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중국 화교들에 의해 전해졌던 국수 문화가, 우리의 생활이 점점 좋아지면서 해외 여행도 많아지고, 또한 외식 문화도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일본 우동이 국수 문화의 대표 명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본 이름을 갖고 있는 우동 (うどん, 饂飩) 은 헤이안 (平安) 시대인 서기 806 년 당나라에 유학했던 승려 고보 (弘法) 대사가 카가와현 고마쓰 (小松) 마을로 돌아오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만두와 같이 밀가루를 펴서, 그 안에 고기· 채소 등 소를 넣고 삶은 음식 ‘곤돈 (こんどん· 混沌) 을 만드는 기술과 재료인 밀을 가지고 들어왔다.
만두에 가깝던 곤돈은 시간이 흐르면서 국수의 형태로 변해 지금의 우동이 됐다는 것이다.
17 세기 에도 (江戶) 막부 시대부터 메밀 국수와 함께 널리 퍼진 우동은 재료와 맛에서 다양한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얹은 고명에 따라 달달하게 졸인 유부를 넣은 키츠네 (여우) 우동, 자잘한 튀김 부스러기를 넣은 타누키 (너구리) 우동, 새우 튀김을 얹은 에비텐 우동 등. 재미있는 이름까지 더해져 관서 지방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일본에는 관동 (關東, かんとう) 지방은 소바 (蕎麥, そば) 문화가 지배적이고, 관서 (關西, かんさい) 지방은 우동 (饂飩, うどん) 문화가 지배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에서도 이런 지방 구별 문화가 깨지면서, 문화가 혼합된 지 오래 되었지만. 우리에게 어느 날인지는 몰라도 일본 우동 이라면, `사누키 우동’ 이라고 널리 알려졌다.
사누키 우동 (讃岐 うどん, さぬき うどん) 은 일본 사누키국 (讚岐國) - 지금의 시코쿠 (四國) 카가와현 (香川県, かがわ) - 일대에서 생산되는 우동의 하나를 말한다.
하지만, '사누키 우동' 이라는 특별한 명칭이 붙은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며, 카가와현의 우동을 명물로써 선전하기 시작하던 1960 경에서야 이 명칭이 지어졌다고 알려졌다.
카가와 현민들은 반하생 (半夏生) 때마다 사누키 우동을 먹는 풍습을 바탕으로 사누키 우동 협동조합 매년 7 월 2 일을 '사누키 우동의 날' 로 지정하고 있으며, 섣달 그믐날에도 메밀 국수보다 우동을 먹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반하생 (半夏生) 은 반하 (半夏) 가 나올 무렵이라는 뜻으로, 하지 (夏至) 에서 11 일째 되는 날을 이르는 말로, 양력으로는 7 월 2 일경 이다.
지금, 카가와현에는 현청 (県庁) 이 있는 다카마츠 (高松) 시에 많은 우동집과 여러 개의 우동 학교들이 성업 중에 있다.
이 사누키 우동 협동조합은 사누키 우동의 특성을 규정하는 조건으로,
첫째, 카가와현 내에서 제조된 것 이어야 한다.
둘째, 수타 (手打) 로 제조된 것 이어야 한다.
셋째, 가수량은 소맥분 중량 대비 40 % 이상 이어야 한다.
넷째, 식염은 소맥분 중량 대비 3 % 이상 이어야 한다.
다섯째, 숙성 시간은 2 시간 이상 이어야 한다.
여섯째, 삶는 경우에는 삶는 시간이 약 15 분간으로 충분히 알파화된 것 이어야 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누키 지방은 벼농사를 짓기에는 강우량이 적어서, 자연스럽게 이곳에 전래된 밀과 밀가루 국수가 지방 특산물이 되었다고 한다.
사누키 우동은 면발이 매끄럽고, 탱탱하고, 쫄깃쫄깃한 것으로 유명하며, 목구멍을 넘어갈 때의 느낌이 특히 매력적이다.
보름달.
첫댓글 해물우동 먹으면서 술반 얼음반 나오는 정종을 마셨는데 제조법은 비밀이라나 어떻게 보관하여 그렇게 되었는지 아직도 알지 못하는 보관방법이었네
지난번 일본 여행 이야기에서 소개했었지.
신주쿠 역사 3 층에 겐슈 우동 먹을때,
얼린 정종 나온다구.
살균하지 않은 정종이라서 얼려서 보관하지 않으면,
정종이 맛이 가잖아.
그게 아마 자기 분해 ? (autolysis ?) 라고 했던가 ?
식품을 안한지가 오래되서리.
좌우간 좋은 음식 먹었네.
아니, 세월 좋네.
잘 먹고, 건강하시게.
봄내골 실레마을 금병산 자락에서 보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