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묵상, 그 여자의 결단(창24:34-67)
갈등
1. 산에 오를 때, 짙은 안개가 덮일 때가 있습니다. 발아래 길은 겨우 한두 걸음 앞만 보입니다. 멀리 있어야 할 능선도 보이지 않고, 정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한 걸음을 내디디면 그 앞의 길이 보이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디디면 또 그 앞의 길이 보입니다.(운전할 때도 마찬가지) 정상은 보이지 않지만 길은 사라지지 않아요. 안개는 우리의 시야를 가릴 뿐, 길 자체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도 알지 못합니다. 자녀의 앞날도, 건강도, 교회의 미래도, 만남도, 헤어짐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주님, 길을 다 보여 주십시오.”하나님은 지도를 펼쳐 보여 주시지 않습니다.
지금 걷는 한 걸음만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를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미래를 미리 설명하지 않으셨지만, 한 사람의 기도-한 사람의 기다림-한 사람의 결단을 통해 그의 약속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이루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하란에서 경험한 일을 리브가의 가족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엘리에셀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인도하셨는지를 말합니다.“나는 우물가에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2.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가 왔습니다. 리브가는 나에게 물을 주었고, 낙타 열 마리에게도 물을 먹였습니다. 그때 나는 하나님께서 이미 이 만남을 준비하셨음을 확신했습니다.”엘리에셀의 이야기를 들은 리브가의 가정은 50절,“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리브가 가정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어요. 성경은 여기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엘리에셀이 말합니다.
54절,“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가족들의 반응은 56절,“리브가의 오라버니와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이 아이로 하여금 며칠 또는 열흘을 우리와 함께 머물게 하라 그 후에 그가 갈 것이니라.”충분히 이해할만한 말입니다. 하룻밤 사이에 딸을 떠나보내기에는 부모의 마음이 편치 않아요.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창세기 24장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과 그 섭리 안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종을 믿음으로 보냈습니다. 종은 기도하며 길을 걸었습니다.
3. 리브가의 가족은 엘리에셀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인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결정은 리브가의 몫이에요. 58절,“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과 그 뜻을 따라 가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리브가와 같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겠느냐?”
갈등 심화
4. 리브가는 엘리에셀과의 만남과 이야기를 듣고, 아브라함이 전에 그랬던 것 같이 고향 집을 떠나기로 결단했습니다.(남자 아브라함) 멀고 낯선 땅(한 달을 가야)-집으로 시집가는 길입니다. 짐을 챙기고,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인사합니다. 오빠 라반이 배웅합니다. 집 앞을 나서는데, 익숙한 골목길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릴 때 뛰어놀던 마당, 매일 물을 길으러 다니던 우물, 이웃들의 얼굴도 보입니다.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합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쉽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면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순종하면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리브가는 집을 떠난 후 모르는 것이 더 많았어요. 가나안이 어떤 곳인지도 모릅니다. 신랑이 될 이삭과 시아버지 아브라함의 얼굴을 한 번도 본적도 없고-아는 바가 없습니다. 이후 자기 인생이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리브가 알고 이 길을 갔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는 사실입니다.
5.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 전체의 지도를 주시지 않고, 오늘 걸어야 할 방향을 보여 주십니다. 리브가가 한 달간의 긴 여행 끝에 가나안에 도착합니다. 멀리서 한 사람이 보입니다. 그는 들판을 걷고 있습니다. 63절,“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이삭은 길목에서 초조하게 신부를 기다리지 않았어요. 엘리에셀은 언제 오지-혹시 실패한 것은 아닐까-불안해하며 서성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이삭은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큰 나무는 태풍이 오면 가지들은 심하게 흔들리지만, 깊이 뿌리를 내렸기에 쓰러지지 않습니다. 묵상은 영혼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내립니다. 환경이 흔들려도, 묵상하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리브가가 떠나게 하셨고, 이삭에게는 기다리게 하셨어요. 떠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움직일 때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 더 큰 믿음일 수도 있습니다. 리브가는 믿음으로 떠났고-이삭도 믿음으로 기다렸습니다. 둘 다 쉽지 않았습니다. 고향 자기 집을 떠나온 사람과 이 신부를 기다린 두 사람의 시선이 만납니다.
6.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봅니다. 이삭도 눈을 들어 낙타들을 봅니다. 성경은 그들이 만나 무슨 대화를 했는지 침묵합니다. 대신에 67절,“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과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성경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그들을 만나게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그들이 만났습니다.
실마리
7. 공연장에 가면, 뮤지컬이 시작되기 전 객석이 조용합니다. 커튼이 내려와 있습니다. 관객들은 무대 상황을 모르지만, 무대 뒤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배우들은 무대 의상을 입고-대기하고. 때가 되면 조명이 비치며 음악이 들립니다. 관객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지만, 공연이 시작됩니다. 커튼이 올라가며, 관객들은 감탄합니다.“와, 대단하다!”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종“주님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까?”묻습니다. 하나님은“이미 준비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리브가는 이삭과 결혼하기로 결단했어요. 하나님은 리브가가 결단하기 전부터 이미 일하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엘리에셀을 보내셨습니다. 그가 우물가에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기도가 끝나기도 전에 리브가를 엘리에셀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신부 리브가를 가나안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리브가는 지금 떠나고 있지만,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일하셨습니다.. 리브가가 낙타를 타고 광야를 건너오는 동안, 가나안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조용히 하나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이삭이 배회한 것이 아니고 묵상 가운데 리브가를 기다렸어요. 성경은 이삭이 초조하게 기다렸다고 하지 않습니다. 엘리에셀이 왜 이렇게 늦느냐며 불안해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찾아다녔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들판에서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8. 묵상은 단순히 생각에 잠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쏟아 놓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꽃이 피는 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참된 기적은 아무도 보지 않는 땅속에서 시작됩니다. 뿌리가 깊을수록 나무는 높이 자랍니다. 묵상은 우리 인생의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열매를 보지만, 하나님은 뿌리를 먼저 보십니다. 이삭이 이렇게 묵상 가운데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면 철새들이 북쪽으로 날아갑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끼 철새도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갑니다. 누가 지도를 주고, 길을 가르쳐 주었을까요? 폭풍도 만나고, 비도 맞고, 길을 잃을 것 같은 밤도 지나갑니다. 그런데 해마다 같은 호수에 이 새들이 방문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본능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섭리라고 말하죠. 철새가 길을 다 알아서 날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길을 마련해 두신 것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모든 길을 알고 걷지 않습니다. 우리는 길을 만드시는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리브가는 한 달 동안 낙타를 타고 광야를 건너왔습니다.
9.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를 지나고, 밤에는 낯선 하늘 아래 잠을 청했습니다. 그 긴 시간 리브가는 자기 앞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몰랐습니다. 같은 시간에 가나안에서 이삭이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리브가는 자신이 혼자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저쪽에서도 한 사람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리브가가 광야를 건너는 동안, 이삭은 들에서 묵상하였어요. 리브가가 한 걸음씩 가까워질수록, 이삭도 하나님의 시간 속으로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서로는 몰랐지만,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람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한 이야기를 쓰고 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에서 기도했습니다. 엘리에셀은 광야를 걸었습니다. 리브가는 하란을 떠났습니다. 이삭은 들에서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은 네 사람의 시간을 때가 되자 순간에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섭리입니다. 성경은 신랑과 신부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사랑을 만나게 했습니다.
복음 제시
11. 오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이삭이 신부를 찾으러 동행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엘리에셀이 신부를 찾아갑니다. 긴 여행 끝에 이삭의 신부 리브가를 만나고, 이삭이 신부를 맞아들입니다. 오늘 본문은 몇 절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자세히 기록했을까요? 이 이야기는 앞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신부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영원 전부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신부를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먼 길을 떠나 리브가를 찾아갔습니다.
오늘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들고 세상 가운데 찾아오셔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부르십니다. 리브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삭을 믿음으로 따라갔습니다. 우리도 눈으로 예수님을 본 적은 없지만,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그분을 따릅니다. 리브가는 자신이 이삭을 찾아간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은 달랐습니다. 이삭이 먼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리도 하나님을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고 말씀합니다.(요한일서4장) 우리가 길을 찾기 전에,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먼저 오셨습니다.
기대
12. 오늘 본문은 한 남녀의 아름다운 결혼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들에서 묵상했습니다. 한 사람은 고향을 떠나기로 결단했습니다. 한 사람은 기도하며 먼 길을 걸었습니다. 한 사람은 늙은 나이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었어요. 이 네 사람의 이야기를 하나로 엮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서로는 서로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두를 보고 계셨어요. 각자의 시간-자리-눈물과 기다림을 하나님은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가셨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왜 이 길을 걷는지-기다려야 하는지-기도 응답은 되는지-왜 만남이 있고-이별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네가 이해하지 못해도 나는 일하고 있다. 네가 보지 못해도 나는 앞서가고 있다.”고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이해한 후에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걷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상적인 남녀를 보았습니다. 이삭처럼 하나님 앞에 머무는 사람. 리브가처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일어서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아름다운 이야기로 써가고 계십니다. 이런 멋진 삶을 누리며 살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