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2장 23-33절 부활의 날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워 올수록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의 영적인 횡포는 계속됩니다. 처음에는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리고 다음에는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부하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질문을 합니다. 그들 역시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지만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데에 반해 사두개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중 하나가 사두개인들은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나라가 매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땅의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이 세상에서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후의 세상보다는 이 땅의 나라게 관심을 쏟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부활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흥미도 갖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보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주님이 어서 속히 오시길 기다리지만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풍요롭게 사는 사람은 주님을 그다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미 자신은 천국처럼 생활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그 삶을 즐기면서 삽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삽니다. 이것은 비단 교회 밖에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부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예수님 시대의 사두개인들처럼 말입니다.
그런 그들이 자기들의 주장대로 부활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 앞에 입증하기 위해 바리새인들에게 흔히 했던 질문을 예수님께 했습니다. 그 질문은 성경의 율법에 기록된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우리 23-28절까지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이들의 질문은 굉장히 현실적이며, 이성적이며, 합리적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의 불신자들의 특징이 바로 이렇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현실적이며, 이성적이며, 합리적으로 기독교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질문에 올바른 답을 주었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하는 자들이 지금 누구를 시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지식이라고는 땅의 지식만 조금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지식이 대단한 줄로 착각하면서 교만한 입술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전혀 믿지도 않는 부활 문제를 가지고 말입니다.
한 집에 칠형제가 살았습니다. 그런데 제일 첫째가 장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살다가 첫째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드런 경우 둘째가 형수를 위하여 아내를 삼고 형의 대를 이어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동체의 책임이며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율법대로 둘째가 형수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는데 둘째도 죽었습니다. 그다음은 셋째가 형수를 취하였는데 셋째도 역시 죽었습니다. 이렇게 계속하다가 일곱이 다 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게 되었고, 일곱 명의 형제가 다 죽고 그 후에 이 여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문제 자체로 여기면 풀길이 전혀 없습니다. 일곱명의 형제의 아내였던 여인인데 과연 하나님은 그 여인을 다른 세상에서는 누구의 아내로써 살게 하시겠느냐는 질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공정하심을 기초로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나라는 땅의 나라와 다르다는 것을 이들은 몰랐습니다. 땅처럼 하늘나라도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될줄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하늘나라는 땅의 나라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29-30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그들이 성경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삶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함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변론을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늘나라도 땅의 나라처럼 결혼도하고, 아기도 낳고, 이 땅에서와 같이 농사도 짓고 하는 등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회자는 자기가 바다에서 요트를 타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데 천국을 가면 아름다운 요트도 있을 거라고 설교문을 작성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목사도 역시 천국을 이 땅의 것과 별다를 것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천국은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며 아기들도 낳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성적인 요소가 천국에서는 제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천국과 이 땅을 똑같이 생각을 합니다. 지금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여기서 가족인 사람들은 천국에서도 가족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모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부활때나 천국에서나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낫지 않는 천사들과 같은 모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천국을 보셨을 뿐 아니라 천국을 만드시기도 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결혼도 없고 아이도 낳지 않는 천사들과 같은 존재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영체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31-32절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실 때 하신 말씀이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때도 살아계셨고, 이삭 때도 살아계셔서 만나셨고, 야곱 때에도 살아계셔서 만나주신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도 역시 죽은 자들이 아니라 영생을 얻어 천국에 들어가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자신이 영원하신 분이시지만 자신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신 사람들도 역시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 자들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하나님을 모셔야 하는가를 결정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만나셔서 역사하시지만 또 한 편으로는 여러분들과 연결된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그리고 여러분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들, 여러분들이 전도하다가 만나는 사람들, 여러분들이 선교하다가 만나는 사람들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여러분들은 그들을 위해 여러분들이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들을 사랑하면서 돕고 나누고 섬기지만 그 모든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면서 자유를 얻거나 누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방문했던 천사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수태될 것을 이야기하면서 예수님이 다스릴 나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장 33절입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영원히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도 영원하고, 그 나라 역시 영원무궁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장 55절을 보면 마리아도 역시 할머니가 되어 임신한 엘리사벳을 찾아가서 만나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노래합니다.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을 영원히 보호하시면서 다스리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으로써 모든 존귀와 영광이 영원토록 그에게 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7절입니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여러분들의 신앙도 역시 영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는 영원한 동반자이신 성령의 살아 역사하심에 바로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부활이 있고 영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활한 모든 성도들은 천사들과 같이 되어 인간세계에서 누리는 것들과 다른 복된 생애를 살게 될 것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부활 후에도 지금의 인간 세상에서 누리는 단편적인 복과 기쁨을 얻기를 소망하고 그런 설교를 통해 성도들을 교훈함으로써 성도들의 마음을 이 땅에 잡아두고는 있지만 굼뱅이가 매미로 변하는 것이나 유충이 나비로 변하는 것을 볼 때 옛 생활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처럼 그리스도에 의해 생명의 부활을 얻게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새로운 천국에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금 부부로 사는 사람들이 영원한 나라에서도 부부로 살기 원하거나 지금 부모와 자식으로 사는 사람들이 영원한 나라에서도 역시 부모와 자식으로 살기 원하는 것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친밀감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친밀감이 천국에서는 이 땅보다 훨씬 더 깊되 가정을 이룬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그 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를 알고 깊이 있는 사랑을 가지게 됨으로써 갖게 될 것이기에 지금의 가족이나 부모 이상으로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 연연합니다. 물론 지금 세상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도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원한 나라는 그 이상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바로 부활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이라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부활에 대하여 약간의 언급을 하시자 사람들을 그 가르침을 듣도 놀랐습니다. 막연했던 죽음 이후의 삶의 실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부활의 날에 여러분들 역시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데살로니가후서 1장 10절을 보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여러분 죽은 자의 부활이 믿어집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모든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 일어나는 날이 옵니다. 그 날에는 썩어질 육체가 아닌 영원한 생명을 가진 육체로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선한 일을 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심판의 주권과 부활의 주권이 예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온전히 믿고 따름으로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부활하여 주님을 영원토록 모시고 사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