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 21일~ 1999년 6월
1997년 11월 21일
저녁 정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부총리가 나와서 발표했어요. 국제 통화기금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습니다. 그 순간 한국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IMF 그건 망한 나라가 가는 곳이었어요. 42년간 쌓아 올린 모든 게 무너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997년 11월 22일 미국 뉴욕 타임스 1면 헤드라인이었어요. 한국의 기적이 끝나다. IMF 구제금융 신청 같은 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가장 강했던 한국이 무너졌다. 이것은 단순한 금융 위기가 아니다. 한국식 자본주의의 실패다. 11월 말 IMF 조사단이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한국 경제를 샅샅이 조사했어요. 그리고 12월 3일 구제금융 조건을 발표했습니다. 총 550억 달러 지원 그 대신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어요. 금리 인상 긴축 재정 기업 구조조정 금융 개혁 1997년 12월 18일 한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IMF 위기 한가운데서 치러진 선거였어요.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습니다. 1997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IMF와 최종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조건은 가혹했어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1998년 1월 상황은 끔찍했습니다. 기업들이 대량 해고를 시작했어요. 하루에 수천 명씩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1월 한 달 동안만 30만 명이 실직했습니다. 거리마다 명예퇴직 안내문이 붙었어요. 40대 가장들이 짐을 써서 회사를 나왔습니다.
1998년 2월
영국 한국 이코노미스트가 특집을 냈습니다. 한국은 최소 10년은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1998년 3월 실업률이 7%를 넘어섰습니다. 실업자가 15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년 전만 해도 2%대였던 실업률이 3배 이상 뛴 겁니다. 거리에는 노숙자가 늘어났습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자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IMF 극복 캠페인 현수막이 곳곳에 붙었지만 희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1998년 4월
독일 기자가 서울을 취재했습니다. 한국인들의 눈빛에서 자신감이 사라졌다. 42년간의 기적이 2년 만에 무너졌다. 이들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세계는 한국이 끝났다고 봤습니다. 10년은 걸릴 거라고 했어요. 어떤 전문가들은 20년도 후도 모자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국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리고 그 움직임이 세계를 또다시 놀라게 만들게 됩니다.
1998년 1월 5일
이상한 광경이 서울 곳곳에서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금을 들고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집에 있던 금반지 금목걸이 금돼지 저금통까지 모두 들고 나와서 나라에 기부했습니다. 우리가 모은 금으로 빚을 갚자는 운동이었어요. 1998년 그가 본 광경은 충격적이었어요. 서울거리 곳곳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금을 기부하기 위해 줄을 선 것이다. 할머니가 결혼 반지를 내놓는다. 학생들이 돼지 저금통을 깨서 가져온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다. 금모우기 운동 이건 정부가 시키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거였어요. 방송국에서 처음 제안했고 시민들이 호응한 겁니다. 3개월 만에 모인 금이 227톤이었습니다. 350만 명이 참여했어요. 돈으로 환산하면 22억 달러였습니다.
1998년 4월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이 현상을 분석한 특집 기사를 냈습니다. 한국인들은 국가 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받아들입니다. 이런 국민적 단합은 전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들다. 이것이 한국의 진짜 저력이다. 금모으기만이 아니었습니다. 기업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1998년 2월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삼성은 자동차 사업을 포기했어요. 그 대신 반도체와 휴대폰에 모든 걸 걸었습니다. 현대는 기아를 인수했습니다. 두 회사를 합쳐서 규모를 키운 거죠. LG는 석유화학 부문을 정리하고 전자와 통신에 집중했어요. 불필요한 것을 버리고 자라는 것에 집중하는 전략이었습니다. 1998년 6월 일본 미케이 신문이 한국 기업들을 취재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스스로를 해체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자른다. 이런 과감함은 일본 기업에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은 고통스러웠습니다.
1998년
한 해 동안 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어요. 실업률이 8.6%까지 치솟았습니다. 가족을 부양하던 가장들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됐습니다. 40대, 50대가 거리로 내몰렸어요.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없었습니다. 1998년 9월 프랑스 르몽드지가 서울을 취재했습니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들이 벤치에서 잔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회사원이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럽지만 개혁을 밀어붙였어요. 1998년 7월 금융구조법이 통과됐다. 부실 은행을 정리하고 금융 시스템을 투명하게 만드는 법이었어요. 5개 은행이 문을 닫았습니다. 10개 은행이 합병됐어요. 은행원 1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1998년 12월
놀라운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수출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한 거예요. 반도체 수출이 회복됐고 자동차 수출도 증가했습니다. 외환보유고가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어요. 1999년 1월 한국 경제가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습니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4% 성장이었어요. 외신들이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10년은 걸린다던 회복이 1년 만에 신호를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1999년 6월
미국 뉴욕타임스가 한국 특집을 냈어요. 믿을 수 없는 회복 속도다. 1년 전만 해도 한국은 끝났다고 봤다. 그런데 이미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비결은 역시 국민들이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이었어요. 1999년 말 인터넷 벤처 붐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MF로 실직한 젊은이들이 창업에 나섰어요. 네이버가 1999년에 시작됐고 다음도 같은 해에 출범했습니다. NC소프트 넥슨 같은 게임 회사들도 이때 성장하기 시작했어요. 2000년 3월 코스닥 지수가 폭발적으로 올랐습니다. 벤처 열풍이었어요. 20대 청년들이 100만 장자가 됐습니다. 2000년 6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의 벤처 붐을 취재했습니다. 한국이 실리콘 밸리를 만들고 있다. IMF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젊은 인재들이 대기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