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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세례 축일 의미와 그리스도인의 사명
그리스도와 한 몸 된 우리… 새 생명 주신 하느님께 찬미를
주님 세례의 의미와 이유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6-17)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후 하느님의 영이 예수님 위로 내려왔고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기록돼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세례 받기 위해 강물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죄로 물들 수밖에 없는 인간과 유대를 맺는다. 죄가 없는 예수님이 죄의 짐을 지는 것으로 속죄와 고통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인간과 연대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 세례의 모습에서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은총을 누리며 영원한 생명을 희망하고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가톨릭 청년 교리서 「YOUCAT」(유캣)은 본래 죄 없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그럼에도 세례를 받은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항을 알려 준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당신이 받은 세례를 장차 당신이 겪을 고통과 부활의 예고로 이해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하느님의 음성은 결국 우리를 위해 돌아가실 의지를 드러낸 예수님의 표징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8년 1월 로마 시스티나 경당에서 주님 세례 축일 관례에 따라 교황청 직원 자녀들에게 세례성사를 집전하며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예수가 인간성이라는 강물에 자신을 담가 온 인류에 자신을 드러낸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교황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주님 세례는 ‘공현’(公顯)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주님 세례는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1)와 더불어 공현, 즉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공적으로 드러내고 사명을 시작하는 공생활의 선포일로도 해석할 수 있다. 1969년 전례력 개정에 의해 주님 세례 축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에 오는 주일로 옮겨졌다. 주님 세례 축일로써 성탄 시기가 끝나고 연중 시기가 시작되는데 이것은 주님 성탄 대축일에 세례를 주던 관습과 관련되면서 우리가 받은 세례를 기억하라는 뜻도 담겨 있다.
초기교회 세례 모습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은 것은 약 2000년 전의 일로, 초대교회 세례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지만 성경 기록으로 그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다.
우선 사도행전은 예수님이 부활한 뒤에 세례에 관해 말하고 요한의 세례와 구분 짓고 있음을 알려 준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사도 1,4-5)라는 말씀에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또한 성령으로 세례를 준 것을 알 수 있다.
초대교회 세례 예식 모습의 흔적도 성경에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 내시의 예(사도 8,26-39)에는 ‘물로 내려가 세례를 주었다’고 언급돼 있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사도 8,15)에서는 기도도 했다. 세례 중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내렸다.(사도 10,44)
성경 이외에 3세기까지 세례 기록을 담은 문헌에는 「디다케」, 「솔로몬의 송가」, 헤르마스의 「목자」 등이 있다. 「디다케」에 의하면 세례는 ‘살아 있는 물’(흐르는 물)로 줘야 하지만 살아 있는 물이 없을 때에는 다른 물을 사용할 수 있다.
또 찬물이 없을 때에는 더운물로 세례를 줄 수 있다. 물이 충분하지 않을 때에는 세례 후보자의 이마에 세 번 물을 붓는다는 규정도 있어 물에 잠그는 세례뿐만 아니라 물을 붓는 주수식(注水式) 세례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솔로몬의 송가」는 ‘물에 잠김’이 지옥에 내려가는 것이면서 해방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헤르마스의 「목자」 에는 ‘화관’과 ‘흰 옷’이 언급돼 있다. 초기교회 때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성취된 삶의 영광과 닮은 순백의 새 옷을 입혀주는 관습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음을 알 수 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의 사명
세례받은 신자는 과거의 죄를 씻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세례는 그리스도인다운 생명의 시작일 뿐 완성이 아니며, 하느님을 향한 자유와 해방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는 것에 세례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2항은 세례성사를 견진성사, 성체성사와 함께 ‘입문의 성사’로 소개하며 “세례성사를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 신자들은 견진성사로 굳건하게 되며,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받는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부요한 생명을 더욱더 풍부하게 받게 되고 사랑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고 밝히고 있다.
세례성사를 통해 갖게 되는 ‘세례명’은 세례를 받은 이가 앞으로 살아갈 신자로서의 삶에 지표를 제시해 준다. “세례에서 하느님의 이름은 인간을 성화시키며, 그리스도인은 교회에서 부르는 자기의 이름을 세례 때 받는다. 그것은 어떤 성인의 이름, 곧 자기의 주님께 모범적으로 충성을 다 바친 한 제자의 이름일 수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156항)는 설명에서 세례 후 주님의 충성스러운 제자로 살아야 하는 신앙인의 의무가 분명히 드러난다.
교회법 제217조에는 세례받은 이의 구체적 의무로서 ▲ 복음적 가르침에 맞는 삶을 살고 ▲ 인격의 성숙을 추구하며 ▲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살아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제시돼 있다. 아울러 이를 위해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받을 권리도 지닌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하느님이 교회에 맡긴 사명을 실행할 의무도 진다. 교회법 제96조에 의하면 세례로 사람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합체되고, 각자의 신분 조건에 따라 그리스도교인들에게 고유한 의무와 권리를 가진다.
교회법 제204조는 “세례로 그리스도께 합체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되고, 또한 이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된다”고 규정해 세례받은 이가 이 세상에서 실행해야 할 사명이자 의무, 권리를 밝히고 있다.
[문화사에 따른 전례] 그레고리오 7세의 전례 개혁
8세기와 9세기 프랑크 왕국의 황제는 교회의 주교 임명이나 전례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며 전례를 통일하고자 노력했다. 당시 이탈리아 귀족들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그리스도교 교회는 962년 오토 1세(재위 962-973년)를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임명했다. 그러나 오히려 황제의 간섭에 직면하게 되면서 영적인 모습을 갖추기도 어려워졌고, 영적 가르침을 제대로 펼칠 수도 없었다. 전례도 지역마다 고유한 모습으로 발전하여 전례를 통일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11세기에 교회는 황제의 통제에서 벗어나 교황권을 확립하고 고대 로마 전례를 중심으로 전례 통일을 이루는 개혁 운행을 전개했다. 이는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서 영적인 역할을 다하고자 함이었다.
성직매매 금지와 사제 독신 권장
교회 역사가들은 이 운동을 ‘그레고리오 개혁’이라고 지칭한다. 길게는 레오 9세 교황(재위 1049-1054년)부터 갈리스토 2세 교황(재위 1119-1124년)까지 이어진 개혁 운동이었다. 이 개혁에서 핵심 역할을 한 교황이 그레고리오 7세(재임 1073-1085년)이어서 그 이름이 붙었다.
교회 개혁의 핵심에 주교 서임 문제가 있었는데, 교회 역사학자인 장 콩비가 「세계 교회사 여행 1: 고대 · 중세편」에서 설명한 당시 주교 서임 예식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주교의 봉토에는 영성적인 관할권과 세속적인 관할권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교직은 일종의 서임 예식(서임권)을 통해서 수여되었다. 영주는 자신이 선출한 주교 후보자에게 십자가와 반지를 수여했는데 이것은 평신도 서임이었다(세속적 서임). 그리고 일반적으로 대주교가 주교들을 항상 축성했다(영적 서임)”(431면).
영주나 황제가 선출하여 임명한 주교들의 자질 문제와 언제든지 가장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면 주교직을 팔아치우는 성직매매가 이루어졌다. 또한 초기 교회의 니콜라오스파(묵시 2,6. 14-15 참조)처럼 자신의 결혼 생활을 정당화 하려한 사제들이 있어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사제들의 혼인과 독신에 관한 교회법이 항상 분명하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니콜라오 2세(재위 1059-1061년)는 1059년에 로마 교회 회의에서 성직매매와 사제 결혼 금지를 언급했으며, 문란한 사제들의 성무 활동을 금지시키고 사제들의 올바른 생활을 강조했다. 알렉산데르 2세(재위 1061-1073년)도 성직매매를 금지하고 사제 독신을 장려했다. 앞선 교황들의 개혁 노력에 더하여 그레고리오 7세는 평신도 서임권을 모든 악의 뿌리로 보고, 1075년 교황 훈령 27개 항을 통해 평신도 서임권 반대를 천명하며 교황권을 강화시켰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전례 개혁
그레고리오 7세는 교회 생활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해악, 곧 전례 실천에서 금욕적인 측면을 눈에 띄게 완화하려는 경향을 없애는 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전례 역사학자인 엔리코 카타네오는 그의 저서 「서양의 그리스도교 예배」(Il Culto Cristiano in Occidente)에서 그레고리오 7세의 전례 개혁은 세 가지 목표를 지향한다고 밝힌다. 첫째, 교황 권한의 확립, 둘째, 고대 로마 전례로의 복귀, 셋째, 신자들의 양성과 교육이다.
교황 권한의 확립
그레고리오 7세는 모든 서방 교회가 로마 전례를 사용함으로써 모교회의 진리에 대한 존경을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에 로마 전례 사용 준수는 잘 유지되어야만 했다. 교황은 프랑크왕국 시절, 로마 전례가 게르만화되어 슬퍼했다. 고대 로마 전례로의 복귀를 지향하는 전례 통일화를 이루려면 교황 권한 확립이 필수적이었다.
교황은 당시 전례에서 게르만적 요소를 선별하여 제거함과 동시에, 스페인 교회에 모자라빅 전례 사용을 제한하고 로마 전례를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 스페인 교회는 이 권고를 받아들였고, 고유한 모자라빅 전례가 점차 사라지며 로마 전례로 바뀌어 갔다. 구체적으로 미사 때 감사 기도에서 주교가 아닌 교황만 언급하는 이탈리아 관습을 다른 교회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하도록 했다. 또한 주교 서품 준비 예식에 교황에 대한 충성 서약을 추가했다.
고대 로마 전례로의 복귀
그레고리오 7세에게 고대 로마 전례는 프랑크왕국에서 게르만화되기 이전의 전례를 뜻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간편하게 바뀌어 나날이 세 편의 시편과 세 개의 독서로 충분했던 당시 아침 기도를, 고대 로마의 시간 전례 배치대로 되돌렸다. 또한 고대 로마 전례에서 행하던 토요일 단식을 부활시켰다.
1078년 로마 교회 회의에서 교황은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토요일은 우리의 거룩한 조상들 사이에서 금욕 생활의 습관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들의 권위에 따라 누구든지 그리스도교 신앙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날에, 큰 축제가 있거나 환자인 경우가 아닌 한 고기의 섭취를 삼가해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사순절을 확대한 칠순절 전례에서 알렐루야 경구를 제거했고, 육순절과 오순절이 예식서에 추가되었다. 사순절과 오순절에 고대 로마 예식이 복원되었으며 전례 거행과 단식이 재결합되었다. 개혁은 모든 교회 규범이 초기 교회의 금욕주의와 분명한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에서 기인했다.
신자들의 양성과 교육
교황에게, 신자들의 정기적인 전례 참여는 하느님의 법에 순종하는 삶을 보장하는 길이었고 전례 참여 감소는 확실한 방종의 시작이었다.
카타네오는 당시 신자들의 전례 참여를 증진시키려는 양성과 교육에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 한 가지 원인은 카롤링거 시대부터 전례 행위에서 성직자의 우월성이 강조되었기에, 신자들이 점점 수동적인 보조자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다른 한 가지 당시 신자들은 충분히 교육받지 못하여 전례 이해가 부족한 문제가 두드러졌으며, 교육의 장인 성직자들의 설교와 강론이 충분한 준비와 연구 없이 미흡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레고리오 7세의 전례 개혁은 전반적인 교회 개혁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교황권 확립을 바탕으로, 고대 로마 전례로의 복귀를 중심으로 통일화를 의도했으나 성직자 중심으로 전례가 이루어진 시대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의 능동적 참여는 점점 더 요원해졌다는 사실은 큰 아쉬움을 남긴다.
[교회 안 상징 읽기] 천당 나무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
성탄절이 다가오면 기쁨과 설렘 속에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는 관습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서양에는 종교 혁명을 일으킨 마르틴 루터가 크리스마스트리를 처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말이 퍼져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없다. 어찌 보면 이 주장은 중세기부터 전해 오는 가톨릭교회의 풍부한 유산을 차용하거나 부정하려는 개신교 측의 시도들 가운데 한 가지 풍설일 따름이다. 그와 관련된 진실한 이야기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크리스마스트리는 중세기에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관습을 세상에 전하고 퍼뜨린 이는 독일인들이었다. 성탄 시기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꾸미는 관습은 주님 성탄의 순수한 의미를 볼 줄 아는 감수성을 타고난 독일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마침내 온 세상에 퍼졌다.
동방의 가톨릭교회들에서는 성탄 전날인 12월 24일을 아담과 하와의 축일로 지내며 인류의 첫 선조들을 성인으로 기리고 공경했다. 이것이 서방에까지 전해져서 서방 교회들도 아담과 하와를 공경하게 되었고, 첫 천년기의 막바지인 10세기에는 아담과 하와의 축일을 지내는 것이 매우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관행이 되었다. 물론 서방 가톨릭교회의 라틴 전례력에 이 축일이 공식으로 도입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두 인물을 성인으로 공경하는 대중적인 신심이 제지되지도 않았다. 실제로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에는 이 두 인물의 상(像)이 지금도 다른 성인들의 상과 함께 모셔져 있다.
그리고 12세기 무렵, 12월 24일이 되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축일을 기념하면서 천당에 관한 연극(paradise play, 이하 ‘천당극’)을 공연하는 관습이 시작되었다. 중세기에는 성경 말씀 등을 소재로 하는 짤막한 신비극(신비로운 종교극, mystery play)을 공연하는 것이 신자들을 위한 신앙교육 내지는 교리교육의 한 방편으로도 성행했는데, 심지어는 미사 중에도 사제는 미사를 라틴어로 집전하고 라틴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신자들은 신비극을 공연했다고 한다. 그리고 천당극은 가장 인기 있는 신비극 중 하나였다. 천당극에서는 주로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이야기, 그들이 죄를 지은 이야기, 낙원에서 쫓겨난 이야기 등이 표현되었다. 그리고 천당극은 언젠가 구세주가 오실 것이라는, 그분의 강생에 대한 약속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 연극을 공연하기 위해 설치되는 몇 안 되는 소품들 가운데 하나가 천당 나무(paradise tree)라고 불리던 커다란 상록수였다. 이 나무의 가지에는 아담과 하와의 원죄를 상기시키는 붉은 빨간 사과가 달려 있었다. 이후 인문주의, 르네상스, 개신교 혁명이 일어나면서 천당극을 공연하는 관습은 차츰 사라져 갔다. 이후 여러 세기 동안 이런 종류의 연극들을 공연하는 극장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은 천당 나무를 잊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첫 선조들을 기리고 공경하기 위해서 그들의 축일에, 곧 성탄절 무렵에 각 가정의 거실에 천당 나무를 세우는 일이 관습으로 굳어졌다. 천당극에 소품으로 쓰이던 형태 그대로 상록수인 전나무에 사과를 매달았다. 나아가 인류의 구속과 구원의 상징인 성체를 나타내는 흰 전병도 매달았다. 그리고 16세기부터는 이 나무에 초도 매달아 두게 되었다.
천당 나무로 전나무가 쓰이게 된 것은 전나무의 특징에서 기인한다. 전나무는 하늘을 향해서 곧게 그리고 높이 자라는 상록수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높이 곧게 자라는 전나무를 보면서 하찮은 현세적 욕망을 경멸하고 오로지 하느님(또는 천국)만을 동경하며 신앙에 매진하는 이들, 그리하여 하느님께 선택된(또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뽑힌) 이들과 그러한 경지에 이를 정도로 뛰어난 신앙심을 발휘한 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성 보니파티오(675?-754년)가 교황의 명을 받아 이교가 널리 퍼져 있던 독일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성인은 이교 세력이 가장 강성하던 지역으로 가서 이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잘랐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에게 봉헌했다는, 그래서 나무에 손상을 입히거나 해코지를 하면 신의 벌이 내릴 것이라고 믿어 마지않던 신성한 나무를 잘라냈지만, 성인에게는 아무런 변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성인은 이교도들의 예상이나 두려움과는 달리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힘주어 말했고, 베어낸 떡갈나무는 하느님의 집인 경당을 짓는 데 사용했다. 나아가, 떡갈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전나무를 심었다. 그러고는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전나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나무라고 설파했다.
이렇게 시작된 천당 나무는 성탄절 나무, 곧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다.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첫 언급은 독일의 영토였다가 프랑스에 귀속된 알사스 지방의 15세기 초의 기록에서 발견된다. 이 시기는 루터의 종교 혁명(1517년)보다 100년 정도 앞선다. 그리고 17세기 초의 한 편지글에는 크리스마스트리 세우는 것이 이미 관습으로 정착되었음을 증언하는 내용이 나온다. “성탄절이면 스트라스부르 지방의 사람들은 거실에 전나무를 세우고 여러 색깔의 종이들을 오려서 만든 장미꽃들, 사과들, 전병들, 금박 장식들, 사탕들을 매달아 둔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각종 아름답고 고운 장식물들로 꾸미기 시작했다. 19세기까지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데 주로 먹을 수 있는 품목들이 사용되었다. 그런 참에 1880년경 독일 튀링겐 지방의 유리 세공인들이 녹은 유리물을 대롱에 묻힌 다음 불어서 방울이며 종 모양으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 뒤로는 이 유리 제품들이 이내 사과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는 알자스 지방에서 독일과 프랑스의 다른 지역으로 전해지며 인기를 누리는 가운데 널리 퍼져나갔다. 유럽 대륙 이외의 곳으로도 전해졌다. 미국에는 식민지 시대(17~18세기)에 독일에서 건너간 이주민과 군인들에 의해 전해졌다. 영국에서는 독일 태생인 빅토리아 여왕이 1841년에 공식으로 들여온 크리스마스트리가 뜨거운 환영을 받았는데, 영국인들은 이것을 마치 그들이 창의적으로 생각해낸 산물이요 관습인 것처럼 여겼다.
이렇듯, 오늘날 그리스도교 사회가 아닌 곳에도 흔히 세워지는 크리스마스트리는 중세기의 천당 나무, 곧 우리의 첫 선조들이 지은 죄를, 그 죗값을 치르고 인류를 구원하실 구세주가 오시리라는 약속을 상기하게 해 주는 나무에서 기원한다.
아담에 관련된 그 밖의 정보들
크리스마스트리 말고도, 인류의 첫 선조인 아담과 관련되는 표현 몇 가지가 있다.
‘우리 안에는 옛 아담이 있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옛 아담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취약한 부분, 곧 유혹 또는 죄에 굴복하기 쉬운 죄로의 경향성을 뜻한다.
‘마지막 아담’이라는 말도 있다(1코린 15,45 참조). 이는 인간이 첫 아담의 불순명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것을 자신의 순명으로써 복구해 주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고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을 때,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땅을 일구어서 살아가도록 명하셨다. 그 뒤로 정원을 가꾸는 일은 ‘아담의 직업’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실제로 한때 아담이 정원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진 적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사람의 목, 특히 남성의 목에 튀어나온 연골은 ‘아담의 사과’라고 불리는데, 한때 이는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이르신 열매의 조각이 아담의 목에 걸린 것이며, 모든 인류가 아담의 죄를 물려받았음을 말해 주는 가시적인 흔적이라고 여겨졌다.
[전례 주년과 성모 공경] 전례 안에서 성모님의 구원적 역할의 ‘현재성’(현재 여기에서)을 새기자!
2021년 1월호 도입문에서 언급했듯이,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의탁은 묵주기도를 포함한 개인이나 공적인 신심 행위 안에서도 이루어지지만 무엇보다도 교회의 공적 기도인 전례 안에서 이루어진다. 성모 마리아는 특히 전례, 즉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거행하고 현재화하는 전례 거행 안에서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특별한 사랑으로 공경받으시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해서 전구하시는 분으로 현존하신다.
우리는 지금까지 1년 주기의 전례 주년 안에서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과 어떤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지, 구세사 안에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았다. 특별히 매달 가톨릭(로마)의 보편 전례력(General Calendar) 안에 성모 마리아에 대한 기념제를 하나씩 순서대로 살펴보면서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기념제가 그리스도의 신비를 기념하는 일 년의 주기 안에 매우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보았다.
분명하고 중요한 사실은, 성모 마리아는 단독으로 공경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 아드님의 구원 활동과 풀릴 수 없는 유대로 결합되어”(전례헌장 103항) 공경받으시는 것이다. 즉 당신 아드님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공경을 받으시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공경받으시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성모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보호가 되게 하셨다. 말하자면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뜻대로 성모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고 공경해야 하며, 그것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탁월한 배려요 사랑이며, 우리의 희망이요 한없이 감사드려야 할 은총이다. 우리는 전례 주년에 따라 성모님을 거듭 새롭게 만나고, 그 사랑의 모성에 안겨 예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예수님의 목숨 바친 사랑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성모님 망토의 보호 아래서 우리는 사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고, 성모님의 전구에 의탁하여 구원에 필요한 은총은 물론 우리의 일상 삶에 필요한 은총도 받게 되는 모성적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신심 활동을 통해 성모님을 만나고 공경하는 것도 물로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전례 주년에 따라, 전례 안에서 성모님에 대한 만남과 공경은 가장 탁월하고, 성모님도 그것을 가장 중요히 바라신다.
전례 주년에 따라 성모님을 만나고 그 모성에 안겨 예수님께 다가가
지금까지 살펴본 전례 주년 안에 성모님 공경의 기념제들에 대해 요약 정리해 본다.
대림시기에 기념하는 12월 8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에 마리아를 본받아 곧 오실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깨어 기도하고 기쁜 노래로 찬미’한다.
성탄시기에는 동정의 순결한 몸으로 구세주를 이 세상에 낳으신 마리아의 신적이고 구원적이며 순결하신 모성을 계속하여 기념하는데, 12월 25일 ‘예수 성탄 대축일’에는 성탄 하신 구세주를 경배하면서 아울러 그분의 영광스러운 어머니를 공경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전 세계가 구원으로 초대되었음을 기념하는 동시에, 동방박사들에게 만백성의 구원자를 경배하도록 하신(마태 2,11 참조) 복되신 동정녀께서 참된 지혜의 좌요, 왕의 어머니이심을 관상한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성탄 팔일 축제 내 주일)에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와 의인 요셉께서 나자렛의 가정에서 사신 거룩한 삶(마태 1,19 참조)을 묵상하면서 깊은 존경을 드린다.
3월 25일의 축일은 강생하신 구세주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서, “마리아의 아들”(마르 6,3)이 되신 말씀과 천주의 모친이 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리는 축일이다.
마리아의 영화로우신 승천을 기념하는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는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 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음을 기념하면서, 교회와 전 인류에게 그 바라던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위로의 증거를 나타내는 기쁨의 축일이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쁨은 7일 후 ‘여왕이신 복되신 동정 성 마리아 기념일’(레지나)에서 계속된다. 이 기념일에는 영원하신 왕 곁에 좌정하신 엄위로운 여왕 마리아께서 어머니로서의 전구도 계속하심을 기념한다.
또한 “온 세상의 희망이요 구원의 서광”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탄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9월 8일), 성자를 잉태하시고 엘리사벳을 찾아가 친절히 봉사하시면서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자비를 선언하신 마리아를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5월 31일), 구세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성자 곁에서 함께 수난하시는(요한 19,25-27 참조)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한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등이 역시 구세사 안에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된 성모 마리아의 탁월한 역할이 강조되어 거행된다.
그 외,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전례 주년 안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별도로 다루지는 않았는데, 교회는 토요일 성모 신심미사를 통해서도 복되신 동정녀를 자주 기념하도록 권고하고 있다.(특별히 첫 토요일).
성모님의 마음으로 전례에 충실히 참여해야
전례가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행사적 기념이 아니라 ‘현재 여기에서 벌어지는 구원신비’(ANAMNESIS)이듯이, 전례 안에 성모님에 대한 공경도 과거 성모 마리아의 역할에 대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 여기에서’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로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활동에 탁월하게 참여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시고 예수님께로 우리를 이끌어 가고 계신다. 전례 안에서 성모 마리아를 만나지 못하고, 진정한 공경을 드리지 못한다면 우리는 전례를 잘 못 드리는 것이며, 대단히 중요한 은총을 놓치는 것이다.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모님의 마음으로 전례에 충실히 참여하자.
성모 마리아가 전례 안에서 차지하는 역할과 의미는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다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월간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 전례 안에 마리아 공경을 이렇게 간단하나마 전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다소나마 레지오 단원들에게 무엇보다도 전례를 통해 성모님을 더 깊이 만나고 공경 드릴 수 있도록 작은 가이드가 되었기를 바라며, 오히려 동행에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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