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문화를 전파하는 사람과 체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유은·조하랑·나서현(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전통 해녀 옷을 입고 용담해안도로에서 다양한 포즈로 기념사진을 남겼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제주도. 제주도 하면 바다와 함께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산소 공급장치 없이 맨몸으로 바닷속 해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하는 여성, 해녀다. 해녀는 국가무형문화재이며, 제주도 해녀를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기술 및 문화를 말하는 제주 해녀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앞으로도 계속 전승되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현재 활동하는 제주 해녀는 2021년 기준 3437명. 2020년 3613명, 2019년 3820명 등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해녀를 널리 알리고 이야기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고, 젊은 사람들이 해녀‧해남에 도전하거나 해녀문화를 체험하려는 사례도 늘고 있다.
맨몸으로 물질하며 바다와 함께 삶 꾸려온 해녀문화 맛보기
제주 방언으로는 좀녀, 몇몇 마을에서는 잠녀(潛女)라고도 부르는 해녀가 바다에서 하는 일을 ‘물질’이라고 부른다. 제주에서 언제부터 물질이 시작됐을까.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섭라(제주)에서 야명주(진주)를 진상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삼국시대 이전부터로 보인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남자인 포작인(鮑作人)들이 전복을 채취해 진상해 온 것도 나온다. 1629년 이건의 ‘제주풍토기’에 해녀들이 전복을 채취한 내용이 기록된 것을 비롯해 『조선왕조실록』, 이익태의 『지영록』, 위백규의 『존재전서』등 여러 문헌에 해녀에 관한 내용이 있다. 이형상의 『탐라순력도』(1702년) 중 ‘병담병주’에서는 지금의 용두암 부근에서 물질하는 해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자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인 불턱도 재현되어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해녀문화를 알아보기 위해 소중 학생기자단이 제주시 구좌읍에 있는 해녀박물관을 찾았다. 한천복 제주 문화관광해설사가 먼저 물질할 때 입었던 ‘물옷’을 소개했다. “물소중이(하의), 물적삼(상의), 머리카락을 정돈하는 물수건으로 이루어진 물옷을 직접 만들어 입고 겨울에 30~40분 물질을 하고 나면 체온의 한계에 도달합니다. 추워서 안 나올 수가 없어요. 나와서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불턱에서 몸을 덥혔죠.”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자 작업 중 휴식하는 장소다.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서 몸을 덥히며 물질에 대한 지식과 요령, 바다밭의 위치 파악 등 정보 및 기술을 전수하고 습득했다. 해녀 간의 상호협조를 재확인하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80년대 중반, 탈의장이 생기며 불턱은 이용하지 않게 된다.
고무로 만든 물안경.
1970년대 초부터 ‘고무옷’이라고 부르는 잠수복을 입으면서 장시간 작업이 가능해지고 능률도 크게 오른다. “입는 순간 몸이 물에 떠서 가라앉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연철이라고 불리는 납추를 달아야 잠수할 수 있죠.” 그 밖에 해녀가 쓰는 도구로는 물안경, 테왁망사리, 바위에 붙어있는 전복을 떼어낼 때 쓰는 빗창, 오분자기‧성게‧문어 등을 채취할 때 쓰는 까꾸리 등이 있다. 테왁은 해녀가 수면에서 몸을 의지하거나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하는 도구고, 망사리는 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망으로 테왁에 매달아 한 세트다. 테왁은 잘 여문 박에 둥그런 구멍을 뚫고 박씨를 빼낸 다음 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구멍을 막아 만들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는 스티로폼 테왁으로 바뀌었다.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하는 테왁에 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망(망사리)을 매달아 한 세트로 사용한다.
물질작업은 혼자 함부로 바다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정해 놓은 규약과 법에 따라서 행동한다. 공동으로 작업에 임해 위험 상황에도 공동으로 대처한다. 자연스럽게 ‘계’의 형태로 자생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물질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기금을 조성하여 마을 안 길을 정비하거나 학교 건물 신축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후 제주도 밖 외지로 나가 물질작업을 하는 출가해녀의 권익 보호를 목적으로 어업공동체도 조직됐다. 제주 해녀들은 19세기 말부터 한반도 연안 곳곳과 일본‧중국‧러시아 등 동북아시아 일대 바다에서 물질했다. 일본 어민들의 제주어장 침탈로 해산물 채취량이 현저히 줄어들어 생활이 어렵게 되자 바깥물질을 가는 해녀 수가 늘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해녀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 제주 해녀박물관을 방문한 소중 학생기자단이 한천복(왼쪽) 제주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물질을 나갈 때는 물때(조수간만의 차)와 바람을 보고 조업시간을 정한다. “이런 지식이 있어야 그날의 작업장과 시간을 정할 수 있어요. 대략적으로 한 달에 15~18일 물질할 수 있는데 날씨가 안 좋으면 더 줄죠. 최근 수온 상승으로 인해 해조류가 손실되고 해양환경이 많이 변화하는데, 해산물을 계속 잡으면 나중에 잡을 게 없어지겠죠. 번식을 보호하고, 충분히 자랄 시간을 주기 위해 종별로 산란 기간에는 채취를 금하죠. 금어기에 작업하다 걸리면 벌금을 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