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한국 여자농구를 말없이 이끌며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의 영광에 함께했던 선수. 그러나 불세출의 농구스타 박찬숙 선수에 가려져 빛을 못 본 선수, 100만명당 1.4명꼴로 나온다는 희귀병, 거인병을 앓고 있는 선수, 누구나 다 아는 농구스타에서 누구나 피하는 거인병환자로만 인식되며 사라져가는 선수...
필자는 얼마 전 거인병을 앓고 있는 김영희 선수의 병세가 너무 많이 악화되어 남은 생애의 마감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듣고, 병문안이라도 한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병원에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김영희 선수는 집에서 그녀의 병마와 싸우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전화인터뷰를 시도해 김영희 선수의 현재 근황을 알아냈다.
■ 김영희 선수의 현재 근황
현재 김영희 선수는 과거 스포츠스타라는 명성과는 달리 8평짜리 단칸방에서 20만원 정도의 연금과 양말부업으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다. 지병인 거인병은 최악의 상태이며 더이상 고칠 수도 없는, 그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김영희 선수는 말했다.
- 앓고 계신 병에 대해 조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병명은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거인병이고요. 일반인의 성장호르몬 수치가 10이라면 저의 성장호르몬 수치는 280 정도여요...이제 더이상 키는 안크지만 키 대신에 신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눈이 돌출되고 턱이 나와서 얼굴은 계속 흉칙해 지고 있고요...
김영희 선수의 얼굴 변화 (자료: KBS)
- 상태는 어떠신지요...
아주 좋지않은 상태예요.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형편이 좋지않아서 못받고 있고요, 현재는 부천성가병원에 보름에 한번정도 가면서 약물치료를 하고 있는데 한국에는 이 병에대한 약이 없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뭐 그냥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거죠(웃음).
- 돈이 많이 들것 같은데요...약값을 지원해주는 곳은 있는지요...
한달에 약값만 한 200-300만원 정도 들어요... 약값은 전액 병원 부천성가병원 사회복지과에서 지원해주고 있고요...
2002년도 말에 KBS '추적 60분'에서 거인병에 대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저를 취재해 간적이 있어요... 그전까지 병원에 가본적이 없는데 그 당시 프로그램을 위해 부천성가병원가서 검사를 받은 이후로 이곳에서 계속 도와주고 계세요...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치료받을 수 있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러면 수술은 왜 안하고 있는 건지요...
일단 수술할 비용이 없어요... 직업도 없고, 8평 짜리 단칸방에서 20만원 정도의 생활비로 살고 있는데요... 그리고 수술을 한다고 해도 낫는다는 보장도 없고, 또 수술이후에 저를 돌봐줄 사람도 없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든요...얼마전 저같은 거인병을 앓던 사람이 약물치료로 완쾌된 적이 있다는 의사선생님 말에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겉으로는 화려했던...그러나 불행했던 선수시절
김영희 선수에 대한 신문기사 (자료: KBS)
고등학교 때부터 큰키로 인해 한국여자 농구를 이끌 기대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김영희 선수는 10년간 국가대표선수로 태릉선수촌을 드나들었고, LA 올림픽에서 세계강호들을 모두 물리치고 은메달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불세출의 한국여자농구 스타 박찬숙 선수의 이름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고, 자신도 모르는...알았어도 '나라를 위해서, 팀을 위해서' 라는 명분아래 치료할 수 없었던 거인병으로 쓰러져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잊혀져가는 선수가 되었다.
- 정확히 언제 운동을 그만 두셨는지요...
87년도에 88올림픽 준비 도중 갑자기 쓰러졌어요... 그리고 고대부속병원에서 뇌종양(호르몬 종양)이란 판정을 받고 두번의 수술을 받았어요... 자연스럽게 선수생활은 그만둘 수 밖에 없었죠...
- 과거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뛰었던 걸로 알고, 올림픽 은메달도 땄는데요...
지금은 해체되고 없어진 한국화장품 팀에서 선수생활을 했어요... LA 올림픽때는 믿기지 않았던 은메달도 땄고요... 하지만 기자님 생각처럼 선수생활이 화려하진 않았습니다.
일단 너무도 뛰어난 선수였던 박찬숙 선수와 비교되며 많이 고통받았어요... 제가 박찬숙 선수와 키가 비슷했거나 조금 컸어도 그런 모욕은 당하지 않았을텐데...언제나 사람들은 키도 훨씬 크고 몸도 좋은 선수가 박찬숙 선수에게 진다고 저를 한심해 했었습니다...키값도 못한다고요...
그리고 LA 올림픽때도 벤치만 지켰어요... 박찬숙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죠... 현재 LA 올림픽때 그당시 멤버들이 모이는 모임이 있는데요... 솔직히 나가서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때 한게 없거든요... 모르는 사람들은 은메달도 땄고 국가대표 생활 10년하면서 많은 국제대회로 인해 외국도 많이 나가봐서 좋겠다고 말씀들 하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박찬숙 선수를 미워한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는 마시구요...그렇지만 농구를 한것을 후회하진 않습니다. 저에겐 모든게 아름다운 추억이거든요...
■ 선수 이후의 생활
김영희 선수는 전 실업팀의 도움으로 한때 화장품 가게를 한적이 있다. 그러나 장사 경험도 없었고 나쁜사람들이 이를 악용하여 5년정도 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는 불운을 당했다고 했다. 너무 큰 충격에 자살하려고 까지 생각했었으나 하나뿐인 남동생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화장품 가게를 한걸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도 하시는지요...
선수은퇴이후에 전 소속팀이었던 한국화장품의 도움으로 화장품 가게를 한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장사경험도 없었고, 나쁜사람들이 저를 이용해 먹으려는 일이 많아서 5년정도 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 그 이후는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요...
몸이 너무 안좋아서 아무일도 안했어요... 그리고 부모님 두분다 병으로 비명횡사 하셨어요... 아버지는 63세에 위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도 59세에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때 그나마 벌어논 돈 다 썼고요... 부모님께 너무나 죄스러운 마음에 정말 살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구요... 그때마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기로 결심했죠...
지금은 양말부업을 하고 있어요. 이걸 하면 잡념도 없어지고, 계속 손을 움직이니까 침해도 방지되고... 아주 맘에 들어요(웃음).
■ 체육인을 버리는 한국체육계
앞서 소개한 것 처럼 현재 김영희 선수의 수입원은 20만원 정도의 연금과 집에서 하는 양말부업이 전부다. 약값도 앞서 소개한 부천성가병원에서 지원하고 있고, 체육계에서의 김영희 선수에 대한 지원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가대표를 10년이나 지낸 선수가 병원에서 지원하는 약값만 받는다는 게좀 이상하게 들리는데... 체육계에서의 지원금은 없는지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2002년도에 KBS '추적 60분' 에서 저를 취재해 간적이 있어요... 그 이후에 많은 분들이 그 프로그램을 보셨나봐요... 그런데 모든 분들의 반응이 '이런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였어요... 그래서 WKBL에서는 명예기술위원에 위촉시켜주는 등 각계에서 도움의 손길이 있었어요...
2003년 1월, WKBL 시합 전 김영희 선수의 시구후 금일봉이 전달됐다.
그런데 그것도 한때더라구요... 그리고 솔직히 그때의 도움은 저에겐 며칠 약값에 불과하죠... 물론 그때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을 잊지않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좀더 체계적인 도움을 주셨으면 하는게 과거 10년동안 국가대표를 했던 저의 솔직한 바램이죠...
- 그러면 그 방송 전에는 체육계의 도움이 전혀 없었다는 건가요?
부모님 돌아가신 후, 그리고 제 병이 계속 악화되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태릉선수촌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제가 10년동안 몸 담았던 곳이기 때문에 그곳밖에 찾아갈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선수촌장님께 부탁드렸죠... 쓰레기 치우는 일이라도 괜찮으니 일자리 하나만 달라고요... 하지만 냉담한 반응만이 돌아왔었죠...
그리고 정하이샤 선수라고 아세요? 중국의 거인증 선수... 그 선수에게 대해 준 중국 정부의 노력을 아세요?... 한국이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 아닌가요?
다른 예로 김일 선수 얘기를 해 볼께요... 김일 선수 아시죠? 박치기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던... 그 분이 60-70년대 우리나라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이뤘습니까? 하지만 지금 그 분 누워계시는데... 수술비를 누가 대줬는지 아세요? 한국 체육계가 아닌, 그 분의 라이벌이었던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끼 씨가 수술비를 전액 부담해준 거예요...
이젠 원망도 없어졌고,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잘 해주면 되죠. 방송 후에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종인 이사장님께서 저를 개인적으로 부른 적이 있었어요. 그때 그러시더라고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앞으로 많은 노력 하시겠다고.... 정말 고맙더라고요...이제 이런 분들이라도 믿어봐야죠...
■ 코끼리가 쌓아 올린 작은 공...
김영희 선수는 현재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작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책으로 편찬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후배들이 자신과는 다른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겠다는 것이었다.
- 마지막으로 한국 체육계에 하실 말씀은 있으신지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제가 운동하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특히 대표팀 감독님이나 소속팀 감독님이 너무 미웠었어요.
제가 운동할때 제 몸무게가 130 kg 까지 나간적이 있었거든요... 그게 병 때문인지도 모르고...감독님들은 제가 몰래 계속 먹는 줄 아셨는지, 매일 저를 혼냈어요. 저는 아무소리도 못하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면서 운동했어요. 정말 걸을 수도 없었고, 앞이 안 보이는 데도 계속 운동을 해야만 했었어요...
'일단은 써먹고 보자.' 그런 심보였죠. 그 이후 쓸모없어졌을땐 그 냉정함을 생각하면 정말....그 눈빛이나 말투는 상상도 못해요.
그때 병원 한번만 가게 해 줬어도, 지금 이렇게 병이 커지지는 않았을텐데...
지금은 아무런 원망은 없어요. 그런데 정말 화가 나는 건... 지금이 2004년 인데도 계속 저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거죠. 지금은 프로리그도 있고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멀었어요.
엘리트 체육이라는 굴레안에 감독, 코치들은 성적을 올려야 자신의 자리가 유지되기때문에 선수가 아프건 아니건 계속 쓸려고 하고, 선수들도 아픈 것 보다는 성적을 내서 대학도 가야 하고 실업이나 프로팀에 스카웃되어야 하기때문에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거죠.
제가 바라는 건 딱 한가지여요. 적어도 국가대표 선수들만을 위해서라도 상해보험 제도 같은 보험제도만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선수생활 때도 그렇고, 선수 생활 이후에도 보장받을 수 있는...
저 아니고도 선수생활 이후에 아픈사람들 많아요. 비만 와도 무릎이 아파서 걷지 못하는 사람은 셀 수도 없어요.
- 현재 꿈이 있으신 가요?
예, 물론 있습니다. 부끄럽지만 (웃음), 제가 지금 제 자서전을 쓰고 있어요. 저의 어렸을때 얘기부터, 운동선수 시절, 그 이후의 생활 등... 저같은 사람이 다시는 안 나왔으면 하는 맘이 많죠. 물론 출판사가 결정된 것도 아니고, 이 책을 내주겠다는 사람도 없어요. 그냥 쓰는 거예요.
- 얼마나 쓰셨나요?
거의 다 써가요. 그런데 지금 저의 부모님 돌아가셨을때의 얘기를 써야 하는데, 그때 생각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서 그 부분을 못 쓰고 있어요.
- 제목은 정하셨나요?
예, 제 나름대로는 정했는데...(웃음). "코끼리가 쌓아 올린 작은 공"...제 별명이 코끼리였거든요, 그리고 작은 공은 농구공을 뜻하고요... 아니면 "걸리버의 인생일기" ...이 둘중에 하나를 할 예정이예요.
<이 얘기를 하는 김영희 선수의 목소리는 정말 밝고 활기에 넘쳤다.>
지금은 맘이 아주 편해요. 모든걸 통달했어요. 아주 편한맘으로 살고 있고요, 제가 책을 내서 혹시나 돈을 조금 벌면, 제 후배들의 운동환경 개선을 위해, 그리고 저보다 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꼭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김영희 선수가 치료받고 있는 모습 (자료: KBS)
김영희 선수와 전화인터뷰를 하는 동안 필자는 '이사람은 사람의 손길이 정말로 그리운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계속 했다. 전화 한통화 한것 뿐인데 너무나도 반갑게 모든걸 얘기해줬다.
또한 김영희 선수는 이런 말을 했다. " 밖에 나가기도 힘들지만, 나가기도 싫어요. 사람들이 괴물 쳐다보듯 저를 쳐다보고, 저를 본 아이들은 모두 울어요. "
김영희 선수에 대한 문제는 비단 체육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려운 시절 많은 자신감을 심어주고 떠나간 우리의 스타들은, 우리의 무관심 속에 기억에서 점점 잊혀지고 있다.
<중소기업은행 035-012117-01-014>
· 김영희 선수는 극구 사양했으나, 필자가 어렵게 알아낸 김영희 선수의 계좌번호 입니다. 여러분 모두의 도움이 필요한 분입니다.도움을 주실 분이 계시면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02년 11월 16일에 방영된 KBS '추적 60분' - 충격보고, 거인증 '목숨을 담보로 뛰는...' - 을 보면 김영희 선수와 같은 거인증 선수들을 대하는 한국 체육계의 현주소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첫댓글 웃... 우리 체육계의 현실인가!!
김영희선수 얘기는 신문에도 나오고 방송에도 나왔었는데 그 때 뿐이로군요. 나올 떄 잠깐 도와주곤 그 이후론 신경도 안쓰는 듯. 냄비라...............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코끼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 휴... 안타까울뿐입니다;;
글자 끄기 크게 써주세요 ㅜㅡ 너무나 불쌓 하네요 ㅜㅜ 정말 그 감독 싸가지가 없네요..ㅡㅡ 암튼 김영희선수 화이팅!!
백수만 아니라면 정말 단돈 얼마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군요 여러군데다가 이글 올려보는것도 도움이 되겠네요.......글 퍼갈께요.............
여러군데에다 이글 좀 같이 돌려요... 정말 이렇게나마 도움을 드릴 수 있을까 싶네요...
저도 운동선수라 참 마음이 가는글이군요;; 저도 육상을 하는데 병원한번 간다고 하기 무서워서 거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