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은근히 인기 좋았던 "프린세스 메이커2" 라는 게임이 있다.
딸을 키우는 게임인데 (아쉽게도 키가 크게 자라도 농구선수가 되는 엔딩은 없다) 딸의 영양방침에 대해 다음의 선택지가 있다.
"튼튼한 아이로(잘 먹임)" "무리하지 않는다(무난)" "얌전한 아이로(적게 먹임)" "다이어트한다(거의 굶김)"
오늘 경기에 임하는 위성우-임근배 두 베테랑 감독들의 속내를 감히 농알못 팬이 추측해 본다면,
우리은행은 "다이어트한다(절대 질 수 없다)" 삼성생명은 "무리하지 않는다(지면 지는 거고)" 였지 않았을까 싶다.
4위랑도 멀고 2위랑도 멀리 있으며 최근 이주연-박하나-김한별-김보미가 차례로 부상을 호소한 삼성은
봄농구에서 만날 우리은행에게 굳이 지고 들어갈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선수 혹사해 가며 이길 필요도 없는 경기였다.
반면 정말 딱 포기할 수만 없게끔 1위 자리와 썸을 타야 하는 우리은행은 오늘 지면 사실상 2위가 굳어지며
더욱이 국민의 정비 여유를 준다는 점에서 만에 하나라도 내줄 수 없는 경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5점차라는 점수차도 그렇지만, 이긴 우리은행도 안 다친 삼성생명도 서로 크게 불만 없는 경기였을 것 같다.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는-
# 다시는 박지현을 무시하지 마라
박지현이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리고 위감독님은 못 뽑을 줄 알고 안 봐서 모르겠다 하겠지)
당장 지금 박지현이 가장 잘 하는 건 프리롤이라고 할 수 있다. 팀내는 물론 고교리그 전체에서 박지현을 당할 선수가 거의 없으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농구했던 선수다. 오늘 삼성이 자랑하는 2쿼터 삼각편대 중 김한별과 박하나가 제 컨디션이 아니었는데,
아직 삼성식 스위치 수비 적응이 덜 된 양인영 윤예빈의 수비 구멍을 언니들이 채워주지 못하면서 박지현이 신나게 뛰어다녔다.
와이드 오픈 3점을 두 번 모두 성공시킨 부분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스트롱사이드에서 순간적인 스피드로 박하나를 따돌리고
배혜윤 등 뒤로 가서 노마크 컷인 레이업을 깔끔하게 성공시킨 장면이 오늘의 백미가 아니었나 싶다.
박지현 vs 이소희 놀이를 하는 건 팬들의 즐거움 중 하나긴 하지만, 박지현은 옥저를 갔어도 이번 시즌부터 활약했을 것이지만
이소희가 우리은행에 왔다면 감독 스타일상 코트에서 거의 구경을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소희와 옥저의 선전을 매우 응원하기는 하지만, 6연패 팀이자 신인에게 엄격한 팀에서도 백업으로라도 뛰는
박지현의 잠재력은 확실히 대단한 것 같다.
*또다시 돌아온 농알못끼리 돕고 살자 코너. 스트롱사이드란?
공격자가 공 들고 있는 쪽이 스트롱사이드. 공 없는 쪽이 위크사이드.
위크사이드에서 안 움직이고 대충 서서 있으면 스트롱사이드도 weak해진다.
# 일대일 최강자, 김정은
제목만 보고도 동의가 안 되는 김단비(신) 팬분들이 있을 것이다.
박지수 팬분들 아니고? WKBL 얘기하는데 WNBA 선수는 좀 뺍시다.
만약 팀으로 말고 일대일 농구를 붙인다면, 건강한 김단비(신)를 어찌어찌라도 막을 선수는 정말 몇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김단비(신)의 치명적인 약점은 팀이 약팀이라는, 특히 공격력 최약체라는 점이다.
반면 김정은은? 최고 화력팀은 아닐지라도 득점 지원을 분산해 줄 옵션은 아주 다양한 팀에 속해 있다.
이게 신한 선수 4명과 공격하는 김단비보다 우리 선수 4명과 공격하는 김정은이 더 막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우리-삼성 경기날에 뼈를 맞은 신한 팬분들께 죄송)
요즘 김정은은 우리의 주득점원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하는 중이다. 공격에서의 기여분만 보더라도,
떨어지면 타이밍 빠른 3점슛.
붙으면 자세 낮추고 드라이브인.
협력수비 늦게 오면 앤드원. 일찍 오면 템포 조절할 줄도 알고.
자유투까지 왠만하면 70% 이상은 기대할 수 있는 선수가 김정은이다.
삼성이 나중에 우리를 다시 만났을 때, 김한별과 배혜윤 중에 한 명이 또 부상 중에 있다면 김정은에 대한 해법은 못 찾을 지도..
수비도 많이 좋아진 것이. 우리은행 수비의 큰 장점 중 하나가 롱리바운드나 루즈볼 때문에 수비가 헝클어졌을 때에도
가까이 있는 선수들이 스트롱사이드에서 압박을 가하면서 쉬운 오픈찬스를 최대한 저지하는 부분인데,
이제 김정은도 그런 수비 대형을 갖추는 데에 거의 위화감이 없다.
우리은행의 연속우승 숫자가 몇에서 멈출 지는 모르지만, 이대론 김정은이 은퇴할 때 "우리은행 선수"로 더 각인될 지도 모르겠다.
# 빌링스와 김소니아의 조합
빌링스는 여러 측면에서 김소니아의 상위호환처럼 보인다. 탄력 좋고. 점프하듯이 스텝 밟는 동작 좋고. 신장 대비 리바운드 괜찮고.
(물론 김소니아는 은근한 3점 능력을 갖췄고 빌링스는 미들슛이 정확하다는 차이가 있다)
빌링스가 정통 센터가 아니라는 건 체형만 봐도 알지만, 무엇보다 수비리바운드를 잡았을 때 바로 첫패스를 빼주기보다는
자기가 드리블 치고 나가는 비중과 드리블 시간이 제법 된다는 점을 봐도 잘 드러난다.
아직 손발을 덜 맞췄고 선수 면면이 익숙하지 않아서 더 그렇기도 하겠지만.. 확실히 토마스랑은 다른 유형의 선수.
하킨스가 생각보다는 골밑보다 외곽에서 돌고 있고 배혜윤이 외곽 수비에 약하다는 점에서
삼성 상대로는 빌링스+김소니아의 기동력 콤비가 잘 먹히는 것 같다.
그런데 쏜튼+박지수 상대로는 어떨지.. 오늘도 김소니아가 5반칙 퇴장되었듯이, 상대가 로우포스트로 계속 공을 보내면
이 둘은 파울이 안 많아질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빌링스와 김소니아가 국민을 상대로도 더 위력을 발휘하려면 빨리 박혜진 발목이 나아야 한다. (엥?)
박혜진이 지금처럼 달리기와 점프 모두 부담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상대 앞선을 예전처럼 제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나마 최은실이 요즘 최은실책 모드에서 최은실력 모드로 성장해 주면서 외곽과 리바운드 부담은 좀 덜어졌지만
어쨌든 빅게임에서는 박혜진의 몸상태가 아주 중요한 팩터가 될 것이다.
아. 김소니아에게 감탄한 장면 하나. 4쿼터 1분 39초 남기고 두번째 팀파울을 하면서
"팀 뽜울 있어!!" 라고 동료들에게 크게 외치는 모습. 팀 농구 많이 배웠다. 아직 존대말은 못 배운 듯하지만 상관없겠지
아직 미리보는 플레이오프처럼 붙고 싶지는 않은 삼성생명을 상대로 한 것이긴 했지만,
충격적인 역전패를 딛고, 포기를 모르고 달리는 연속우승팀 우리은행의 승리 축하합니다!

더 큰 기여를 한 김정은과 빌링스에게 미안하지만, 박지현의 이 컷인 장면을 오늘의 사진으로 선정!
(박하나에게 제일 미안해야 할 거 같은데...)
첫댓글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박지현선수 역시가 역시네요.앞으로 발전가능성 많은 선수인데 더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어쩌면 정규시즌 우승가능성이 낮아진 점이 박지현 선수 출장시간을 늘릴 거 같기도 합니다. 저도 궁금하네요.
저런 센스있는 컷인 잘하는 선수치고 농구 못하는 선수는 없는거 같아요...많이 많이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김정은 선수는 요즘모습은 전성기시절로 돌아간거 같네요. 작년엔 좀 묻어가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중요할때 해주고, 진짜 그냥 잘합니다. 최고에요...임영희선수처럼 40까지 선수생활하고 레전드로 남을듯한 느낌이 드네요;;
이미 20대를 최고 스코어러로 커리어를 쌓은 터라, 40까지 선수생활하면 득점 1위를 비롯하여 금자탑 커리어를 완성할 거 같습니다. 최소한 1개는 우승반지도 있고요.
@은경이 우뱅 간게 여러모로 좋은 결정이었던거 같아요!
김단비선수의 치명적인 약점은 팀이 아니고 김단비선수 자체가 슛이 안좋다는거지요. 그리고 팀버프는 김단비선수가 더받고있지요 신한에서 슛은 혼자 다던집니다. 그래서 득점기록은 좋은데요 효율이 무지 나쁩니다 3점슛이 25프로가 안되지요
동의합니다. 제가 좀 포괄적으로 써서.. 김단비 선수의 단점을 말하려고 한 게 아니고, 1:1 공격이란 것도 팀 동료의 공격력이 받쳐주느냐 여부에 따라 수비 입장에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슈팅 기회가 많으면 득점이 높아지는 건 대체로 그러할 텐데, 김단비 선수 실력 그대로 우리은행에 와 있다면 지금보다 막기 더 힘들 거라는 얘기였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
대체나~~
그렇게 볼수도 있겠네요
김단비 원맨팀인줄 알았는데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