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도의 3월을 열며
3월이다. 이제 2월과 달리 그냥 봄이 왔노라고 한 번 힘껏 소리를 쳐도 좋으련만, 뭐가 그리도 쑥스러운 걸까. 온 세상이 잔뜩 찌푸리고서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린다. 그래도 진도로 길을 나선다. 3.1절 95돌이기도 하다. 진도대교를 넘는다. 현수교 아래는 정유재란 때 충무공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왜적을 무찌른 통쾌한 명량대첩이란 역사가 담긴 울돌목으로 그날을 되새기듯 힘차게 소용돌이칠 것이다. 요즘 들어 일본은 아베 총리가 앞장서 역사왜곡은 물론 위안부 소녀까지 잡아떼며 거침없이 독도에 더 열을 올리면서 부쩍 군국주의에 회귀하는 듯싶은 행동거지로 국제무대에서도 외톨이 따돌림을 받고 있다.
3월의 첫날 진도는 안개에 휩싸여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린다. 겨울을 나며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는지. 미처 준비가 덜된 무대 뒤편에서 더 멋들어진 내일의 참모습을 보여주려는 다소 어수선 준비과정인지 모른다. 이왕에 올 봄이면 그냥 순수하게 받아주면 될 터인데 수구세력과 개화세력의 대립으로 뭐 그리 까다로운가 싶기도 하다. 그냥 활짝 갠 날씨로 3월의 진도를 열었으면 좋으련만. 어쨌든 봄은 어김없이 오고 있다. 하기야 사람에게도 기분이 아주 좋은 날이 있고 착잡한 날이 있고 그냥 그날이 그날이지 싶은 날도 있다. 그래도 시간은 한 치 늦추거나 멈춤이 없이 흘러가고 달력을 잡아 뜯게 하며 계절은 오고 가고 있다.
그러니 자연 앞에 더구나 오가는 세월 앞에 그들이 내 마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연히 그들의 마음에 맞춰가야 한다. 나에게 무슨 그리 큰 힘이 있겠는가. 대들고 태클을 걸어보았자 시큰둥도 않는다. 우의를 걸치고 동석산을 조심스레 오른다. 날씨가 좋은 때에 산에 올라야 한다는 선입감에선가 다소 멋쩍고 거추장스럽지만 바람이 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강우량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동석산은 불과 240m 높이로 낮지 싶어도 탁 트인 전망에 다도해의 조망이 아주 뛰어난 곳이다. 1.5km쯤 이어지는 암팡진 바위산은 등산의 묘미를 지녔기에 유혹을 뿌리치기가 그리 쉽지 않은 진도 명산이다.
다만 오늘은 시계가 좋지 않아 저 앞에 둥둥 떠 있을 다도해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모습의 섬들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장막에 가려전날의 기억으로 되새김질하며 그런 호사스러움은 접어둔다. 10년이란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도 그리 변치 않는 것은 불쑥불쑥 솟아 오른 대머리 같은 거대한 바위들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부슬부슬 내리고 또 안개비이지만 바위는 축축이 젖어 땀 흘리듯 번들거린다. 그러나 나무는 사라지기도 하고 그동안 쑥쑥 자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노간주나무도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초목은 이슬비지만 촉촉이 젖고 봄날의 메신저까지 함께 스며들어 들떠있을 것이다.
입술이라도 깨문 듯 퉁퉁 불은 진달래 봉오리가 빨갛다. 빨리 횃불을 켜들면 초목은 일제히 봉기하듯 싹을 틔워서 초록세상으로 바꾸어 놓겠다는 기세다. 파르르 눈길을 마주친 작은 꽃이 앙증스럽게 들어온다. 배추를 거둔 들밭에 대파 마늘이 기세를 부리고 보리밭도 시퍼렇게 일어선다. 잡풀도 일제히 푸른 깃발을 올리고 있다. 확실히 남도의 봄은 한 걸음 빨리 오고 있고 진도는 이미 봄의 중심에 들어서있지 싶었다. 좀은 아쉬움에 자리를 옮겨 회동마을의 뽕할머니 동상을 돌아본다. 홍주에 붉어진 얼굴로 신비의 바닷길에 엉킨 전설을 되새기며 바닷길이 열리는 현장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오후 5시를 넘어서야 반쯤 드러났다.
누구는 오늘 하루 완전히 망쳤다고 한다. 산에 오른 것도 그렇고 비를 맞은 것도 아직은 으스스하고 꽉 들어찬 안개는 답답하리만치 가슴을 조여 왔다고 한다. 하지만 나름대로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지 않았을까. 비록 진도의 3월은 아직 설익어 선뜻 내놓기 부족함이 많아 장막에 가리며 내놓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더 눈부신 내일을 한꺼번에 내놓기 위한 하나의 진통이었을 게다. 그런 탓인가. 이슬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고 섬을 돌아다닌 덕분인지 돌아오는 길은 근질거렸다. 아마도 나름 축축이 젖어들었다가 벌써 내 마음에 봄을 싹 틔우고 있었나 보다. 그렇게 나의 3월도 열리고 있었다. - 2014. 03. 01. 文房
|
첫댓글 눈에 보이는 그림은 없어도 글만으로도 3월 첫날 진도의 봄 풍경이 가득 전해져 옵니다. 산행도 하지 않고 차안에서 몇시간을 보냈음에도 어찌나 피곤한지요... 우산받치고 산으로 떠나시는 용감함에 부끄러움과 박수 보내드립니다. 건강하시고, 또 뵙길 기대합니다.
천사 같은 마음씨입니다
많은 기다림은
더 곤혹스런 시간이지요
좋은 날
좋은 시간 되십시오.
머나먼 길 진도로 달려가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동석산에 올라 일찍 봄기운을 맞이 하셨네요
잘 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함께 떠나가는 길
같이 느껴야
제격인데
보람된 날 되세요.
수고많으셨습니다
늘 안산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 딛고
의연함 모습
늘 좋은 날 되십시오.
가랑비 내리는 동석산을 오르며 쓴 좋은 글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수고 하렸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바다가 싫증나 산으로 간 갈매기
백두대간으로 부족해
9정맥에 또 2기맥을 완주한
철각
아! 오늘은 어디로 떠나십니까?