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에 관한 이야기, UN평화기념관 (1)
인천상륙작전은 이 불리한 전세를 단번에 뒤 엎은 전투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 본디 작전명은 '크롬전투'였습니다. 왜냐하면 작전명은 본래 유출되어도 이게 뭐하는 작전인지 모르게 짓거든요. 만약 인천상륙작전이라고 지었는데 그게 유출되었다면?? 이 작전이 성공했을까요?
작전 성공후 이 전투는 인천전투(Battle of Inchon)로 불립니다.
인천의 지도.
와 관련 기록자료.
인천상륙작전의 입지는 대단합니다. 2차대전에서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미드웨이 해전과 비슷한 비중을 가지고 있어요. 그동안 계속 조선인민군에게 패배만 하던 상황을 처음으로 뒤집은 전투거든요.
이승만 대통령이 표지로 나온 타임지. 사실 이름이 안 붙어서 그렇지 좀 더 판 커졌으면 이건 세계3차 대전 수준의 전쟁이에요.
북한이 이를 예측하지 못한 건 아닙니다. 참전은 안한 상황이지만 이 전쟁에서 얻을게 많던 중공군은 UN군이 후방에 상륙작전을 실시할 것이라고 예상했고 이를 모택동에게 보고하였고, 모택동은 북한에게 인천을 기점으로 상륙작전이 벌어질 가능성에 대해 김일성에게 경고합니다.
그럼에도 작전이 성공한 이유는 경험의 차이입니다. 소련 육군 대위 출신인 김일성은 낙동강 전선을 포기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정보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낙동강으로 보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죠. 그 결과 9월 15일 인천 월미도에 미 해병대 1사단 5연대 병력이 처음 상륙했을 때 당장 인천 일대에서 방어에 임하고 있는 병력은 월미도의 해군 육전대 2개 중대 규모의 병력과 인천 시가지의 2개 대대 병력 정도밖에 없었죠.
이렇게 인천상륙작전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리고 거의 한반도를 수복하고 북한을 몰아내나 싶었...건만...
이렇게되자 김일성은 소련의 지시로 인해 북한을 떠나 철수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UN군이 10월 19일에는 평양에 입성하였고, 10월 26일에는 압록강에 인접한 초산에 이르렀으며 11월 23일에는 함경남도 혜산, 11월 26일에는 함경북도 청진까지 도달했으니 별 수가 없었던 거지요.
하지만... 미국이 한반도에 주둔하면 불편한 공산국가 중화인민공화국이 느닷없이 참전해버립니다. 네 주원라이는 이미 30만의 중공군을 한반도 근방에 주둔시켰던거에요.
우리가 배울때는 인해전술... 즉 무기도 없이 밀려오는 무식한 중공군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은 다릅니다. 당시 참전한 중공군은 중일전쟁과 끝난지 얼마 안된 국공내전에 참여하여 일본 및 국민당과의 전쟁을 겪어본 실전파 베테랑 들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작전 자체가 실전적으로 훌륭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선을 자꾸 미국의 기갑부대가 갈 수 없는 산으로 유도하고 보급로를 끊어가면서 싸운거에요.
이에 맥아더 UN군사령관은 중국에 대한 핵폭격을 실행하고 장제스의 중화민국군을 중국 남부에 상륙시키서 중국점령을 추진하지만 이는 세계 열강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까지 반대하자 처음에는 핵투하에 끌리던 트루먼은 생각을 바꿔 맥아더와 반대각을 세우게 되지요.
말씀드렸죠? 이거 사실상 3차 대전 꼴 날 뻔했다고?
정말 이런 걸 보면 기록문화를 칭찬할만 합니다.
북쪽으로 올라간 연합군을 고생시킨 건 10월의 강추위와 부대의 성격이었습니다. 기갑부대는 탱크, 장갑차, 트럭이 주부류인데 이런 부대는 산으로 가기가 힘들어요. 중공군들은 이를 노려서 낮에는 산으로 튀어올라갔다가 밤에 내려와서 습격을 했어요.
특히 이런 보급로가 주요 공격대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연합군은 도로 밀려나갈 수 밖에 없었죠.
이렇게 밀리기만 하던 전선에 이상조짐이 보입니다. 북위 37도선까지 내려왔던 중국이 한 달간 진격을 멈추는 사건이 발생한겁니다.
네, 중공군의 전선이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보급문제가 생긴거죠.
이를 놓치지 않은 UN군은 반격을 시작하여 3월경 다시 서울을 재탈환, 중공군을 집단으로 패주하여 전선은
처음 전쟁을 시작한 38선 부근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중공군은 포기하지 않았고...
고지전으로 변화해 버립니다.
결국 김일성은 얻은 것 없이 반쪽의 영토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중국에 강하게 요청하지만 중국도 이를 끌고 나갈 역량이 없는데다 본인의 군대는 싹 날아간지 오래니 별 수 있나요. 게다가 이 전쟁에서 절대 져서는 안되는 미국은 최소 병력을 제외하고 모두 한반도로 보내버린데다 다른 참전국의 규모도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곳은 아니라는 오판을 하지요. (그리고 미국은 이를 70년뒤 후회하게 되는데)
결국 소련의 제의로 휴전이 시작되었지만 2년간 협상을 지지부지 끄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영토를 확보하기 위해 국지전은 오히려 더 활발해졌습니다. 이게 철의 삼각지를 둘러싼 전투죠.
영화 <고지전>을 보시면 이 과정이 잘 드러납니다. 약간 지루하지만 잘 만든 영화에요.
참전용사들의 유류품과...
UN의 의료지원단의 도구들. 오래된 밴드들이 눈에 띄네요.
그들이 타고 온 의료선...의 모형
그리고 들어본 적 없는 타국을 위해 싸워준 참전용사들의 사진....
미국은 이 이상 싸울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그래서 휴전하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이는 미국의 커다란 실패입니다. 아니 미국은 애초에 경제정책은 다 성공해도 군사정책은 다 실패한 것으로 유명하죠... 아세요? 미국은 일본과의 전투 이후 이긴 싸움이 단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이에 분노했죠. 미국에게 끝까지 진공해줄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미국은 듣지 않았고 결국 휴전협정에 사인하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요즘 종전협정에 북한-미국이 나서고 있죠? 우리는 중재밖에 못하고 있죠? 왜냐하면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거든요. 이승만 대통령이 저기 사인 안하는 바람에... 덕분에 우리는 종전이 가장 절실한 나라임에도 중재밖에 못하는 처지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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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조선 리더십 경영> 2019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수상
<일본 졸업>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