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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배 학교 우리 4주 차입니다. 오늘은 예배의 요소 중에 말씀에 대한 부분을 가지고 함께 나누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저게 남자 사진이 누굴까요?
이것도 못 맞추시면 네 접니다. 우리 딸이 그려준 거예요. 딸이 이렇게 디자인을 좀 전공을 해서 이렇게 그려서 아빠라고 이제 만들어줬습니다. 제가 외부 PPT 나갈 때마다 꼭 저 그림을 씁니다.
예배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없는 예배는 되게 위험한데 사가 은사로 바로 사용되기 위해서도 예배가 있어야 하고 특별히 찬양만 있고 말씀이 없으면 얼마든지 잘못된 모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예배에는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귀로 듣는 거죠. 기 귀로 듣는 것 그러니까 오감으로 드리는 예배 우리는 단순히 예배를 에 있어서 내 몸과 마음이 다 드러워진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오감 특별히 눈 귀 입 이 모든 걸 다 사용해서 예배해야 된다는 생각은 잘 하지는 않잖아요. 말씀을 듣게 하는 게 이렇게 귀로 듣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귀의 역할이 뭐냐 하면 여러분도 아는 것처럼 듣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귀는 중심을 잡아줘요. 그래서 귀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이 걷지를 못하는 거죠.
그처럼 예배의 말씀이 없으면 균형이 깨어지고 중심이 무너진 예배를 드리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에는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래서 찬양 예배할 때 찬양단과 설교자가 어떻게 잘 맞춰지느냐가 되게 중요해요.
또 저는 사전에 이제 제 설교 제목을 공지하거나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 찬양단 리더들이 오전 예배를 보면 신기할 정도로 그날의 설교의 주제와 또 말씀과 찬양이 잘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을 봐요.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있어야 우리가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데 특별히 그중에 우리가 기 그러니까 말씀을 듣는 일들을 잘 해야 되는 겁니다.
말씀이 그러면 우리 삶에 들어올 때 어떤 역할을 하냐 하면 말씀은 검 그리고 불 헤모의 역할을 해요.
첫 번째 검은 여기에 보면 이게 칼이 아니라 검이에요. 검 칼은 그냥 우리가 이렇게 깊게 찌르거나 이렇게 하지 못하잖아요. 이제 검은 반대로 되게 이렇게 깊게 찔러요. 그래서 영과 혼과 관절을 질로 쪼개기까지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말씀이 내 삶에 들어올 때 내 내면의 깊은 곳까지 터치가 일어난다는 그런 의미예요.
말씀이 내 삶에 들어올 때 하는 두 번째 역할은 이제 불인데 불은 다 태우잖아요. 태워서 깨끗하게 하는 정결케 하는 기능이 있어요. 그처럼 말씀이 우리 삶에 들어왔을 때 삶과 교회가 정결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없으면 사람이 깨달음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보통은 우리가 성령을 깨닫게 하신다 이렇게 하지만 진짜 필요한 건 말씀이에요.
저희가 이제 청년들이랑 하시보를 하고 있는데 이제 큐티 나눔을 해요. 이번 주 처음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는데 모임을 가지면서 제가 형제 청년들에게 강조한 말이 하나 있어요. 우리가 매일 이제 2 3절 아니면 5절 6절 말씀을 깊게 묵상하는 것도 되게 중요하지만 매일 일정량의 말씀을 읽는 것이 되게 중요하다고 했어요. 이게 왜 그러냐 하면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깨닫게 하심을 깨닫는 일이 쉬운 게 아니에요. 근데 말씀은 기록되어 있으니까 말씀을 읽으면 읽으면 잘못된 내 삶과 그 말씀이 계속 부딪힘이 일어나요. 그래서 말씀을 읽으면 말씀이 내게 들어오면 내 삶 또 우리 공동체가 정결하게 되는 겁니다.
세 번째 역할은 헤모인데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을 새롭게 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다음에는 구약에서 지켰던 말씀의 전승 방법인데 첫 번째 전승은 말씀을 듣게 하는 거예요. 듣게 하는 거예요. 로마서 1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저기 PPT에 기록되어 있죠. 로마서 10장 17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제대로 듣게 하는가 이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다음 세대들에게 말씀을 전승했던 방법이 계속 말씀을 듣게 하는 것 이게 그 말씀의 내용이 어떤 거냐 하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말씀을 통해서 다음 세대가 듣도록 하는 거죠.
출애굽 10장 2절에 보면 네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 가운데서 행한 표정을 내 아들과 내 자손의 귀에 전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앎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자기의 공동체에 행하신 일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게 된다. 그래서 말씀을 계속 듣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두 번째로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지켰던 전승의 방법은 두 번째로는 지키게 하는 거죠. 듣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위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며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이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이이니라.
그러니까 말씀을 듣게 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지키게 해서 말씀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도록 했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럼 왜 우리가 말씀을 지키지 못할까?
첫 번째로는 들을 귀가 없기 때문인 거예요. 성경 여러 곳에서는 정말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선포를 해요. 이 말은 귀가 없는 성도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을 듣고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 거죠.
두 번째로는 말씀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우리가 이제 땅에 비유해서 100배의 결실을 하는 땅 그러니까 좋은 땅과 같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좋은 밭이 되지 못하면 말씀을 받아도 말씀이 그의 삶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듣지만 내 마음의 밭이 준비되지 않아서 그 말씀이 내 안에 역사하지 못하는 겁니다.
세 번째로는 말씀을 듣기 싫어해요. 사도행전 7장 57절에 보면 그들이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체의 그들에게 달려들어 그러니까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거죠. 듣기 싫어하니까 예배 가운데 말씀의 역사가 가장 강력하게 일어나야 되는데 마음의 밭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요. 들을 귀도 없고요. 그리고 말씀을 듣기 싫어하니까 예배 가운데 반드시 있어야 될 말씀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겁니다.
네 번째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기 때문에 말씀을 지키지 못한 요한복음 8장 47절에 보면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그러니까 말씀을 주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지키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말씀을 지키지 못한다.
다섯 번째로는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네 번째와 비슷한 거죠. 성령은 말씀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이 없으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기록된 성경을 이해하는 것도 성령이 필요하고요. 그리고 선포되는 말씀을 이해하는 것도 동일하게 성령이 필요해요.
성령이 말씀의 영이라 이 성령이 없으면 말씀을 깨닫는 일이 어렵고 특별히 말씀을 지키는 일도 어렵다는 겁니다. 이 기본적인 근본적인 사항이 잘 안 돼 있어서 우리가 예배 시간에 말씀을 통해서 은혜 받는 일들이 예배의 필수 요소인 말씀의 역사가를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말씀을 드릴 때에 우리가 태도가 좀 필요해요. 여러분은 어떻나요?
말씀을 드릴 때 여러분의 태도는 오늘 두 가지 정도 제가 나누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는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사도행전 17장 11절에 보면 베뢰아 사람들에 대해서 나오는데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상고함으로 그리고 느헤미야 8장 6절에 보면 아멘하는 에스라가 광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며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더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게 정말 어려워요. 왜냐하면 여기 사람이 이 앞에 서 있잖아요. 사람이 목회자가 이 앞에 서 있기 때문에 목회자와 투명 투영돼서 말씀이 선포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 말씀으로 듣기가 되게 어려워요.
그런데 어쨌든 말씀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야 말씀의 역사가 내 삶에 나타나는 거잖아요. 이 사람의 소리로 들릴 때는 말씀의 역사가 없어요. 하나님의 소리로 들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멘 아멘 하는 마음으로 들으라.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아멘 했어요. 그렇게 말씀을 받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아멘은 우리가 이렇게 어떤 그냥 노래의 추임새 같은 그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말씀을 들을 때 필수적인 자세가 아멘이라는 거예요. 내가 이 말씀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습니다라고 하는 고백이 곧 아멘인 거죠.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지자들이 대언하고 이렇게 선포할 때 그들이 그 말씀 앞에서 아멘 아멘 하고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 번 아멘 훈련을 잘하시긴 하시지만 아멘 훈련을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할렐루야 하면 여러분이 아멘 이렇게 해보는 거예요. 할렐루야 할렐루야 우리 교회가 그래도 아멘을 이렇게 못하는 교회는 아닌데 가끔은 좀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진짜 인간적인 마음을 생각해 보면 여러분 설교할 때 이렇게 녹음이 되잖아요. 아멘 소리가 안 들려요. 웬만큼 크게 해서는 여기까지 안 들린다는 그 의미인 것 같아요. 제 바람에 그냥 이거 진짜 인간적인 바람이에요. 아멘 소리가 여기로 좀 들어왔으면 좋겠다 이 생각이 듭니다. 물론 선포하는 저도 말씀을 잘 전해야 되지만 여러분의 말씀에 대한 자세도 잘 갖춰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두 번째로는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는 말씀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은 어떤가 하면 생물이에요. 생물 생물 그러니까 생물은 잘 다뤄야 돼요. 근데 생물에는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어요. 왜냐면 잘 다루면 이 생물이 어마어마한 우리 말로 하면 아웃풋을 낼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죽은 거는 잘 다뤄도 썩어요. 죽은 건 시간이 지나면 썩어요. 근데 생물은 시간이 지나면 커지기도 하고요. 힘이 세지기도 하고요. 더 맛있어지기도 해요. 말씀은 이렇게 생물과 같아요. 그러니까 말씀은 살아 움직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말씀을 들어야 된다는 거예요.
말씀을 들으면 내 귀만 자극하는 게 아니라 이 말씀이 들어와서 내 삶의 못된 습관도 고치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아픔을 이렇게 위로해서 치료해서 내 삶에서 제거하기도 하는 기능도 하고 이 말씀이 나와 가족들을 하나 연합되게 하기도 하고 이런다는 거죠.
저는 자연적으로 지금 아내와는 말씀 묵상을 교제하지는 않는데 하시보에 저하고 제 호주에 있는 딸하고 또 아들하고 다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말씀으로 늘 어떻든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로서 교제하기는 하지만 어떻든 아버지와 아들 딸이 그 안에 다 들어 있는 거잖아요.
여러분 이게 정말 중요한 의미인 거예요. 그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는 것. 근데 문제는 이 말씀을 살아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 말씀 그 말씀의 영향력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거죠.
말씀을 그냥 가치 없게 대하면 말씀은 그냥 죽어 있는 글에 불과하고 이 말씀을 생물처럼 다루면 말씀은 내 안에 각종 다양한 역사를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에 살아계심을 우리가 또한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우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축복이에요. 세 가지인데 첫 번째로는 생명을 가지게 된다. 잠언 4장 22절에 보면 그것을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라 말씀이 그렇다는 거예요. 말씀을 우리가 듣게 되면 그것을 지키게 되면 그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이 되고 그리고 온 육체의 건강해 진다는 거예요.
이렇게 말씀을 우리가 들을 때 우리가 받게 되는 축복인 거죠. 말씀이 생명이 되고 온 육체의 건강이 된다. 그래서 말씀은 예배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내 삶에도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요소이기 때문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거죠.
두 번째로는 말씀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보면 성경은 능이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그러니까 말씀으로만 구원을 알고 깨달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 개인적인 생각의 묵상의 깊이로 하나님의 구원을 아는 게 아니라 말씀의 안내로만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가 깨달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예배 가운데도 말씀이 있어야 되지만 우리 삶에도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돼요.
제가 당회 때도 잠깐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요즘 성도들과 말씀으로 교제하기 위해서 애써요. 이게 향후에 우리 교회의 어떤 방향이에요?
하나는 이제 하시오라고 해서 8명 되는 청년들과 말씀 묵상을 매일 나누고 하나는 한 구절 묵상이라고 해서 우리 목요일 날 가장들 단톡방 아직까지는 좀 반응이 없어서 제가 약간 그렇긴 하지만 반응이 올 때까지 해보려고 계속 나무가 이렇게 올릴 거예요.
세 번째가 제가 그동안 이제 제 VIP나 우리 교회에 이제 있는 타 지역에 있는 자녀들 부모는 우리 교회 다니는데 타 지역에서 교회를 이제 다니기도 안 다니기도 하고 또 우리 교회에 나오지 않는 자녀들 일부 이렇게 해서 현재 한 300명 정도에게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아침에 큐티를 보내고 또 저희 설교 영상을 이렇게 달아서 같이 이렇게 보내요.
어쨌든 그걸 이렇게 보낼 수 있는 그런 장치가 있어서 이렇게 매일 교재 이제 아마 조만간 성도들과도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씩 말씀으로 교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구원 우리의 믿음은 그러니까 상상이나 상상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이 구원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말씀이 영생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말씀이 우리의 사후를 정확하게 가르쳐줘요. 그래서 우리가 교회는 성도는 말씀의 인도를 받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반드시 말씀이 필요하다.
마지막 세 번째로는 말씀은 우리를 온전케 합니다. 성경의 모든 관점은 우리를 온전케 한다. 성숙케 하는 거죠. 그래서 성화의 과정이다 이렇게 보기도 합니다. 세 단위로 나 첫 번째는 칭이 두 번째는 성화 세 번째로는 영화 칭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을 의미하고 성화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 그러니까 말씀이 우리를 하나님 성화되게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로는 우리가 주님이 재림하는 날에 온전하게 영화롭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이 이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인 거죠. 그러니까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로 말미암아 거듭난 것을 우리가 확실하게 되고 말씀을 통해서 점점 예수님을 또 닮아가게 되고 마지막에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재림 때 영화롭게 되는 거죠. 이 모든 것이 말씀을 통해 이루어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씀은 성도들의 모든 유언을 그러니까 온전케 하는 능력이 능력이 말씀에게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하고 특별히 예배에는 반드시 말씀이 있어야 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온전하게 통치하셨어요. 그러니까 그게 요즘 말로 바꾸면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가정에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말씀을 전부로 여기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스라엘 역사상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해 선포하는 말씀을 가장 잘 듣고 순종했을 때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가장 완전하게 통치하던 때였어요. 적들이 와도 물리쳐 주시고 하나님이 그들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고 그들을 도왔던 때가 언제냐 말씀에 순종할 때라는 거죠.
그러니까 영적 부흥이 언제 오느냐 실은 우리 교회가 아직 영적 부인이 오거나 교회가 많이 부응하고 그런 건 아니죠. 조금 나아지는 건 보여요. 그래서 그래도 장로님들이 목사님 우리 교회가 조금 부흥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만 해 주셔도 저는 되게 기분이 되게 좋아요.
오늘 말씀을 좀 비추어 보면 그런 하나님이 한 교회를 온전케 하시는 데에는 밑바탕에 뭐가 있냐 하면 말씀이 있다는 거예요. 말씀 성도들이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고 말씀을 잊고 말씀을 지키고 하는 이 수고와 노력이 쌓여서 하나님이 한 교회를 온전케 하고 한 가정을 온전케 하는 거예요.
제가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어느 날 자녀들의 말씀 묵상의 깊이가 나보다 깊어지는 때가 가끔 있어요. 근데 제가 아버지로서 너무 행복한 거예요. 나는 그냥 뭐 제대로 먹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밥 먹이고 옷 사주고 학교 보내주고 이게 내가 한 게 다인데 어느 아이들이 말씀을 따라서 막 자기의 삶을 안내받으려고 발버둥치는 거예요.
하나님이 오늘 나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내 길을 열어가시려고 이런 말씀을 한 게 아닐까?
자기 삶에 많이 일어난 일들을 말씀과 대조하고 저하고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아요.
이제 엄마하고 말을 많이 하죠. 그런 이야기로 그 예를 들어 1시간 통화를 하면 그 이야기로 통화 내용이 가득 차 있는 거예요. 오늘 뭐 밥이 맛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이런 말씀을 들었는데 이 말씀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예배하기 위해서 이렇게 해주신 게 아닐까요? 그리고 내 삶이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이전에 돌아보면 오늘 큐티를 통해서 하나 이런 나에게 위로를 주시고 이 이렇게 나누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엄청나게 큰 일종의 이제 흥분과도 같은 거예요.
여러분 목회자의 가장 큰 즐거움은 성도들이 말씀 안에 있을 때예요.
할렐루야 여러분이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막 발버둥칠 때가 목사는 가장 행복할 때예요. 교회가 부흥하는 것도 좋죠. 싫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근데 부흥하면 일이 더 많아지잖아요. 근데 정말 일이 많아져도 아무렇지 않게 되려면 성도들의 말씀 안에 있으면요. 교회가 부흥해도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한번 고민해 보십시오.
나는 예배 중에 정말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가? 나는 내가 매일 읽는 이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내가 인정하는가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내가 받고 이렇게 납득하고 있는가를 한번 꼭 물어보십시오.
예배의 말씀은 예배의 필수 요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의 필수 요소에 꼭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한번 권면합니다. 여러분 가정 안에 말씀이 있기 위해서 뭔가를 결단해 보십시오. 아이가 어린 집은 하루에 한 구절씩 암송하는 것을 결단해 보셔도 되고, 이제 나이가 많아서 암송이 어려워지면 하루에 한 장씩 읽는 것을 결단해 봐도 되고요. 어떻든 말씀이 여러분의 가정에 머물게 하기 위한 결단을 한번 해보십시오.
여러분 요즘 여러분 교회 안 다녀도 말씀 있는 사람이 있어요. 말씀이 너무 좋대요. 여러분의 가정 중에 가족 중에 교회를 안 다녀도요. 말씀 읽는 걸 싫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여러분의 가정에 말씀을 가지고 가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꼭 이번 주에 한번 결심해 보시고 결단해 혼자 사시면 혼자 해보십시오. 더 쉽잖아요. 나 혼자니까 혼자 와서 외롭다 생각하지 마시고 나 혼자니까 복 해 봐야지 이런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