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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규 목사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기 직전인 기원전 750년경부터 활동하였습니다. 유다는 웃시야 왕이 죽자, 국력이 쇠퇴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성읍은 불에 탔으며, 그들의 토지는 이방인들의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주변 강대국들에 의하여 침략을 당하고, 전쟁으로 황폐해진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잘 살던 나라가 갑자기 비참한 상황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전 예배의 타락에 있다고 본문은 밝힙니다. 유다 백성들은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을 저지르고, 살인을 하고, 뇌물을 받아먹고, 세금을 포탈하고, 도적질을 하는 범죄를 저지릅니다. 엄청난 죄를 범하고도 뻔뻔스럽게 하나님 앞에 나와 의인인 척 제물들을 바쳤습니다. 이런 제물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헛된 제물을 더 이상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약 시대의 제사는 예배의 핵심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가증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범죄 하면서도 회개할 줄 모르는 백성들의 월삭과 정한 절기인 신년절도, 유월절도, 칠칠절도, 장막절도, 그 어떤 절기도 싫어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외식 적이고 가증한 예배로 하나님을 모욕한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다시 말해서 행실이 날마다 더럽고, 말씀에 불순종하며, 거역하고, 교만하고, 도적질하고, 음행의 죄악들을 저지르고 있으면서 기도하면 응답해 주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거짓된 예배를 드리고 삶에서 온갖 악을 자행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채찍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유다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회개하면 예전과 같은 축복을 다시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 앞에는 두 갈래의 길이 놓인 것입니다. “축복 받는 길과 망하는 길”입니다. 즐겨 순종하여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냐? 아니면 거절하여 배반하고 칼에 망할 것이냐?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망하는 길에 대해서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축복받는 길의 반대가 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양면성을 생각하면서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의 말씀(법)을 듣고 귀를 기울이라(10절)
이사야 선지자는 남왕국 웃시야와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등 네 왕에 걸쳐 예언활동을 했던 궁중 선지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가 본격적으로 예언활동을 했던 때는 아하스 왕 때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하였고 유다마저도 앗수르의 침략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나라는 정신을 못 차리고 제멋 대로였습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떠나 죄악의 늪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은 친앗수르파와 친애굽파로 갈라져 파당싸움에 여념이 없었고, 백성들은 세속주의에 물들어 우상을 섬기고 마음이 극도로 강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인들도 형식주의에 빠져 외식만을 일삼았기 때문에 진실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 안 그 어디에서도 정의와 공평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채찍을 가했습니다. 수리아, 앗수르, 블레셋 등 포악한 주변국들을 들어서 유다 백성들을 내리 치셨습니다. 죄악이 너무 극심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다나라를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매를 때리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10절)라고 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을 가리켜 '소돔과 고모라의 관원과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택함 받은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하여 소돔과 고모라의 관원과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역사상 그들이 행한 악한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불로 심판받은 곳이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물론 여기서 소돔과 고모라는 악한 백성이라는 이미지를 전달해 주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악한 사람,"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을 생각하면 곧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유다 백성이 그들의 죄악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성처럼 망해가기 때문입니다. 멸망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위기의 상황을 알려주시면서 하나님은 "들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이라고 호소하십니다. 원래 언어 성경을 보면 ‘들으라 여호와의 말씀을’이라는 명령 투로 시작합니다. 히브리어에서 들으라는 말은 “쉬므우”라는 말인데 동사 “샤마”에서 왔습니다. 그 뜻은 '듣다 hear'를 의미하며, '경청하다 listen to, 순종하다 obey'라는 의미도 지닙니다. 들으라는 말은 단순히 경청하라는 의미 이상을 뜻을 포함하는데 ‘지켜라, 복종하라’는 보다 강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적들의 칼에 삼킬 것”이라는 경고가 본문의 20절에 나옵니다. “귀를 기울이라”고 하신 말씀은 귀를 기울여 자세히 듣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유다의 멸망을 가장 먼저 들어야 할 사람들은 지도자들이며 그 다음으로는 유다의 백성들입니다.
온 나라가 총체적으로 타락하여 구원의 가능성이 없어지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 드러난 구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과 ‘여호와의 법(토라)’이 평행 구를 이루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시내산 계약을 상기시켜줍니다. 유다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왜 멀어졌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파괴의 책임은 유다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단순한 율법 조항이 아닙니다.
우리가 결혼 할 때도 ‘혼인서약’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것은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는 중요한 법입니다. 이것을 파괴할 때 결혼관계는 깨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혼인서약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은 남편이 되시는 하나님과 그 백성들과의 관계를 지속시켜 주는 영적인 띠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과 법을 듣고 귀를 기울이기를 소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이스라엘에 대해 특별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들의 죄악대로 갚으시지 않으시고, 어떻게 해서든지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신중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요, 축복받는 길입니다. 그러면 망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말씀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 밭은 어떻습니까? 혹시 길가나 돌짝밭과 같은 마음 밭은 아닙니까?
2.바른 예배를 드리라(11-15절)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의 단절은 예배행위의 위선에서 드러났습니다. 아무리 희생제물을 많이 바치고 종교적 절기를 준수한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11-13절 상반부는 희생제물을 비롯한 각종 제물의 무용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분향은 내가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이요, 내마당만 밟을 뿐"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 필요가 없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여기서 제물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레위기 1-7장은 출애굽한 백성들을 위해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각종 제사규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제사규정들은 애굽에서 해방시켜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요 구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이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예배의 본질이 변질되기 시작했습니다. 제물은 하나님과 흥정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권력자들의 자기 과시용이 된 것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없는 형식적인 제물을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쪽에서 활동하였던 호세아 선지자도 비슷한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호 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사 1: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헛된 제물을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11절에서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은 수양의 번제,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감사의 기도보다는 제물을 앞세워 무엇을 "달라"는 소리에 하나님께서는 너무 지쳐서 이제는 사람들이 예배하러 오는 것만 보아도 신물이 난다는 뜻입니다.
15절이 당시 사람들의 예배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펴고 높이 들면서 기도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 손에는 피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피가 가득하다"는 표현은 예언서에서 종종 사회적 약자에 대한 억압의 표현으로 주로 사용됩니다(사 59:3; 렘 7:6; 22:3; 미3:9-10; 7:2-3).
"선행을 베풀고 공의를 구하며 고아와 과부를 위해 변호하라"는 17절의 말씀은 유다의 지도자들이 그렇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는 중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바르지 못한 예배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배가 만능입니까? 예배만 드리면 모든 신앙생활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에 보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가 나옵니다. 같은 제사이지만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 받았습니다.
바르지 못한 예배는 하나님의 저주를 불러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바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사 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신약성경에 보면 부자는 성전에 나아와서 금화를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그러나 과부는 두 렙돈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드렸습니다. 어떤 사람의 헌금이 열납 되었습니까? 부자는 비록 금화를 드렸지만 자기를 과시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드린 것이기에 하나님 앞에 열납 되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 하나님의 축복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의 성공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른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회개하고 즐겨 순종하라(16-20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받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오늘날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역시 축복받는 길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변화된 삶을 살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하나님의 자비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하시는 것으로 끝나버렸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전혀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헛된 제물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쓸데 없다고 책망하시고,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안 들어 주시겠다고 책망하신 후에도 하나님은 그들이 축복받는 방법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16절과 17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회개하고, 선한 일에 힘쓰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축복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독일의 성직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는 “죄를 범한 후에 지나친 변명을 하는 것보다 진실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회개가 얼마나 큰 위력이 있습니까?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와 은총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회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회개하지 못합니까?
▶첫째는 교만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둘째는 변명에 빠지기 때문에,
▶셋째는 마귀가 회개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오셔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회개할 마음을 주시고 우리의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Nobel, Alfred Bernhard, 1833∼1896)은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그날 신문에 자신의 사망기사가 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죽은 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궁금하여 기사를 읽어보았습니다.
‘다이너마이트 황제 사망하다. 그는 죽음의 상인이었다. 돈을 많이 벌었지만 결국 그도 죽었다.’
그는 그 잘못된 기사를 읽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죽음의 상인인가? 다이너마이트, 폭파의 황제인가? 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평가받아서는 안 된다. 나는 훌륭한 인물이 되고 싶다. 돈도 많이 벌었고 명성도 있고 지위도 있지만 내가 죽은 다음에 이렇게 되면 안 된다. 나는 좋은 일을 남기고 죽어야겠다.’
그 뒤로 노벨은 고민하며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만든 상이 바로 ‘노벨상’입니다. 그는 전 재산을 털어 노벨상을 만들었고, 인류에게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도록 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행동이 좋은 결실이 되어 오늘날까지 노벨상으로 남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내가 떠난 다음에 사람들이 나에게 어떤 평가를 할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뭐라 하실까?’ 이런 생각도 미리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다할 지라도 뉘우치고 회개하면 용서와 구원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죄인인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할 때에 그 첫 마디가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회개는 범죄한 인생들이 하나님 앞에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악행을 그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유다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다시 살길을 회개하는 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논리나 정치논리보다 앞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입니다. 이 나라와 백성들이 도덕성을 회복하고 악행을 그쳐야 합니다. 사치와 낭비와 고액과외를 일삼는 그 돈으로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를 신원하며, 어려움에 처한 자를 위해 베푸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한 자의 삶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변화된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곧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17절)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회개한 자에게 따르는 열매입니다.
하나님께 즐겨 순종하면, 곧 회개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될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1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변론하자며 우리를 간절히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모든 죄악과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과거 우리의 잘못 살아온 삶을 회개하고 이제부터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은혜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내린 모든 재앙을 거두시며 우리가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회개하므로 순종의 길을 걸어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받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