비틀거리면서 걸어서 집마을로 들어섰다. 두 시간 후에나 민보와 충호는 얼굴에다 분칠을 한 계집애를 업히다시피 하여 가지고 알지 못할 콧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인치키주점 에서 나왔다.
열한시를 알리는 공장의 사이렌이 목쉰 소리로 길게 내뽑는다.
급료일(사직원은 그 전날 드렸다)一 민보는 사무실에 들어가서 규약 저금 17원하고 삼월분 급료 27원 75전 합계 44원 75전을 받아 가지고 동무들한테 돌아다니면서 인사를 하고 기름 묻은 흰 공장복과 찢어진 지카다비(작업화)를 꾸려 들고 나왔다.
“이 사람 잘 가게.”
“부디 성공하게.”
한 20명 친구들이 경비계 지하도까지 따라 나와서 전송하여 주었다. 민보는 모든 친구에게서 버림을 받은 듯한 일동 말못할 외로운 감정에 가슴이 꽉 막혔다. 경비계 문을 나서 공장을 들여다보았을 때는 친구들은 직장으로 들어가 버리고 늘 들어서 귀익은 기계 소리만 민보의 가슴을 뒤흔들어 주었다. 민보는 한없이 쓸쓸함을 느꼈다. 소리쳐 울고 싶었다. 민보는 최영감의 집에 돌아와서 집세 2원과 밥값(사홀 동안 기숙하였다) 1원을 지불하고 남은 짐을 꾸렸다. 민보는 최영감하고 술 20전 어치를 나누고 보따리를 등에 지고 나섰다. 공장아 잘 있거라,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한참 공장 쪽을 내다보았다. 민보는 최영감에게 고마운 인사를 다시다시 하였다. 이 꼴이 되어 가다니…….
민보는 머리를 수그리고 걸으면서 연방 이를 악물었다.
조금 걷다가 민보는 또 발을 멈추고 공장 쪽을 바라보았다. 아침 태양 광선을 받아 공장에서 떠오르는 오색 연기는 유달리도 광채가 났다. 민보는 보따리의 무게도 잊어버리고 언제까지든지 오색 연기를 바라보고 섰다. 춘경을 재촉하는 후끈후끈한 봄바람이 파―란 잔디 위를 날아서 민보의 공장복 소매로 기어돈다.
(《신동아》, 1935.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