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상(巨商) 임상옥(林尙沃)은 역관(譯官)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가세(家勢)가 기울었고, 아버지는 많은 빚을 진 채 돌아가셨다.
그래서 임상옥은 의주(義州) 지역(地域)에서
청(靑)나라를 상대로 무역활동(貿易活動)을 하는 상인(商人) 밑에서
허드렛일부터 하면서 장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임상옥이 어릴 때부터 아버지께 항상 들어왔던 말이 있었다.
"장사란 이익(利益)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기 위한 것이며,
사람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고(最高)의 이윤(利潤)이고,
따라서 신용(信用)이야말로 장사로 얻을 수 있는 최대(最大)의 자산(資産)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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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청나라에 가서 장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 청나라와의 주된 무역 품목(品目)이 인삼(人蔘)이었는데,
임상옥은 가져간 인삼을 다 팔아
첫 장사를 성공적(成功的)으로 마치는 듯했다.
장사를 마친 임상옥은 일행(一行)과 술집에서 아름다운 여인(女人)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녀는 술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에 이곳으로 팔려온 상태였다.
임상옥은 돈 때문에 사람을 이런 곳에 팔 수 있냐며
자신의 돈 500냥을 내어주고 '장미령'이라는 이름의 그 여인을 구(救)해 주었다.
그런데 그 500냥은 모시는 상인(商人)의 인삼을 대신 판돈으로,
그중 250냥이 자신(自身)의 몫이라 장사 밑천으로 삼으려 한 것이었다.
임상옥이 그렇게 한 데에는 사람이 먼저지,
돈이 먼저가 아니라는 자신의 아버지 말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조선(朝鮮)으로 돌아온 임상옥은 쫓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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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장미령이 후에 고관대작(高官大爵)의 첩(妾)이 되어
임상옥이 장사하는 데 많은 인맥(人脈)을 만들어주었고,
이를 기반(基盤)으로
임상옥이 거상으로 성장(成長)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상인으로서 독립(獨立)한 이후로도 청나라와의 인삼 전매(專賣)로 임상옥은
벌써 30대에 엄청난 거상으로 성장하게 된다.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었지만,
임상옥은 돈의 노예(奴隸)가 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자신이 번 돈의 80%만 갖고,
나머지 20%는 인삼 경작농가(耕作農家)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썼다.
현종(顯宗) 때에는 수재(水災)가 발생(發生)하자
임상옥이 거액(巨額)의 의연금(義捐金)을 내어
'평안도 귀성 부사'라는 벼슬을 받기도 했다.
이렇듯 임상옥이 욕심(慾心)을 경계(警戒)할 수 있었던 것은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라'는 '계영배(戒盈杯)' 덕분이었는데
이 술잔은 잔 안에 술이 70% 이상 차면 술이 없어져 버린다.
그 원리(原理)는 술잔 속에 작은 관(管)을 만들어
그 관의 높이까지 액체(液體)를 채우면 새지 않으나
관의 높이보다 높게 액체를 채우면
관 속과 물의 압력이 같아져 수압(水壓) 차(差)에 의해
액체가 흘러나오게 되는 것이었다.
임상옥은 돈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이 있었는데
그것은 당장의 이익을 좇지 않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
욕심이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고
자신이 번 돈의 5분의 1은 항상 이웃에게 나누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