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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4부: 유다와 베드로의 생애를 통해 연구해 보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와 이르지 않게 하는 죄의 차이 IV
우리는 유다와 베드로의 생애를 조명해 보며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죄의 차이를 생각해 보았다. 이 두 죄의 차이는 무엇인가? 어떻게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한 사람의 죄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가 되고, 한 사람의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죄가 되는가? 그 차이는, 그 죄가 성령을 거스리는 죄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이다.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그것은 “성령을 거스른 죄”라고 할 수 있다.
1. 성령을 거스른 죄 = 사함을 받지 못하는 죄
성경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구절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언급하신 말씀들이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눅 12:10).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2:32).
“누구든지 성령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심을 영원히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처하느니라 하시니”(막 3:29).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막 12:31).
또한 사도 바울도 그 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
그렇다면 성령을 거스리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죄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 죄가 어떠하든지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죄는 다르다. 그런데 성령을 거역하는 죄, 곧 성령의 역사를 거절하므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에 빠지는 데는 시간이 요한다. 즉 그 일은 단 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점차적인 과정을 밟다가 최종적인 결말에 이르게 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사람의 심령에 역사하시며 죄인을 책망하시고 죄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계속해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과 호소를 거절하면, 그리하여 마지막 최후로 주어진 자비의 간청과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거절하므로 그 선을 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 영혼을 위하여 더 이상 하실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지막 방편이 끝난 것이다. 이제 범죄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고 죄는 그 자체를 치유할 방법이 없어지며, 그 이상 더 죄인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거역하는 죄이다. 그리하여 “버려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성령을 거역한 사람의 최후의 몫이 된다. 그 후에는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히 10:26, 27).
2. 점진적이고 고의적인 거절
부연해서 다시 설명하면, 성령을 거역하는 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령의 역사를 거역하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밟게 될 때, 다시 말해서 성령의 호소를 무시하고 그분의 음성에 굴복하는 일을 고의적으로 계속 거절할 때에, 마음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을 받지 못하는 강퍅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 12:32)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루신 일을 유대인들이 바알세불로 말미암는 것이라고 간주했을 때에 하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사람과 교통하시는데, 이 역사를 사단의 것이라고 고의로 거절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영혼과 하늘 사이의 통로를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귀 들어 눈멀고 벙어리 된 사람을 고치시는 이적을 두 번째로 행하셨을 때에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마 9:34)는 비난을 되풀이한 바리새인들의 예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를 거듭 범하는 실례의 본보기가 된다.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 그렇게 비난하던 바리새인들이 마음속으로 자신들의 비난을 그대로 다 믿은 것은 아니었다. 구주께 마음이 끌리지 않은 성직자들은 없었고 모두의 마음속에 성령의 역사를 통해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공식적으로 예수를 거절한 후에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들에게 너무나 굴욕적인 일이었다. 그들의 발을 이미 불신의 길에 들여놓았고 잘못을 자백하기에 그들은 너무 교만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점점 진리를 피하기 위해 예수님의 가르침을 맹렬히 반박하였고, 그들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그분의 능력과 이적에 대해 격노하였으며, 침묵시킬 수 없는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시키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자각시키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대적해야만 하였고, 매번 그들은 마음속에 속삭이시는 성령의 호소를 묵살시켜 버렸다. 인간의 마음에 감명을 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능력이 그들로 더불어 싸웠지만 그들은 굴복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이런 죄는 성령을 거역하는 죄의 단적인 예가 되고 있다.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시정하고 안전한 길로 인도하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빛을 보내신다. 그런데 눈이 멀고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은 이 빛을 거절함으로 생기는 것이다. 흔히 그 과정은 점진적이며 거의 알아챌 수 없이 행해진다. 빛이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혹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로 사람에게 임할때에 그 한줄기의 빛이라도 무시하면 영적 감각이 부분적으로 마비되어 두 번째에 나타나는 빛은 그만큼 분명하게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영혼의 영적 암흑은 증가된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였지만 진리를 대적하기 위해 성령의 역사를 사단에게 돌리고, 지속적으로 그리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거역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단에게 굴복하였으며 그 때 이후로 사단의 능력에 완전히 지배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경우와 함께 유다의 생애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 곧 성령을 거역하는 죄의 대표적 본보기가 되었다. 유다가 처음 예수님과 사귀었을 때에는 그는 주님의 사업에 축복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귀중한 품성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유다가 기꺼이 그리스도의 교훈을 받고 그분의 멍에를 메었다면 사도들 중에 수석의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결점이 지적당할 때에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교만과 반항심을 품고 자신의 이기적인 야심의 길을 선택함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주신 사업에 자신을 부적합한 사람이 되게 했다. 예수께서 옳은 일을 행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하늘의 빛을 주셨지만 유다는 빛 가운데 행하는 대신에 자신의 결함을 그대로 지니기로 선택하였다. 그리하여 악한 욕망, 교만과 탐심, 복수심과 지배욕 등, 죄악적인 생각이 마음속에서 자라나 마침내 사단이 그를 완전히 지배하기에 이르게 되었고, 결국 유다는 그리스도의 원수의 대리자 대 반역자가 되었던 것이다.
3. 선택이 만드는 두 사람
지금까지 우리는 베드로와 유다의 생애를 조명해 보면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죄에 대하여 연구해 보았다. 그 두 죄의 차이는 선택이 만든다. 유다는 선택할 수 있었다. 그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에 빠지든가, 아니면 죄를 짓더라도 용서를 받으므로 사망에 이르지 않게 되든가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여 그의 생애를 반역의 길에서 돌이키든가 자신의 길을 고집하며 계속 반역의 길로 나가는가 하는 것은 유다 자신만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마찬가지로 베드로와 같은 생애를 사는가, 아니면 유다의 삶을 사는가의 차이는 우리의 선택이 만든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우리의 매일의 삶과 신앙생활은 선택의 연속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선택에 의하여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들어질 수 있다. 유다가 태어나든지 베드로가 태어나든 지의 차이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유다와 베드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다 있다. 차이는 성령의 호소에 계속 굴복하고 하나님의 편을 택하며 올바른 길로 가는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을 계속 거절하고 자아의 욕심대로 육신의 길을 고집하며 가는가 이다. 많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이 자신의 선택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호소하시지만 강요하시지는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택할 수 있는 힘, 곧 우리의 의지를 사용하여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유다와 베드로 중 어떤 사람을 내 속에 만들어가는가 하는 것은 바로 이 선택에 달려 있고, 이 선택의 차이가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게 하는 죄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매일 올바른 선택을 하므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는 독자들이 되기를 기도드린다.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생활이란 어떤 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매일의 생활에 있어서 우리의 의지로 사단의 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편을 택하는 것, 사단에게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죄를 승리하는 것이며, 이 일은 우리의 의지의 작용과 선택에 의하여 매일 매 순간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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