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宰予晝寢 子曰 朽木不可雕也 糞土之牆不可杇也 於予與何誅 재여가 낮잠을 자거늘,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으며, 썩은 흙으로 쌓은 담장은 흙손질을 할 수 없으니 내가 너에게 무엇을 꾸짖겠는가.”하시고, 朽, 許久反. 杇, 音汙. 與, 平聲, 下同.
○ 晝寢, 謂當晝而寐. 朽, 腐也. 雕, 刻畫也. 杇, 鏝也. 言其志氣昏惰, 敎無所施也. 與, 語辭. 誅, 責也. 言不足責, 乃所以深責之. 晝寢이란 낮에 잠을 잔다는 말이다. 朽는 썪었다는 말이다. 雕는 그림을 새기는 것이다. 杇는 흙손질(鏝)한다는 것이다. 그 지기(志氣)가 어둡고 게을러서, 가르침을 베풀 곳이 없다는 말이다. 與는 어조사다. 誅는 책망한다는 것이다. 나무랄 만하지도 않다고 말한 것은 도리어 그를 깊이 책망하기 위한 것이다. 新安陳氏曰 志謂心志 氣謂血氣 志先惰 氣隨而昏 則敎無施處 如朽木糞牆 雕杇之工無施力處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志란 心志를 말하고, 氣는 혈기를 말한다. 志가 먼저 나태해지면, 氣가 뒤따라서 어두워지는데, 이렇게 되면 가르침을 베풀 곳이 없는 것이다. 마치 썩은 나무와 똥으로 만든 담장은 새기고 흙손질하는 장인이 힘을 베풀 곳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子曰 始吾於人也 聽其言而信其行 今吾於人也 聽其言而觀其行 於予與改是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처음에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믿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 말을 듣고 그 행실을 살펴보려고 하니 재여 때문에 사람 보는 태도를 고쳤다.”라고 하셨다. 行, 去聲.
○ 宰予能言而行不逮, 故孔子自言於予之事而改此失, 亦以重警之也. 재여는 말을 잘 했지만 행동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공자께서 재여의 일에서 이 잘못을 고친 것이라고 스스로 말하였는데, 이 역시 재여에게 거듭 경계해주신 것이다. 慶源輔氏曰 宰予以言語稱於聖門 而孟子亦以爲善爲說辭 然論喪則欲其短 論仁則病其愚 對社則失其義 至此晝寢而夫子深責之 且自言於予之事而改此失 則能言而行不逮 可見矣 경원보씨가 말하길, “재여는 언어로써 성인의 문하에서 칭송을 받았고, 맹자도 역시 말을 잘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喪禮를 논하면서는 짧은 1년喪을 하고자 하였고, 仁을 논할 때는 仁者가 우물 속으로 들어가면 어리석다고 병통으로 여겼으며, 社에 대하여 대답할 적에는 그 뜻을 잃었고, 여기에 이르러서는 낮에 잠을 잔 일로 공자님께서 그를 심하게 나무라면서, 또한 재여의 일에서 이 잘못을 고쳤다고 스스로 말씀하였으니, 그렇다면 재여가 말은 잘하지만 실행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 ‘子曰’ 疑衍文, 不然, 則非一日之言也.” 호씨가 말했다. “자왈은 연문인 듯 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한 말이 아닐 것이다.”
○ 范氏曰: “君子之於學, 惟日孜孜, 斃而後已, 惟恐其不及也. 宰予晝寢, 自棄孰甚焉, 故夫子責之.” 범씨가 말했다. “군자는 배움에 있어서 오직 날마다 부지런히 하는데 죽어서야 그만두며, 오직 자신이 미치지 못하는 것만 두려워한다. 재여가 낮에 잠을 잤으니, 스스로 포기함에 있어 어떤 것이 이보다 더 심하겠는가? 그래서 공자께서 그를 책망하신 것이다.” 胡氏曰: “宰予不能以志帥氣, 居然而倦. 是宴安之氣勝, 儆戒之志惰也. 古之聖賢未嘗不以懈惰荒寧爲懼, 勤勵不息自强, 此孔子所以深責宰予也. 聽言觀行, 聖人不待是而後能, 亦非緣此而盡疑學者. 特因此立敎, 以警群弟子, 使謹於言而敏於行耳.” 호씨가 말했다. “재여는 의지로써 기를 통솔하지 못하였기에 뜻밖에도(居然, 어느새) 게을렀던 것이다. 이것은 편안하게 지내고자 하는 기가 우세하고 경계하는 의지가 게을러진 것이다. 옛날 성현은 일찍이 게으르고 나태하고 편안함에 빠지는 것을 두려움으로 삼지 않은 적이 없었고, 열심히 근면하며 쉬지 않고 스스로 노력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공자께서 재여를 심하게 나무라신 까닭이다. 말을 듣고 행동을 살펴봄에 있어, 성인은 이를 기다린 이후에 잘할 수 있지도 않았고, 또한 이를 근거로 해서 배우는 자들을 다 의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로 인하여 가르침을 세워서 여러 제자들을 경계함으로써 말에 삼가고 실행에 민첩하도록 만들었을 따름이다.”
覺軒蔡氏曰 學者誠能立志以自强 則氣亦從之 不至於昏惰 何有於晝寢 故學莫先於立志 각헌채씨가 말하길, “배우는 자가 진실로 뜻을 세워서 자강할 수 있다면, 氣도 역시 그것을 따를 것이고, 어둡고 게으른 지경에 이르지 않을 것이니, 낮잠을 자는 것에 무엇이 있겠는가? 그래서 배움에 있어서 뜻을 세우는 것보다 앞선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玩理以養心 則志不昏 以志而帥氣 則氣不惰 志不昏氣不惰 則有受敎之地而聖人之敎可得而施也 朽木不可雕 糞土之牆不可杇 正以喩其志氣昏惰 而敎無所施耳 聽言觀行 聖人明睿所照 不待是而後能 至誠與人不逆於詐 故非緣此而盡疑學者 仁以體物 敎人不倦 故因此立敎以警群弟子也 경원보씨가 말하길, “이치를 음미함으로써 마음을 수양한다면, 뜻이 어둡지 않고, 뜻으로써 氣를 통솔한다면, 氣가 게으르지 않는 것이다. 뜻이 어둡지 않고 氣가 게으르지 않다면, 가르침을 받아들일 여지가 있어서, 성인의 가르침을 베풀 수가 있는 것이다. 썩은 나무는 새길 수 없고, 똥흙으로 만든 담장은 흙손질할 수 없다는 것은 바로 이로써 그 뜻이 어둡고 氣가 게을러서 가르침을 베풀 곳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일 따름이다. 말을 듣고서 행동을 살펴본다고 했는데, 성인께서는 밝은 슬기가 비추는 바이니, 이런 것을 기다린 후에서야 능히 진실로 남과 더불어서 속임을 당하지 않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배우는 자들을 전부 다 의심했던 것이 아니다. 仁으로써 외물을 체득하고, 남을 가르침에 게을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가르침을 세워서 제자들을 경계하셨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 宋王楙『野客叢書』云: “宰予晝寢, 夫子譏之. 寢者, 寢室也. 蓋晝當居外, 夜當居內, 宰我晝居內, 未必留意於學. 故夫子譏之, 非謂其晝眠也. 游夫子之門, 安有晝眠之理?” 案『禮』云: “君子不晝夜居於內. 夜居於外, 問其疾可也, 晝居於內, 弔之可也” 王楙之說, 蓋據是也. 然孔子ㆍ宰我, 不與同室, 雖晝居於內, 孔子無以知之, 況宰予方從學孔子, 安得恆居內室? 송나라 왕무가 [야객총서]에서 말하길, “재여가 낮에 잠을 잤고, 공자께서 그를 책망하셨다. 침이라는 것은 침실이다. 대개 낮에는 마땅히 밖에 거해야 하고, 밤에는 마땅히 내실에 거해야 한다. 그런데 재여가 낮에 내실에 거했으니, 반드시 배움에 뜻을 두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를 나무라신 것이지, 그가 낮에 잠을 잤다고 나무란 것은 아니다. 공자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어찌 낮잠을 자는 이치가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 [예기]에 따르면, “군자는 주야로 내실에 기거하지 않는다. 밤에 밖에 거하면, 그가 병이 났는지 위문해야 옳다. 낮에 안에 거하면, 그를 조문해야 옳은 것이다.”고 하였다. 왕무의 설은 아마도 근거가 이것일 것이다. 그러나 공자와 재여는 더불어 집을 같이 하지 않았으므로, 비록 낮에 안에 기거할지라도, 공자는 그것을 알 도리가 없었다. 하물며 재여가 바야흐로 공자를 따라 배우려는 참인데, 어찌 내실에서 항상 기거할 수 있단 말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