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217]
직장생활 중 크게 두 번 대취실성(大醉失性)한 기억이 있다. 한번은 신촌에 있는 XX노바다야끼 주점에 국방부에 근무하고 있는 친구 이태우와 같이 술을 마시러 갔다. 청하와 정종을 연거푸 몇 순배 했더니 주흥이 도도해 졌다. 마침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즉석에서 즉흥자작시를 지어 읊었다.
“신촌에 비가 내린다. 스산한 계절에 아픈 술잔만 나뒹구네. 영혼의 맑은 눈망울은 푸른 새벽을 갈망하지만. 욕망의 타는 바다에 회색 빛 밤은 지척거리고. 신촌에 비가 내린다. 내 작은 영혼에도 고해(告解)같은 비가 적신다면. 바람에 흩날리는 낙화처럼 내 굳센 자유혼은 사라지고 말지니! 아아 타고난 시대의 불운이여! 신촌에 눈물같은 비가 내 가슴 속에 고요히, 흐느끼며 내린다”
내가 시를 읊조리고 있자니 옆자리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던 중년의 신사한 분이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다가 우리 자리에 합석하며 나에게 시를 한 수 청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시흥이 도도하여 기억을 더듬어 이태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을 암송했다. “꽃속에 술항아리 놓았소마는/ 술 마실 벗 없어 홀로 마시네/ 밝은 달을 보면서 술잔을 드니/ 그림자 어우러져 셋이 되었네.”
취흥이 돋는 김에 연이어 나는 우리 가곡 동심초의 원류인 당나라 시대의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춘망사(春望詞)”를 낭송했다. “꽃 피어도 함께 바라볼 수 없고/ 꽃이 져도 함께 슬퍼할 수 없네/ 그리워하는 마음만 어디에 있나/ 꽃피고 꽃지는 때에 있다네/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아름다운 기약 아직 아득한데/ 한 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공연히 동심초만 맺고 있다네/ 어쩌하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을/ 거울에 옥같은 두줄기 눈물/ 봄바람아 너는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엔 중년신사가 답례로 가지고 있던 수첩을 꺼내 영화 “빠삐용”의 주제가인 “바람처럼 자유롭게(Free as the Wind)”를 낭송했다. “지난날은 강물처럼 흘러 옛 꿈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 마음 자락에 아직도 남아있는(Runs through my mind)/ 넓은 들판과 하얀 조각들이 깔려있던 시냇가/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가득찬 그곳/..... 사랑은 내 인생의, 꿈이었어요/ 이제와 그 사랑의 노래를 부르노라니/ 속절없이 눈물만 흐르는 군요/......... 내가 겪었던 온갖 고난/ 인생의 모진 경험과 또한 즐거웠던 모든 일들(The bitter-sweet taste of it all)/돌이켜보니 큰 후회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 삶을 사랑한다면/ 나비처럼 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예요/그러나 그대 주저앉아 버린다면/ 나비의 퍼덕임처럼 허무한 몸부림이 되고 말겠지요/ 오 내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외치는 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바라보세요 그러면 보일 거예요!(Look, and you'll see)”
시를 감상하고 읊조리던 중년 신사와 우리는 시적 분위기에 휩쓸려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는 모교 Y대의 교수라 했다. 그는 필자보다 나이가 5, 6년 위의 분으로 보였고, 체격이 당당하고 중후한 지성인의 풍모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는 나를 안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그는 말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아마 학창시절 때 교내에서 나를 본 것 같았다. 그는 우리에게 장소를 옮겨 술을 더 먹자고 제의했다. 우리는 그를 따라 고즈넉한 분위기의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 카페는 음악과 여인이 있는 곳이었다. 그의 단골인 것 같았다. 원래 진짜 술을 즐기는 사람은 혼자 술을 먹는 사람이다.
그는 술을 끝없이 들면서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은은하게 마시고 있었다. 급기야 같이 술을 먹던 친구가 술이 도를 넘기게 되어 먼저 집으로 가버렸다. 나도 술은 꽤 먹는 편이었는데도 시나브로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침내 그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대취한 나는 방향을 잃고 무려 5시간이나 거리를 헤맸다. 택시를 타고 집에 무사히 간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아마 이때가 내 생애에 최고로 취한 순간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그 후 가끔 그 중년 신사가 생각날 때가 있다. 그는 진짜 술의 정취를 알고 삶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타인에게 베풀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 대취하게 된 것은 D그룹 종합무역상사에 다니던 절친 N 때문이었다. 그는 장난감을 팔고 있었는데 한번은 이탈리아의 단골 바이어를 접대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바이어의 영국인 비서가 동행했는데 그의 파트너로 나를 초대한 것이었다. 룸살롱에서 이태리 바이어와 내 친구 옆에는 호스티스가 앉았고, 나는 독신인 여비서 옆에 자리 잡았다. 술잔이 오고 가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나는 노래를 반주에 맞추어 멋들어지게 불러제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태리 바이어, N, 여비서, 모두 기분이 유쾌해져 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독한 양주를 많이 마시게 되면서 나는 실수를 연발했다. 옆의 여비서에게 엉터리 영어를 지껄여 대며 포옹을 하는 등 지성인답지 못한 추태를 부렸다.
N은 곤혹스러운 듯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장소를 옮겨 소공동 롯데호텔의 나이트클럽으로 향했다. 나는 호텔 앞에서 술이 오버되어 먹은 것을 토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그러한 나를 내버려 두고 바이어일행을 안내하여 나이트클럽으로 올라갔다. 그로서는 중요한 상담을 앞두고 코를 빠뜨리는 행동을 연출하는 내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정신을 못 차리고 한동안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남자 일행이 도와주려고 나에게 말을 걸었으나 나는 오히려 겁을 먹고 호의를 거절했다. 그러다가 어떤 남자 한 사람이 나에게 접근해서 걱정해 주었고 나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 그가 잡은 택시를 탔다. 택시가 집 앞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Vomit를 차안에 또 한 차례 실례하고 말았다. 차비를 지불하려고 지갑을 찾아보았으나 지갑은 간곳없었다. 나를 도와주는 척했던 남자가 사실은 취객을 전문적으로 노리던 소위 아리랑치기였던 것이다. 택시운전사는 술이 만취한 나를 도저히 상대할 수 없어 아파트 층 호를 알아내어 자고 있던 형을 불러냈다. 그리고 토해낸 오물로 인한 손해배상 등으로 과대한 택시요금을 요구했다. 나는 취한 정신 상태에서도 순간 분노가 치밀어 운전사의 뺨을 한차례 때렸다. 운전사는 형에게 파출소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형은 운전사를 살살 달래고 요구하는 돈을 주어 돌려보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모든 것이 허망했다. 추석명절 때 사용하려고 지갑에 넣어놓았던 돈, 한 달 치 은행 식권, 주민등록증, 신용카드가 모두 없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어떤 외무부여직원에게서 종각 앞에서 땅에 떨어져 있는 나의 주민등록증을 주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어젯밤에 나의 행동을 생각해 보았다. 첫째 친구에게 미안했다. 대우실업 내 친구는 화가 나서 며칠 동안 전화도 걸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취객(醉客)들을 노리는 아리랑치기나 뻑치기 같은 전문털이꾼이 밤길에 우굴 대고 있는 살벌한 현실을 체험했다. 모두 술이 원인이었다.
첫댓글 그렇게나 약주를
많으 드셨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금주를
하시게 되었는지요..ㅎㅎ
금주 하신거는
참 잘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살아도,
시간이 흐르면 후회하는 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닌데,
하물며 술에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상태에서야,,,,
ㅎ ㅎ
이제 술과는 완전 이별했습니다ㅡ
세상에나....!! ......
감사하게도 공주님께서 어떻게 이 자리에 납시었습니까ㅡㅎ
주흥이 도도하게 오르면 시를 읊으시는 멋진 신사 다저스님!
그 분위기가 눈에 선합니다. ^^
뭐든 적당히가 어려운데, 음주가 선을 넘으니 그런 힘든 상황도 벌어지는군요.
아리랑치기를 당하신 일은 참 무섭네요.
그래도 몸은 상하지 않으셨으니 다행이군요.
실감나는 이야기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
달님 댓글에 힘을 얻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따뜻한 정을 전해 주시는 달님의 선한 인품을 높이 평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