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 신고 들어왔는데 확인 안 하고 발달장애인 가격한 경찰
과잉진압 연달아 일어나… 변호인 “직권남용체포, 엄연한 폭력”
지난해 인권위 ‘현장 대응 매뉴얼 마련’ 권고했지만
경찰청 “일이 너무 많다”며 소극적 대처
경찰청 민원봉사실 앞. 장애계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현수막에는 ‘경찰청은 인권위의 결정을 조속히 이행하고 실효성 있는 장애특성별 초기대응 훈련을 의무화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 문제가 연이어 일어나는 가운데, 경찰청은 장애계와의 면담에서 ‘경찰관 업무가 과중해 일어난 일’이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담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등 장애계가 14일 오후 2시 서울시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연 기자회견 이후 진행됐다. 장애계는 기자회견에서 △실효성 있는 장애특성별 초기대응 훈련 의무화 △장애인 호송 시 장비 사용에 대한 구체적 기준 마련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제도 운영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 권고 이행 △김창룡 경찰청장 면담 등을 요구했다.
신 씨 방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 화면. 경찰 2명이 신 씨에게 수갑을 채우고 신 씨의 목을 가격하고 있다. 빨래건조대가 쓰러져 있고 까만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다. 영상제공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폐쇄회로텔레비전에 고스란히 담긴 경찰 폭력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지적장애인(기존 3급) 신 아무개 씨(35세, 남성)는 지난 1월 31일 새벽 1시경, 느닷없이 들이닥친 평택시 관내 지구대 경찰 2명에게 상체와 다리를 제압당하고 목을 가격당했다. 경찰은 신 씨에게 수갑을 채우고 그를 공무집행방해, 동물학대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달 9일에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신 씨 집에 경찰이 별안간 찾아온 이유는 이웃의 신고 때문이다. 당시 이웃은 112에 전화를 걸어 ‘옆집에서 동물학대를 하는 것 같다. ‘깨갱’하는 소리가 들린다’며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신 씨가 동물학대를 했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현관문에서부터 신 씨를 강하게 제압했다. 신 씨의 방에 설치된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에는 경찰이 현관문에서부터 신 씨를 과도하게 제압하고 침대 위에서 신 씨를 폭행하는 모습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 씨는 “강아지 목욕을 시키고 있어서 경찰이 누르는 인터폰 소리를 못 들었다.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나는 팬티바람이었다. 여성 경찰이 있었기 때문에 수치스러워서 바지를 입겠다고 했는데도 내 말을 무시하고 나를 제압했다. 허리디스크가 있어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는데도 듣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한겨레의 지난달 25일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장애인인지 몰랐다. 경찰관에게 협조하지 않고 현관문을 닫아버려서 공무집행방해, 증거인멸 우려로 판단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에 따르면, 그는 부모님과 함께 경찰조사를 받겠다고 요구했지만 경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곡법률사무소, 재단법인 동천 등 공익 법무법인 변호사들은 변호인단을 꾸렸다. 지난달 25일, 해당 경찰관을 형법 124조(직권남용체포)와 125조(피의자 폭행) 위반으로 고소했다.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는 “신 씨의 방에 폐쇄회로텔레비전이 없었다면, 신 씨에게 공론화 용기가 없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며 “해당 사안은 현행범 체포 요건을 전혀 충족하지 못 했다. 엄연히 발달장애인에게 폭력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 신 씨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발달장애인 불법체포 연이어 일어나지만 대책 없는 경찰청
지난해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중증발달장애인 고 아무개 씨(24세)는 지난해 5월 11일, 집 앞에서 혼잣말을 하던 중 신고를 받고 찾아온 안산 와동파출서 경찰에게 체포당했다. 당시 고 씨는 외출한 어머니와 누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행인이 ‘외국인 남성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오해하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고 씨에게 외국인 등록증을 요구했지만 음성언어로 소통하기 어려운 고 씨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경찰은 고 씨를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생각하고, 흉기를 소지했거나 현장에서 도주할 우려가 있다며 뒷수갑을 채워 경찰차에 밀어 넣는 등 강경하게 체포했다.
이에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계와 피해자 고 씨의 아버지는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와동파출서 경찰관의 행위가 장애인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발달장애인 대상 현장 대응 매뉴얼 마련 △고 씨에 대한 심리치료와 실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지원 방안 마련 등을 권고했다.
경찰청은 인권위 권고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되레 인권위가 권고한 지 겨우 한 달 만에 발달장애인이 무리하게 체포당하는 사건이 또 일어났다. 이에 장애계는 ‘장애특성별 초기대응 훈련 의무화’를 요구했다. 장애계는 기자회견문에서 “앞으로 더 많은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것이다. 치안실무자로서 주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선지구대와 경찰서 소속 모든 직원이 현장에서 반드시 장애인을 유형별로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전담조사제가 있어도 운영되지 않는 현실도 지적했다. 발달장애인 전담조사제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13조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검찰조사에선 전담검사가, 경찰조사에선 전담사법경찰관이 발달장애인을 조사하는 제도다. 전담인력은 검찰총장 및 경찰청장의 지휘에 따라 발달장애인 특성과 의사소통 방법, 발달장애인 보호를 위한 수사방법 등을 교육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는 현재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평택경찰서는 신 씨에게 전담사법경찰관을 배정하지 않았다. 평택경찰서는 ‘인력이 부족해 배정하지 못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윤진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장애계는 기자회견문에서 “발달장애인 전담조사제는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발달장애인의 인권과 권익을 옹호하는 유용한 제도다. 그런데 작동이 잘 안 되고 있다. 발달장애인 전담수사관을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심지어 이 제도를 모르는 수사관이 너무 많다”며 제도가 하루빨리 현실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발달장애인이 체포 시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지만 경찰청은 대책이 없는 듯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자회견 이후 이어진 장애계와의 면담에서 ‘(신 씨가 겪은 일이) 안타깝고 부당하다’면서도 ‘일선 경찰이 담당하는 일이 많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 이해를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계가 ‘신 씨에게 가해를 입힌 경찰관과 평택경찰서장이 신 씨에게 사과해야 한다. 또한 발달장애인 전담조사제가 실효성 있게 운영돼야 한다’고 지적하자 경찰청 관계자는 ‘해당 경찰서와 관련 부서에 전달할 것’이라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