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8일(토)
* 시작 기도
주님...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삶은 육신의 삶이 아니라 영의 삶 곧 영생임을 아오니 영생과 전혀 상관이 없었던 자요 죽음만이 내게 합당한 자인 나를 주의 긍휼과 은혜로 살려 주셨나이다.
오늘 이 아침도 큰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내 심령 속에 주의 보혈의 폭우가 쏟아져 그 안에서 나는 죽고 오직 주님만이 나의 생명이 되어 주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하게 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말씀 앞에 섭니다.
이 종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빚으사 새 영과 새 마음을 부어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롬 8:12-17
제목 :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자가 할 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 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 나의 묵상
만일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 곧 성령이 그 안에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을지라도 영혼은 그리스도의 義로 인하여 산 것이 된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역시도 죽을 몸에서 살리신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런 은혜에 빚진 자로서 육신의 본성에 패하여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만일 육신의 본성을 따라 살면 반드시 죽게 되지만, 반대로 성령으로 육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두려워하게 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양자의 영을 받은 것이다.
이는 나의 열심과 각오 그리고 결단으로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혼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로서 하늘의 영광에 참여하려면 그와 함께 동일하게 고난에도 참여하여야 한다.
내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내 마음과 입술에 있지 않다.
이는 오직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이요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 인함이다.
나는 성령을 오해한 자였다.
성령은 마치 요술방망이와 같아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성령을 뜨거움이나 방언, 병고침이나 예언 등과 같은 것으로만 생각하였다.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이 성령의 역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성령의 본질은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국한되지 않는다.
나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크게 오해하였다.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이 말씀은 내가 예수를 믿고 원하는 것은 현실 속에서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원하고 구하는 것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과 반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그래서 나는 내가 기도를 해도 안 이루어진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나의 모습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오해한 것이었으며 무엇보다 복음을 알지 못하던 나의 무지의 소치였던 것이다.
그런 나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는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왜 독생자이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는지 바르게 알지 못한 채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서 믿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나는 성령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성령의 사람은 좀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의 열심과 뜨거운 열정 그리고 각종 은사를 행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주의 말씀으로 나를 다스려 비록 제한적이지만 이 세상에서부터 영생의 삶을 누리는 사람을 말한다.
이 영생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곧 사귐을 의미한다.
이런 사귐과 교제가 있으면 이 땅에서 내가 가진 것이 좀 부족하고 건강이 좀 좋지 않으며 자녀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거기에 연연하지 않고 이를 넘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이 평안은 무조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문 17절 말씀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 또한 그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만 주어지는 것이다.
이 고난이란 그저 막연한 고난이 아니다.
내게 주어지는 고난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 고난을 가리켜 하나님의 심판이라 한다.
우리는 심판이라는 말을 들으면 굉장히 거부감이 드는데, 사실 심판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이 말은 곧 영광을 받기 위해서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를 세우고 이 공의의 결과 영원한 안전과 평화가 임하게 된다.
안전과 평화는 고난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이 없이는 결단코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고난의 심판이 오히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에 감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고난의 심판은 비록 혹독하고 가혹하지만 그만한 고난이 아니면 나를 저주와 진멸의 수렁에서 건져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의 심판을 오해하였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런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늘 평안하고 안전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디 그런가?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유롭고 평안하며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은 다 하면서 행복하게 살지 않는가?
이를 아삽이 쓴 시편 73편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 아삽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자신이 넘어지고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고백한다.
그 이유는 믿지 않는 악인들이 형통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을 때도 고통이 없고 힘도 강하며 교만하고 강포가 심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잘 먹어서 살이 찌고 그들이 소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역행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이를 언제 깨달았는가 하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알게 된다.
(시 73:16-19)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주께서 참으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주님께서 “네가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육신으로 사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때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땅에서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죽어서 천국에 가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주님께서는 우리가 죽어서 가는 천국을 말씀하시도 하시지만, 더 중요한 천국은 이 땅에서부터 누리는 천국 곧 영생의 삶이다.
내가 비록 아삽의 시에 나오는 악인들처럼 이 땅에서 형통하거나 무엇을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내게 주신 분복 곧 자족의 은혜 안에서 살아갈 때 세상이 알지 못하는 참된 평안과 은혜를 얻게 되며 그것이 곧 이 땅에서 현재로 누리는 영생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성령 안에서 날마다 주시는 말씀과의 교제로 가능하다.
따라서 성령의 사람은 말씀의 사람이요, 말씀의 사람은 성령의 사람인 것이다.
성령충만은 나의 열심이나 뜨거움, 여러 가지 은사가 없을지라도 날마다 주의 말씀으로 주님과 노니는 것이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과 함께 말씀으로 노니는 마리아처럼 말이다.
이런 사람은 능히 하나님을 향하여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
그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육신대로 행하려는 죄의 세력과 싸우되 피를 흘리기까지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싸우면서 팔이 잘리고 다리가 부러지며 눈이 빠질지라도 그런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 주님의 십자가에 연합하는 것이 진짜 영생의 삶임을 믿는다.
오늘 이 하루가 그런 거룩한 불구자의 삶이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성령을 오해하고,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였으며, 주의 심판을 거부하여 내 맘대로 생각하고 고난을 밀어내던 자가 바로 여기 있나이다.
예수를 믿으면 심판과 고난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믿었던 나는 고난의 심판, 그 중심에 서서 온 몸으로 그 심판을 받았던 자입니다.
그런데 어느새 마음에 살이 찌고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기는커녕 그 죄를 은밀하게 즐기면서 사는 자가 되었나이다.
나의 죄를 내가 아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사 주의 보혈로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서게 하소서.
성령의 사람은 눈에 보이는 그 무엇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말씀으로 날마다 주님과 노니는 자임을 믿사오니 내가 낭떠러지도 떨어질지라도 파레시아로 담대히 일어나 아버지 품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내게 주신 주의 은혜가 너무 큰 것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이를 잊어버리는 이 부족한 자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구할 것은 주의 긍휼이오니 오늘도 주의 품에 거하여 그 나라를 누리게 하옵소서.
코로나 상황에서 전국이 물난리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나이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주의 섭리를 잘 발견하여 현재적인 영생의 삶을 잃지 않도록 긍휼을 베푸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