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임병식 | 날짜 : 13-03-02 08:45 조회 : 1763 |
| | | 내게 맡겨진 책무 임병식
여수경찰에 있어서 반란 당시 ‘72인의 희생’은 아직도 아물지 않은 깊은 내상(內傷)이면서 한편으로는 조직 구성원을 하나로 끈끈하게 결속시키는 동앗줄 역할을 해주고 있다. 여기서 상처라 함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반란군의 기습공격으로 인하여 무고하게 희생을 치른 것을 말하고, 동앗줄이라 함은 그러한 희생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비겁하게 물러서거나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싸워서 직장과 거점을 사수함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를 보호하는 경찰본연의 임무를 다한 것을 말한다.
생각하면 피흘려 치른 희생은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은 관심부족과 바쁘다는 핑계로 추모사업을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 나서서 한번도 이렇다할 격식있는 추모제를 치르지를 못했던 것이다.
비극의 발단은 1948년 10월 19일로 거스러 올라간다. 여수 신월동에 주둔한 14연대 군인들이 하룻밤 사이에 지방 좌익들과 합세하여 반란를 일으켰던 것이다. 그때 내세운 명분은 제주도로 폭동진압을 나가라고 하는데 이는 같은 동포에게 총을 쏘라는 말이 되어 그럴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니었다. 바로 여수지역을 장악함으로서 공산혁명의 거점으로 삼으려는 흉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맨 먼저 경찰을 표적 삼았다. 그리한데는 경찰은 총기을 가지고 있어 지역을 점령하는데 큰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봉기하며 주저없이 경찰관서와 경찰관 피습하고 체포했다. 이로 말미암아 희생당한 경찰관 수는 전체 직원의 절반에 이른다. 이는 경찰로서는 너무나 뻐아픈 일이고 신생 대한민국에서도 최초로 당하는 국가비상사태였다.
이러한 엄청난 비극을 겪었기에 여수경찰은 그 아픔을 교훈삼아 굳건하게 일어서서 치안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그리고 직원간의 유대강화에도 힘쓰고 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선배경찰들이 감내한 그 희생를 한시도 잊지않고 지켜나가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것다. 이는 매우 바람직하고 건설적인 일로서 높게 평가받아 마땅한 일이다. 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선배경찰의 물려준 값진 정신적 유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초임시절에는 그 아픈 비극의 역사는 물론, 값진 희생의 의미를 인식하지 못했다. 역사의식이 투철하지도 못 했다기 보다도 그런 선배들을 기리는 행사가 한번도 없었기에 사실조차를 확인하고 들을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내가 뒤늦게나마 인식을 새롭게 하게된 것은 다음이 아니었다. 보안부서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흩어진 자료를 접하고 선배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현황을 파악하고 난 나는 매우 충격을 느꼈다. 그래서 ‘내가 파악해야 할 것이 이것이구나 ’ 하고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자료수집에 매달리게 되었고 자꾸만 고령으로 인해 증언해줄 분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었다.
또 다른 이유로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 선배님들의 투철한 경찰 정신이다. 당시 희생된 경찰관 대다수는 일신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얼마든지 도망쳐서라도 살아 남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안 것이다. 대다수가 거점을 사수하거나 비상응소(應召)에 대비하여 대기중에 붙잡혀서 희생을 당했던 것이다.
그 비참한 실상은 실로 필설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총에 맞아 무차별하게 죽어간 것은 물론 몽둥이로 구타하고 죽창으로 찔려서 최후를 맞았다. 그 살해에 가담한 자 중에는 반란군뿐 아니라 좌익인사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악랄한 짓은 좌익들이 더 했다. 경찰과 우익인사를 색출해 내는 일 또한 그들이 앞장섰던 것이다.
이런 뼈아픈 희생위에서 출발한 조직이 충의회(忠義會)이다. 한데 이번 정기총회에서 별 능력도 없는 나를 회원들이 전폭적인 추대하여 모임을 이끌도록 해준 것이다. 이때 마땅히 사양해야 옳았으나 거절하지 못한 것은 평소 결단력없는 성미에도 기인하지만 무엇보다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봉사직이라는 것과, 한 조직에서 오래 근무한 사람으로서 그분들의 희생정신을 마땅히 받들어야 한다는 소명의식이 발로된 때문이었다.
거기다가 간과할수 없는 동기가 더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몇년전부터 간헐적 움직임이 보이던 시민단체가 마침내 움직이며 소위 "여순사건 특별법 국회발의'를 추진하기에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그 내용이 우선 편파적이다. '14연대 주동 반란진압과 토벌과정에서 희생된 인간인을 보상'한다고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습 반란시 경찰관의 희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이게 과연 형평성을 갖춘 것인가.
그래서도 사양할 수가 없고, 작은 조직이라도 목소리를 모아서 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충의회는 전국경찰에 다 있는 조직이지만 여수의 경우는 특별하다. 과거의 이런 아픔을 안고 있을 뿐 아니라 그 희생 정신이 면면히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반란사건으로 희생된 사람은 여수에서만 경찰관 72명을 포함하여 우익인사 16명나 된다. 시민단체에서 파악한 진압과정에서 반란에 가답했다가 죽은 124명과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었다고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당시 죽어간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이 되었다며 백서를 만들고 위령탑을 세우자고 떠들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보상까지 해야한다고 국회에까지 발의해 놓은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를 어찌 전경팔 아닌 충의회 차원에서 좌시할 수 있는 일인가.
반란에 앞장선 자들은 무도하기 그지없었다. 경찰관은 일제시대의 경찰관로서 국민을 핍박하고 못살게 굴었다고 매도했다. 더 나아가 어느 경찰관은 부녀자를 강간까지 했다고 허위 선전하여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다. 터무니 없는 중상모략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당해왔지만 여수경찰은 차분하게 인내하면서 역량을 키워왔다. 그 결실이 전국적으로도 우수 조직으로 태어난 충의회를 들수 있다. 회원수도 적지 않지만 좌익척결의 의지가 남다른 것이다.
조직을 맡으면서 앞으로 해야 할 계획을 생각해 본다. 무엇보다도 금년부터는 그동안 제대로 격식을 갖추어 치르지 못한 추모제부터 시행할까 한다. 흩어진 유족도 한자리에 모이기 하고 시민들도 초청하여 값진 희생을 위무코자 한다. 그리한다면 억울하게 죽어서 구천을 떠도는 혼령들도 이제는 마음을 풀고 영면에 들 것이다. 그 일을 성실히 실천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책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2013) |
| 정진철 | 13-03-02 11:06 | | 먼저 의미있고 뜻깊은 충의회 회장이 되신데 축하드립니다 여수만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을 임회장님 때문에 알게되었습니다 그동안 뿌리내린 죄악이 시민단체라는 가면을 쓰고 아직도 곳곳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들은 음양으로 북한의 대남 적화통일 공작정책 일환으로 활동하는 만큼 그 들이 내세우는 논리또한 북의 지령에 의한 것입니다. 저는 대통합 대통합들 하는데 우리나라는 북한정권이 무너지지 않는한 절대로 대통합은 안됩니다. 흑을 백으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개인이 만들수는 없기때문이지요. 정말 힘든 싸움을 하셔야할것입니다. 그 시민단체라는 좌익들이 횡행하는한 6.25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짓들을 하기때문이지요 건투하시기 바랍니다 | |
| | 임병식 | 13-03-02 13:13 | | 여수경찰은 가슴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직접적으로 경찰서를 사수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이 다수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개개인을 다 비석을 새워서 기려주어야 할 분들입니다,.그런데도 친일경찰 , 악질경찰이란 오명을 씌어서 모욕을 주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가까운 시일내에 유족분들을 모셔놓고 경건한 위령제를 지낼 생각입니다. 관심가져 주시고 댓들 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김자인 | 13-03-02 12:02 | | 임병식 선생님, 여수의 총의회 회장님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회장님의 자리 봉사하시는 자리인것 같은데요. 거듭 축하드립니다. | |
| | 임병식 | 13-03-02 13:17 | | 역사의 명백한 진실이 이해에 따라서 매도되거나 호도되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우리 작가회원 중에서도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갔다고 글을 쓰신 분이 있어서 제가 개인적으로 전화을 하여 인식을 바로 잡아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분들이 지금까지 당한 명예훼손을 바로잡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 |
| | 이방주 | 13-03-02 13:45 | | 임병식 선생님, 지난 12월 태백산맥을 다시 읽으면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면서도 이념의 구릉에서 우리 민족의 비극을 절절하게 느꼈습니다. 선생님께서 역사의 현장에서 중책을 맡으셨다니 확실한 진실의 바탕에서 억울한 영혼들이 위로 받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임병식 | 13-03-02 15:23 | | 소설은 원칙적으로 픽션을 전재로 하는만큼 시비걸 일은 아니지만 좌익을 미화한 듯한 부분은 문제가 있고 그래서 검찰수사도 받은 것으로 압니다. 우선 금년부터 여순사건이 발발한 10월 19일에 추모제를 대대적으로 지낼까 구상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시고 댓글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김권섭 | 13-03-02 16:37 | | 경찰은 민주국가의 지팡이요, 파수꾼인데 양의 가죽을 쓴 이리들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좌불안석입니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고, 애국가대신 데모가를 부른 작태의 무리들이 국회의원이라고 버젓이 나와 청문회에 등장하여 질의까지 하니 분통이 터질노릇입니다. 충의회 회장님으로 민주경찰의 명예회복과 보국충정이 드러나길 기원합니다. | |
| | 임병식 | 13-03-02 16:45 | | 작년에 시민단체에서 당시 피해백서를 펴냈는데 우익인사나 경찰관의 명단은 빠져 있었습니다. 그 대신 여순사건과 관계도 없는 보도연맹으로 지목되어 6.25때 처형된 사람의 명단을 잔뜩 실어놓고 있는걸 보았습니다. 금년부터 당시 희생경찰관에 대한 추모제 부터 지내도록 하겠습니다. | |
| | 강승택 | 13-03-02 18:02 | | 역사의 진실이 왜곡된지는 오래 되었습니다만 임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다시한번 솟구치는 분노를 누를길이 없습니다. 임선생님, 주어진 임무가 막중함을 느끼시고 사명감을 가지시고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 |
| | 임병식 | 13-03-02 19:56 | | 당시의 일을 무우 자르듯 판정을 내릴수는 없지만, 적어도 분명한 팩트에 대해서는 호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경찰은 반란군과 좌익에게 기습적으로 당하여 2, 3일 사이에 모두 죽임들 당했는데, 궁색한 변명으로 '죽을만 했으니 죽었다'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은 진실도 아닐 뿐더러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선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경찰공무원을 적으로 돌려서 살륙을 자행한 것을 당연시 하는 일은 바로 잡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른 국가관과 역사의식을 지니고 계시는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합니다. | |
| | 임재문 | 13-03-02 18:12 | | 광주 민주화 운동때 다른 곳들은 다 뚫였는데, 우리 광주교도소 만큼은 뚫리지 않아서 더 이상 혼란을 가져 오지 않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만약 광주교도소가 뚫려서 그 많은 수용자들이 밖으로 나왔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은 다 내어주고 도망가는데 광주교도소 직원들은 비상소집 응소하여 현장을 철통같이 경비 했기에 큰 혼란을 예방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역사에 길이 남을 일입니다. 여수에서 희생된 경찰관여러분들의 명예가 실추 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부디 중책을 맡으셨으니 명예회복은 물론 역사적으로 기념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감사합니다. 임병식 선생님 ! | |
| | 임병식 | 13-03-02 20:03 | | 정말 그때 광주교도소가 파괴되었다면 대혼란이 일어났을 겁니다. 교도소를 사수한 일은 교정역사에 길이 빛나는 업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저로서는 선량한 시민들이 일부 인사들의 좌편향 시각에 함께 경도 되지 않도록 진실을 알리는데 힘쓰는 한편으로 명예회복 노력에 힘쓰고자 합니다.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 |
| | 이희순 | 13-03-02 19:48 | | 사필귀정이긴하지만 선생님의 짐이 무거워보입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오며 마음으로나마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 |
| | 임병식 | 13-03-02 20:06 | | 제 혼자서 할수 있는 일이 아니니 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분들, 그리고 전현직 직원들과 함께 힘써 나가겠습니다. 저쪽에서 주장하는 허구를 깨부시는 일도 중요합니다. 같은 지역에 사시는 분의 응원은 큰 힘이 아닐수 없습니다. 지속적인 응원을 부탁합니다. | |
| | 박원명화 | 13-03-03 19:12 | | 선생님의 정의로움이 세상의 밝은 등불이 될수 있기를 기원합니다.특히 역사의 바른인식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귀한 보물이지요. | |
| | 임병식 | 13-03-03 21:29 | | 저로서는 매우 의미있는 일을 맡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에 몸담은 직장이라는 의미 말고도 의롭게 돌아가신 선배경찰관의 충혼을 기리는 일에 힘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회원들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후손이 못나면 조상을 욕보인다'고 했는데, 그동안은 후배들이 못나서 선배들의 거룩한 희생을 받들지 못했지요. 이제부터라도 진실을 설파하고 희생을 기리는 일에 힘쓸 것입니다. 이 또한 수필한편 남기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는가 합니다. | |
| | 김창식 | 13-03-04 11:57 | | 임병식 선생님께서 역사의 전환점에서 의미 있고 무거운 짐을 지셨군요. 균형잡힌 시각으로 사안이 처리되고 정리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 |
| | 임병식 | 13-03-04 12:14 | | 김창식선생님의 '균형잡힌 시각'이라는 말씀이 와닿습니다. 너무나 왜곡되고 폄하한 글과 말들이 난무하여 바로 잡아야 할 부분입니다. 이것은 희생의 진원지인 경찰서에 이렇다할 표지석 하나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을 깊이 새기지 못한데서 최근의 불미스런 일처럼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내부적으로 정신교육도 필요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 |
| | 윤행원 | 13-03-04 19:43 | | 임병식 선생님, 큰 중책을 맡으셨네요. 올곧은 선비정신으로 능히 잘 하실 줄로 굳게 믿습니다. 아울러 축하인사를 드립니다. | |
| | 임병식 | 13-03-04 20:43 | | 석계선생님, 이것도 감투라고 경합이 좀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원들이 조정을 해줘서 경선을 않고 추대가 되었습니다. 여순사건의 의도적인 왜곡 , 최근 경찰서 비위사건을 보면 분통이 터지는 일이 많습니다.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 다 후배들이 못나서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지도 못하고 받들지 못해서 생긴 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선배들이 비참하게 돌아가셨는데 65년이 되도록 여짓껏 변변한 위령제 한번 지낸적이 없습니다. 금년부터 조촐하게 위령제를 지내려고 합니다. 한편 여순사건의 부당한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맞서 나가려고 합니다.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 |
| | 김영월 | 13-03-04 23:04 | | 역사에서 막연히 알게 된 여순 사건에 그러한 경찰관의 억울한 희생이 있었군요. 더구나 충의회 회장직을 맡아 큰 일을 잘 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축하 합니다. | |
| | 임병식 | 13-03-04 23:41 | | 경찰관이 전쟁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그처럼 한꺼번에 수십명이 타살된 적이 우리나라 역사상 없습니다. 그런데 여순 사건을 말하면서 그 부분은 쏙 빼버리고 민간인만 억울하게 희생됐네, 군인과 경찰이 소위 손가락총이란 것으로 죽였네 하는 글들이 수없이 인테넷 상에 돌아다닙니다. 기막힌 현실입니다.김영월선생님 고맙습니다. | |
| | 최원현 | 13-03-06 09:17 | | 귀하고 어려운 일을 맡으셨군요. 그러나 어느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인데 임 회장님께서 맡으셨으니 더욱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어집니다. 제 부친께서도 경찰로 여순 사건진압 때 몸을 상해 돌아가셨는데 그때의 기록을 아무데서도 찾을 수 없어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건강 살피며 귀한 일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 |
| | 임병식 | 13-03-06 11:01 | | 저도 최선생님의 부친에 대한 얘기는 들은 바가 있습니다. 금년 10월 19일 대대적인 행사를 갖고자 하오니 필히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충분치는 않지만 예산도 확보해 놓았습니다. 행사시 유족을 초청할 예정입니다. | |
| | 임병문 | 13-03-08 12:19 | | 忠義會 회장을 맡으신데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그 어렵고 막중한 자리, 선생님의 깊은 뜻과 역량이 그 까닭일 것입니다. 소신과 신념으로 자리와 會의 명예를 빛내주시기바랍니다. 항시 건강하소서. | |
| | 임병식 | 13-03-08 12:30 | | 임병문선생님, 잘 계시는지요. 나라와 직장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늦었지만 추모하고 진실을 설파하는데 노력하려고 합니다. 오늘도 경찰서에 들러 서장을 만나 여러기지 이야기를 나누다 왔습니다. 65년전 여수에서는 역사적인 비극사건이 일어나서 그 피해상이 말로는 형언할수 없을 정도였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
| | 이진화 | 13-03-08 15:23 | | 임병식 선생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책을 맡으신 것 축하드리며, 다시는 그와 같은 반목과 질시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써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고 하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선생님께서 어려운 사명을 잘 감당하시리라 믿습니다. | |
| | 임병식 | 13-03-08 17:41 | | 이진화선생님,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여수에서 일어나는 의미있는 변화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한국수필 3월호가 와서 읽었습니다. 발행인(정목일 )이 쓰신 글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지금 수필가 들은 '문명만 얻으려하고 어떻게 가치있게 살아가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저에게 힘을 실어주신 말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추진하는 일이 유의미한 일이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 |
| | 최복희 | 13-03-11 13:14 | | 임병식 선생님 중책을 맡으셨군요. 정의롭고 올곧은 분이시기에 좋은 결과를 거두시리라 믿습니다. 힘내세요.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 |
| | 임병식 | 13-03-11 18:05 | | 최선생님, 잘 계시지요. 책임을 맡은 이상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시간 있으시면 제 카페 '단상모움'에 반란사건의 전개과정과 여수경찰 피해상황을 상세하게 올려 놓았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
| | 일만성철용 | 13-03-14 10:04 | | 저는 이명박 대통령을 찍은 후 가장 실망한 일이 있습니다. 데모대가 경찰을 옷 벗기고 중인 환시 하에 때리는 사진을 보고 이를 방관하는 대통령 이하 사람들을 결멸하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경우를 위해 꼭 필요한 분이 임 작가라고 모두가 생각한 모양이지요? | |
| | 임병식 | 13-03-14 11:33 | | 반란사건때에 나라와 직장을 지키다가 돌아가신 경찰관들이 지금도 일부 인사들로 부터 매도를 당하고 있어 그 문제부터 풀아가려고 합니다. 그러자면 먼저 추모제도 지내고 유족분들도 위로하는 일이 중요할것 같아서 하나 하나 추진해 갈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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