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거의 매일 집 뒤쪽 설봉산으로 산책하는 게 하루 일과 중의 하나인데, 지난주 토요일도 사기막골로 넘어가는 고갯마루까지 올라가서 거기서 잠시 명상을 하고 있었지요. 대략 30분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주변에 사람 소리가 들리더군요. 눈을 떠서 고개를 돌려보니 이웃에 사는 소설가 이문열 작가님과 몇몇 문인과 함께 산책을 나온 것이더군요.
고갯마루에서 내려올 때는 그들과 동행했습니다. 이문열님과는 종종 산책길에서 만나는 사이여서 동네로 돌아오면 그냥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모처럼 만에 발길이 이문열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이문열님도 옳다구나 하시면서 집에 좋은 녹차가 있으니 모처럼 만에 차나 한잔하자고 했지요.
집에 들어가자 이문열님은 문인들에게 제가 기타를 치면서 외국 노래들을 잘 부른다고 말했고 이에 문인들도 저의 기타연주와 노래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저도 그 집에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른 지가 좀 오래되었기에 얼른 집에 가서 기타를 들고 왔지요. 얼떨결에 자그마한 연주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들 제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인데 제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 몇 곡 불러드리자 다들 흥이 올라 좋아하시더군요. 이문열님도 흥이 나서 전화를 걸어 바로 근처에 사는 조각가를 불렀습니다.
그 조각가는 아내의 직계 선배이자 저에게도 대학 선배이고, 이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지요. 그분도 자그마한 연주회가 있다는 말에 신이 나서 얼른 달려왔는데, 마침 좋은 샴페인을 들고 왔더군요. 그분으로 인해 녹차에서 술로 분위기가 확 바뀌었습니다. 샴페인이 금방 떨어지자 이번에는 이문열님이 좋은 포도주를 꺼내오시더군요. 그리고, 포도주가 떨어지자 이번에는 53도의 중국 백주가 나오고, 중국 백주가 떨어지자 이번에는 고급 위스키가 나왔습니다.
술만 바뀐 것이 아니라 노래도 바뀌었습니다. 제가 술에 취하기 전에는 주로 팝송, 샹송, 러시아노래, 남미 노래, 일본노래, 중국노래 등등 우아한 노래를 불렀지만, 취기가 점점 오르자 제입에서는 주로 흘러간 우리 가요가 흘러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사실 제가 기타 실력은 별로이지만, 노래를 워낙 많이 알고 있어서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보통 2-300곡 정도는 쉬지 않고 부를 수 있지요.^^
이분들은 저보다 다섯 살에서 열 살 정도 많으신 분들인데 제가 <애수의 소야곡>, <사막의 한>, <비 내리는 고모령>, <봄날은 간다> <동백 아가씨> 등의 정통 트롯트 곡을 위시하여 60년대의 쟈니리의 <뜨거운 안녕>, 현미의 <밤안개>, <떠날 때는 말 없이>, 문정선의 <나의 노래>, 7080의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 정태춘의 <촛불>,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상자>, 남궁옥분의 <나의 사랑 그대 곁으로> 등의 노래를 불러드리니 다들 흥에 겨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는 역시 잘 모르는 외국 노래보다는 어릴 때부터 듣던 우리 노래가 훨씬 정겹지요. 그리고 흘러간 노래는 술맛을 돋구는 데 더욱 안성맞춤이지요. 이문열님과 조각가 선배님은 물론이고 다른 두 분의 문인도 노래에 취하고 흥에 취해 계속 술을 들이켰습니다. 나중에 이문열님은 정말 흥이 극에 달하여 자기가 아끼던 술이라면서 200만원 짜리 위스키도 꺼냈습니다. 사실, 태어나서 200만원 짜리 술은 처음 보았는데, 이미 술에 취한 상태여서 200만원 짜리와 2만원 짜리나 전혀 구분이 되지 않더군요.^^
밤 12시가 되자 두 명의 문인은 피곤하다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이문열님과 조각가 선배님, 그리고 저는 새벽 2시 반까지 계속 술을 마셨지요. 초저녁부터 새벽 2시 반까지 마셨으니 독주를 계속 마셨으니 상당히 취했습니다. 돌이켜보니 거의 십여년 사이에 제일 많이 마신 날이었습니다. 그 사이 여러 가지 작업 때문에 몸과 마음이 조금 지친 상태라 신나게 놀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고, 오랜만에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 사람들이 너무나 환호성을 치며 반겨주었기 때문에 약간 도취 되었던 탓도 있었겠지요. 아무튼, 워낙 많이 마셨기에 술에서 완전히 깨는 데 거의 이틀 이상이 걸리더군요.
오늘은 부천 쪽에 볼 일이 있어 차를 몰고 그쪽으로 갔습니다. 영동 고속도로는 차가 별로 없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100번 외곽 순환도로로 들어서자 차량이 조금 많아져서 속도가 조금 떨어졌습니다. 그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제 명상모임의 총무에게서 온 전화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번 달 명상 수련회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전화였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간단하게 답변했을 텐데 그때는 빨리 전화를 끊어야 한다는 느낌이 오더군요. 그래서 지금 운전 중이니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말하면서 바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내비게이션을 보기 위해 전화기를 다시 거취대에 꼽았지요.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앞쪽에서 펑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저는 당시 2차선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1차선으로 내 앞쪽 서너 번째로 먼저 달리던 차가 중앙선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면서 낸 소리였습니다. 아마도 졸음운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차는 중앙선 가드레일을 받은 뒤에 팽그르르 돌면서 튕겨 나와 2차선 쪽으로 꼬리를 내밀었지요. 그러자 2차선에서 두 번째 앞에서 달리던 차가 그 차의 꽁무니를 들이받고, 바로 내 앞에서 달리던 차도 급브레이크를 밟았으나 결국은 자신의 앞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저 또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냥 2차선으로 계속 가면 도저히 추돌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황급히 3차선 쪽으로 핸들을 확 꺾었습니다. 덕분에 왼쪽으로는 정말 아슬아슬하게 추돌을 피했지만, 오른쪽은 장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라 오른쪽까지 살펴볼 경황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정말 2-3초 내외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정신은 또렷했고, 심장은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만약 오른쪽에서 급정거하는 차가 나를 들이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핸들을 꼭 잡고 있었지요.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천만다행으로 제 차는 전후좌우 아무런 추돌 없이 아슬아슬하게 끔찍한 사고현장을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고속도로라 뒤로 돌아볼 수도 없이 백미러를 통해 뒤를 관찰해보니 뒤쪽은 연기도 나고 차량 몇 대가 뒤엉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더군요. 그 끔찍한 풍경도 금방 백미러의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났지만, 나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저 전방 주시하면서 안전하게 운전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생각해보니 전화를 끊은 그 순간이 정말 절묘한 시각이더군요. 2-3초 정도 늦게 전화를 받았거나, 아니면 제가 전화를 2-3초 더 끌었더라면 정말 대형 사고에 말려 들어갔을 겁니다. 오른손으로 전화를 받는 상황이거나 핸드폰을 다시 거취대에 꼽는 상황에서 왼손만으로 갑자기 핸들을 획 돌리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전화를 받거나 핸드폰을 거취대에 꼽는 가운데 그런 돌발 상황이 일어났다면 의식이 분산되어 있어 그렇게 빨리 대처하기가 어려웠겠지요. 운전 중에 전화를 받는 것이 보통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만약 위급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현장 체험했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 정말 큰 일들을 체험했네요. 특히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천우신조였다 생각됩니다. 앞으로는 운전 중에는 핸드폰 전화가 걸려오면 무조건 빨리 끊을 겁니다. 여러분들도 운전 중의 전화는 정말 조심하세요.
첫댓글 정말 큰 일을 당하고 당할뻔 하셨군요.
저는 데쉬보드에 전화기를 놓고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데 부득이 해야 할 통화가 아니라면 앞으로는 가급적 빨리 끊도록 하겠습니다.
생생한 경험, 목격담이 크게 경종이 되어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이장님도 운전 중 핸드폰 사용 조심하세요. 사고는 정말 한 순간이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저는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젊은 시절 이문열작가님의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읽었던 기억이..^^
유명 작가님과의 예상하지 않은 특별한 음악과 함께한 술자리의 흥 이야기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에 ..운전 중 사고 날 뻔한 상황 듣고 가슴 쓸어내리게 됩니다.
tv에서 블박영상들 보면 정말 나만 운전법규 지키고 잘 한다고 사고 안 나는 게 아니더라구요.
방어운전과 순간 대처가 내 운명도 좌우하니 운전 중엔 정말 운전에만 집중하기로 해요.^^
이문열 작가님 댁은 저희 집에서 한 100미터 남짓 거리입니다. 산책로 오다 가다 자주 만나지요. 그날이 아주 특별한 날이었지요. 다 음악의 힘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어제 그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합니다. 제 앞에서 2차선으로 달리던 차들은 정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당했지요. 저는 정말 천우신조 덕분에 화를 피했던 것 같습니다. 운전은 그저 조심 조심 또 조심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